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28)
첩자의 마교생활-28화(28/350)
28.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인 공터.
지대호가 소녀처럼 애타게 기다리는 당사자는 커다란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히히히히! 죽어라-!]도살방 서열 5위 요도순. 바로 그의 습격 탓이었다.
그가 쏜 화살은 일반 무사들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촉에는 내기가 실려 벽도 부술 정도였고, 연달아 대여섯 발을 쏘는 속사는 그 간격이 교묘해 잡아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도 더 문제인 것은.
“장이서-!”
이미 마비 독이 퍼져 두 손이 마비됐고, 몸속에선 독기와 탁한 내공이 뒤엉키며 속이 들끓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장이서에게는 독이 곧 쥐약이나 마찬가지.
파파파팟!
날아든 화살에 장이서가 그대로 자릴 박차고 옆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자 화살 여섯 발이 그가 서 있던 자리를 지나 뒤쪽 폐가에 박혔다.
그리고 또다시 날아드는 화살.
피잉!
이번엔 나려타곤으로 몸을 굴려 겨우 피했다.
[히히히히히! 언제까지 피할 수 있을 것 같으냐!]요도순의 말대로였다. 이대로면 승산이 없다. 그야말로 죽음을 목전에 둔 신세.
하지만.
‘화살이 날아든 속도. 그리고 화살이 꽂힌 각도를 보면 놈은 좌측과 우측을 오가며 화살을 쏘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엔…….’
왜일까. 마오의 애타는 외침과 승리를 확신하는 요도순의 웃음과 달리 장이서는 여유를 넘어 어딘가 나태해 보였다.
이건 그러니까, 언제든지 자신을 문 벌레를 터트려 죽일 수 있다는 확신에 찬 표정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뇌전법(雷轉法)』
파지지직!
비좁기만 한 경맥을 간신히 통과하던 탁했던 내기가 한순간에 번쩍이는 뇌기로 변모하고, 눈을 깜빡이기도 전에 대주천을 끝마쳤다.
마오가 쾌속이라면, 장이서는 빛 그 자체.
파파파팟!
그리고 그때 화살 여섯 발이 숲속에서 연달아 쏘아졌다.
‘지금!’
동시에 장이서도 자릴 박차고 정면으로 빛살처럼 날아들었다.
쏘아지는 화살마저 피해 들어갈 만큼 엄청난 속도와 반사신경.
그리고 번쩍.
“으헉?!”
그야말로 벼락같은 움직임으로 숲에서 다음 화살을 준비하던 요두순 앞에 나타났다.
퍽!
“꺼억!”
이내 장이서가 팽이처럼 회전하며 날린 일각에 그의 비명은 유언이 되었다. 분명 타격은 가슴팍에 한 번이었는데 코, 목젖, 쇄골, 명치, 상복부, 하복부, 낭심. 총 일곱 군데가 움푹 함몰된 채 나무에 처박혀 즉사했다.
불순한 내공으로 펼쳤을 땐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는 정파에서 각퇴술(脚腿術)의 일인자였던 무림맹 원로 칠각대승(七脚大僧) 대광의 정수가 담긴 것.
“성불해라.”
장이서는 짤막하게 인사를 남기곤 몸을 돌렸다.
파스스.
이내 뇌전법을 해제하자 뇌기에서 되돌아온 탁한 내기가 경맥을 뒤죽박죽으로 휘저었다. 본래도 성질이 사나운데 독기까지 스며들었으니 정상인 게 이상한 일.
“젠장.”
어질어질한 몸으로 뒤돌아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장이서-!”
제 앞으로 달려온 마오를 바라봄과 동시에 눈이 풀리며 그의 어깨에 툭 쓰러졌다.
“야, 장이서! 이, 미친! 의원. 의원한테 가자!”
장이서를 한 번에 둘러업은 마오가 서둘러 몸을 날린다. 딱 봐도 낯빛이 죽어 있는 게 범상치가 않다.
한데.
“천마전으로…….”
어깨 너머에서 긁는 목소리로 장이서가 말했다. 이에 마오가 인상을 확 찌푸렸다.
“미친놈. 너 지금 화살 두 대 맞았어. 얼굴은 이미 시체 상태고. 알아? 의원한테 안 가면 너 관짝에 들어가게 생겼다고.”
“천마전으로…… 가.”
“닥쳐! 가는 반말이야. 그리고 나 알아서 해.”
