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271)
첩자의 마교생활-271화(271/350)
271.
#한계
“아, 왜. 진짜라니까. 가서 한번 들어 봐. 이럴 땐 신앙심이 있어야 해. 신의 허락하에 그냥 다 죽여버리는 거야. 하하! 어때. 생각만 해도 짜릿하지 않아?”
모골이 다 송연해진다.
“닥치고 아까 말한 대로 넌 가서 그냥 죗값이나 받아. 죽고 싶지 않으면.”
“왜 이래. 어차피 이제 나한테 그럴 이유 없잖아. 소속이 무림맹도 아니고, 마교도 아니고.”
“혈교는 더더욱 아니야.”
“고집스럽기는. 뭐, 어쨌든 좋아. 하지만 저자들하고 싸우고 싶은 건 아닐 거 아니야.”
적아린이 피식 웃으며 하늘을 향해 고갯짓했다.
그러자 지붕 위로 날아다니는 수많은 무림인들이 눈에 담겼다.
사천삼문이다.
자신들을 찾아 나선 것.
땅이고, 하늘이고.
그야말로 천라지망(天羅地網)이다.
“그래도 어제까지는 동료였잖아. 그러니까 적어도 저들한테 잡혀서 죽는 것보다는 빠져나가는 게 좋지 않겠어? 아니면 네 삶이 너무 억울할 거 같은데.”
너무 정확해서 뼈가 다 시큰하다.
당연히 억울했다.
그냥 살면서 겪은 가장 x같은 일이다.
“내가 빠져나가게 해줄게.”
“뭐?”
“나한테 방법이 있어. 성도를 나가 서남쪽으로 가. 10리 정도를 가면 작은 강이 나와. 거기에 거북이처럼 생긴 섬 하나가 보일 거야. 거기서 붉은 기와집을 찾아. 그리고 이걸 건네줘. 그럼 널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 줄 거야.”
적아린이 씨익 웃고는 품에서 핏빛처럼 붉은 패 하나를 건넸다.
한 면에는 동방(東方). 뒷면에는 일혈(一血)이라고 인각된 신패.
“잘 보관해. 귀한 거니까.”
얼떨결에 이를 받아 들고 물었다.
“넌 어쩌겠다고.”
“어쩌긴. 내가 누군지 잊었어? 혈교잖아.”
“그게 뭐.”
“후후, 혈교면 혈교답게 파멸해야지.”
적아린의 눈에 핏빛 광채가 번뜩였다.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이건 스스로 미끼가 되겠다는 것 아닌가.
“무슨 속셈인 거야?”
“그냥 너한테 잘 보이고 싶다는 거? 너 지금 몸담은 곳 없잖아. 그럼 우리한테도 아직 기회가 있다는 거 아니겠어?”
“아니, 없어. 그딴 거.”
“서운하네. 그래도 그 패는 넣어 둬. 다시 만날 때 꼭 돌려주고.”
“다시 만나면 넌 내 손에 죽어.”
“그것도 나름 괜찮고.”
장이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반면 적아린은 방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또 봐, 장이서.”
팟! 뒤이어 그녀의 신형이 눈앞에서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콰앙! 콰과과광!
“저쪽이다-!”
굳이 보지 않아도 그녀의 활약이 느껴질 만한 소음이 빗발쳤다.
장이서는 제 손에 들린 혈패(血牌)를 내려다보며 사색이 되었다.
신념으로 따르던 무림맹은 자신을 역적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죽이려고 하였고.
자신이 죽이겠다며 뒤쫓던 혈교는 두 번이나 목숨을 구해주었다.
급기야 그 와중에 떠오르는 생각은 마교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뿐이니.
“빌어먹을.”
정말 빌어먹게도 꼬여버린 하루였다.
* * *
며칠 후.
서녕 패검문 안가.
“장이서가 뭐 어떻게 됐다고?!”
마오의 고함이 쩡쩡하게 울려 퍼졌다. 사천에서의 소식이 서녕까지 닿은 것.
때마침 황야를 질주하고 돌아온 묘채경이 가지고 온 정보였다.
“장이서가 사천에서 군사를 살해 후 도주 중이라는군요. 지금은 삼문이 뒤를 쫓고 있답니다.”
맙소사. 모두가 기함을 토했다.
대체 누가 누굴 죽였단 말인가. 그야말로 기절초풍할 내용.
