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270)
첩자의 마교생활-270화(270/350)
270.
#괴물
장이서는 파르르 떨리는 눈으로 꽉 막힌 천장을 살폈다.
세상 이렇게 잔인할 수가 없다.
환멸이 날 지경.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것인가.
청해로 온 게 잘못이었을까.
아니면, 천산으로 갔던 게 잘못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처음부터 제갈상을 따라나서지 말았어야 했는가.
오늘.
모든 게 무너졌다.
“103호.”
“난 이제 더 이상 103호가 아니야. 그러니까…….”
서서히 내려오는 고개.
제갈상은 그 순간, 심장이 멎을 뻔했다.
마신(魔神)이 이러할까.
지독히 어둡고도 섬?한 눈빛.
“그따위로 부르지 마.”
그리고 그때 바깥에서 무사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군사-!”
“어르신!”
팍! 장이서는 백뢰를 회수하곤 나지막이 말했다.
“임무는 여기서 끝이야. 당신은 윤이를 지켜. 그게 지금 사는 이유니까. 만일 윤이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그때는…….”
장이서는 말끝을 흐리곤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진 뇌전법(眞 雷轉法) 뇌신화(雷神化)』
파직! 전신에 퍼지는 경천동지할 뇌기!
동시에 막대한 흑뢰가 파장을 일으키며 번진다.
“큭!”
“커억!”
이를 정면에서 맞닥뜨린 무사들과 제갈상은 전신이 마비되는 기분을 느끼며 순간적으로 몸의 제어력을 잃었다.
그리고 보았다.
“으, 으으으으!”
자신들을 먼지처럼 대하며 무심히 걸어 나가는 뇌마(雷魔)의 모습을.
이건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단순히 몸이 마비되어서가 아니라, 무너진 천장에 갇힌 것처럼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한낱 일개 무사 따위가 범접할 수준이 아니었으니.
“어, 어르신!”
뒤늦게 달려온 무사들이 제갈상에게 놀라고, 숨을 거둔 군사에 기함을 토했다.
“비키거라……!”
끄아아아악!
제갈상이 힘겹게 홀린 듯 몸을 일으키자 바깥에서 비명이 터졌다.
그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비틀거리며 바깥으로 향했다.
그러자 그곳엔…….
“커헉!”
“크아악!”
홀로 수많은 무사들에게 둘러싸인 채, 도리어 그들을 압도하는 마교의 새로운 전설이 탄생하고 있었다.
뇌마(雷魔)라는 전설이.
제갈상은 문득 오래전 맹주가 했던 말이 뇌리를 스쳤다.
‘구규지체만 아니었다면 내가 거뒀을 걸세. 무신이 되었을 테니.’
그때 깨달았다.
“103호…….”
어쩌면 자신이 무림에서 가장 위험한 마귀를 탄생시킨 걸지도 모른다는 것을.
“큭!”
그리고 희미해지는 정신에 털썩 쓰러지는 제갈상.
그의 머릿속에 장이서가 한 마지막 말만이 섬?하게 되뇌어졌다.
‘만일 윤이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그때는…….’
무림맹이 내 원적(怨敵)이다.
*
“미쳤구먼, 미쳤어. 여기가 어디라고 지금……. 허이고, 원시천존이시여…….”
“군사가 당했다. 그것도 이곳 사천지부 앞마당에서.”
“어, 어찌…….”
청성의 천사도인. 당가의 천외당주. 그리고 아미의 효진사태.
어느새 사천지부에 나타난 세 사람은 맹수처럼 미쳐 날뛰는 장이서를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는 군사와 무사들의 죽음을 가볍게 생각해서도, 그저 신중하기 위함도 아니었다.
압도(壓倒).
절로 침이 삼켜지고, 두 발이 쉬이 떼어지지 않는 경이적인 신위를 목도했기 때문이었다.
평생 무예를 익혔고, 천재가 그득한 날고 기는 대문파 안에서도 치열한 승부 끝에 현재의 자리까지 올라선 자들이었다.
한데도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목젖은 꿀렁였다.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움직임은 그저 빛.
“끄아아악!”
콰아앙!
일권에 네다섯 명을 전각까지 날려 보내 쓰러트리는 성난 황소.
“컥!”
쉬쉬쉬쉭!
사방 어디에서 공격을 하든, 최소한의 수로 제압하는 노련한 이무기.
이건 그냥…….
“괴물이구먼. 허이고, 원시천존이시여. 어째 저런 괴물들은 꼭 마교에서 나온단 말이오이까.”
천사도인이 고개를 저으며 한탄했다.
굳이 누군지 듣지 않아도 훤히 알겠는 그 이름.
뇌마(雷魔).
지금 그가 눈앞에 있었다.
