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279)
첩자의 마교생활-279화(279/350)
279.
#마인의 아집
– 마해산 천마전.
어스름이 걷히고 새벽빛이 지면에 맞닿을 무렵.
장이서는 이곳 천마전에 당도했다.
“…….”
그리고 그를 마중한 건 예상과 달리 정갈하고 빳빳한 백색 술사복을 입은 사내.
발끝까지 온통 새하얘 흡사 마귀처럼 느껴지는 좌사 백야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장이서는 포권을 취하며 예를 갖췄다.
약간은 긴장도 했다.
오랜만이라고는 했지만, 좌사와는 스치듯 마주한 게 전부. 사실상 초면에 가까운 만남이다.
“교주님을 뵈러 온 것이냐.”
반응도 서늘했다. 표정은 딱딱했고, 목소리엔 설핏 살기도 느껴졌다.
“그렇습니다.”
“그러기엔 너무 늦은 것이 아니냐.”
억지다. 천산엔 어제 도착하였고, 오늘 새벽에 이곳을 찍었다.
아무리 천마 제일을 원칙으로 삼는 마교라 하나, 최소한의 차림은 갖추고 와야 할 것 아닌가.
한데.
“교주님께서 널 많이 기다리셨다. 한데 네가 칠소궁으로 먼저 가버렸으니. 그 죄를 물으라 하셨다.”
“교주님께서 말입니까?”
그 억지가 교주에게서 내려온 것이라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네 이해는 필요 없다. 어찌하겠느냐. 목숨을 걸고 시험에 응해 교주님을 뵈러 가겠느냐? 아니면 돌아가겠느냐.”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고심 끝에 용기 내어 살려고 찾아왔건만 만나기도 전에 축객령이라니.
“아뇨. 전 교주님을 무조건 뵈어야겠습니다.”
더 미룰 마음은 없다. 장이서의 눈빛이 더욱 단호해졌다. 살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만나야겠다.
이에 좌사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다. 기회는 딱 여덟 번. 그 안에 날 잡으면 합격이다.”
잠시 후 좌사의 눈에 흰자위가 흑자위를 깨알만큼 남기고 완전히 뒤덮었다.
백안(白眼).
그의 시험이 시작됐다!
스르르르-
그리고 일순 좌사의 신형은 흩어지듯 사라졌다가, 어느새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음……?”
장이서는 몹시 놀랐다. 아예 움직이는 게 눈에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 이건 마치 사라졌다가 나타난 것 같지 않은가.
“일곱 번 남았다.”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니 스르르르. 또다시 좌사의 육신이 분해되듯 어딘가로 사라졌다.
“늦구나, 늦어.”
다시 고개를 돌리지만, 역시나 좌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그러기를 수차례.
어느덧 남은 기회는 세 번뿐.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이 정도면 뇌전법을 펼친다고 해도 그보다 빠르게 움직일 자신은 없었다.
예전이라면 정말 방도를 찾지 못했을 터. 하지만.
핑!
지금의 장이서는 달랐다.
천마의 기가 파동을 일으키며 번져 나가자 그의 두 눈에 지독한 마기가 서렸다.
천마안이다.
그러자 지금까진 보이지 않던 좌사 백야의 위엄이 고스란히 눈에 담기기 시작했다.
솨아아아아!
그를 중심으로 바닥에 서린 오색찬란한 빛. 이는 태극의 문양이오, 이를 감싸는 여덟 개의 괘(卦)다.
과거라면 전혀 알아채지 못했을 좌사의 성역.
복희팔괘(伏羲八卦)였다.
장이서는 차분한 눈매로 이를 목도했다.
과거 우사를 처음 마주했을 때 제 처지가 뱀 앞에 선 개구리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좌사를 보니 그게 얼마나 좁은 시야였는지 알겠다.
광명사자들은 뱀이 아니라 용이었다.
백룡과 흑룡!
“언제까지 그리 멍하니 서 있기만 할 것이냐? 뇌마라 불린다더니 이리 느려서야. 역시 소문은 믿을 게 못 되는구나!”
스르르르! 또다시 사라졌다 나타난 좌사. 그의 입에서 비난 일색이 쏟아진다.
하나 장이서는 이에 일절 동요하지 않았다.
실력을 떠나 그는 과거 암각 최고의 요원.
고작 이런 몇 마디 말에 감정이 휘둘리는 하수가 아니다.
오히려 심리전에선 가히 최고라 평해도 부족함이 없는 자.