“그게 사실이야?! 당주는 그걸 어떻게 알았는데.”
어떻게 알긴. 다 아니까 알지. 묘채경이 콧숨을 뱉으며 말했다.
“길만 다녀도 압니다.”
“뭐어?”
그랬다. 마오를 비롯한 원담과 수뇌들은 칩거 중이라 몰랐지만, 이미 근방에선 이 소식을 모르는 자가 없었다.
관군과 사천지부의 무사들이 야밤에 시내를 종일 활보하며 그 난리를 피웠는데 어찌 모를 수가 있겠는가.
지금 뇌마는 신승과 원담대사에 이어 사천지부로 홀로 들어가 군사까지 참하고 나온 대역죄인이었다.
물론 일부 사마외도들 사이에선 뇌마를 신성시하며 떠받드는 종자들도 있긴 했다.
‘뇌마께서 썩은 무림을 모조리 숙청해 주실 것이다!’
대체로 상태가 안 좋은 녀석들이었지만.
어쨌든 지금 뇌마가 위험천만하다는 건 분명한 사실.
“근데 장이서는 혈교 새끼들 잡으러 간 거잖아. 아니, 그럼 무림맹 군사가…….”
마오가 경악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에 모두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뭔가가 있다.
지금 이 일의 이면엔 엄청난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거다.
묘채경도 뭔가가 떠오르는 게 있는지 심상치 않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소문이 이렇게 퍼졌는데도 무림맹에선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군요. 청해에는 얼씬도 하지 않고 있고요.”
“그게 왜?”
마오가 다급히 묻자 옆에서 암울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놈들도 뭔가를 아는 것 같습니다.”
사색이 된 사내. 패검문주 만세극이다. 그의 말대로였다.
보통 이런 사건이 터지면 대서특필하여 방을 붙이고, 명분을 취하는 게 우선.
한데도 이리 조용하다는 건, 켕기는 게 있다는 뜻이다. 어떻게든 장이서를 먼저 죽이고 보겠다는 것.
“이 새끼들이!”
쾅! 결국 마오가 분을 참지 못하고 바닥에 진각을 내리찍었다.
드넓게 갈라지는 바닥만 봐도 그의 내공이 얼마나 중후한지 알 수 있는 부분.
“원래가 그런 놈들이지요. 진실을 숨기고 무고한 자에게 죄를 덮어씌우는 아주 악질적인 놈들입니다.”
묘채경을 비롯한 모두의 시선이 애꿎은 원담에게로 향했다.
“무량수불…….”
하지만 그로서도 군사의 죽음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
마오는 눈을 부릅뜨고 결단을 내렸다.
“됐고. 땡중. 넌 지금 당장 무림맹으로 가. 가서 장이서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전쟁이라고 전해! 그리고 우린…….”
지금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장이서한테 간다.”
* * *
한편 적아린의 희생으로 무사히 성도를 빠져나온 장이서.
그는 사천 북부 고산지대에 다다라 있었다.
적아린의 말대로 거북이 섬을 찾아가 볼까도 생각해 봤지만, 금세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말하는 안전한 곳이 대체 어디인지도 모르겠지만, 혈교의 도움을 더는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
고집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이는 중심을 잡기 위한 발악이었다.
“하아…….”
덕분에 꼴은 말이 아니었다.
암석에 걸터앉은 그의 숨소리는 거칠었고, 의복은 만신창이였다.
내기는 이제 거의 다 고갈되었으며, 정신은 피폐해졌다.
사천삼문의 추격은 집요했고, 영악했다.
몰이사냥을 하듯 길목을 차단하며 한 곳으로만 도망치도록 유도했고. 일시에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기력이 쇠하도록 쉴 틈 없이 압박을 가해오는 방식을 수일 째 고수했다.
바로 지금처럼.
피잉!
날카로운 파공음에 고개를 뒤로 젖히고, 앞으로 내민 손아귀엔 척! 독화살이 잡혔다.
콰득!
이내 화살을 반으로 부서트린 장이서가 일어서는 순간.
찌르르릉!
사방에서 방울 소리와 함께 묵중한 청동검이 날아든다.
술법이 담겨 소리로 방향을 짐작하기 어렵다는 상청궁의 청령검(靑鈴劍)이다.
하나 장이서는 음양일원을 깨우친 자.
