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255)
첩자의 마교생활-255화(255/350)
255.
#용의자
‘괜한 말실수를 하였구나!’
우사는 침을 꼴깍 삼키며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
천마의 분노는 천하를 떨게 만든다.
청정하던 하늘은 붉어졌고, 먹구름은 빠르게 몰려들었다.
천지가 그럴진대 우사라고 두렵지 않을 수 없는 일.
서둘러 태세를 전환했다.
“……하지만 그런 어려운 일을 해냈기에 장이서가 더 대단한 것이지요.”
솨아아아아-
종말의 날처럼 분노했던 하늘이 다시금 제자리를 찾는다.
우사는 속으로 크게 한숨을 삼켰다.
‘지존께선 그 아이를 진심으로 아끼시는구나.’
이젠 의심할 필요도 없는 수준.
앞으로 천마신교가 어찌 돌아갈지 벌써 깜깜이다.
한데 그때.
“우사, 자네는 그 아이가 신승을 어찌 꺾었는지 모르나 보군. 난 잘 알겠는데.”
천마가 웃음기를 입에 가득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우사는 더더욱 이해가 안 가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솔직히 어찌 알겠는가. 단숨에 극마에 오르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인 것을.
이에 천마는 답지 않게 부언해 줬다.
“그저 그래야만 했던 것이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하나 더 이상의 친절은 없다. 천마는 그저 웃으며 생각했다.
‘그 아이는 역천의 아이. 부득이 그래야만 할 상황이라면 그냥 그렇게 상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신승이 주화입마에 빠졌든, 그날따라 몸이 좋질 않았든. 아니면 장이서에게 기연이 닿았든. 그 이유가 무엇이든. 그냥 그렇게 되어야 했던 것이다.’
이게 뭔 어처구니가 없는 무근본 논리인가.
하지만 믿기 힘들겠지만, 원래 모든 절대자들은 다 그러하였다.
수많은 역경을 운이든, 실력이든, 도움이든. 무엇으로든 기적처럼 이겨내고, 또 이겨냈기에 정점에 올라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역천의 자질!
그리고 그건 천마 진우광 역시도 마찬가지.
‘일평생 자비만 찾더니. 신승이라면 그 아이의 첫 제물로 나쁘지 않구나.’
그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자 우사가 눈치껏 보고를 이었다.
“세간엔 벌써 뇌마(雷魔)라 불리고 있으며 모두가 장이서의 이야기뿐입니다.”
“뇌마라…… 좋구나.”
“하오나 정파에서 이대로 가만히 두고 보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상관없다.”
“예? 예…….”
진우광은 알 바 아니라는 듯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애초에 그에게 장이서의 위기는 성장을 위한 제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
“이만한 공을 세웠으면, 포상을 내리지 않을 수 없지.”
천마가 웃음과 함께 서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 * *
– 서녕 청해지부 안가.
천하에 저의 얘기가 울려 퍼지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정작 당사자인 장이서는 지그시 눈을 감고 평온히 명상에 잠겨 있었다.
물론 마음은 아우에 대한 생각으로 조급하나, 이럴수록 더더욱 철저히 준비를 마쳐야 했다.
그중 가장 급선무는 이번에 익힌 역근경에 대한 이론의 정립이었다.
‘역근경은 참으로 편리한 무공이다.’
편리. 장이서는 그렇게 정의를 내렸다.
본래 내기를 일주천하여 원하는 부위에 공력을 불어넣고, 가공할 힘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심법의 기본 응용이다.
한데 역근경은 그런 기본적이고도 상식적인 이치를 완전히 무너뜨려 버렸다.
근막과 골막을 팽창시킨 뒤, 그 안에 공력이 쌓이는 소단전(小丹田)을 탄생시켜 버린 것.
그것도 전신을 이루는 근골에 전부 말이다.
‘대사께서 원천진기까지 다 불어넣었으니…….’
그렇게 만들어진 소단전만 무려 358개.
덕분에 일주천을 하지 않더라도 전신에 막대한 힘이 가득했다.
그래서 작정하고 소단전을 열면 양기가 뿜어져 짙은 열기가 새어 나왔던 것이다.
전력을 다한다는 말이 너무나 무서워질 정도로 혀가 내둘러지고 고개가 저어지는 거력.
더구나 이게 끝도 아니었다.
어찌 보면 역근경과 환골탈태보다 더 기적적인 기연이 바로 이것이었다.
