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265)
첩자의 마교생활-265화(265/350)
265.
#기괴한 공조
“혈마귀라는 건 어떻게 알았지?”
장이서의 질문은 계속됐다.
“혈교와 마교가 원래 하나였던 건 알고 있지?”
당연히.
“우리한테도 있었거든.”
“뭐가.”
“혈마신공(血魔神功). 너희는 천마신공이라고 부르겠지만.”
눈매가 좁혀지고 헛숨이 나왔다. 혈교에도 천마와 똑같은 무공을 익힌 자가 있다는 말 아닌가.
“물론 조금 다르긴 해. 시간이 많이 흘렀잖아? 뭐, 너희보다 우리가 조금 더 신앙적이기도 하고.”
말만 들어선 뭐가 다른지 짐작도 안 간다. 아무튼.
“그럼, 지금도 혈마귀를 가진 혈교의 주인이 있다는 건가?”
“거기까진 죽어도 말 못 해. 혈교에서 저보다 위쪽을 논하는 건 절대 금기거든.”
적아린이 생각만 해도 닭살이 돋는지 제 양팔을 비비며 파르르 떨었다.
“고독이라도 먹은 거냐? 뭣 때문에 그렇게 떠는 건데.”
“왜 이래. 고독은 아래 애들 얘기고. 난 그 급은 아니야. 보면 몰라? 혈교의 기린아.”
“언제는 그 말 듣는 거 싫다며.”
“너한텐 해도 돼. 잘 보여야 하니까. 아무튼 이건 비밀인데 말이야. 함부로 금기를 발설하면…….”
그녀가 가까이 다가와 귓가에 속삭였다.
“지옥 가.”
미친. 장이서가 확! 귀를 털어내며 그녀를 밀쳤다.
“하하! 이유는 충분히 설명한 거 같은데.”
“전혀. 고작 내가 혈기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순순히 말을 따르시겠다?”
“물론 아니지. 근데 그냥 혈기가 아니잖아. 우리의 보물인 혈옥을 삼킨 혈마귀지.”
“그게 왜.”
“왜긴. 너희도 천마귀한테 경배하고 숭상하잖아. 마찬가지야. 다른 녀석들은 몰라도 적어도 난 신앙심이 투철하거든.”
“장난해? 원래 너희가 먹이려던 존재가 누군지 내가 모른다고 생각해?”
“아, 천마? 그쪽은 논외지. 혈옥을 삼킨다고 다 너처럼 완전한 혈마귀가 되진 않아. 조금 미칠 수는 있어도.”
장이서의 눈매가 좁혀졌다. 무슨 말인지 대충은 이해가 갔다.
자신이 갓 태어난 아이라면, 천마는 완성을 이룬 성체.
먹이를 준다고 다 변종으로 자라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어쨌든 난 너의 모든 걸 존중해. 너에 대해 떠벌릴 생각도 없고.”
“말한다고 믿어줄 사람은 있고?”
“후후, 그런가? 근데 정말 궁금하다. 넌 천마의 정식 제자도 아니잖아. 어떻게 천마신공을 익힌 거지?”
“어물쩍 알아낼 생각 말고 네 얘기나 해. 수틀리면 바로 너부터 죽일 거니까.”
장이서가 매섭게 노려보자 적아린이 식은땀을 흘리며 두 손을 들었다.
“그럼 믿어주는 거로?”
그럴 리가. 속아주는 거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
어쨌든 다른 건 몰라도 혈마귀에 대한 호의는 분명해 보였다.
“여기서 기다려라. 사람들을 데려올 테니.”
“다녀와.”
적아린이 웃으며 인사하자 장이서는 불신을 숨기지 않은 채 밖으로 나섰다.
쾅! 그러곤 문을 닫고 한동안 기척을 숨긴 채 기다렸다.
다른 수작을 부릴 수도 있기 때문. 하나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결국 마오와 만세극. 그리고 원담이 한자리에 모였다.
“볼수록 신기해. 어떻게 이렇게 모아놨나 몰라.”
“쓸데없는 소리.”
장이서는 잡설을 일축하고 바로 본론을 물었다.
“흉신팔주는 뭐 하는 자들이지?”
“말 그대로 악랄한 녀석들이지. 원래부터 혈교는 아니고. 쉽게 말하자면 제 식구 배신하고 혈교에 빌붙은 녀석들?”
역시 예상했던 대로다. 이른바 첩자라는 얘기. 한데 적아린은 흉신팔주에 그리 좋은 감정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적대감이 느껴지는 어투.
“근데 그렇게 말하는 너도 배신자 아니야?”
마오가 직설적으로 툭 내뱉자 적아린이 눈매를 차갑게 굳히곤 물었다.
“네가 칠공자구나?”
“헹, 이제 알았냐?”
“아무리 봐도 장이서 위에 있을 그릇은 아니야. 종놈이면 모를까.”
