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284)
첩자의 마교생활-284화(284/350)
284.
#그를 위한 선전포고
다음 날.
‘일장로 북명마군이 이장로 마선의 지지를 선언했다!’
장이서가 부교주 선거에 나선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또다시 천산이 들썩거렸다.
뇌마는 마일성의 자식인 칠공자 마오의 보좌.
하여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 일장로의 결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데 그런 그가 이장로의 편에 섰다.
이는 장이서의 가파른 기세를 꺾어 놓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여파는 생각지도 못한 곳까지 이어졌다.
*
“지금 뭐라고 했느냐. 다시 말해보거라.”
마해산 비룡당.
당주실로 복귀해 앉아 있던 묘채경은 아주 기막힌 일을 경험하고 있었다.
“방을 비워달라고 하였습니다.”
어이가 없게도 당원들이 무턱대고 쳐들어 와 축객령을 내던진 것.
그것도 제 바로 밑의 3급귀 부당주인 고길상을 필두로 말이다.
“너 지금 제정신인 것이냐? 내가 누군지 그새 잊었느냐?”
세상에 그걸 잊을 자가 누가 있겠는가. 귀 찢어질 듯한 목소리만 들어도 자다가 벌떡 일어난다.
하지만.
“정직 중이시지 않습니까. 여긴 제게 맡기고 돌아가 푹 쉬시지요.”
고길상이 특유의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비아냥댔다.
이건 대놓고 제가 당주 자리를 먹겠다는 역모의 발언.
순간 묘채경은 고민에 빠졌다.
‘이 새끼가 미쳤나?’
과거 제 신발이나 후후 불어 닦던 놈이 바로 고길상이다.
아부 빼면 쥐뿔도 없는 놈.
그런 그를 지금의 자리까지 뒤 봐주면서 올려준 게 바로 자신이고.
그 덕에 밑에서도 말들이 많았었다.
당주가 사람 볼 줄 모르네, 혓바닥으로 저 자리까지 올라갔네, 당에 암운이 닥쳤네.
하나 같이 죄다 안 좋은 소리뿐이었다.
오죽하면 비룡당 모든 문제의 발단은 고길상이란 말까지 나돌 정도.
“한데도 불구하고 난 네놈을 품어주었거늘……. 감히 은혜를 이딴 식으로 갚아?!”
배신감에 그녀의 두 눈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한데 그 순간.
“닥치시오! 당주께서 날 욕받이 겸 방패막이로 쓰다 버리려 이 자리에 앉혔다는 걸 내 모를 줄 아셨소-?!”
고길상이 역정을 내며 그간의 서러움을 토로했다.
“알고 있었단 말이냐?!”
“이런 x발! 그리 쉽게 인정하지 말란 말이외다!”
생각보단 덜 등신이었구나. 아쉬운 표정으로 그걸 인정해 버리는 묘채경이다.
하지만 이해는 가지 않았다.
어쨌든 고길상은 간이 팥 알갱이만 한 놈. 고작 그런 이유로 제게 이빨을 들이댈 자가 아니었다.
이건 필히.
“장로회에서 다녀간 것이냐.”
“허, 헙!”
맞구나.
“왜. 이장로가 네놈에게 당주 자리라도 주겠다고 하더냐?”
“무, 무슨 그런 근거도 없는 소리를!”
네 눈이 근거다.
“내 그리 속내를 드러내지 말라 하였거늘. 부당주라는 놈이, 쯧쯧쯧.”
단박에 이해가 갔다. 자신이 장이서의 줄을 잡았다는 건 이미 만천하가 다 아는 사실.
이장로가 먼저 손을 쓴 것이다.
“길상아. 너는 참으로 어리석구나. 이러다 장이서가 부교주라도 되면 어쩌려고.”
“크하하하하!”
“웃어?”
“옛정이 있으니 내 한마디 해드리리다. 당주 줄 잘못 잡으셨소. 부교주? 꿈도 꾸지 마시오. 이미 간부 중 절반 이상이 반대하겠다는 연명부(聯名簿)에 서명까지 마쳤으니.”
“뭐라?!”
“이미 다 끝났다는 말이외다!”
묘채경의 눈이 토끼처럼 커졌다.
고작 단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다.
한데 연명부를 벌써 준비해 냈다니.
‘일장로의 지지가 판도를 엎었구나.’
더구나 아무리 대공자가 봉문에 처했다고 해도 범은 범. 마선은 마선이었다.
그야말로 산 넘어 산.
선거 당일 회당에 살아서 도착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젠 도착해도 문제였다.
“멀리 안 나가리다. 그간 고생하셨소. 여편네는 여편네답게 어디 조용한 곳에 가서 밭일이나 하면서 사시오. 크하하하!”
묘채경이 당황에 빠진 사이, 고길상은 코웃음을 치며 나가라고 고갯짓했다.
“뭐 하시오? 안 나가고.”
