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275)
첩자의 마교생활-275화(275/350)
275.
#여정의 끝
“어떻게 여길…….”
비틀거리며 일어선 천사도인과 효진사태. 그리고 당기륭이 믿을 수 없다는 눈초리로 다가섰다.
“천마가…… 나타났습니다. 그가 뇌마를 데려갔습니다. 크윽!”
이미 부러진 뼈가 한두 군데가 아닌지 당기륭이 고통에 신음하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
천마.
맹주는 놀라지도 않은 채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살폈다.
이미 알고 있었다.
설보산을 오르는 순간부터 하늘은 지독히도 불길하였고, 곳곳에선 악귀가 끊이질 않았으니.
그리고 천마 또한 알고 있었을 거였다.
자신이 이곳에 와 있다는 것을.
첨예한 검(劍)의 성역을 느꼈을 테니.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서 전하거라. 전쟁을 원한다면 얼마든지 다시 치러주겠노라고.’
이미 정점에 선 그들에겐 서로의 존재를 느끼는데 충분한 거리였으니.
하여 현청은 이 눈사태를 천마가 제게 보내는 경고로 느꼈다.
다시는 뇌마를 쫓지 말라는 지엄한 경고. 그게 너무도 마음이 쓰리고, 안타까웠다.
꼭 천마도 진가를 알아본 아이를 저들 스스로 걷어차 버린 것만 같아서.
너희가 놓친 이 아이는 이제 마교에서 잘 키우겠다는 말처럼 들려서.
“맹주…….”
멍하니 서 있는 그에게 모두가 의문스러운 시선을 담았다.
이에 현청은 장고 끝에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명했다.
“천라지망은 여기서 멈추시게.”
“……!”
그가 결단을 내렸다.
“군사를 죽인 건 뇌마가 아닌 혈교의 짓이네.”
제갈상의 편도, 신승의 편도 아닌 새로운 답안이었다.
“그, 그게 무슨……!”
“뇌마는 혈교를 잡으러 온 것일 뿐이었네.”
삼문의 사람들이 모두 닭 쫓던 개처럼 입을 벌렸다.
지금까지 목숨 걸고 쫓아온 뇌마가 군사의 죽음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니.
“아니, 아무리 그래도 신승과 사대금강께서 당하지 않았습니까! 이대로 놓칠 수는 없습니다!”
효진사태가 기함하며 외쳤다. 하나 그건 더더욱 무의미한 일.
“소림에서 그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네.”
“예?”
삼문의 고수들은 넋을 놓은 채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현청은 제 말만을 끝내고선 스륵 몸을 돌렸다.
‘부디 잘 지내시게…….’
정파에서 떠나보낸 103호의 안녕을 기원하며.
* * *
며칠이 흘렀다.
장이서와 일행은 설보산에서 우여곡절 끝에.
“천재 귀환-!”
마오의 외침을 끝으로 무사히 청해로 돌아왔다.
여정을 마친 것뿐이지만, 그 사이에 세상은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먼저 죽은 것으로 알려졌던 신승과 원담대사가 만천하에 생존 소식을 알렸다.
수많은 질문이 쏟아졌으나 두 사람은 두문불출하며 침묵했다.
딱 하나. 다시 겨룰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만 이렇게 한마디를 남겼다고 했다.
‘뇌마……. 그분은 저희가 결코 이길 수 없는 분입니다.’
차라리 죽였다고 떠들 때가 더 나았다. 이젠 갑론을박할 것도 없이 희대의 대마두가 되어버린 것.
연이어 다른 소식도 이어졌다.
【사천에서 벌어진 군사의 죽음은 신원 미상의 여인이 벌인 일로 마교와는 일절 연관이 없음을 밝히는 바이오.】
놀랍게도 방을 붙인 건 무림맹이었다.
“이 새끼들! 사람을 궁지까지 몰아넣고 이제 와서 오해였다고? 아버지가 무서워 꼬리를 만 거겠지! 헹!”
마오는 자신만만하게 얘기했지만, 장이서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가 아는 암각주 제갈상은 마(魔)에 고집을 꺾을 위인이 아니었다.
‘신승께서 움직이셨구나.’
제갈상의 폭주를 막을 수 있는 건 역시나 신주오절뿐.
덕분에 정파에서 반드시 쳐 죽여야 할 불구대천의 원수에서는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도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사태가 잠잠해지면 제갈상은 반드시 후환을 남기지 않으려고 수를 쓸 테니.
