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290)
첩자의 마교생활-290화(290/350)
290.
#극찬, 그다음
소림에서도 최상승으로 꼽히는 무공이자 천왕전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십대무공.
이들은 각각 난해하고 다양한 초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신묘한 강점을 꼭 하나씩 지니고 있었다.
연격을 이어갈수록 더욱 진기가 강해지는 항마백팔권(降魔百八拳).
권기를 일직선으로 발출해 원거리의 적도 즉살시키는 백보신권(百步神拳).
잔상을 남길 만큼 유연한 진기의 흐름과 쾌속을 가진 아라한신권(阿羅漢神拳).
타격 부위와 상관없는 곳을 터트리는 관음십삼장(觀音十三掌).
광범위에 충격을 주는 청룡출해(靑龍出海).
아무리 큰 상대도 붙잡아 돌려버리는 대금용조수(大擒龍爪手).
손끝에서 꽃 모양의 묵중한 기를 발출하는 연화불지(蓮花佛指).
곡선으로 휘어지는 법화지(法華指).
내리찍는 일각으로 한철도 찢어버리는 괴력의 여의신퇴(如意神腿).
각퇴술의 현묘한 정수가 담긴 무상각(無上脚).
신승은 이러한 강점이 되는 초식 외에도 각 무공을 구성하는 모든 초식을 신성시 생각했다.
마치 훼손되어선 안 될 선조의 위대한 유산처럼.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장이서는 이를 익힐 때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다른 초식들이 강점이 되는 초식들을 가로막는 느낌이다.’
무공이란 본디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것.
한데 십대무공은 마치 하나의 초식만이 진짜고 나머지는 억지로 끼워 맞춘 듯한 느낌이었다.
구성된 초식들은 걸림돌이 되고, 오히려 각 무공별 주요 초식들이 서로를 보완해 주는 느낌.
이건 오직 열 가지 무공을 전부 익힌 장이서만이 의심을 품을 수 있는 영역이기도 했다.
신승 앞에선 불경하다 생각할까 봐 차마 말하거나 시도해 볼 수 없었던 일.
하지만 이곳은 다행히 마교.
소림의 무공을 제멋대로 구성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곳.
하여 장이서는 누구도 알아챌 수 없게 잔가지들은 쳐내고 열 가지 무공의 주요 초식들만 분별없이 펼쳐보기로 했다.
『관음십삼장(觀音十三掌).』
굵직하게 내지른 일장에 묘리가 담기자 가격당한 마인의 몸에서 사방으로 장력이 발출했고.
“크악!”
덩달아 주변에 있던 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가격당하곤 정신을 잃었다.
하지만 그만큼 진기의 응용이 커서 이후의 동작에 틈이 생긴다.
“지금이다, 쳐라!”
그 순간 장이서의 머릿속에 다른 무공이 떠올랐다.
『아라한신권(阿羅漢神拳).』
물 흐르듯 일관되던 움직임에 갑자기 가속이 붙더니 수많은 잔상을 남기며 적의 빈틈을 갈겼다.
“컥!”
“피, 피해라!”
거리를 벌려도 소용없었다.
손이 닿지 않는다고 타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니.
『백보신권(百步神拳).』
쏘아진 권기가 그대로 상대를 덮쳤다.
꽈앙!
“버텨라!”
육중한 체구의 마인이 철갑을 두른 채 달려든다.
『여의신퇴(如意神腿).』
번쩍!
하나 벼락처럼 내려찍는 일각에 철갑이 갈린다.
이후에도 장이서는 십대무공의 정수만을 끝없이 펼쳐냈다.
끄아아아악!
그리고 어느 순간 함성보다 비명이 더 커지고, 완전한 무아경(無我境)에 빠져든 순간.
‘이건……!’
장이서는 한 가지 깨달음에 도달했다.
‘항마백팔권(降魔百八拳), 백보신권(百步神拳), 아라한신권(阿羅漢神拳), 관음십삼장(觀音十三掌), 청룡출해(靑龍出海), 대금용조수(大擒龍爪手), 연화불지(蓮花佛指), 법화지(法華指), 여의신퇴(如意神腿), 무상각(無上脚).’