그리고 그의 위용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저자…… 독공을 익혔다. 그것도 만독불침(萬毒不侵)이다.”
“뭬, 뭬야……?!”
당기륭의 폭격 같은 발언에 천사도인이 버럭 비명을 내질렀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만독불침에 오른 독공의 고수는 무림에서도 당가의 가주뿐.
한데 저리 어린 자가 어찌…….
하지만 고개만 슬쩍 떨궈도 당기륭의 말이 거짓이 아님은 금세 알 수 있었다.
이미 그의 손에서 흘러내린 짙푸른 독기가 바닥을 타고 장이서에게 닿아 있었으니.
한데도 발끝에 닿는 순간, 소리 소문 없이 연기만 내뿜고 사라져 버렸다.
“신승과 원담대사가 당한 게 거짓이 아니었나 보군.”
“원시천존이시여…….”
“두 분,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효진사태의 일갈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가는 여기까지.
군사가 죽었다. 그것도 현장에서 잡은 범인이다. 이대로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일.
더구나 장이서의 사기적인 행보를 생각해 보라.
고작 이립도 안 된 나이에 신승과 원담을 꺾고, 사천지부까지 쳐들어 와 군사를 없앴다. 그리고 만일 살아서 천산으로 돌아간다면?
역대 최악의 마두가 탄생하는 것이다.
“어떻게든 오늘 우리는 저 뇌마를 없애야 합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효진사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두 사람.
이내 그들이 각자 신호를 보내자 뒤에서 세 무리가 일시에 무기를 빼 들었다.
사천당가 천외당을 지키는 일백의 고수 백독령(百毒靈).
청성파에서도 온통 비밀에 싸여 있다는 상청궁(上淸宮)의 백색 도사들.
붉은 염주와 검 한 자루로 아미파의 이름을 널리 떨친 복호승들.
이른바 사천삼문의 정예들이었다.
일대일도 삼대 일도 아닌, 정예들까지 모조리 투입해 초장에 끝을 내겠다는 것.
호흡을 가다듬은 효진사태가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뇌마를 섬멸하라!”
“와아아아아!”
파파파파팟!
기합성과 함께 삼문의 고수들이 장이서를 향해 쏘아져 나간다.
장이서는 범상치 않은 이들의 등장에 눈매가 좁혀졌다.
그리고 시작된 일전.
파파파파팍!
조금 전까지의 무사들과는 차원이 다른 움직임이다.
“사천삼문?!”
“이야아아아-!”
사내보다도 더 우렁찬 기합성과 함께 바위도 쪼갤 기세로 떨어져 내리는 다섯 개의 합검(合劍).
카앙! 백뢰를 들어서 막아내자, 뒷발이 주춤 밀린다.
역근경이 아니었다면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을 중검(中劍)!
아미파다.
효진사태와 복호승들이 합격을 펼친 것.
“막았어……?!”
장이서에게 그녀들의 경악을 받아줄 틈은 없었다.
쉬쉬쉬쉭!
뒤에서 날카로운 풍음(風音)이 섬?하게 들려왔기 때문.
핑그르르!
팽이처럼 회전한 뒤 바닥에 착지하자. 바닥엔 날카로운 침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당기륭을 비롯한 당가 살수들이 내던진 독침이다.
“만독불침…….”
믿기 어려운 장이서의 경지를 다시 확인한 당기륭의 눈썹이 심하게 떨려온다.
하지만 역시나 장이서가 이에 반응할 여력은 없다.
“방선도술(方仙道術) 마귀통제(魔鬼統制)!”
와아아앙!
천사도인과 상청궁의 도사들이 도술을 읊자 장이서가 선 자리에 네 개의 반투명한 막이 생기고, 귀가 먹먹할 만큼의 굉음이 울렸다.
범인에겐 별 소용없는 도술이지만, 마(魔)기가 있는 자에겐 전신을 짓눌러 기지도 못하게 만드는 최악의 술법이었다.
한데.
『음양일원(陰陽一元)』
장이서의 표정이 잠시 찌푸려지는가 싶더니, 금세 태극의 기운이 자리하며 벽을 부수고 빠져나왔다.
“허……?”
그 순간 사천삼문은 모두가 얼어붙은 것처럼 굳어졌다.
당연했다.
자신들이 누구인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그중에서도 사천을 지배하는 최강의 삼문.
사천삼문이다.
한데 삼문의 정예들과 세 사람의 합격이 깨져버린 것이다.
그 뒤로 보여준 모습은 이젠 더 놀라기도 지칠 정도였다.
무수한 잔상을 남기며 몰려든 열댓 명을 와르르 쓰러트리는 신위.
모두가 또다시 얼어붙어 버렸다.
“장이서 이쪽으로-!”
그리고 그 찰나의 망설임은 뼈아픈 실책을 낳았다.
