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287)
첩자의 마교생활-287화(287/350)
287.
#이미 진 싸움
한편 살아 있는 권력 마차로 불리던 방첩대 본관은 속절없이 부서지고 있었다.
“크아아악!”
단 한 사람.
방첩대 삼조장 출신 장이서로 인해.
“마, 막아라……!”
막으라고는 했으나, 그게 얼마나 무력한 외침인지는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커윽!”
몇 명이 덤벼들든, 무슨 수를 쓰든.
아무도 그를 꺾을 수 없었으니.
그야말로 모두를 짓누르는 압도적인 무위.
소오는 뒤에서 지켜보며 생각했다.
이젠 정말 부교주라고 해도 이상할 게 하나 없겠노라고.
그렇게 본관은 순식간에 함락되었다.
그 과정에는 이들의 도움도 있었다.
“조장. 여기 있다.”
“수고했다, 흑거.”
흑거를 비롯한 삼조원들이었다.
오랜 세월 따랐던 그들의 충정엔 변함이 없었던 것.
장이서는 대주실 금고에서 흑거가 가져온 인명첩(人名牒)을 훑었다.
얼핏 보기엔 별거 아닌 기록이지만, 장이서는 이게 자신이 찾고자 했던 첩자들의 명단임을 금세 깨달았다.
활자를 조합해 암어를 만들면 절대 함께할 수 없는 두 사람의 이름도 끼어 있기 때문.
강인수. 그리고 바로 자신. 장이서다.
그러니 이 안에 있는 이름이 곧 천산에 숨은 요원들이다.
“32명이다. 찾아서 청소해.”
장이서는 이를 넘기며 말했다. 받아 든 소오는 당혹에 빠졌다.
“아니, 이걸 벌써 해독한 거야?”
기가 막힌 일. 하지만 이 정도에 놀라서 뭐 하겠는가. 존재 자체가 놀라운 녀석인데.
이번만 해도 그랬다.
정파에서 공들인 요원들을 아예 숨 쉴 틈도 없이 찢어발겨 놓지 않았는가.
‘장형을 적으로 돌릴 바에야 차라리 천산 뜨는 게 낫지.’
소오는 픽 웃고는 장이서를 뒤따라 나서면서 손가락을 탁! 튕겼다.
화르륵!
그러자 방첩대 본관이 어둠을 찢으며 불타오른다.
장이서는 생각했다.
이제 내일 아침이 되면 천산에 있는 모든 암각의 요원들도 저 불씨처럼 사라져 있으리라.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리고 이를 듣게 될 제갈상은 창자가 끊기는 단장의 고통을 느끼게 될 것이다.
장이서의 대승이었다.
*
반면 겸사익은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다.
“크윽! 피하십시오, 대주!”
“오호호! 하나도 놓치지 말거라!”
묘채경과 비룡당원들의 급습에 수하들이 하나둘 눈앞에서 무력하게 쓰러졌기 때문.
하나가 베일 때마다 손발이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었다.
‘본관이 당했다면 지금쯤 장이서의 손에 명단이 들어갔을 거다.’
다른 이라면 모를까, 미친개 장이서라면 분명히 찾아낼 거라고 확신했다.
이는 사실상 마교에 뿌리내린 암각이 완전히 박멸된 거라고 봐도 무방했다.
고작 미끼 하나를 물었을 뿐이거늘, 수십 년간 존립해 온 자신들의 성역이 완전히 무너진 것.
미친개 장이서.
그 하나 때문에!
‘각주……. 103호는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소.’
제갈상에 대한 원망이 뼛속까지 스민다. 하지만 그가 후회한들 무엇이 달라지랴. 어차피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하는 팔자이거늘.
지금 해야 할 건 어떻게든 이 자리를 벗어나 장이서의 폭주를 막아내는 것뿐이었다.
‘요원들을 지키기엔 늦었다. 이렇게 된 이상 장이서. 너만은 어떻게든 끌어내려야겠다. 경조사는 서로 챙겨주는 게 방첩대의 의리 아니겠느냐. 기다리거라. 곧 돌려줄 터이니.’
겸사익의 눈에 짙은 살광이 서린다. 그러곤 애병인 금삭도를 휘두르며 소리쳤다.
“뇌마가 나타났다-! 뇌마를 잡아라!”
“뭐? 미치기라도 한 것이냐. 뇌마가 여기 어디에…….”
묘채경이 코웃음을 치며 응하던 그 순간.
“뇌마가 나타났다고?!”
“뇌마가 나타났다-!”
삐이이이!
호각 소리와 함께 횃불을 든 무사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곳은 천가 신월당이 자리한 마을.
뇌마라는 말은 당장 집합하라는 천명과 다를 바가 없는 일.