팟! 장이서는 가볍게 흙더미를 걷어찼다.
소림 칠십이종 절예 중 하나인 족사공이다.
무수한 흙 알갱이가 정확히 좌사를 향해 날아간다.
하나.
“이 무슨 꼴사나운 짓이냐?”
스르르르. 어느새 뒤에 나타난 그가 어이가 없다는 투로 말했다.
실망도 이런 실망이 없었다.
한다는 짓이 고작 헛발질이라니.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놈이었더냐.”
좌사의 목소리가 한껏 가라앉았다.
남은 기회는 단 한 번뿐.
아까까지는 어느 정도 기대와 대우가 있었다면, 이제는 경멸과 살기뿐이다.
‘역시 이놈은 천마께서 기대할 만한 녀석이 결코 아니다.’
그렇다. 오늘 이 시험은 천마와 우사의 기대에 대한 좌사의 불신에서 비롯된 거였다.
그의 기준에서 천마는 누구에게나 무심하고, 무정해야 했다.
한데 유독 장이서의 소식이 들려올 때면 그의 입꼬리가 올라서고, 관심을 기울였다.
집착이었다.
좌사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그럴 순 있다. 하지만 후계도 아니고, 한낱 보좌에게 그런다는 건 납득이 되지 않았다.
특히 천마가 홀로 사천까지 마중을 나갔을 땐, 심장이 다 떨어질 뻔했다.
다소 돌발적인 면모가 원래도 있긴 했으나, 여태 단 한 번도 누굴 위해 그래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냥 모두에게 잔인하게 공평했다.
그러니까 천마였다.
‘솔직히 신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놈이 뭐라고 이리 아끼시는지요.’
하여 솔직하게 상문을 올렸고, 이에 천마도 웃으며 답했다.
‘궁금하면 그대가 시험해 보거라. 장이서가 내게 올 만한 자격이 있는지.’
‘죽을 수도 있을 텐데요.’
‘그럴 수도 있겠지.’
‘그래도 괜찮단 말씀이십니까?’
‘죽음을 각오하고서까지 내게 오려 한다면, 그 아이가 오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야말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믿음.
좌사는 천마에게 대항할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는 충복이지만, 이번엔 알려줘야겠다고 다짐했다.
“난 분명 네게 기회를 주었다. 네 죽음을 원망하지 말거라.”
좌사가 마음을 먹고선 다시금 사라지려는 순간.
“이번에 잡겠습니다.”
장이서의 입에서 밑도 끝도 없는 호언이 터졌다.
“하! 어디서 그런 건방진 헛소리를!”
너무 어이가 없어서 좌사의 입에서 헛웃음까지 뱉어졌다.
지금껏 일곱 번을 아무것도 못 하고 서 있던 놈이 이제 와 뭘 할 수 있다고.
‘만일 이번에 잡히면 내 평생 네놈 뒷바라지만 하다 죽을 것이다!’
스르르르. 코웃음을 뱉으며 다시금 먼지처럼 흩어지는 좌사.
이어 새로운 곳에 모습을 드러내는 그 순간.
팟!
“헛?!”
투두두둑. 무수한 흙 알갱이들이 허망하게 그를 맞췄다.
반투명한 막에 가로막혀 몸에 닿지는 않았으나, 정확히 자신의 움직임을 잡아낸 것이다. 좌사의 눈이 부릅떠졌다.
“잡았습니다.”
“어, 어떻게. 설마 찍은 것이냐?”
불신과 억울함이 가득한 좌사의 눈.
이건 운이다. 그게 아니면 말이 되지 않는다.
한데.
“건(乾)과 곤(坤). 리(離)와 진(震). 간(艮)과 손(巽). 그리고 태(兌).”
“……!”
“지금까지 모두 일곱 번 팔괘의 자리로 움직이셨고, 마지막 여덟 번째인 북쪽의 감괘(坎卦)만을 남겨 놓고 있으니. 그리로 가실 것 같았습니다.”
좌사의 입이 떡 벌어지고, 제 귀를 의심했다.
정확했다.
움직임의 비결은 괘(卦). 성역에 펼쳐진 팔괘의 자리로만 이동할 수 있었던 것.
또한 한 번 밟은 자리는 다른 팔괘를 다 밟기 전까진 다시 갈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좌사의 신통한 움직임에 유일무이한 제약.
‘그새 그걸 다 간파했단 말이냐? 극마에 오르지도 않은 놈이 어떻게 내 팔괘를 보고!’
