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274)
첩자의 마교생활-274화(274/350)
274.
#전환
장이서는 울컥했다.
“시작하지.”
그리고 당기륭의 입에선 잔혹한 호령이 떨어졌다.
“미안하네. 방선도술(方仙道術) 마귀통제(魔鬼統制)!”
와아아앙!
그러자 천사도인과 상청궁의 도사들이 일시에 도술을 펼쳤다.
사방에 거대한 반투명한 막이 생기고, 요란한 굉음이 빗발친다.
“크윽!”
“아아악!”
이에 장이서와 마오. 그리고 만세극을 제한 나머지가 고통을 호소했다.
청성파 최고 도사의 술법.
도력(道力)의 소모가 크긴 하나 초절정 고수가 아니라면 찰나 동안 잡아두는 덴 문제 없다.
어차피 일을 벌인 것 확실하게 끝내겠다는 얘기.
“멈춰! 당신들이 노리는 건 내가 아니었던가?”
장이서가 처음으로 절망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한데 바로 그때. 옆에서 확 깨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 나 진짜 소교주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그게 이 와중에 할 말이냐?
“쏴라.”
그 사이 당기륭의 마지막 명이 뱉어졌다.
단두대의 칼날처럼 훅 떨어져 내리는 손길.
“안 돼…….”
피이이잉!
하늘을 시커멓게 수놓으며 백 발의 화전이 날아든다.
종말을 마주하듯 망연자실한 눈으로 모두가 이를 살폈다.
도망칠 수도, 도망갈 곳도 없는.
그야말로 누군가는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최후의 순간.
“근데 장이서.”
마오가 다시금 그를 불렀다.
“그래도, 우리 재밌었지?”
장이서가 날아드는 화살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예상 밖의 모습에 넋을 잃었다.
저를 보며 아쉬울 거 하나 없다는 듯 환하게 웃는 마오의 얼굴.
지금 저 때문에 이리 허망하게 죽게 된 주제에 왜 그렇게 웃는 거냐.
“고마웠다.”
이런 미친 새끼.
그렇게 말하면 저는 뭐가 되는가.
챙그랑!
장이서는 처음으로 자신을 감싸고 있던 유리막이 깨지는 기분을 느꼈다. 세상에 발가벗겨진 채 홀로 선 기분.
그때 깨달았다.
더는 첩자 103호가 아니라, 인간 장이서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이들을 이제야 비로소 꺼풀을 벗고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자신을 감싸주고, 진정으로 위해주는 자들.
그게 비록 마교일지언정 말이다.
그걸 인정하고 나니까 너무 미안해져서.
차오르는 서글픔을 애써 누르고 또 눌러야 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너…… 안 죽어.”
이 녀석을 살리기로.
피이이잉!
다시 하늘을 바라보자 이윽고 떨어져 내리기 시작하는 화살.
“뭐라고?”
마오 너는 살아서 나가게 될 거다.
그러니까 소교주, 해. 꼭 살아남아서 해라.
화르륵!
그 순간 어둠 속에 불꽃이 튀듯 장이서의 몸속에 진기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역근경에 단전까지 텅 비어버린 몸이었다. 하지만 아직 쓸 수 있는 내기가 하나 남아 있었다.
선천진기(先天眞氣).
목숨을 담보로 마지막 불꽃을 열렬히 태우기 시작한 것이다.
용이 승천하듯 솟아오른 불꽃은 단숨에 심장을 거침없이 두드렸다.
[퀴아아아아!]그러자 내면에서 호응하듯 그 녀석이 비명을 질렀다.
혈마귀(血魔鬼).
내기를 탐하는 그에게 선천진기는 절대 거부할 수 없는 천상의 과실이었다.
불꽃은 순식간에 화마가 되고, 죽어 있던 육신에선 다시금 압도적인 힘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살린다. 반드시 살려낼 것이다.
설령 목숨을 잃을지언정.
저들 손에 죽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103호가 아니라 장이서로서 내린 최초이자 최후의 결심.
“장이서?!”
파아앗!
장이서는 마오의 부름을 흘린 채 창공을 향해 날아올랐다.
무더기로 떨어지는 화살들.
어설픈 수로는 막아낼 수 없다.
확실하게 한 번에 날려버려야 한다.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그리고 내면의 절대마귀(絶代魔鬼)를 발현하려는 그 순간!
[거기까지.]웅장하고도 영롱한 음색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그건 마치 신의 목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곧이어 벌어진 상황은 더더욱 신묘했다.