“이런 영악한……!”
묘채경이 당혹에 빠진 사이, 겸사익은 당원 하나를 베어 넘기곤 비웃음과 함께 뒤쪽 인파 사이로 빠져나갔다.
“무사들이 몰려옵니다! 어찌할까요?”
그녀는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그러곤 찰나의 고민 끝에 답했다.
“젠장! 퇴각하거라.”
“예!”
파파팟!
몰려드는 무사들에 새처럼 지붕 위로 도주하는 당원들.
묘채경 역시 사라진 인파 사이를 바라보다 종적을 감추었다.
*
다음 날.
방첩대 본관에서 벌어진 화재는 대원의 실수로 조용히 마무리 지어졌다.
또한 30명이 넘는 신도들이 곳곳에서 의문사를 당하였다.
전원 암각의 요원들.
그들이 하루아침에 모조리 숙청당한 것이다.
뇌마 장이서로 인해.
한데도 그 얘기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이는 모두 묘채경과 소오의 합작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이들보다 사건을 은폐하고 조작하는 데 특화된 인재는 없었으니.
하지만 모든 게 순조롭기만 한 건 아니었다. 문제가 하나 남았다.
“겸 대주는 어찌할 것이냐.”
방첩대주 겸사익.
요원들의 수장인 그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
묘채경의 표정에 죄스러움이 담겼다.
사실 그녀는 겸사익을 왜 잡아야 하는지도 듣지 못했다. 하지만 장이서가 준 임무를 실패했다는 것에 진심으로 안절부절못했다.
그만큼 충심이 커졌다는 뜻.
“괜찮습니다.”
한데 장이서의 반응은 생각보다 덤덤했다.
“아니, 장형. 괜찮다고? 이게 괜찮을 일이야?”
오히려 어느새 가면을 벗고 와 있던 소오가 화들짝 놀라며 끼어들었다.
겸사익의 진짜 정체를 아는 그로서는 이해 불가한 태도.
그가 살아 있으면 어제까지 한 고생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 것 아닌가.
“솔직히 그냥 놔준 거 아니야? 코앞에서 놓친 거라며.”
소오의 눈빛이 묘채경을 콱! 찍었다.
“뭐?”
“아니, 처음부터 말이 돼야지. 당주가 우릴 돕는다는 게.”
“말 가려서 하거라. 객잔 주인 주제에.”
“충분히 잘 가렸는데? 그리고 그냥 객잔 아니고 불문객잔이오. 당주가 우리한테 죽자고 덤비던 게 뭐 하루 이틀이어야지.”
“근데 이놈이!”
사나워지는 분위기에 장이서가 담백하게 한 소리를 뱉었다.
“그만.”
그러자 놀랍게도 두 사람이 동시에 합죽이가 됐다.
이렇든, 저렇든 둘 다 장이서의 사람이 된 것만은 확실히 알겠다.
“적진이었다. 거기서 더 잡으려고 했다간 당주가 위험해졌을 거다. 그건 내가 바라지 않아.”
“자, 장이서…….”
묘채경은 불쑥 들어온 감동에 괜히 코끝이 찡했다. 반면 화 풀 곳을 잃은 소오는 짜증스레 말했다.
“젠장. 그럼 어떡해. 이대로 있을 순 없잖아! 외곽 쪽으로 사람이라도 풀어볼까?”
“아니.”
장이서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봤자 겸사익을 잡는 건 불가능했다.
본래도 귀신처럼 첩자를 찾아내는 자였고, 이제는 암각 요원들의 수장으로 밝혀진 바.
그런 자가 숨으려고 작정하면 사람 수백 명 풀어도 못 잡는다.
인피면구는 기본이고, 손꼽히는 은신술에, 천산에 모르는 비로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니.
무엇보다도.
“하긴, 지금 그 인간 신경 쓸 때는 아니지. 당장 내일이니까.”
소오가 상념을 깨웠다.
그렇다. 드디어 부교주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내일이면 장이서는 만인의 표적이 되고, 공습이 시작될 거다.
목숨이 위태로워진다는 얘기.
“당연히 계획은 있는 것이겠지?”
“물어 뭐 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장형인데. 방도가 있겠지.”
“하긴.”
투덕대던 묘채경과 소오가 이번엔 합심하며 웃는다.
분명 장이서는 다 계획이 있을 것이다.
언제는 안 그랬던가.
불가능을 가능케 만드는 게 바로 그 아닌가.
한데.
“계획 같은 건 없습니다.”
예상치도 못한 무책임한 발언이 뱉어졌다.
“그리고 두 사람 역할도 여기까지입니다.”