“아주 지랄이구나.”
묘채경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결국 밖으로 나섰다.
당장 목젖에 깃털을 꽂아주고 싶지만, 그의 말대로 아직 정직이 풀리지 않았다.
여기서 괜히 사고를 쳐봤자 기간만 길어질 뿐.
더구나 상황이 아주 제대로 꼬여버렸다.
만일 고길상의 말대로 이미 연명부가 모였다면, 부교주의 당선은 이장로의 선택에 달린 것과 마찬가지.
다 끝났다는 얘기였다.
장이서의 패배다!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끼이이익!
그리 멀지 않은 이곳 객잔의 방 안에 숨어 있는 잠룡의 말을 미리 듣지 않았다면.
“역시 네 말대로다. 고길상이 비룡당을 잡았고, 이장로는 연명부를 이미 다 모아놨다고 하더구나.”
창가의 햇살을 받으며 미소 짓는 위험한 사내.
“수고하셨습니다.”
뇌마 장이서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
사실 장이서는 칠소궁을 떠나오기 전부터 오늘의 상황을 예견했었다.
하여 독마와 대화를 마친 뒤 마음을 정하고, 묘채경을 따로 불러내 이야기를 전했었다.
‘부교주가 되어야겠습니다.’
‘드디어 정신을 차렸구나! 그래야지. 너 말고 감히 누가 할 수 있겠느냐. 오호호!’
‘그 전에 당주께서 해줘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 내 뭐든 하마. 뭐든!’
‘비룡당에서 명부 하나를 가져다주십시오.’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묘채경은 그의 말대로 길을 나섰다.
그리고.
“여기 있다. 네가 말한 명부. 고길상이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하마터면 들킬 뻔했다.”
그녀는 임무를 제대로 완수했다. 장이서는 흡족한 표정으로 서책을 받았다.
“한데 한낱 벌목꾼들의 출입 기록은 봐서 뭐 하려고.”
그렇다. 장이서가 가져오라고 한 건 다른 게 아닌 인부들의 기록이었다.
묘채경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
“찾을 사람이 있습니다.”
“하여튼 네놈의 속은 도통 모르겠구나. 이 와중에 나무꾼을 찾다니.”
원래 알려고 하면 더 답답한 게 장이서다. 묘채경은 머릿속에서 명부를 지우고선 물었다.
“그나저나 이제 어찌할 것이냐. 정녕 감당할 수 있겠느냐?”
“절 못 믿으시는 겁니까.”
“믿지! 믿으니까 이러고 있지. 안 그러고서야 내가 고길상이 그놈한테 그런 치욕을 당하고서 가만히 있었겠느냐? 뱃가죽을 뚫어도 시원찮을 마당에.”
“그럼 계속 믿으십시오.”
“이런, 씨.”
“이장로는 누구보다 신중한 자입니다. 제게 이미 한 번 당한 전례가 있으니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도 계속 불안해할 겁니다. 절 잡을 방법이 더 없는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겠지요.”
“그럼 더더욱 이리 한가하게 굴면 안 되는 것 아니냐? 네 말마따나 이장로는 더 많은 준비를 할 텐데. 더구나 일장로가 지지하는 바람에 너만 더 불리해졌다.”
“그렇겠죠.”
뭐 이리 당당한 것이야?
“설마 그 벌목꾼 명부랑 관련이 있는 것이냐?”
장이서는 대답 대신 옅은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당주께선 예정대로 이장로 주변을 계속 살펴주십시오.”
“끙. 아직도 나를 못 믿겠다 이것이구나.”
묘채경이 내심 서운함을 드러내곤, 나가려다 우뚝 멈춰 서선 말했다.
“하지만 잊지 말거라. 난 청해에서부터 네게 모든 걸 걸었다는 것을.”
끼이익.
그녀가 밖으로 나가고 문이 닫힌다. 장이서는 픽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젠 저도 믿습니다, 당주.”
하지만 이건 믿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함부로 꺼내선 안 될 계획이었다.
그가 잡으려는 건 단순한 벌목꾼이 아니었으니.
“당주 성질 많이 죽었네. 난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니까.”
바로 그때. 구석 그늘에서 걱정 가득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분명 이 안엔 묘채경과 장이서 단둘밖에 없었거늘.
비룡당주의 기감에도 잡히지 않을 만큼의 은신의 고수가 있다니.
한데 놀랍게도 그 모습이 실로 익숙했다.
새하얀 부리의 까마귀 가면을 쓰고 온통 흑색 가죽을 걸친 사내.
“소오.”
통칭 까마귀 청소부인 백오문의 소문주!
오랜만에 본업으로 돌아온 소오였다.
장이서를 사전에 도와주기로 한 건 묘채경 하나가 아니었던 것.
심지어.
“이 정도면 장형이 첩자인 걸 밝혀도 돕겠는데?”