“크아아아악!”
마오가 불길을 뿜으며 폭주했다. 장이서는 그의 뒷덜미를 잡아 말리곤 말했다.
“헛소리 그만하고 하던 얘기나 마저 해.”
적아린이 피곤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곤 마저 말을 이었다.
“……흉신팔주는 우리랑 달라. 기본적으로 놈들은 신앙심이 없지. 그저 지극히 개인적인 사유로 빌붙은 녀석들이라고.”
“개인적인 사유?”
“뻔하잖아. 복수심, 성공욕. 뭐 그런 하찮은 것들이지. 우린 그런 게 없거든. 바라는 건 오직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뿐이지.”
“모두를 다 멸한 뒤에 말이오? 무량수불.”
원담이 비수처럼 일언을 던지자 그녀가 콧김을 뱉었다.
“우리 대사께서 윤회전생(輪廻轉生)이라는 좋은 말을 놔두고 왜 못 된 말만 하실까.”
“열반에 들지 못하도록 해하려는 것을 이해라도 하라는 말인가?”
“아, 그래서 소림은 패검문을 죽이러 갔나?”
“무량수불!”
언성이 높아지려 하자 장이서가 손을 들어 올렸다.
“한 번 더 얘기가 새면 그땐 말로 안 끝난다.”
“좋아. 어쨌든 흉신팔주의 정체에 대해선 나도 몰라. 녀석들은 가면을 쓰고 다니니까. 소속도 다르고.”
“아는 게 없다는 건 죽겠다는 얘기지.”
장이서의 말에서 살기가 묻어나오자 그녀가 씨익 웃으며 대꾸했다.
“하지만 하나는 알지. 오흉을 잡아낼 방법.”
“그게 뭐지?”
“날 미끼로 쓰면 돼.”
“……!”
그녀의 말에 일행이 술렁였다.
“누구 덕분에 좌천돼서 내가 오흉이랑 일하고 있거든. 저 노승을 죽이라고 시킨 것도 오흉이고. 그러니까 내가 접선할 때 잡으면 되지 않겠어?”
“너 같은 배신자 말을 어떻게 믿고?”
마오가 끼어들자 그녀가 태연하게 답했다.
“안 믿으면 어쩔 수 없고. 알아서들 해.”
끙.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딱히 할 말이 없다. 장이서가 물었다.
“접선 장소는?”
“그건 내 쪽이 아니라 오흉 쪽에서. 나가서 기다리면 알아서 찾아오게 돼 있어. 다만…….”
적아린이 슬쩍 눈을 사선으로 올려 뜨곤 말했다.
“워낙 의심이 많은 양반이라. 지금쯤이면 실패한 걸 알고, 의심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건 걱정 안 해도 된다.”
“음?”
“오흉은 네가 원담대사를 죽였다 생각하고 있을 테니.”
“어떻게?”
별것 아니다.
그녀가 떠올린 계획은 이미 장이서 머릿속에도 그려져 있던 일.
지금쯤이면 적아린으로 위장한 묘채경과 혈교인으로 위장한 청해의 무사들이 황야를 질주하고 있을 거였다.
마치 원담대사와 십팔나한을 죽이고 잠적이라도 한 것처럼.
“오흉이 설치도록 판을 깔아둔 거구나!”
맞다. 성공했다고 믿는다면 마교가 원담을 죽였다고 소문을 낼 것이고, 확신이 없다면 그녀로 위장한 묘채경에게 접선을 하려 들 거였다.
이러나저러나 오흉은 움직일 수밖에 없는 일.
“진짜인 네가 나서면 더 빨리 잡을 수 있겠지.”
“와, 너 진짜 대단하구나?”
적아린이 황당함이 가득한 웃음을 짓는다. 장이서는 일행들과 눈을 맞추곤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결정이 내려졌다.
그녀를 미끼로 던져 오흉을 잡는다. 물론 썩 좋은 계획은 아니다. 당연히 적아린을 완전히 믿지 않기 때문.
하지만.
‘어차피 승부수를 던져야 할 일이었다.’
여기서 오흉을 놓친다면 영영 숨어버릴 터. 변수가 늘어날수록 빈틈은 커질 것이고, 잡을 기회도 많아진다.
“좋아. 그럼 언제 움직이면 될까?”
적아린이 물었다. 이에 장이서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답했다.
“지금.”
마교에 소림. 그리고 혈교까지.
더더욱 기괴한 공조가 이루어졌다.
‘새로운 혈마귀의 주인이라…….’
적아린의 알 수 없는 미소와 함께.
* * *
– 무림맹 사천지부.
원탁이 놓인 회의실.
“지금 이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머리에 관을 인 중년 여인의 외침에 장내가 숙연해졌다.
그녀의 이름은 효진사태.
아미파의 장로이자 장문인의 사제로, 이번 능가경 사태를 위해 파견된 자다.