“빨리…….”
“야!”
시끄럽다. 장이서가 숨을 몇 번 가다듬고 짜증 섞인 투로 내뱉었다.
“내 몸은 내가 잘 압니다. 자고 나면……. 그럼 괜찮으니……. 가. 천마전으로.”
“이 미친 자식…….”
마오는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도대체 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까지 한단 말인가. 진짜 자신을 소교주로 만들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모르겠다. 이놈은 그냥 미친놈이다.
하지만.
마오의 동공이 흔들렸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이리도 진심인 적이 있었던가. 아니, 없다. 단 한 번도 저와 함께 무언가를 해보려 했던 자는 없었다.
해하려 하거나, 무시하거나, 그저 바라보는 게 다였다.
그런데 장이서는…….
마오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곤 말했다.
“후회하지 마라.”
빠르게 걸음을 다시 옮긴다. 목적지는 천마전.
“죽기만 해봐. 시체는 교차로에 묻고 묘비 하나 박아 동네 개들이 돌아가며 오줌싸는 성역으로 만들어줄 테다. 죽어서도 지린내가 진동하게 해줄 거야. 염라가 널 보고 코부터 막게 해줄 거다. 알아?”
“크큭.”
“웃어? 장난 같지. 나 월하촌 망나니 마오야. 한다면 해.”
장이서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너라면 하고도 남겠다. 그 꼴 보기 싫어서라도 살아남아야지.
일단은…….
한숨 자고 말이다.
장이서의 눈꺼풀이 내려오고 암전이 닥쳤다.
그리고 마오는.
“가자. 천마전으로.”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
*
*
한편 마오와 장이서가 사라지고, 쓸쓸한 바람만이 남겨진 숲속.
허무하게 죽은 요도순의 시체 앞에는 복면을 쓴 길쭉한 사내가 활 하나를 어깨에 멘 채 서 있었다.
“저 보좌 새끼…… 도대체 정체가 뭐야.”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바닥에 쓰러진 시체를 살폈다. 이내 떨리는 손으로 복면을 풀고, 시체의 얼굴을 가려주었다.
그러자 드러난 그의 목덜미에 문신으로 그려진 두 글자가 보인다.
죽일 도(屠). 죽일 살(殺).
도살방이다. 자객은 요도순 하나가 아니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얼굴이었다.
“멍청한 자식. 이렇게 쉽게 뒈져버리다니.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네놈 원수는 반드시 나, 요도순이 갚아줄 테니.”
둘러메는 시체와 똑같은 이름. 그리고 똑같은 체형과 똑같은 얼굴.
그렇다.
도살방의 서열 5위 요도순은 하나가 아니었다.
두 명의 쌍둥이가 한 명으로 위장한 2인 1조의 자객이었다. 해서 속사를 쏘던 방향과 그 후에 우측에서 날아든 화살의 방향이 완전히 다를 수 있었던 것.
“장이서. 네놈은 반드시 내 손으로 죽여줄 것이다. 반드시.”
도살방과의 악연은 점점 더 깊어져 가고 있었다.
* * *
– 마해산 호룡당.
어느새 시간은 계속 흘러 해는 점점 중천으로 떠올랐다.
이제 교주와의 독대까지 남은 시간은 반각 남짓.
천마전으로 향하는 호룡당의 정문이 닫혀야 할 시간이 된 것이다.
“당주님, 어찌할까요.”
본래라면 이제 문 닫을 준비를 해야 할 수하가 조심스레 묻는다. 아직 칠공자가 오지 않았기 때문. 이에 지대호는 길목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단호하게 말했다.
“잠시만 기다리거라, 잠시만. 그 녀석은 분명히 올 것이다.”
초조해진 지대호는 입에서 그 녀석이라는 말까지 꺼냈다. 수하들은 칠공자를 그 녀석이라 부른 건가 싶어 화들짝 놀랐지만, 천만에.
그의 머릿속엔 온통 그뿐이었다.
‘내가 널 잘못 본 것이냐. 너라면 분명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거늘. 장이서…….’
근거는 없다. 하지만 지대호는 그런 확신이 들었다.
장이서, 그 녀석이라면 분명 생각지도 못한 행보를 보여줄 것이라고. 그래서 기적과도 같은 이변을 일으켜 줄 것이라고.
한데 아직까지 코빼기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니…….