‘돌려세워진 나무처럼 358개의 소단전은 단전으로 통하고, 단전은 그대로 지궁과 이어지니. 네 번째 천궁이 자연스레 막혀 버렸다.’
한마디로 초절정 경지에 올라선 것.
이는 신승도 생각지 못한 결과였다.
남천능가경과 역근경이 만나면서 벌어지게 된 일.
그리고 그건 엄청난 파장을 예고했다.
역근경 수행자였던 신승은 원류심법의 아종인 반야신공(般若神功)으로 수련한 자.
금강불괴에 근접할 만큼 막대한 힘과 강도를 자랑하긴 했으나, 그래봤자 반쪽짜리.
반면 장이서는 심법과 체술이 일체화된 진짜였다.
그 결과 지금 장이서는 육체의 완성을 넘어 상상을 초월할 만한 자질이 생겨버렸다.
이를테면…….
쉬익! 쉭!
날카로운 음색에 슬며시 눈을 뜬 장이서. 그가 열린 문밖으로 걸어 나가자, 권법을 수련 중인 신승의 모습이 눈에 담긴다.
오형권(五形拳). 다섯 가지 동물을 본떠 만들어진 소림의 가장 근간이 되는 기초 권법이다.
그리고 지금 신승이 펼치는 건 그중에서도 호권을 극도로 발달시켜 재탄생시킨 그만의 금강산호권(金剛山虎拳).
겉보기엔 비슷하나 실상은 화경의 고수인 그만의 묘리가 담겨 일 년을 익혀도 흉내조차 힘든 권법이었다.
한데.
쉬익! 쉭!
장이서는 저도 모르게 그의 동작을 따라 하고 있었다.
시작은 조금 어설펐지만, 숨 한 번 내쉴 때마다 급속도로 정확해져 갔다.
“음?”
이에 신승이 수련을 멈추고 장이서를 살피자 잠시 후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어, 어찌…….”
어느새 미세하게 틀어진 박자와 강약의 묘리마저 똑같이 구현해 내고 있었던 것.
심지어 자신이 보여주지 않은 영역까지 풀어내고 있었다.
그것도 금강산호권과는 다른 저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신승의 나이가 망백(91세)을 넘었다.
일평생 소림에서 수많은 제자들을 가르치며 얼마나 많은 수재들을 목도하였겠는가.
셀 수도 없었다.
하나 이런 천재는 난생처음이었다.
일대 제자들도 하기 힘든 자신의 권법을 단 한 번 보자마자 흉내를 내다니.
그런 그가 작정하고 무공을 익힌다면?
그야말로 오금이 저릴 만큼 두려운 일이다.
넋 놓고 그를 살피자 한참 후에야 장이서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포권을 취했다.
“제가 큰 실례를 범했군요. 생각이 짧았습니다.”
강호에선 무공을 훔쳐보는 것도 죄이지만, 이를 따라 익히는 건 더더욱 큰 죄.
물론 남일 경우에 그렇다는 얘기다.
“아닙니다. 조사께 못난 제자의 실력을 보인 것이 부끄러울 따름이지요.”
장이서가 일관된 그의 태도에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신승이 상기된 어조로 이어갔다.
“한데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무엇이 말입니까.”
“부끄럽지만 난해한 무공에 속한다 생각하였거늘. 조사께는 이리 쉬울 줄 몰랐습니다.”
“아, 그건…….”
장이서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놀란 건 그도 마찬가지였다.
본래 이치를 깨닫고, 이해하는 데엔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장이서다. 하지만 늘 몸이 따라주질 못했다.
이른바 상상은 할 수 있어도, 구현할 수는 없었던 것.
한데 희한하게도 지금은 상상하는 대로 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였다.
‘이 또한 역근경의 힘인 건가.’
그랬다. 이것이 바로 역근경으로 얻게 된 새로운 자질이었다.
생각하는 걸 고스란히 펼쳐낼 수 있는 신체의 탁월한 감각.
그리고 이는 장이서한텐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격이었다.
그만큼 역근경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굳이 단점을 하나 찾자면, 천마안이나 독마안. 혹은 뇌전법으로 응용할 수는 없다는 정도.
하나 그게 뭐 중하겠는가.
사상 최강의 육신을 지니게 되었는데.
이제야 독자적인 절세 고수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장이서는 자신의 이러한 가벼운 행동이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킬지 미처 생각지 못했다.
