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285)
첩자의 마교생활-285화(285/350)
285.
#누구일까?
벌목꾼 강인수는 올해로 예순여덟이 된 노부였다.
‘아이고, 오늘도 일 나가십니까?’
‘정해진 일은 미루는 게 아닐세.’
‘대단하십니다, 정말.’
‘감세.’
자그마한 마을에선 부지런하고 곧기로 명성이 자자했고, 혹 다툼이라도 생기면 그에게 중재를 청할 만큼 평판이 좋았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렇게 허망하게 죽어야 할 자는 아니었다.
“커헉…….”
목재가 쌓인 곳간에 강인수가 피를 토하며 기대앉았다.
두 다리를 베이고, 어깨에 단검이 박혔다. 하지만 고통보다 놀라운 건 제 앞에 다가오는 사내였다.
“7급귀 강인수. 맞나.”
“뇌……마…….”
뇌마 장이서. 아니, 103호가 사신처럼 제 앞에 나타났으니.
끼이이익!
까마귀들이 곳간의 문을 닫자 장이서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놀라지 않는 걸 보니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야.”
“뇌마께서 제게 왜…….”
“속일 거 없어. 요원인 거 알고 왔으니까.”
“……!”
강인수는 혼란스러웠다. 철저한 원칙주의자인 그는 여태 단 한 번도 뒤를 밟혀본 적이 없었기 때문.
한데 어떻게?!
“천산은 한 번 젖으면 마르는 데 시간이 다소 오래 걸리지. 그래서 비가 내리면 최소 이레 동안은 벌목을 하지 않는 게 상식. 한데도 어제 벌목에 나섰더군.”
“그건 단지 잡념이 많아 머리라도 식힐 겸…….”
툭. 강인수가 해명하려는 순간 그의 앞에 서책이 던져졌다.
출입 명부다.
“당신한테는 원칙이 있더군. 벌목에 나서는 날엔 작업자가 최소 열 명이 있어야 하고, 같은 지역은 연이어 가지 않아. 뒤를 밟히지 않기 위함이겠지.”
말이 흘러나올수록 강인수의 눈빛은 점점 생기를 잃어갔다. 하나 장이서는 아랑곳없이 이어갔다.
“하지만 원칙주의자인 당신이라도 어제는 별수 없었을 거야. 요주의 인물인 내가 부교주 선거에 나간다는 긴급 사태가 발생했으니.”
“…….”
“그래도 다행이야. 바깥으로 소식을 알리는 요원이 여럿이면 어쩌나 했는데. 움직인 게 당신밖에 없더군.”
당했다. 강인수는 그제야 자신이 장이서가 던진 미끼를 문 것임을 깨달았다.
“처음부터…… 날 노린 것이냐?”
어느새 눈빛은 차분해지고, 목소리는 서늘해졌다. 반면 장이서의 입꼬리는 반비례하듯 올라섰다.
“말은 바로 해야지. 너희가 날 노린 거다.”
강인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장이서는 자신을 몰랐겠지만, 자신은 그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소름이 끼쳤다.
지금의 눈빛은 소문 속의 뇌마보다도 더 차갑고, 잔혹하였으니.
“맹을 배신하겠다는 것이냐.”
“그것도 너희가 한 거고.”
“103호!”
“나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군. 그럼 다른 요원들의 정체도 알고 있겠어.”
“……!”
강인수의 눈이 시뻘겋게 충혈됐다. 위험하다. 상대는 암각 최고의 요원. 여기서 더 말려 들어가면 모두가 위험해질 수 있다.
강인수가 단숨에 품에서 환(丸)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미안하다, 소정아.”
그러곤 눈물 한 방울 없이 유언만 남기고 이를 삼켰다.
자결을 위한 극독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이렇게 허망하게 죽을 자는 아니다.
솨아아아!
장이서가 손을 뻗자 독 기운이 연기처럼 빠져나와 흡수된다.
“어, 어떻게…….”
“전소정. 이곳 객잔의 주인이 숨겨둔 딸이었나. 이 마을에 정착한 이유도 그래서였군.”
강인수의 얼굴이 새파란 사색으로 물들었다.
이놈은…… 악귀구나.
전 암각 최고의 요원 장이서.
과거 동료들을 향한 칼질이 시작됐다.
*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서야 장이서는 밖으로 나섰다.