왠지 모르게 침이 삼켜지고, 손에는 식은땀이 흐른다.
“정녕 불참인 것이냐.”
괜한 기대였는가. 길목은 여전히 휑하고, 시간은 야속하게 흘렀다.
어느새 반각마저 지나 독대의 기회는 날아가 버렸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 허가받은 이유가 없다면 교주께서 부른 자리엔 반드시 와야만 했다.
이건 무엇으로도 변명이 되지 않았다.
실망이 가득 서리고, 지대호가 끝내 몸을 돌렸다.
“닫아라.”
그의 명이 떨어지고, 수하들이 자비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끼이이이익!
그렇게 모두가 돌아서고, 문은 닫혀가던 그때.
“잠까아아아안-!”
지대호의 눈이 번쩍 떠짐과 동시에 몸이 휙 돌아갔다. 그리고 입꼬리가 광대까지 서서히 올랐다.
왔다. 왔구나!
그들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진짜 생각지도 못한 모습으로.
기합을 내지르며 오르막길을 달려오는 마오.
그리고 그 뒤에 시체처럼 업힌 장이서.
“문을 열어라-!”
지대호의 포효와도 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 * *
장이서가 정신을 차리고, 가장 먼저 느낀 건 쓴 내가 뒤섞인 향이었다.
매울 만큼 퀴퀴한 향이 코끝을 자극하자 저절로 입에서 신음이 뱉어졌다.
“으음…….”
그리고 이어진 육신의 고통. 화살에 당한 두 팔은 움직일 때마다 화상을 입은 것처럼 진한 통증이 밀려왔다.
이내 눈꺼풀을 올리자, 단단한 근육 위 상처에 발라진 약재가 눈에 담겼다.
“독초가 들어간 녀석들이라 향은 고약하지만, 효과는 내가 보증하지.”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장이서가 고갤 돌렸다. 그러자 의자에 앉아 저를 내려다보는 우람한 풍채의 사내가 눈에 담겼다.
영리한 호랑이.
호룡당주 지대호다.
“화살이 너무 오랫동안 깊게 박혀 있었네. 한동안은 쉬는 게 좋을…….”
장이서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상체부터 일으켜 세웠다. 그러곤 팔을 드는 것조차 힘들 텐데 포권까지 취했다.
한데도 표정은 아무런 변화가 없이 평온하다. 덕분에 오히려 보는 지대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자네도 어지간히 말을 듣지 않는군. 클클, 뭐. 본교에 제대로 된 녀석들이라면 다 그렇겠지만.”
“늦지는 않게 온 겁니까.”
“눈 뜨자마자 주인부터 걱정하는 겐가.”
“밥값은 해야 하는 주의라서요.”
“클클, 걱정 말게. 칠공자께서 아까 천마전으로 가셨으니 지금쯤이면 문을 열었든, 못 열었든. 뭐라도 되었을 걸세.”
장이서가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면 되었다. 같이 가 천마를 만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이거로 충분하다.
“여기는…… 호룡당입니까?”
장이서는 뒤늦게 주변을 살폈다. 사실 묻지 않아도 천장이며 벽이며 온통 호랑이 문양이 그려져 있어 충분히 유추가 됐다.
지대호도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답했다.
“정확히는 천마전 앞의 임시초소일세. 칠공자께서 기어코 자네를 데리고 가겠다는 바람에 예까지 온 것이지.”
“그렇……습니까?”
장이서가 놀란 듯 답하자 지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칠공자께서 누군갈 옆에 두실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네. 유일한 벗들을 잃었을 때, 이미 그분은 모든 걸 내려놓은 눈빛이었으니. 이후로도 몇 번 뵈었지만 다르지 않았네. 한데 이번엔 진심이더군. 자네에게 마음을 깊이 주신 모양이야.”
그런가. 장이서는 별다른 대답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성공했다고 좋아해야 하나, 씁쓸함에 입맛을 다셔야 하나. 뭐든, 썩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다. 어쨌든 자신은 첩자로서 그의 옆에 함께 하는 것이니.
“사과 먼저 하지.”
장이서의 고개가 다시 들려졌다. 사과?
“자네가 잠든 사이에 허락도 없이 보게 되었네.”
“무슨…….”
“자네 몸 말일세.”
“내…… 몸?!”
고개를 숙여 제 아래를 살핀 장이서의 눈이 화들짝 놀랐다.
#가자. 천마전으로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