자객을 보내오든, 제 정체를 만천하에 밝히든. 하지만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는 법. 괘념치 않았다.
어차피 십수 년을 달려온 제게 남은 것은 허허벌판뿐이었으니.
그보다 군사를 죽였다는 신원 미상의 여인에게 마음이 더 쓰였다.
‘적아린…….’
그녀가 분명했다. 무림맹은 그녀가 왕야의 죽음과 능가경 사태에도 연관이 있다고 공표했다.
성문에서 관군들과 소란도 피웠으니 엮기에도 딱 좋은 구색이었을 터.
더구나 틀린 말도 아니었다.
혈교인 군사를 없애고, 그 죄를 같은 혈교에게 묻는 건 더할 나위 없는 묘수.
하지만 배신을 당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도움을 받았기 때문일까.
그리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비슷한 감정이 들었던 일은 하나 더 있었다.
제 조부에게 모든 걸 듣고선 그렁그렁한 눈으로 홀로 절 찾아왔던 아이.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암각의 부각주 제갈소미.
그녀였다. 그녀는 모든 걸 알고 있는 듯했다.
그 표정이 너무도 서글퍼 보여 차마 화도 내지 못했다.
해줄 수 있는 말은 하나뿐.
‘돌아가.’
‘103호…….’
‘가서 기다려. 너희를 어떻게 할지. 내가 정할 때까지.’
제갈소미는 그렇게 벽에 숨어 한참을 울다가 돌아갔다.
역시나 썩 기분이 좋지 않은 일.
“오호호호! 그래도 이번 중원행은 뇌마의 시대를 알리는 진정한 강호 출사가 아니었느냐. 이제 누구도 널 쉽게 보진 못할 것이다. 장하다, 장이서.”
“주군, 경하드립니다.”
경하드립니다! 지부장과 간부들을 비롯한 청해지부의 무사들은 일제히 포권을 취하며 축하했다.
웃어야 할 일인가. 울어야 할 일인가.
모르겠다. 정말로.
어쨌든 청해에서의 여정은 그렇게 끝이 났다.
많은 걸 얻고, 많은 걸 잃은 채.
“이제 가시는 겁니까.”
다가온 만세극의 물음에 장이서는 고심하다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날이 좋다. 하늘이 푸르고, 먼발치가 선명하다. 미련 하나 남기지 않을 만큼.
어차피 천산이 아니라면 이제 갈 곳도 없는 몸.
“지부장만 믿고 갑니다.”
“후후, 주군께서 불러주시는 날까지 각골난망의 마음으로 칼을 갈고 있겠습니다.”
농담도 참.
“누굴 잡으시려고.”
“누구든, 언제든. 주군께서 부르시면 바로 달려가 목을 벨 것입니다.”
장이서가 흠칫 눈을 크게 떴다. 농담이 아니구나. 그의 진심 어린 충(忠)이 느껴졌다.
흘깃 뒤를 살피니 청해지부의 무사들도 모두 턱을 당긴 채 어깨를 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의지.
뇌마라는 악명은 이들에겐 무엇보다도 값진 선물이었나 보다.
어느 누군가에겐 죽여야 할 대상이었겠지만…….
“특별감찰관의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이젠 그리 따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제가 살아 있는 한 지존은 오직 주군뿐이십니다.”
“혹 천마께서 그냥 그리 가셔서 서운하셨던 겁니까?”
“천만에요.”
만세극은 씨익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며칠 전 잠시나마 천마를 만났을 때 전음을 받았기 때문.
[비로소 벽을 부수었구나.]단 한마디였으나 눈물이 맺힐 만큼 감복하였다.
또한 장이서를 대견하다는 듯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서 깨달을 수 있었다.
누구보다도 아끼고 있으며, 청해로 보낸 이유가 자신들을 만나게 해주기 위함이었음을.
그러니 평생토록 충성을 다해야 할 건 이제 장이서뿐이다.
“그나저나 이번에 가시면 또 언제 뵙게 될는지. 벌써 아쉬워지는군요.”
만세극이 한숨 섞인 웃음을 지었다.
충성을 맹세하는 것도, 서서히 잊히듯 기다리는 것도. 결국엔 자신들의 몫이었으니.
한데.
“지부장.”
“말씀하시지요.”