밖에선 소오와 그의 수하들이 대기했다.
“정리해.”
짤막한 말에 소오가 안을 들여다보자 생각 외로 깔끔하게 죽어 있는 강인수의 모습이 보였다.
표정이 편안해 보이는 걸 봐선 갈 때만큼은 괜찮았던 모양.
“괜찮은 거야?”
한데도 소오는 장이서에게 안부를 물었다.
분명 해를 가한 건 그인데도 표정은 반대로 썩 좋지 않았기 때문.
어찌 괜찮을 수 있겠는가.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같은 신분의 요원이었거늘.
“괜찮다.”
하지만 장이서는 감상에 빠지지 않기로 했다. 그러기엔 지나온 길도. 앞으로 가야 할 길도 너무도 멀다.
백오문의 수하들이 청소에 들어가자 소오가 가까이 다가와 물었다.
“그래서. 알아냈어?”
장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12호.”
“12호?”
그렇다. 강인수는 천산의 첩자들은 모두 그에게서 임무를 받는다고 말했다.
자신 역시도 그에게서 처음 임무를 하달받았다.
한마디로 그가 이곳에서 요원들 대표하는 수장이라는 것.
강인수는 12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나도 그자의 진짜 정체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두 가지는 알고 있지. 하나는 쉽게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너다.’
‘뭐?’
‘네 가까이에 있는 자.’
‘……!’
‘내가 아는 건 여기까지다.’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12호가 제 주변에 있었다니.
그 순간 장이서는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39호. 아니, 강인수는 제 딸은 살려달라는 말을 끝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니까 대장이 있다는 거 아냐. 그놈만 잡으면 끝인 거고. 그게 누군데?”
소오가 눈을 부릅뜨고 묻는다. 그 덕에 상념에서 깨어난 장이서가 나직이 답했다.
“궁금해?”
“엄청. 알잖아. 나 궁금한 거 못 참는 거.”
“언제든 바깥과 쉽게 소통할 수 있는 불문객잔의 수장이자, 내 옆에 있는 백오문의 소문주.”
“뭐, 뭐야. 설마…… 나?!”
까마귀가 화들짝 놀라며 박제됐다. 장이서는 픽 웃으며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너겠냐.”
“아, 뭐야. 놀랐잖아! 아니, 그럼 누군데.”
“글쎄.”
“아니, 그것도 모르면서 저자를 그냥 보내준 거야?”
“물어봤자 나올 답이 아니니까.”
그리고 듣지 않아도 아직 잡을 방법이 하나 더 남았다.
“중원에선 제갈상의 뜻대로 다 할 수 있겠지만, 여긴 아니야. 첩자들이 전면에 나설 순 없지. 그럼 어떻게 할까.”
“그야…… 첩자를 앞세워 대타를 구하겠지. 대신 장형의 목을 쳐줄 수 있는 사람을.”
“지금 그게 누군데.”
“일장로가 뒷선으로 빠졌으니 당연히 남은 건 이장로밖에…… 설마!”
소오는 순간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장이서가 왜 일장로부터 찾아갔는지 이제야 이해가 됐기 때문.
암각이 이장로를 찾아갈 수밖에 없도록 판을 짜놓은 것이다.
“아니, 근데 지금 이장로가 만나는 사람이 한둘이겠어? 그걸 어떻게 일일이 다 확인해.”
그래. 그것도 맞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가지.”
장이서가 앞으로 나섰다.
속이 아릴 만큼 씁쓸함이 차오르고, 두 눈에선 어두운 밤하늘의 빛이 맺혔다.
하지만 돌아갈 길은 없다.
나아갈 길만 있을 뿐.
* * *
– 천가(千家) 신월당(神月堂).
해 질 무렵.
“끄응…….”
이장로 천오산은 속이 얹힌 것처럼 내내 표정이 좋지 못했다.
“왜 또 그러시는 거요.”
사공자는 이젠 저 걱정 섞인 숨소리만 들어도 속이 뒤집혔다.
장이서가 부교주 선거에 나선다고 선언한 지도 벌써 여드레.
이제는 누가 장이서가 부교주가 될 가능성을 묻는다면 눈곱만큼도 없다고 단언할 정도가 되었다.
그만큼 이장로는 철저하게 준비했다.
