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282)
첩자의 마교생활-282화(282/350)
282.
#오랜만에 뵙습니다
가르치는 어투에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짓자 천오산은 눈썹을 올리며 답했다.
“자존심입니다. 굽히지 않는 자존심!”
별거 아닌 일도 권력이 클수록 아집을 부리게 된다.
그 이유는 자신이 허리를 숙일 때마다 제 어깨 위에 올라탄 권세가 떨어져 내리기 때문.
한데 제 아들을 소교주로 만들겠다던 놈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가 버렸다.
그야말로 기르던 개가 주인을 문 격.
심지어 서열 1위에서 2위로 강등까지 당하지 않았는가.
이걸 그냥 넘기면 세상은 모두 장이서가 마일성의 머리 위에 올라섰다고 생각할 게 자명했다.
“그러니 이번 사태를 절대 그냥 넘어갈 리가 없지요. 아마 지금쯤 벌써 장이서를 찾고 있을 겁니다. 제가 장담하지요.”
이장로가 코웃음을 치며 검지를 면전에 톡톡 두드렸다. 이장로의 두뇌는 본산에서도 알아주는 편.
“그러니 일장로 쪽은 신경 쓸 것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건 선거 당일 그놈을 잘근잘근 찢어 죽이는 것뿐.”
빠득. 이장로가 이빨을 갈며 이어갔다.
“당장 간부들부터 만나러 가시지요.”
본격적으로 움직임에 나선 이장로 천오산과 사공자 한.
장이서에게 위험신호가 울리기 시작했다.
*
한편 방해하려는 자가 있다면, 도우려는 자도 있는 법.
반대로 수뇌 중 장이서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위하는 자도 존재했다.
크하아아앙!
대표적으로 장이서가 천마전에 왔다 간 것도 모른 채 단잠에 빠져 있던 호룡당주 지대호가 있었다.
“부관, 부관, 부관-!”
“예, 예! 당주님!”
“장 보좌가 왔으면 날 깨웠어야지! 왜 안 깨운 것인가. 왜-!”
“아니, 그게 제게 당분간 말도 걸지 말라 하셔서…….”
크하아아앙!
산군의 노호가 마해산에 울려 퍼진다.
“그건 네놈이 내 누이를 놔두고 또 외박을 했으니 그런 것 아니더냐!”
“아니, 그건 그렇긴 합니다만 밤새 일을 시키신 건 당주님…….”
“나가-!”
“히이이익!”
챙그랑! 바닥에 깨진 술병이 나뒹굴고, 부관은 발걸음도 안 보이게 줄행랑을 쳤다.
“후,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홀로 남은 지대호는 관자놀이를 질끈 누르며 고심에 잠겼다.
매제인 부관 걱정은 아니었다.
제 책상에 놓인 장이서의 소식이 담긴 서신 때문이었다.
그 역시 머리로는 마선에 뒤지지 않는 영리한 호랑이.
단숨에 사태를 꿰뚫었다.
“분명 이장로는 장 보좌를 없애려 들 것이다.”
역사적으로 그러했다. 봉황이 날아오르는 데엔 늘 역경이 닥쳤다. 그러다 실패라도 하면? 이리들의 먹이가 되어 갈기갈기 찢기는 것이 바로 영웅의 숙명.
“절대 그리 놔둘 수 없다! 이는 신도들의 바람을 묵살하는 것이며, 대세를 거스르는 역도다!”
지대호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어딘가 조금 과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사실 장이서가 청해로 떠나 자릴 비운 사이.
뇌마를 열렬히 연호했던 추종자 중 하나가 바로 지대호였다.
사실 홍란을 제하면 제일 먼저 장이서를 응원하던 자였으니 지극히 당연한 수순.
그리고 아직 세가 큰 건 아니지만 그와 같은 자들이 여럿 더 있었다.
“지금부터 뇌마를 추대할 동지들을 모아야 한다.”
지대호가 마음을 굳혔다.
지금이야말로 장이서를 위한 진심을 보여줄 때라고 생각했다.
“이제 곧 있으면 장로회에서 압박이 들어올 것이다. 그전에 먼저…….”
“당주님!”
크하아아앙!
고심 중에 불쑥 들이닥친 부관을 보며 죽일 듯 노호를 내질렀다.
한데.
“장로회에서 왔습니다!”
“버, 벌써 말이냐?!”
벌떡 일어선 지대호의 눈이 부릅떠졌다.
안 된다.
이대로 끌려가면 의견도 못 꺼내고 휘둘리게 될 터.
그의 시선이 휙 옆의 붓으로 향했다. 그러곤 백지 한 장을 꺼내 거침없이 글귀를 써 내려갔다.
그러곤 대뜸 콰직!
범처럼 창문을 깨고 탈출했다.
“아니! 그쪽은 낭떠러……!”
크하아아아앙!