모두 손과 발로 이루어진 열 가지의 무공이 어쩌면, 처음에는 하나였을지도 모른다는 것.
분명 각기 다른 무리와 움직임을 가졌지만, 그 안에서 실낱같은 한 줄기 황금빛 광망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스쳐 지날 수도 있겠으나 장이서는 이를 쫓았다.
그러자 어느 순간 석양이 깃든 바다가 펼쳐졌고, 그 위에 황금빛 물결이 용오름처럼 솟아올라 권무(拳舞)를 추었다.
문득 생각했다.
움직이는 건 바다일까, 아니면 저 태양일까.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는 바다가 움직이는 것도, 태양이 움직이는 것도 아닌.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없는 미지의 무공이 장이서의 육신을 통해 세상에 첫선을 보이려는 그때!
털썩.
“아…….”
누군가의 쓰러짐과 동시에 장이서가 무아경에서 깨어났다.
춘몽처럼 사라지는 황금빛 광망에 아쉬움이 가득해진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자 이해는 갔다.
함성도, 비명도 더는 없었다.
원탁에 앉아 있던 장로들은 일제히 기립했고, 뒤에서 지켜보던 신도들은 입을 벌린 채 침묵했다.
공터 위에 서 있는 건 오직 한 명뿐이었으니.
일천이백칠십팔 명(名).
전원 패(敗).
사망자 전무(全無).
기적이 벌어졌다.
장이서가 해낸 것이다.
그 누구도 죽이지 않고, 모두를 쓰러트렸다!
그리고.
“와아아아아아!”
먼발치에 몰려 있던 신도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전율이었다.
서열 1위 뇌마 장이서의 첫 행보가 모두의 심장을 깨운 것이다.
“장이서! 장이서!”
그의 이름을 연호했고, 그의 기세는 하늘마저 꿰뚫고 마해산 정상까지 날아올랐다.
‘후후, 역시 내 사제로구나.’
새로운 마(魔)의 전설이었다.
*
한편 원탁의 장로들 사이에선 한동안 침묵이 길게 이어졌다.
수많은 감정이 뒤섞였지만, 그중 가장 큰 건 아쉬움이었다.
‘대체 뭐였지?’
얼핏 소림의 무공 같아 보이기도 했으나 그만한 정대함은 없었고, 또 눈에 익은 듯하면서도 전혀 예측이 되지 않아 가늠이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말미에 장이서의 전신이 황금빛으로 휘감겼고, 그 안에서 감히 재단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이 느껴졌었다.
잔뜩 긴장한 채 눈을 부릅뜨고 목도하려는 순간!
싸움이 끝나버렸다.
마치 부친의 유언을 ‘내 모든 재산은…….’ 까지만 듣고 말아버린 기분.
하지만 하나만은 분명했다.
‘힘을 숨기고 있었구나.’
장로들 손바닥엔 식은땀이 서렸고, 가슴엔 투기가 용암처럼 끓어올랐다는 것.
“대단하군.”
결국 인정이 빠른 삼장로 맹철용이 먼저 입을 열었다.
놀라움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과거 구룡성에서 봤던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성장했던 탓.
이 정도라면 부교주에 대한 찬반을 떠나서 무인으로서 충분히 존경받을 만한 실력이다.
“에잉! 독공만 썼어도 금방이었을 것을! 끌끌끌.”
마의는 어깨가 잔뜩 솟은 채 껄껄 웃었고, 지금껏 침묵하던 일장로 마일성도 이제야 말할 수 있다는 듯 시원하게 입을 열었다.
“후후, 천마전에서 아무에게나 서열 1위를 내어주진 않는 법이지.”
그야말로 최고의 극찬.
반면 이장로의 얼굴은 제대로 구겨졌다.
“지금 제정신이시오?”
그게 애송이한테 서열 1위 뺏기고 할 말인가? 그게 뭐 자랑이라고!