도술이고, 사술이고 안 통하는 건 매한가지.
“크악!”
쳐다도 보지 않은 채 일권으로 쓰러트렸다.
나머지도 크게 다를 것 없었다.
“컥!”
찰나에 열댓 명이 쓰러졌다.
하지만 이번엔 장이서의 몸에도 상처가 생겼다.
더불어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은 한계에 다다랐음을 방증했다.
오는 내내 수없이 생각했다.
이제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솔직히 답을 내리진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무림맹에 붙잡혀 최후를 맞이하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은 오로지 그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반드시 살아 돌아간다.’
장이서는 이빨을 꽉 깨물곤 다시금 산을 올랐다.
*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을 무렵.
그 자리에 한 무리가 도착했다.
그에게 천라지망을 펼친 장본인들.
사천삼문을 대표하는 청성의 천사도인과 아미의 효진사태. 마지막으로 당가의 당기륭이다.
“허이고, 원시천존이시여.”
“아미타불…….”
천사도인과 효진사태는 박살이 난 추격대를 살피며 눈살을 찌푸렸다.
다행히 죽은 자는 없으나, 하나같이 인사불성이다.
벌써 열두 번째.
자연스레 시선이 당기륭에게 향했다.
평소엔 늘 과묵하고, 돌 같은 면모 탓에 나서는 일이 극히 적었으나, 누군가를 추적하고 사냥하는 데엔 그만한 인물이 없다.
하여 이번 천라지망도 그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어떤가, 뭐가 좀 보이는가?”
천사도인의 물음에 조사를 마친 당기륭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뇌마는 괴물이다.”
가슴을 후비는 단평.
천사도인과 효진사태의 입에서 패배감 짙은 탄식이 뱉어졌다.
그간 알아낸 사실들만 나열해도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
“도검이 통하지 않는 금강불괴이자, 만독불침을 지녔다. 벼락같은 움직임은 뇌마라는 별호가 아깝지 않으며, 그의 암기는 한철마저 찢는다. 익힌 무공은 세 가지. 하나는 여태 본 마두 중 가장 위협적인 마공이며, 또 하나는 정심함이 느껴지는 정공이다. 그리고 다루는 독으로 짐작건대…… 독마의 불사독마공을 이어받은 것으로 보인다.”
“허이고…….”
그저 한숨밖에 안 나오는 일.
모두가 함께 추격하며 알아낸 바였지만, 이렇게 당기륭의 입으로 공식적인 판정이 이루어지자 가슴이 갑갑했다.
이게 인간인가.
금강불괴와 만독불침을 가진 육신에 뇌기를 다루며 한철도 찢는 비수를 쓴다.
여기다 독공에, 마공에, 정공에. 아주 닥치는 대로 심법을 다루니 이젠 뭐가 나올지 짐작도 안 된다.
솔직히 외에도 더 많았다.
은신에 능숙하고, 지리에 밝았으며, 일부러 틈을 보여 기습을 유인하기도 하고, 지형을 이용해 박살 내기도 했다.
무예만 뛰어난 게 아니라 두뇌도 뛰어나다는 것.
그러니까 그의 말이 맞았다.
괴물(怪物).
장이서는 괴물이었다.
이젠 숨겨진 천마의 제자라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무엇인가. 이제 마지막 고개만 넘으면 청해일세.”
그리고 청해로 넘어가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이에 당기륭은 승기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사천에서 당문의 추적을 피할 자는 없다.”
“그 말은 곧……!”
“정상에서 괴물을 잡는다.”
드디어!
“그의 육신이 이곳에서 처음으로 칼에 베였다.”
당기륭이 찢어진 천 조각을 주워 들었다. 안쪽 면에 아직 피가 흥건하다.
“괴물도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이겠지.”
실로 정확한 분석.
장이서의 육신을 이루는 소단전들마저 마침내 공력이 동나기 시작했다.
바꿔 말해 호신기(護身氣)가 사라져 금강불괴가 깨졌음을 의미했다.
당기륭은 의미심장한 눈초리로 산 정상 방향을 가리켰다.
“어차피 갈 곳은 이곳 정상뿐. 그러니 우리는 계곡 길을 가로질러 먼저 가서 뇌마를 기다린다.”
그야말로 완벽한 계획.
그렇게 세 사람과 삼문의 정예들은 서둘러 길을 나섰다.
추격전이 끝을 고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