천산에 울리는 산군의 울음소리. 그게 비명인지 포효인지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아무튼 책상엔 덩그러니 네 글자만이 남겨져 있었다.
【휴가신청(休暇申請)】
일에서만큼은 공명정대한 호랑이, 지대호였다.
이장로에 맞서 그에 반하는 바람이 일었다.
*
모두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된 장이서.
“흐음…….”
한데 정작 그는 주변인들의 관심이 무색하게도 나뭇가지에 누워 태평히 햇살을 누리고 있었다.
떠나올 때의 안개 낀 새벽이 지나 새파란 하늘이 유독 멀게 느껴지는 오후.
단잠에 빠지기 딱 좋은 시간이다.
물론 마오가 본다면 대체 뭐 하고 자빠졌냐며 버럭 소리를 내지르겠지만, 장이서도 다 이유가 있었다.
“일단 너무 진이 빠졌어. 사천부터 안 쉬고 달려와서 오늘 새벽엔 좌사와 천마까지. 안 빠지고 배겨?”
못 배기지. 그래도 오랜만에 한숨 자고 났더니 좀 낫다. 심신이 보다 안정이 됐달까.
그만큼 지금 가야 할 곳은 최상의 몸 상태를 준비해야만 했다.
안 그랬다간 선거고 뭐고 시작도 하기 전에 목숨부터 잃게 될 테니.
“움직여라!”
들려온 외침에 슬쩍 고개를 돌려 실눈으로 아래쪽 길목을 살폈다. 그러자 무장한 무리가 어딘가로 향하는 모습이 눈에 담긴다.
살기가 예까지 치솟는 걸 보니 작정하고 잡으러 가는 모양.
하지만 아쉽게도 그들은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할 거다.
왜냐하면 그들이 찾는 장이서는 여기 있으니까.
“그럼 가볼까.”
툭.
떨어져 바닥에 착지하고는 무사들이 지나온 길을 역으로 거슬러 올랐다.
그러자 그리 오래되지 않아 웅장한 규모의 장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입구부터 부산스레 바빠 보이는 곳.
“굼벵이 새끼도 아니고 빨리빨리 안 움직여?! 이번에 장이서 그 새끼 반드시 잡아야 한다! 알겠어?!”
“예-!”
이리 열렬히 환영해 주니 안 반가울 수가 있나.
“장이서는 잡아서 뭐 하게.”
“뭐 하기는! 당연히 잡아 족쳐야, 근데 넌 누구…… 어억!”
화들짝 놀라며 뒤로 나자빠지는 사내. 그간 고생 좀 했는지 기름지고 허옜던 얼굴이 제법 탔다.
“오랜만이다, 마진구. 뼈는 잘 붙었냐?”
콰득!
“끄아아아아아!”
장이서가 사납게 웃으며 마진구의 발목을 밟아 부쉈다. 그러곤 느긋하게 그의 뒷덜미를 쥔 채 들어 올린다.
비명이 쏟아지고, 주변에 있던 모두가 얼음처럼 굳어 버렸다.
이곳은 마교 제일 가문인 마가(麻家).
“지금부터 내 앞길 막으면, 얘 목부터 날아간다.”
장이서를 잡지 못해 혈안이 된 범굴에 그가 직접 들이닥쳤다.
부교주가 되기 위한 거침없는 행보의 시작이었다.
*
– 마가(麻家) 경천채(敬天寨).
과거 폭삭 무너져 내렸지만, 어느새 다시 본모습을 되찾은 경천채.
일장로 마일성은 심란한 표정을 짓고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명상에 잠겨 있었다.
그의 권세를 생각하면 당연한 얘기지만, 평소 누군가를 먼저 애타게 생각하는 쪽은 결코 아니었다.
하나 이번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천산을 들쑤셔 놓은 마교의 이단아(異端兒).
‘장이서…….’
그가 머릿속에 가득 들어차 버렸으니.
‘기어코 끝을 보겠다는 것이냐.’
그리고 이장로 천오산의 예측대로 마일성은 분개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유는 다소 달랐다.
단순히 서열 1위를 가져갔다는 일차원적인 자존심 때문이 아니었다.
그깟 것 언제든 되가져오면 그뿐.
또한 부교주 선거도 막아낼 자신이 있었다.
한마디로 개가 짖는다고 꿈틀거릴 이유가 없다는 얘기.
문제는 바로 장이서였다.
마일성은 두뇌도 영민하지만, 사람을 가리는 눈도 탁월했다.
그리고 그가 본 장이서는 난 놈 중의 난 놈.
오죽하면 장이서가 첩자 혐의로 붙잡혔을 때, 제 아들인 마오를 헌신짝처럼 버릴 생각까지 했을까.
‘장이서가 이번에 살아나오지 못한다면 칠소궁과의 관계도 여기까지다.’
장이서가 있기에 마오의 미래도 있다.
이것이 바로 그가 내린 냉정한 평가.
그래서 문제였다.