‘어쩌면 조사님이라면.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던 그 업적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소림에서 수백 년째 공석으로 남겨진 천왕전(天王殿)의 주인이 탄생할지도 모를 일.
기대에 가득 차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신승.
물론 장이서는 꿈에도 모른 채 마주 웃으며 말했다.
“들어가시죠. 할 얘기들이 많습니다.”
“예, 가시지요!”
점점 더 가까워지는 그들이었다.
*
온전한 휴식을 마치고 마주 앉은 두 사람.
우여곡절이 있긴 했으나, 어쨌든 이젠 미루지 말고 해야 할 대화가 있었다.
그것은 신승이 능가경을 찾아 청해까지 오게 된 경위.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신승은 초연함이 가득한 눈으로 지난날을 설명했다.
“능가경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건 노왕야께서 입적하시기 보름 전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신승은 맹주와 방장이 함께 한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들었다.
“노왕야가 아니라 무림맹에서 말입니까?”
“예. 맹주께서 처음 그 말씀을 꺼내셨지요.”
맹주 현청……. 그라면 장이서도 만난 적이 있었다.
가볍게 무리에 대한 가르침을 일러준 정도.
그때 봤던 느낌은 공명정대한 면모보다는 신중하고 현실적이라는 인상이었다.
‘구규지체가 아니라 그냥 정상이기만 했어도. 그랬다면 난 널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넌 정도의 무신이 되었을 테니.’
가만히 생각해 보니 차가웠던 것도 같다. 하나 그건 거파(巨派)의 수장으로서 당연한 일.
“한데 왜 왕야께서 움직이게 된 겁니까?”
“물건이 있는 곳이 관과 연관이 있는 곳이라고 들었습니다. 하여 맹주께서 직접 노왕야께 청을 올렸다고 하였지요. 무량수불.”
장이서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분명 신승이 능가경을 익히게 된 경위 어딘가에 혈교의 암수가 뻗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데 지금 말만 들어보면…….
‘맹주가 첩자?!’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왕야께서 살해당할 때 그럼 무림맹은 뭘 했던 겁니까.”
“오히려 도움은 왕야께서 거절하셨습니다. 무림맹과 공공연히 얽혀 서로 좋을 게 없다 하셨지요.”
이런 답답한.
“그럼 섬서성에 가셨던 건요. 듣기로 마지막으로 소식이 끊긴 곳이 그쪽이라던데.”
신승은 그걸 어찌 알았냐는 표정을 짓고는 금세 답했다.
“음…… 맞습니다. 그곳에서 청해에 능가경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움직이게 된 것이지요.”
장이서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누굽니까. 그걸 말해준 자가.”
“서검입니다.”
“예?”
점입가경이라는 말은 정말 이럴 때 하는 것이다.
중리성에 이어 서검이라니.
그는 화산파의 전설 아닌가.
어떻게 된 용의자가 죄다 신주오절이 될 수 있는가.
장이서는 크게 당황했다.
“아니, 그 외에는 더 없습니까? 신승께 정보를 준 사람 말입니다. 아니면 들을 때 같이 있었다든가.”
“지금 말씀드린 게 다입니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홀로 다녔습니다. 자칫 천하에 혼란이 일 수도 있는 일이니…….”
그야말로 오리무중.
신주오절이라면 애초에 의심할 수가 없는 자들이다.
고민이 깊어지자 신승이 물었다.
“무림맹에 첩자가 있다고 보시는 겁니까.”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조심스레 제 의견을 내비쳤다.
“그저 소문으로 소승을 꿰어낸 것은 아닐는지요. 무량수불.”
무림맹에 첩자가 없을 수도 있다는 얘기.
물론 그럴 수도 있다.
또한 함부로 첩자로 예단하는 건, 매우 위험한 일.
잘못된 오해로 자중지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
하나 장이서는 단호했다.
“무림맹엔 분명히 첩자가 있습니다. 그것도 상당히 높은 자리에 앉아 있을 겁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애초에 능가경 사태 자체도 시작되지 않았을 터.
뭣보다 누구도 몰랐던 청해호의 동굴을 신승이 알았을 리가 없다.
따라서 서검이 첩자가 아니라면, 서검에게 이를 전해준 자가 곧 흉신팔주다.
“대체 누가…….”
“이제부터 알아봐야죠.”
장이서의 눈매가 차분히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