본래 이리 화가 많은 여인이 아니나 이번 일은 도저히 묵과할 수가 없었다.
“정도의 성인이신 남신승께서 작고하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거늘. 원담대사마저 화를 입으시다니요!”
사천지부로 온다던 소림의 소식이 뚝 끊어져 버린 것.
그리고 오늘 뒤늦게 확인차 나선 이들이 부서진 필연교에서 교전의 흔적을 발견했다.
결론은 습격.
원담과 십팔나한의 생사가 불투명해진 것이다.
“다들 입이 있으면 말씀들을 해보십시오!”
그녀의 채근에 모인 이들이 탄식을 뱉었다.
“허이고, 원시천존이시여…….”
텁석부리에 넙데데하고 푸근한 인상을 가진 청성의 제일 도사, 천사도인(天師道人) 장량.
“음…….”
팔짱을 낀 채 침묵하는 당문의 천외당주 당기륭.
그리고.
“아직 확실한 건 아닙니다.”
푸른색 도복에 장자건을 쓴 당대 무림맹 군사인 화평자(華平子) 구자기.
하나 같이 강호에서 이름만 대도 알 만한 쟁쟁한 자들.
능가경 사태를 위해 사천의 삼문(三門)과 무림맹에서 파견된 임시 본부다.
물론 그 결과는 애석하게 되었다.
효진사태가 독촉하듯 말했다.
“신승께서 돌아가시고, 이번엔 원담대사가 사라졌습니다. 모두 그 뇌마를 만난 이후에요. 그가 범인입니다. 이보다 더 확실한 증좌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예, 압니다. 하지만 이럴수록 더욱 신중해야 하는 것임을 사태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구자기는 군사답게 최대한 정중하고 애타는 어조로 그녀를 만류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한 점이 많았던 탓.
습격을 했으면 시체가 나와야 정상이다. 한데 발견된 게 하나도 없으니.
답답함에 고개를 돌리는 찰나, 탕! 효진사태가 손바닥으로 탁상을 내리치며 일갈했다.
“언제까지 더 기다리란 말입니까! 우리가 모인 지도 벌써 한참입니다. 한데 한 게 무엇입니까? 없습니다. 그저 기다린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닙니까?”
솔직히 맞다. 구자기도 참담함에 고개를 떨궜다. 이에 청성의 천사도인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대신 말을 받았다.
“그렇다고 뭐 별다른 방법도 없지 않았나. 우리가 나섰으면 소림이 퍽이나 좋아했겠네.”
“마중이라도 나갔어야지요!”
“무슨 재주로. 소림은 명분이라도 있지. 우리가 청해에 들어서면 무림맹이 단체로 패검문을 압박한 꼴밖에 더 되는가? 허이고…….”
“거기가 그냥 문파입니까? 마교 아닙니까!”
“그러니까 더 문제지! 19년 만에 다시 전쟁이라도 하자는 게요? 허이고, 원시천존이시여.”
“그래서. 계속 이대로 가만히 계시겠다는 겁니까. 뇌마, 그놈이 버젓이 천산으로 돌아가게 놔두냐는 말입니다!”
“명분이 없지 않은가, 명분이! 그러니 고민을 좀 해보자는 거지.”
“천사도인!”
“아이고, 귀야. 거 귀먹겠네.”
그야말로 자중지란, 내부 분열이다.
군사 구자기는 착잡한 심정을 담아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일단은…… 확인이 우선입니다.”
“확인이 되면요. 그때는 어찌하실 건데요. 그때도 소림에게 맡기실 겁니까?!”
구자기가 진중한 눈으로 숨을 뱉었다. 물론 확인이 되면 계속 이대로 놔둘 순 없다.
그랬다간 무림맹과 정도의 기상이 완전히 고꾸라져 버릴 터.
“실종된 건 이성촌의 필연교. 청해라 볼 수도 있겠으나 해석에 따라 사천으로 분류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천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삼문이 개입할 명분이 섭니다.”
“……!”
효진사태와 천사도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침묵하던 당기륭의 눈썹도 꿈틀거렸다.
그 말인즉슨.
“확인만 되면. 그땐 청성과 아미. 그리고 당가에서 나서주십시오.”
더는 마교의 횡포를 보고만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
세 사람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의견은 달랐으나 마교를 벌하고 싶은 마음은 일맥상통.
명분만 있다면 패검문 정도는 멸할 자신이 있었다.
아무리 뇌마가 날고 긴다 할지언정 청성과 아미. 그리고 당문이라면 가능하다.
그만한 위치와 능력이 되는 자들이었으니.
“그러니 일단은 돌아가 기다려 주십시오. 때가 되면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군사가 일어나 포권을 취하자, 세 사람도 결국 고개를 끄덕이곤 밖으로 나섰다.
“후……. 대체 어찌 돌아가는 것인가.”
홀로 남은 구자기는 긴 한숨을 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