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29)
첩자의 마교생활-29화(29/350)
29.
지대호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장이서의 몸에 구멍이 난 건 이미 인사기록을 통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네 단전이 정말 망가져 있더군. 그것도 구멍이 하나가 아니라 아홉 개라니. 보고도 믿기지 않았네.”
그 몸이 그 몸이었나. 장이서는 안도의 숨을 뱉고는 고개를 휙 돌렸다. 어느 쪽이든 그리 보이고 싶지 않은 몸이다. 뻔히 답 없는 얘기도 별로 하고 싶지 않고.
하나 지대호는 눈치 없이 계속해서 말을 꺼냈다.
“내공은 계속 새어나가 일정 이상 모이질 않고, 덕분에 정제하질 못하니 혈에는 불순물이 가득하지.”
알고 있다. 누가 그걸 모르겠는가. 자신의 몸이니 구규지체에 대해서라면 자다가도 줄줄 읊을 만큼 잘 알고 있었다.
“움직임만 봐선 이미 천하에 두각을 나타내고도 남을 수준이나, 몸이 따라주질 않으니 아무리 이치를 깨달아도 일류. 그 이상은 바라볼 수 없을 걸세.”
이 인간이 지금 놀리나. 발끈해서 한 소리를 퍼붓고 싶었지만, 지대호의 눈을 본 순간 놀리려는 의미가 아님을 깨달았다.
아쉬움.
그의 눈에서 아주 극심한 아쉬움이 느껴졌기 때문.
장이서가 노기를 가라앉히곤, 서늘하게 노려보며 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호룡당으로 오게.”
장이서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호룡당으로 오라니. 보좌인 자신더러 제 수하가 되라는 말인가. 황당무계한 제안이다. 하나 지대호는 진심인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화살에 맞은 건 아마도 습격을 당했기 때문이겠지. 아마 계속 그리될 걸세. 도살방은 마가의 위세를 힘입어 사냥을 멈추지 않을 테니.”
그게 지금 치안을 담당해야 할 호룡당주가 할 말인가. 장이서가 어처구니가 없는지 질책하듯 물었다.
“그러게, 일 안 하고 뭐 한 겁니까? 사씨 형제한테 사과받아 달랬지, 화살받이로 만들어 달랬습니까. 기껏 믿고 맡겼더니 고작 돌아오는 게 이겁니까?”
“그 사과. 내가 받아주겠네. 자네가 호룡당으로 온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그러니 오게. 내 사람이 되면 그 누구도 자넬 건드릴 수 없을 걸세.”
장이서가 눈매를 좁혔다. 그 말은 곧……. 칠공자 옆에 있기에 지켜줄 수 없다는 것인가. 아니면 칠공자가 자신을 지켜줄 능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인가.
무엇이든 역시나 썩 기분이 좋지 않다.
“왜요. 측은지심이라도 생긴 겁니까? 제 몸이 이래서?”
“아깝기 때문일세. 이두쌍마의 양유께선 자네를 최악이라 비평했지만, 양요께선 최고라 격찬했지. 나 역시 후자일세. 자네의 자질은 이렇게 썩히기엔 너무도 아깝네. 하지만 계속 칠소궁에 남는다면 그런 자네가 위험해질 걸세. 마가는 절대 자넬 놓치지 않을 테니.”
이 사람 진심이구나. 날 얼마나 봤다고. 헛웃음이 나왔다. 이상한 양반이라는 말은 익히 들었지만, 실제로 보니 더하다. 뭐든 물면 집착이 심하다더니. 물어도 하필 이 썩은 몸을 물 건 무엇인가.
“절 과대평가하시는군요.”
“당주가 되기 전까지 내가 했던 일이 무사들의 자질을 가리고, 업무에 배정했던 일일세. 나름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
“적성에 안 맞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럴지도. 하지만 자네에겐 나쁘지 않은 조건일 걸세. 적어도 지금 하는 일보단 훨씬 더 본교에 의미 있는 일을 하게 될 테니.”
의미 있는 일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 망나니 옆에서 칼춤 추는 것보단 인재를 발굴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래. 내가 진짜 마교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면 말이다.
장이서는 진심이라곤 일절 담기지 않은 어조로 툭 던지듯 말했다.
“제 몸을 치료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럼 생각해 보죠.”
이에 지대호는 온통 진심이라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열렬한 눈으로 답했다.
“찾아보겠네. 육장로 독산마의께 찾아가 답을 구해보겠네.”