전각의 지붕 위에서 그의 아군이 나타난 것.
“적아린?!”
비록 소속이 혈교이긴 하지만 말이다.
얼마나 관군과 심각한 혈투를 거쳤는지 피투성이가 된 꼴만 봐도 알겠다.
그리고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그 순간, 또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형……?”
저를 보며 넋이 나간 듯 서 있는 아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하나뿐인 핏줄.
장이윤.
목젖까지 쏟아 뱉고 싶은 말들이 가득 차오른다.
하지만 현실은 자비롭지 못했다.
“뇌마가 군사를 죽였다! 절대 놓치지 마라!”
“사부님……?”
장이서는 그 순간 바닥에 주저앉아 망연자실에 빠진 윤이의 표정을 평생 잊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득한 슬픔과 배신감이 가득 느껴지는 저 표정을 말이다.
‘윤아…….’
아니다. 내가 그런 것이 아니다. 그자는 네가 생각하던 그런 사부가 아니다.
보기만 해도 오장육부가 쓸려 내려가는 기분.
그리고 그때 다시금 적아린의 목소리가 힘차게 울렸다.
“후후, 다들 피하는 게 좋을걸? 안 피하면 더 좋고.”
휘익!
이어 포물선을 그리며 사천삼문 사이로 떨어지는 쇳덩이.
“진……천뢰?!”
콰아아아앙!
당기륭의 깨달음과 함께 막대한 폭발이 휘몰아쳤다.
한순간에 앞뜰은 아수라장이 되고, 수많은 이의 비명과 신음이 들끓었다.
잠시 후 연기가 걷히고, 전경이 드러났을 땐.
“원시천존이시여…….”
장이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셀 수 없는 부상자들만이 그의 흔적으로 남아 기억될 뿐.
*
함께 장원을 벗어난 두 사람.
성도 시내의 어둑한 골목에 숨고 나서야 적아린이 입을 열었다.
“장이서. 괜찮아?”
그제야 멍해진 초점을 바로 잡고 장이서도 싸늘히 답했다.
“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 죗값 치르라고.”
“그게 구명지은을 입어 놓고 할 말은 아니지 않아?”
“네가 아니었다면 적어도 관군들까지 상대할 일은 없었겠지.”
장이서가 대로변을 향해 고갯짓했다.
“멀리 가지 못했을 것이다! 샅샅이 뒤져라!”
횃불을 든 관군들마저 무리 지어 수색이 한창이다.
목소리에 패기가 넘치는 게 아주 약이 바짝 올랐다.
적아린은 배시시 웃으며 머쓱하게 답했다.
“그러게 왜 혼자 가고 그래. 정 없게.”
그걸 말이라고. 길게 한숨이 뱉어졌다. 얘랑 아옹다옹해서 뭐 하겠는가.
지금은 제갈상의 배신과 군사의 죽음. 그리고 윤이의 오해. 생각할 게 너무 많아 머리가 터져버릴 지경이었다.
어디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당장 한 치 앞도 짐작이 되지 않았다.
“근데 진짜 괜찮아?”
아까부터 자꾸 뭘 묻는 것인가. 짜증스레 쳐다보자 그녀가 담담히 말을 이었다.
“기분 말이야.”
“뭐?”
“맞아. 엿들은 거.”
빌어먹을! 죽여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장이서의 눈에서 시리도록 차가운 살기가 뿜어졌다.
“왜 그렇게 봐. 그거 화풀이다? 너한테 실수한 거 나 아니야. 무림맹이지.”
“너희는 존재 자체가 제거 대상이야.”
“알지. 근데 그런데도 내가 다 마음이 애잔해지네. 네 잘못 아니잖아.”
또다시 빌어먹을이다. 어쩌다 혈교한테까지 위로를 받게 된 건지.
“화나겠지. 나라도 날 거야. 너 잘했어. 원칙대로 마교에서 잘 살았고, 잘 견뎠어. 고생했어.”
“……시끄러워. 네가 뭘 안다고.”
“알아. 나도 너처럼 버려져 봤으니까.”
“뭐?”
흘깃 곁눈질로 바라보자 그녀의 얼굴에 답지 않은 공감의 빛이 설핏 서렸다.
“혼자 남겨진 듯한 그 배신감이 얼마나 힘든지 나도 잘 알아.”
네가 안다고?
“이럴 때일수록 우린 스스로를 지켜야 해. 넌 절대 혼자가 아니야. 우리 곁엔 언제나 신이 함께하고 계시지. 어때. 가서 혈교 말씀 좀 들어볼래?”
“아, 꺼져!”
“하하하!”
저딴 소리를 진지하게 듣고 있던 내 자신을 반성한다.
인생 참.
우울할 틈을 안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