이게 뭔……. 묘채경과 소오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봐, 장형. 농담이지?”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더냐.”
장이서는 담담한 어조로 답했다.
“내일 전 회당에 가지 않을 겁니다.”
청천벽력이 튀어나왔다. 안 가겠다니! 그럼 부교주를 포기하겠다는 것인가?!
두 사람의 정신이 혼미해졌다.
여기에 장이서는 방점을 찍었다.
“미안하다. 처음부터 계획 같은 건 없었다.”
“장형……!”
“이 정도까지 모두가 이장로의 편에 설 줄은 몰랐네.”
“그게 말이 돼?!”
“돼. 이미 진 싸움이야. 다 끝났다.”
가차 없는 통보에 절로 숨이 턱 막혔다. 소오가 억울한 듯 물었다.
“여기가 어딘지 잊었어?”
마교. 강자는 지존이 되지만, 약자는 먹이가 되는 곳.
만일 내일 참석도 하지 않은 겁쟁이로 끝나버린다면, 이젠 그 누구도 장이서를 추앙하지 않을 것이다.
다음은 없다는 것이다.
“죽는 것보다는 낫겠지.”
한데도 장이서는 어울리지 않게 냉정했다.
“장형 진짜…….”
대체 이럴 거면 칠소궁하고 척은 왜 진 것인가. 어차피 부교주는 하지도 않을 거면서.
소오와 묘채경은 할 말이 태산처럼 가득했지만.
“도와준 건 어떤 식으로든 꼭 갚겠습니다. 그간 감사했습니다.”
장이서는 더 논할 가치도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으로 단절했다.
“이만 나가주시죠.”
“장형!”
“장이서!”
애타게 불러보지만, 그의 얼굴엔 단호함이 가득하다.
두 사람은 결국 오물거리는 입술을 꾹 다문 채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장이서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미안.’
실은 두 사람을 속였다. 내일 회당에 가지 않겠다는 말은 거짓말.
아직 천마와의 약조는 끝나지 않았다.
겸사익. 그를 잡아야만 끝이 난다. 그리고 대주는 분명 절 잡기 위해 내일 회당에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거기엔 수많은 마인이 진을 치고 있을 터.
한데 염치없이 어떻게 목숨 걸고 함께 싸워 달라 도움을 청하겠는가.
어불성설이다.
더구나 정파의 허물을 벗고, 마교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자 벌인 일.
그러니 이건 제가 감당해야 하는 일이었다.
상대가 백이든, 천이든.
이것이 제 과거를 털어낼 수 있는 일이라면 몇이든 상대해 주리라.
설령 그 끝이 실패로 돌아간다 할지라도.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나 혼자 간다.’
장이서의 눈빛에 지독히 어두운 흑광이 서렸다.
*
“하아…….”
“후…….”
한편 객잔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짙은 한숨이 뱉어졌다.
오늘따라 태양은 또 왜 이리 강렬한지. 인상이 절로 찌푸려진다.
“정신 나갔네.”
“미친놈.”
확실히 제정신은 아니다. 이제 와서 모든 걸 다 엎겠다니.
그래, 뭐 그럴 수 있다. 아니, 그거면 차라리 낫다. 하지만 이들이 화가 난 건 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저놈…… 내일 혼자 갈 생각인 거다.”
“그렇겠지. 아주 작정한 거요. 혼자 멋있는 척 다 하기로.”
그랬다.
묘채경도. 그리고 소오도.
이젠 그를 알아버린 것이다.
결코 포기는 없으며, 위험한 순간이 오면 남들은 뒤로한 채 늘 맨 앞에 서 있다는 것을.
그러니까 이번에도 마찬가지.
회당으로 혼자 죽으러 가겠다는 것이다.
“이제 어찌할 것이냐.”
“글쎄……. 일단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하지 않겠소?”
염병. 욕지거리가 불쑥 올라온다.
하나 어쩌겠는가.
이미 장이서에게 물들어 버린 것을.
“어디로 갈 것이냐.”
“칠소궁.”
“칠공자께서 마음이 많이 상하셨다던데?”
“그렇다고 죽게 놔두진 않을 거요. 그러는 당주는?”
“도와줄 자들을 찾아봐야지.”
두 사람이 서로 쳐다도 안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네. 그럼 이번엔 실수하지 말고 성공해서 봅시다.”
“흥, 너나 잘하거라. 객잔 주인 주제에.”
“거, 그냥 객잔 아니고 불문객잔이라니까.”
피식 웃는 묘채경. 이에 소오도 흘깃 안경 너머로 그녀를 보곤 따라 웃는다.
팟!
그러곤 두 사람의 신형이 빛살처럼 사라졌다.
장이서의 승리를 위해.
집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