“제 말이 어려우셨나 봅니다. 설령 화타가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이 몸은 고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니 포기하라는 말입니다.”
“설령 못 고친다고 해도. 자네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을 걸세. 자질 있는 아이들을 길러낼 수도 있을 것이고, 무공을 연구할 수도 있겠지. 무엇이든…….”
장이서가 고개를 젓는다.
“제가 바라는 건 딱 하납니다. 칠공자님이 소교주가 되는 것. 도살방과의 중재는 사양하겠습니다. 거긴 이제 제가 해결하죠.”
“자네……!”
장이서가 침상에서 일어나 옆에 고이 접혀 있는 상의와 완갑을 비롯한 제 소지품을 착장했다.
“걱정해주신 건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 이상의 간섭은 곤란합니다. 전 엄연히 칠공자님의 보좌이자 그분의 사람. 오늘 얘기는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따라 나오지 마십시오. 잠시 혼자 있고 싶습니다.”
포권을 취하고 밖으로 나서는 장이서. 이에 지대호는 깊게 숨을 삼키곤 뒤에다 말했다.
“언제든 생각이 바뀌면 얘기하게. 자네 자리는 항시 마련해 둘 테니.”
끼이이익.
장이서는 침묵으로 답한 뒤 밖으로 나섰다.
*
‘미안하지만, 내게 의미가 있는 일은 호룡당에 없어서 말입니다.’
장이서는 닫힌 문을 바라보곤 바깥으로 걸음을 나섰다.
지대호는 임시초소라고 말했지만, 나와서 본 광경은 임시라는 말을 붙이기엔 꽤 그럴싸했다.
높은 층고에 장인의 손길이 들어간 범의 인각. 그리고 웬만한 장원보다도 나은 규모.
물론 사용한 지가 오래된 탓인지 낡은 흔적과 모서리에 거미줄이 종종 눈에 띄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훌륭했다.
“예전엔 꽤 많은 자들이 상주했나 보군. 바닥이 유독 헐었어.”
가볍게 몸을 숙여 바닥을 쓸어보자 곳곳에 금이 서리고 꺼진 곳이 종종 보였다. 이는 오랫동안 수많은 이가 뛰어다니던 데에 주로 나타나는 현상.
“전쟁이 한창일 땐 이곳만큼 바쁜 곳도 없었을 테니.”
정파와 사파. 그리고 마교의 전쟁은 수백 년이 넘는 기나긴 무림의 역사였다. 아마 이곳 호룡당의 임시초소도 족히 백 년은 더 전에 지어졌을 터.
“나가는 길이라도 물어볼 걸 그랬나?”
아니, 근데 나오지 말랬다고 정말 안 나오는 건가?
장이서는 피식 웃고는 몸을 일으켜 정처 없이 복도를 걸었다. 생각보다도 훨씬 넓어 어느새 처음 왔던 곳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까지 도달했다.
그러다 거미줄이 가득한 낡은 문을 열어젖히자 주방으로 보이는 곳이 나타났다. 식기구 상태를 보건대 사용 안 한 지 여기도 수십 년 이상은 된 모양이다.
안을 둘러보자 밖으로 나가는 뒷문이 보인다. 장이서는 천천히 걸어가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엄청난 광경이 시야에 펼쳐졌다.
“저곳은……!”
낮은 언덕 위에 펼쳐진 거대하고도 웅장한 암벽. 그 가운데 박힌 오장(15m)쯤 되어 보이는 초대형 철문.
그리고 그 위 벽면에 먼발치서 봐도 훤히 보이는 커다랗게 인각된 글귀.
절벽 속의 동굴 천마전(天魔殿).
바로 이곳이었다. 천산의 중심이자 천하제일인 천마가 머무는 곳.
두근, 두근.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고독이 날뛰듯 심장이 벅찼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지금이야 평화의 시대가 열렸지만, 불과 19년 전만 하더라도 중원의 주적이자 천하를 벌벌 떨게 했던 자가 저 앞에 있다.
“마오와 같이 갔으면 좋았을걸.”
아쉬움에 입이 근질거렸다. 천마전 안을 보고 오는 것만으로도 첩자로서는 엄청난 성과. 한데 그 기회를 도살방 때문에 망쳤으니.
‘선물을 줬으니 답례를 해야지. 너희는 사과 한 번으로 끝날 기회를 놓쳤다. 기다려. 어떻게든 되갚아 줄 테니.’