장이서의 신분을 모두 알게 되었음에도 말이다.
“잊었나? 그 일은 무덤까지 묻고 가는 게 백오문과 나의 거래라는 걸.”
소오는 정보를 사고파는 장사꾼이자 흔적을 지워주는 청소부.
장이서는 그에게 모든 걸 밝히고, 도움을 청했다.
그 대가는 막대한 자본과 부교주가 되었을 때 백오문의 뒤를 봐주기로 한 것.
상생을 위한 거래였다.
“아, 죄송. 주의하겠습니다, 부교주님.”
더 가까워진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내가 부탁한 건?”
“아, 보냈어. 문제 없이 도착했다.”
소오가 픽 웃으며 협탁 앞에 마주 앉았다.
“아니, 근데 정말 장형 계획이 뭐야? 일장로한테 이장로를 도우라고 하지를 않나. 연명부가 생길 걸 뻔히 알면서도 방치하지를 않나. 부교주 될 생각이 있긴 한 거야?”
소오도 장이서의 말대로 움직이고는 있지만, 계획은 전혀 몰랐다.
당장 상황만 놓고 보면 부교주는커녕 그날 살아남을 수나 있을지도 의문이다.
벌써 천가 신월당은 물론이고, 마을 전체에 무사들이 가득 차 발 디딜 틈도 없다던데.
“받아.”
한데 장이서는 설명 대신 서책 한 권을 협탁에 놓았다.
묘채경이 주고 간 명부다.
“이건 벌목꾼 출입 기록이라며.”
그래, 맞다. 하지만 그 안에는 감히 상상 못 할 정보가 들어 있었다.
“무림맹 요원들이 소식을 어떻게 전하는지 아나?”
“흥미진진해. 어떻게 전하는데?”
“나무다.”
“응?”
천산에서 자유롭게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건 허가를 받은 자들과 비단길로 수출하는 흑목뿐.
요원들은 그 흑목에 암어를 남겨 바깥으로 소식을 전한다.
‘그리고 어제 내 소식도 분명 암각에 전해졌을 것이다.’
그렇다.
장이서가 내민 부교주 선거라는 위험천만한 도전장은 수뇌들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이제 당신은 어떻게든 날 없애려고 하겠지.’
암각의 주인, 제갈상.
오직 그를 위한 선전포고였다!
‘하지만 이번엔 내가 먼저야.’
장이서가 노린 건 완벽한 과거의 청산.
그리고 그 시작은.
비가 그친 다음 날 무리해서 흑목을 잘라 바깥으로 옮긴 자.
‘7급귀 강인수.’
벌목꾼으로 위장한 채 요원들의 소식을 전달하는 첩자 강인수였다.
“소오.”
장이서가 일어서며 말했다.
“지금부터 청소를 시작한다.”
* * *
장이서의 예상대로 마교에서 부교주를 선출한다는 소식은 하루 만에 암각까지 다다랐다.
“이, 이게 정녕 사실이란 말인가……!”
암각의 주인인 제갈상은 휘청거리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부교주 단일후보 뇌마 장이서】
특급으로 날아온 서신엔 분명히 그리 적혀 있었다.
가장 우려했던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 것.
‘이래서 반드시 103호를 제거했어야 하거늘…….’
신승과 맹주의 반대로 무산되어 버린 계획이 야속하기만 했다.
그라고 놓친 요원을 끝까지 쫓아가 죽이고 싶었겠는가.
아니다.
내내 마음이 쓰렸고, 미안했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본래도 교주의 신망을 얻어 부교주 얘기가 나오던 아이였다. 한데 청해에서 공까지 세워 돌아가게 되었으니…….’
정파에선 철천지원수가 마교에선 영웅이 되는 건 당연한 수순.
더구나 장이서는 천형인 구규지체의 해답까지 찾아낸 상태였다.
만일 그 아이가 정말 맹주의 예언대로 무신의 자리까지 오른다면…….
그거야말로 무림으로선 최악의 악재(惡材).
‘이대로 둬선 안 된다. 적어도 마교에서 더는 올라서게 둘 순 없다. 끌어내려야 한다. 반드시…….’
제갈상은 깊은 고심에 잠겼다. 그러곤 자리에서 일어나 벽의 일면을 조작했다.
구르르릉!
그러자 벽이 열리며 숫자가 적힌 다수의 서랍이 설치된 비밀 금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은 부각주인 제갈소미도 접근하지 못하는 금역.
바로 절대 세상에 나와선 안 될 요원들의 신원과 자필의 유서가 담긴 곳이었다.
한마디로 정체를 밝혀낼 결정적인 증거 말이다.
‘103호……. 살고 싶다면 차라리 멀리 떠나거라. 중원이 아닌 먼 곳으로.’
그날 장이서를 없앨 유일무이한 치명적인 암기가 천산을 향해 쏘아졌다.
바로 이곳 암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