떨어져 내리던 화살들이 일제히 멈춰 선 것. 장이서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시간이 멎은 것만 같았다.
육신은 제어력을 잃었고, 뛰쳐나오려던 혈마귀는 여명에 사라지는 그림자처럼 심장부에 숨어들었다.
육신은 서서히 내려가 어느새 땅에 가볍게 착지했다.
“이게 무슨…….”
장이서도. 이를 바라보는 일행도. 모두가 영문도 모른 채 어리둥절했다.
“아미타불…….”
상대라고 다를 것 없었다.
명을 내린 당기륭도, 술법을 펼치던 천사도인도. 하다못해 묵묵히 지켜보던 효진사태마저도.
아니, 이곳에 있는 모두가 당혹감에 빠졌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화살 백 발이 하늘에 저리 멈춰 서 있다니.
그야말로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괴사(怪事)였다.
만일 누군가의 인력이 작용한 것이라면, 그게 가능한 건 세상에 오직 단 하나.
“왜 이리 늦나 했더니, 꽤 귀찮은 일을 벌이고 있었구나.”
좌우로 갈라지는 구름 너머로 태양 빛을 등지고 하늘에 서 있는 절대지존(絶代至尊).
“마, 말도 안 돼……!”
천산의 신(神).
천마 진우광.
오직 그뿐이리라.
그가 나타났다.
비로소 진정한 마교인이 될 준비를 마친 자신의 사제.
장이서를 만나기 위해!
*
천마는 세상의 중심이다.
몇 명이 있든, 누가 있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든. 그런 건 하등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 앞에선 모두가 사색이 된 채 벌벌 떨어야 했다.
“…….”
삼문의 무사들도 마찬가지. 그들은 혼비백산했다. 하지만 천둥벌거숭이처럼 나돌아다니진 않았다.
오히려 숨을 죽인 채 조용히 있었다. 본능이었다. 그래야만 잠시라도 더 살아 있을 수 있다는 생존의 본능.
당기륭과 천사도인. 그리고 효진사태도 넋을 잃은 채 멍하니 바라봤다.
백 발의 화살은 멈추었고, 천마는 허공에 머물고 있었다.
선 넘은 격공섭물이다.
이를 과연 인력(人力)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아마도 자신들은 벌레일 것이다.
천마 진우광.
오직 그만이 인간일 것이다.
지금도 자신들을 벌레처럼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지 않은가.
“제법 쓸만해졌구나.”
천마는 모든 이의 시선을 무시한 채 장이서에게 말을 건넸다.
“……지존을 뵙습니다.”
그리고 장이서는 빠르게 부복하며 천마를 알현했다.
꺼풀을 벗고서 적이 아닌 아군으로 마주한 그는 어떤 모습일까.
전까지는 몰랐는데, 이제 보니 알겠다.
사람이 이렇게 안도할 수가 없다는 것.
그 든든함에 가슴이 평안해지고, 진심으로 웃음이 나올 만큼 말이다.
“음……?”
그리고 그런 장이서를 본 천마는 고개를 갸웃했다.
제 사제가 저를 보며 이리 앳되고 다정한 미소를 보인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
이를 본 기분은 무어라 정의하기가 어려웠다. 다른 자가 그랬다면 단번에 목을 베었을 텐데. 묘하게 싫지는 않다.
“소란을 피웠구나.”
진우광이 다정히 말하자 장이서는 숙연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혈교를 잡겠다는 일념에 스스로를 과신했고, 아둔했다.
그래서 조약을 어긴 채 사천을 침범했고, 함정에 빠져 일행을 위험에 빠트렸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자신의 책임.
이를 기회라고 느꼈는지, 삼문에서도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거들었다.
“그자는 사천으로 넘어와 맹의 군사를 죽이고 달아난 자요! 천마께서 전쟁을 바라는 게 아니라면, 그를 우리에게 넘겨주시오.”
천마의 시선이 삼문에게 닿았다.
삼문은 당당했다.
천마라는 존재가 두렵긴 하나, 그도 사람이다. 더구나 지금 보니 소문만큼 잔혹해 보이지도 않았다.
더구나 이곳은 무림맹의 구역, 사천.
명분으로 보나, 상황으로 보나.
상식이라는 것이 있다면 당연히 자신들의 말을 무시하지는 못할 터.
한데…….
고오오오오오!
“전쟁이라고 하였느냐?”