선거 당일 자신들을 위해 싸워줄 무사들은 셀 수 없이 많았고, 회심의 수도 여럿 준비했다.
더구나 장이서는 죽은 건지, 도망친 건지. 수뇌들을 설득하기는커녕 코빼기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덕분에 연명부에 서명한 자들만 팔 할 이상. 쉽게 말해 천오산의 결정이 곧 수뇌들의 결정이라는 얘기다.
“끄응…….”
한데도 불구하고 이장로는 만족하질 못했다.
“불안합니다. ”
“음…….”
“그놈 때문에 천가의 야망이 송두리째 무너졌습니다. 사공자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놈이 어떻게 대공자를 무너뜨렸는지.”
“해서 이만큼 준비를 한 것 아니오. 한데 뭐가 그리 불안하시오.”
“아직입니다. 아직이에요! 놈이 만일 나타나지 않거나, 혹 회당까지 무사히 도착하면. 그럼 그냥 부교주 위에서 떨어지고 끝 아닙니까. 또다시 활보하겠지요!”
“음…….”
“이미 교주님과 신도들의 신망을 얻은 놈입니다. 이번에 안 됐다고 다음에 또 되지 말란 법도 없지 않습니까. 이번에 확실히 죽여야 합니다. 빻고 빻아 대공자께서 봉문을 깨고 나오시는 날 문 앞에 뼛가루를 뿌려드릴 겁니다.”
마음은 잘 알겠다. 하지만 여기서 뭘 더 준비한단 말인가.
일전에도 첩자라는 명목으로 잡아넣었다가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미친개를 함부로 물었다간 도리어 골로 갈 수도 있는 일.
답답함에 한숨을 내쉬려는 찰나였다.
“사공자님, 손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나를?”
순간 사공자와 이장로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여기는 이장로의 집이거늘. 왜 남의 집에서 저를 찾는단 말인가.
한데 이어진 말에 두 사람은 더더욱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일전에 뇌마에 대해 제보해 주셨던 분이라고 하면 알 거라고 하셨습니다.”
“뭐……?”
“그리고 이번에는 빠져나갈 수 없는 더 확실한 증거가 있다고도 하였습니다.”
“당장!”
이장로 천오산이 눈에 불을 켜고 소리쳤다.
“당장 안으로 들이거라!”
그리고 잠시 후.
드르륵 문이 열리며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 * *
나무 한 그루 없이 확 트인 둥근 언덕.
장이서는 그곳 중앙에 놓인 작은 정자에 서서 사색에 잠겨 있었다.
‘12호…….’
머릿속을 가득 메운 인물은 단연 12호였다.
과거 고미산 중턱에 자리한 제집까지 찾아와 임무를 주고 간 자.
【칠공자를 소교주로 만들어라.】
그건 제 삶의 전환점과도 같았다.
그에 대한 악감정은 없었다.
오히려 고마웠다.
그 때문에 마오를 만났고, 쓸쓸한 삶에 고마운 인연으로 가득 채울 수 있게 되었으니.
사실 돌이켜보면 그가 누군지 유추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주변에 천산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얼마 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1급귀인 후계들.
마오와 맹휘. 그리고 삼공녀 사해령.
이들이 12호일 확률이 얼마나 될까.
우선 마오.
‘장이서. 너한테 임무를 준 게 사실 나다. 그러니까 얼른 나부터 소교주로 만들라 이 말이야. 알겠어?’
알겠냐. 씨알도 안 먹힐 소리.
그렇다면 맹휘는?
‘저기, 장 보좌. 이건 비밀인데……. 사실 나야. 12호…….’
됐다.
이제 남은 건 사해령.
‘그만 죽어줘야겠다, 103호.’
실력으로 보나, 요원들의 수장다운 무게감으로 보나. 또 지금까지 자신을 대가 없이 도와준 부분들을 고려해 본다면 가능성이 없진 않다.
더구나 칠소궁으로 들어가는 데 가장 큰 일조를 한 것도 그녀다.
‘하지만 아니야.’
왜냐하면 제게 임무를 전했던 복면인은 분명 여인이 아니라 사내였다.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그것만은 기억했다.
결국 제 주변의 후계 중에는 12호가 없다.
또한 소오는 바깥과 소통을 할 수는 있으나 나갈 수는 없으니 제외된다.
그럼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