‘그놈은 아무 생각도 없이 일을 벌일 놈이 결단코 아니다. 이리 크게 일을 벌였다는 건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얘기겠지.’
장이서의 계획이 뭔지는 모른다. 하지만 장이서는 안다.
그래서 불길한 거였다.
또 무슨 짓을 꾸밀지 도통 짐작할 수가 없으니.
그리고 그 불안감은 그대로 적중했다.
“가주님! 크, 큰일 났습…… 커헉!”
바깥에서 요란스러운 비명과 함께 와당탕! 온갖 소음이 빗발쳤다.
그리고 잠시 후.
드르륵!
장지문이 거침없이 열리며 피로 얼룩진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쓰러져 신음하는 무수한 식솔들을 뒤로한 채 씨익 웃으며 포권을 취하는 사내.
“오랜만에 뵙습니다.”
“장이서…….”
부교주 후보 장이서.
그의 등장이다.
*
“기다리셨던 것 같은데. 얘기 좀 하시죠.”
장이서가 터벅터벅 걸어와 마일성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뒤이어 허겁지겁 달려온 번천검객과 무사들.
하나 이제 와 온들 무엇하나.
막으려면 제 앞에 나타나기 전에 막았어야지.
“나가 있거라.”
마일성이 무심히 손을 내젓자 번천검객이 난처한 표정을 짓고는 밖으로 나섰다.
드르륵.
이에 문이 닫히고 마침내 두 사람이 마주했다.
마일성은 말보다는 주전자를 들어 차부터 따랐다.
또르르.
물론 이는 놀란 속내를 감추기 위한 요식행위일 뿐.
머릿속에선 수많은 생각이 빗발쳤다.
‘장원이 비워지기를 기다린 건가.’
마가칠객 중 여섯이 장이서를 잡아 오기 위해 나섰다. 거기에 동원된 무사들만 수백.
바꿔 말하자면 처음부터 빈집이 될 이곳을 노렸다는 얘기. 당연히 티는 안 냈지만, 내면엔 웃음이 서렸다.
역시 예상대로 보통 놈이 아니다.
놀란 건 하나 더 있었다.
‘번천검객이 늦었다곤 하나, 놈의 경지로는 결코 이곳을 뚫지 못했을 텐데.’
경천채를 지키는 건 마가의 최정예 무사들.
한데 아무리 봐도 몸에 묻은 저 피는 장이서의 것이 아니다.
상처 하나 없이 순식간에 길을 뚫고 들어왔다는 얘기.
‘그사이 실력이 또 진보했다는 것인가?’
정녕 이해 자체가 불가능한 녀석이다.
“이리 올 줄 알았으면 따로 마중 보낼 일도 없었을 것을. 들게.”
절묘하게 차를 건네는 순간, 탐색도 끝이 났다. 실로 노련한 정치의 고수.
“시간이 지나면 오해만 더 커질 것 같아 먼저 들렀습니다. 아시다시피 앞으로는 바빠질 것 같아서요.”
바빠질 것 같다? 그런 되지도 않는 말을 웃으면서 하다니. 참 뻔뻔하기도 하다.
“죽은 자의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곧 죽을 자의 말을 못 들어줄 이유는 없지. 해보게.”
솨아아아아!
주변의 기운이 마일성을 향해 서서히 빨려 들어가듯 점점 무거워진다.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면 절대 용서치 않겠다는 뜻이다.
한데.
‘흔들림이 없다?!’
마일성의 매의 눈이 이상함을 감지했다.
일전에는 제 기세에 긴장했던 녀석이 지금은 너무나 태연했던 것.
“부교주가 되어야겠습니다.”
생각을 가로막듯 장이서가 본론을 꺼냈다.
서두 없는 패기가 좋긴 하나.
“이제 겨우 두 발로 섰는데, 벌써 날아오를 생각부터 하는가.”
너무 앞섰다는 얘기.
“어차피 해야 할 일. 미룰 이유가 있겠습니까.”
“처음부터 부교주가 목적이었다는 말처럼 들리는군.”
“그렇게 보이십니까.”
“그럼 아닌가?”
장이서가 씨익 웃고는 차를 들이켰다. 이제 와 그게 무슨 소용인가. 무의미한 질문. 다시 거두절미하고 말했다.
“도와주십시오.”
“후후후.”
마일성의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더없이 서늘했다.
너무나 실망스러웠기 때문.
기대가 와장창 깨져버렸다. 분명 뭔가 다를 줄 알았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예까지 찾아와 설레기도 했다.
그만의 묘수가 있을 줄 알았다.
한데 고작 한다는 말이 제게 도와달라?
“간부들의 마음이라도 돌려주길 바라는가. 스스로 선거를 청했다더니, 실로 무책임하군.”
마일성이 정색한 채 일언을 뱉었다.
한데.
“아뇨. 그 반대입니다. 절 없애려는 자들에게 부디 힘을 실어주십시오.”
“……!”
뭐지, 이 녀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