천마에게서 지금껏 보이지 않던 지독한 악귀의 기운이 풍기기 시작했다.
“그, 그렇소! 저자를 넘기지 않는다면 분명 무림맹과 천마신교 사이엔 더 큰 오해가 쌓이게 될 거요. 그럼 전쟁이 벌어질 수밖에…….”
“틀렸다.”
무엇이 말인가.
“전쟁은 그렇게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게 무슨…….”
“시작도, 끝도. 모두 내가 정하는 것이다.”
이게 뭔……. 너무 얼토당토않은 소리에 말문이 턱 막혔다.
전쟁이 무엇인가.
세력 간의 다툼이오, 명분의 싸움이다.
한데 동네 개싸움도 아니고, 시작과 끝을 뭔데 본인이 다 정한단 말인가.
상식적으로 어이가 없는 헛소리.
하지만…….
그래서 천마인 거였다.
방법도 간단했다.
상대가 유리한 고지를 점하였는가?
아군을 궁지에 몰아넣었는가?
적들이 승리를 확신하는가?
상관없다.
“화, 화살이 이쪽으로……!”
천마가 손바닥만 뒤집어도 판은 바뀌는 거다.
공중에 멎어 있던 화살이 일제히 뒤로 돌아 삼문을 향해 날 끝을 바꾸었듯이.
전쟁은 그렇게 하는 것이다.
평화가 너무 길었다.
주제도 모르고 감히 벌레들이 천마를 협박하였으니.
또한.
“너희가 넘볼 아이도 아니지.”
“자, 잠깐……!”
“가서 전하거라. 전쟁을 원한다면 얼마든지 다시 치러주겠노라고.”
천마의 살벌한 입꼬리가 말아 올라가는 그 순간.
쐐애애애액!
허공에 떠 있던 백 발의 화전이 유성처럼 삼문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콰과과과과광!
자비 없이 터져나가는 무차별한 폭발.
“으아아아악!”
구르르르르르!
삼문은 무수한 비명과 함께 눈사태에 휩쓸려 사라졌다.
남겨진 건 아주 비좁은 봉우리에 우두커니 선 장이서와 일행뿐.
그야말로 존엄 그 자체.
모두가 입을 떡 벌린 채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천산으로 복귀하거라.”
그리고 천마는 다정히 한마디만을 남기곤 늘 그랬듯 홀연히 하늘로 사라졌다.
휘이이이잉!
몰아치는 눈보라가 새삼 이리도 무안하고 허망할 수가 없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이 다 별거 아닌 일이었던 것처럼.
“……근데 우린 어떻게 내려가냐?”
그러게.
그렇게 사천의 천라지망은 끝이 났다.
*
구르르르르!
설보산 정상에서 눈사태가 일었다.
“으, 으아아악!”
이에 산을 오르던 약초꾼들은 기겁을 하며 도망쳤다.
반면 정상 부근에 다다라 있던 중년인은 그저 고개를 들어 이를 무심히 흘기기만 했다.
“바위 뒤에라도 피하시오! 어서!”
일부 선량한 이들은 안타까움에 소소한 조언을 붙이곤 달아났다.
하지만 처마 밑에 숨는다고 장마가 비껴가는가.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구르르르르르!
이미 정상에서 시작된 새하얀 해일이 코앞까지 닥쳐왔으니.
“이것이 그대의 경고인가.”
중년인은 안타까운 목소리로 바닥에 놓인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들었다.
그러곤 진중히 이를 훑었다. 차디찬 설산에 어울리는 마른 가지. 조금만 힘을 줘도 바스러질 수준.
하지만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 그에게도 이 정도면 충분했다.
목전까지 다다른 저 눈사태 따위를 멈춰 세우기엔.
수와아아아아악!
그의 일검에 바람이 불었다.
겁 없이 날뛰던 무수한 설결정(雪結晶)이 행군을 멈추고, 봄꽃처럼 흩어져 사라질 만큼 거대한 역풍이!
잠시 후 햇빛에 반사된 결정이 반짝거리며 아스러진다.
눈사태는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그 자리엔 인사불성이 되어버린 무수한 인파만이 꼴사납게 남겨졌다.
사천삼문이다.
도저히 믿기 힘들지만, 나뭇가지 하나만으로 그들을 구해낸 것.
그야말로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압도적인 신위.
하나 그의 신분을 알면 당연히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었다.
검 하나로 정도의 정점에 올라선 자.
“매, 맹주……?!”
무림맹주 현청.
바로 그였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