장이서가 서늘한 기색을 드러냈다 거두었다. 어차피 기회는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 조급하게 생각할 것 없다.
이내 긍정적인 사고와 함께 다시 몸을 돌리려는 찰나였다.
“음?”
장이서가 걸음을 우뚝 세우곤, 다시 뒤로 몸을 돌렸다.
그러곤 휙 주저앉아 몸을 낮췄다. 멀찍이 무성하게 무릎까지 자라난 잡초밭 가운데 왠지 모르게 이끌리는 것이 하나 보인다.
‘우물?’
그렇다. 뚜껑이 덮인 채 수풀에 둘러싸인 우물이었다. 그것도 인근이 전부 수풀로 둘러싸인 묘하게 기시감이 느껴지는 우물.
장이서는 이끌리듯 다가가 드륵 뚜껑을 열었다.
먼지가 거품처럼 확 일어난다.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사용을 안 한 것인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이내 눈대중으로 속을 살피자 바짝 마른 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 깊지는 않다. 딱 봐도 그냥 수명을 다한 우물일 뿐.
관심을 둘 만한 요소는 단 하나도 없었다.
하나.
척. 장이서는 주변을 살피곤 망설임 없이 안으로 뛰어들었다.
이내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며 벽면을 손으로 짚었다. 하나씩, 하나씩. 그리고…….
‘이건……!’
경악에 빠졌다.
* * *
한편 앞서 천마전의 정문에 도착해 있던 마오는 한껏 위축된 채 연신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이유는 충분했다.
우선 늘 그를 좌절케 했던 이 푸르뎅뎅한 녀석. 죽을힘을 다해도 안 열리던 초대형 철문은 보기만 해도 현기증이 일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혼자 오신 겁니까.”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새하얀 술사 같은 복장에 수염 하나 없이 마귀처럼 허옇게 분칠을 한 자.
교주를 보필하고 천마전에 머물며 우사와 함께 최상위에 군림하는 1급귀.
광명좌사(光明左使) 백야.
바로 그 때문이었다.
“아니요. 혼잡니다. 아, 그러니까 예. 맞습니다, 혼자.”
마오는 최대한 기죽은 걸 숨기려고 허둥지둥 답했다. 그러곤 곁눈질로 광명좌사를 훑었다.
어째 시간이 그리 흘렀는데도 늙지 않고 용모가 중년의 모습 그대로인지. 그가 전전대의 마두라는 걸 감안하면 정말 마귀가 아닌가 의심까지 든다.
“기회는 한 번뿐입니다.”
광명좌사는 더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지 감정이 일절 느껴지지 않는 어투로 무심하게 답했다.
그러곤 기다란 흰 손톱만 보이는 헐렁한 소매로 문을 가리켰다.
“시작하시지요.”
왔으면 볼일이나 보고 가라는 뜻.
이에 마오 역시 고개를 끄덕이곤, 문 앞에 우뚝 섰다. 그러곤 고개를 끝까지 들어 올렸다. 어디 가서 체격으로 뒤지지 않는 게 마오이거늘. 이놈의 문은 커도 너무 크다.
“후…….”
길게 심호흡을 내뱉고 마오는 곰곰이 생각했다.
첫 번째 자격을 시험하는 천마전의 문.
자신을 제한 모든 후계들은 진작 이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처음 열었을 때 천마이신 아버지로부터 큰 선물과 숙제를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다음 조찬 때 숙제를 풀어가면 또다시 그에 상응하는 선물을 주었고, 그렇게 후계들은 비약적으로 강해졌다.
“나. 천재 마오만 빼고 말이지.”
하지만 이제 그것도 고리타분한 옛날얘기.
왜냐하면.
“난 비기를 깨달아버렸으니까.”
그의 거창하고도 광오한 발언에 뒤에 서 있던 광명좌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비기라니.
“다.”
마오는 비장한 표정으로 두 발을 어깨너비로 벌렸다.
“다.”
이내 좌수는 앞으로. 우수는 꽉 쥔 채 뒤로 빼냈다.
“익.”
그리고 비틀리듯 돌아가는 허리.
“궈어어어언-!”
우웅!
마오의 몸에서 엄청난 열기가 뿜어지고, 광명좌사의 눈썹도 더 크게 올라갔다.
그리고 그가 주먹을 내뻗는 순간.
콰아아앙-!
천마전의 문이 활짝 열렸다.
#천마 진우광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