“기다릴 생각은 이제 그만하고, 지부장의 꿈을 한번 키워보는 게 어떻겠소.”
장이서가 웃으며 말했다. 지나가듯 그냥 하는 말은 아니었다.
“제 꿈 말입니까?”
그런 게 있나. 없는데? 만세극이 눈을 모은 채 고개를 갸우뚱했다. 제 나이가 몇인데 간지럽게 꿈이란 말인가.
청해지부의 무사들도 모두 표정이 기이하다.
하나 장이서의 눈엔 보였다.
“누구보다 청해를 아끼지 않습니까. 그러니 더는 혈교든, 무림맹이든, 사도련이든. 어디에도 휘둘리지 않게. 무법지대 소리 듣지 않게 발전시켜 보라는 얘깁니다.”
“……!”
“상단도 꾸리고, 무사들도 들이고. 이곳의 백성들과 함께 일궈나가 보세요. 또 압니까. 머물다 떠나는 황야가 아니라 모두가 살고 싶어 하는 명지(名地)가 될지.”
“주군…….”
“자금은 내가 대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저쪽에선 모아봤자 쓸 곳도 없거든. 그러니 잘해 보시오. 소림에서 보내올 소환단은 인재를 키우는 데 쓰시고.”
만세극의 얼굴이 형용하기 어려울 만큼 벌겋게 일그러졌다. 그건 간부들도 마찬가지.
설마 저들을 위해 이런 말까지 해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천마를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는 수하를 부리는 자가 아니라 품어주는 자였다.
그것도 진심으로.
이러니 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반드시…… 청해를 중원 최고의 땅으로 만들어 놓겠습니다.”
네 사람은 충성을 다해 부복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언제고 다시 돌아올 장이서. 아니 청해의 주인을 위해 뼈까지 갈아 넣어 보겠다고.
이젠 그 누구도 이들의 충심을 시험할 수 없는 견고한 관계가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저기 분위기 깨서 죄송한데 저는 여기 말고 천산에 데려가 주시면 안 될까요?”
그리고 그때. 만광이 달려와 넙죽 엎드린 채 간청했다.
“천산이 얼마나 강한 곳인지 직접 가서 겪어보고 싶습니다. 받아만 주시면 뭐든 다 하겠습니다!”
만세극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걸 보니 서로 얘기는 다 된 모양.
“교외자라 어려울까요……?”
만광이 조심스레 묻자 뒤에 서 있던 마오가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툭 내뱉었다.
“교외자가 문제면 칠소궁은 진작에 문 닫았지.”
“예?”
“짐이나 들어, 인마.”
“예, 예!”
만광이 활짝 웃으며 벌떡 일어나 달려 나갔다.
그리고 청해지부를 훑으며 장이서가 말했다.
“가시죠.”
“좋았어. 가자!”
“오호호!”
“예!”
언제 다시 돌아오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부디…….
‘잘 지내거라, 윤아.’
돌아간다.
천산으로.
이젠 첩자가 아닌 장이서가 되어.
*
– 하남 숭산 소림사(少林寺).
“천산으로 떠나셨다고 합니다. 무량수불.”
한편 청해와 멀리 떨어진 어느 사찰에서는 비록 함께하지는 못했으나, 마음으로 그들을 배웅하는 이들이 있었다.
정갈하게 붉은 가사를 걸친 승려들.
소림사의 신승과 원담이다.
일자로 가지런히 놓인 웅장한 암벽 앞에서 수일간 절을 올리던 신승은 비로소 행동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눈빛엔 씁쓸함과 미안함이 가득했다.
당장 달려가 붙잡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그러지를 못했다.
그를 감싸주고 보호해 줬어야 할 무림맹이 무슨 짓을 했는지 이미 다 알아버렸으니.
아무런 뉘우침도 없이 대체 무슨 낯으로 그를 다시 보겠는가.
“……조사께서는 언제고 꼭 다시 돌아오실 거다. 그때를 위해 심용(心勇)을 품고 인내하며 기다리자꾸나.”
“예, 스승님.”
두 사람은 천산으로 향하고 있을 장이서를 생각하며 다시금 면벽수련에 들어섰다.
그리고 신승은 깊이 다짐했다.
반드시 그를 정도의 품으로 돌아오게 만들겠노라고.
‘조사이시여…….’
장이서가 뿌려둔 씨가 청해를 넘어 숭산에 깊이 안착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