머릿속이 멍해졌다.
어느 쪽으로든 납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 하지만 본래 그런 존재가 바로 장이서다.
물론 수용이 쉽지는 않겠지만.
“인정할 수 없다!”
우우우웅!
아니나 다를까, 좌사의 눈에서 살광이 번뜩이고 고집스러운 진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팔괘의 자리에서 빛줄기가 튀어 오르고, 이내 쇠사슬처럼 쏘아져 장이서의 육신을 팔방에서 휘감았다.
빠아아악!
사지가 당겨지고, 이를 버텨내려 하자 전신이 부르르 떨린다.
마치 수백 마리의 말이 바깥으로 달려 나가는 기분.
“마지막 기회다. 지금 당장 돌아가겠다고 외치거라! 그럼 내 목숨만은 살려줄 것이니!”
억지다. 고루한 추태요, 비겁한 아집이다.
그리고 좌사 스스로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교가 괜히 마교겠는가.
원치 않는 건 반드시 꺾어 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 바로 마인의 근원이다.
그러니까.
“아, 아닛?!”
쩌적, 쩌저적!
좌사의 입에서 탄성이 뱉어지고, 입이 떡 벌어지기 시작했다.
장이서의 벌려졌던 두 팔이 오므라들고, 어느 순간 사슬엔 금이 서리기 시작한 것.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좌사가 누구인가. 입신지경에 오른 절대자다.
척 보면 장이서의 수준이 가늠이 됐다.
나이에 비해 대단한 건 사실이나, 잘 쳐줘도 후계들 정도.
이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리 쉽게 예단할 수 있으면 어디 그게 장이서겠는가.
‘그리 원하시니 깨부숴 드리는 수밖에.’
우우웅!
그의 근골에 서린 358개의 소단전이 거침없이 포효를 내질렀다.
바로 신승의 일평생이 담긴 역근경이 말이다!
꽈드드득!
한순간에 발휘되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의 힘!
“이건 말도 안 돼!”
되고, 안 되고는 그쪽이 정하는 게 아니다.
마침내 좌사의 비명을 끝으로 쩌엉! 빛의 사슬이 부서졌다.
솨아아아아-
서서히 복희팔괘의 성역이 거두어지고, 좌사는 넋 나간 표정으로 장이서를 바라봤다.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말이 있다.
상대를 다시 만났더니 눈 비비고 봐야 할 만큼 크게 성장해 있다는 말이다.
지금 좌사가 보는 장이서가 딱 그랬다.
어디서 근본도 없던 놈이 어느 날 다시 보자 너무나도 커져 있던 것.
이 정도면 적어도 교내의 인간 부류 중에선 누구와 겨루어도 부족함이 없을 지경.
“그게…… 대체 무슨 무공인 것이냐.”
장이서의 육신이 성난 것처럼 지독한 열기를 뿜어낸다. 천하의 좌사도 그 정체를 짐작하지 못했다.
신승의 진기로 장이서를 통해 무려 천 년 만에 되살아난 달마 조사의 역근경(易筋經)이었으니.
“이제 교주님을 뵈러 가도 되겠습니까?”
장이서의 담담한 물음에 좌사는 꽁한 얼굴로 입술을 씹었다.
백이십 년을 살면서 수많은 고수들을 봐 왔지만, 이렇게 단기간에 미친 듯한 성장을 보인 놈은 처음이었다.
나이라도 적은가. 스물여덟이면 체질을 바꾸기엔 늦다 못해 글러 먹은 나이다.
한데 느닷없이 후계나 장로에도 밀리지 않을 진짜 강자가 되어 나타나다니.
“시험은…… 합격이다.”
결국 좌사가 마음을 굽혔다.
고집도 한 번이다. 끝도 없이 부릴 만큼 아둔한 자는 아니다.
더구나 본교에 이만한 인재가 나타났다는 건 그로서는 싫을 이유가 없는 희소식.
눈빛에 불신은 거두어지고, 깊은 호의가 대신 서렸다.
어째서 천마와 우사가 그를 이토록 기다리고 기대했는지 조금은 알겠다.
매번 이런 변화를 보여준다면 저라도 응원하겠다.
“들어가거라. 넌 교주님을 만날 자격이 있으니.”
몸을 비켜서는 좌사.
장이서는 포권을 취해 인사를 올린 뒤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끼이이이익!
천마전의 문이 활짝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