“방심하지 말라고 하는 말일세. 이리 일을 크게 벌여놓고도 뇌마를 꺾지 못한다면, 자네 체면이 말이 아니지 않겠는가. 뭐, 덕분에 좋은 구경했네.”
“큭!”
이장로가 파르르 떨며 다시 전방을 살폈다.
장이서! 장이서!
신도들이 외쳐대는 연호에 피가 거꾸로 솟는다. 아둔하고 멍청한 것들.
“제법이구나……. 하지만 내가 준비한 건 이게 다가 아니다!”
이빨을 꽉 물곤 읊조렸다. 하지만 그냥 한 말은 아니었다.
외문 밖에 있던 건 기껏해야 무장지졸(無將之卒 – 장수가 없는 졸개 무리)뿐.
진짜는 그다음부터.
외문을 넘어서면 그 수는 적으나 고도로 훈련된 자들만이 남겨져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거수권만 포기하면 제가 직접 상대해도 상관없겠지요.”
장로들 사이에서 한 사내가 의미심장한 말을 뱉으며 앞으로 나섰다.
은빛 관을 머리에 인 중년인.
목엔 하얀 여우 털이 둘려 있고, 기다란 검은 장포는 황금빛으로 문양이 수놓아져 있다.
준수한 용모이나 어딘지 모르게 패도적이며, 위험해 보이는 모습.
“사장로.”
최근까지 인근의 대규모 마적단을 혈혈단신으로 궤멸하고 복귀한 사장로 몽유다.
그가 직접 장이서를 상대하겠다며 선전포고에 나선 것.
“장로가 나서다니! 그런 법이 어디 있는가!”
이에 마의는 발끈했고, 일장로 마일성도 침음을 뱉었다.
비록 사장로에 올라 있으나 실력으로만 놓고 보면 이장로와 삼장로보다도 위!
바로 구 공식 서열 3위 백귀신마(白鬼神魔) 몽유였으니 말이다.
“불만이 있으면 같이 나오시든지요.”
“허!”
거수권 버리고 나와 장이서 옆에 서라는 얘기다. 그야말로 선 넘는 자신감.
하지만 본래 그의 역할이 대체로 그랬다.
신교에 방해가 되는 세력이 나타나면, 압도적인 힘으로 현격한 차이를 느끼게 해주는 파괴자.
그것이 바로 사장로 몽유였다.
그만큼 누구보다 호전적이고, 패도적이라는 얘기.
“나오라면 못 나갈 줄 아는가!”
쾅! 하나 상대는 마의 사마균. 그가 뱀 지팡이를 내리찍으며 벌떡 일어섰다.
한데 그 순간.
슥. 일장로가 넌지시 팔을 붙잡고 고개를 저었다.
‘그냥 두게.’
‘어째서!’
그리고 머뭇거리는 사이, 사장로 몽유는 코웃음을 치더니 팟! 그대로 자릴 박차고 사라졌다.
“이런……!”
대체 왜 말린 것인지. 의구심을 담아 마일성을 쳐다보자 그는 그저 먼발치를 바라볼 뿐이었다.
*
끼이이익!
울려 퍼지던 연호 사이로 거대한 외문이 열렸다.
그리고 눈빛이 한층 더 갈무리된 마인들이 양 갈래로 쏟아져 나왔다.
‘저자들은…….’
딱 봐도 알겠다.
주변에 쓰러진 자들이 소속 없는 졸개들이라면, 지금 나온 이들은 각기 무력 단체에 소속된 마교의 정식 무사들이다.
확실히 눈빛부터 다른 자들.
가볍게 상대할 수 있는 자들이 결코 아니다.
더구나 진짜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후후, 자네가 뇌마인가.”
말미에 군계일학처럼 나타난 중년인.
“사장로?!”
“날 알아보는군.”
왜 모르겠는가. 목에 두른 여우 털만 봐도 알겠다. 공식 서열 3위 백귀신마 몽유.
천마를 비롯해 정도인들 사이에서 가장 기피하고 싶은 마교인 셋을 꼽으라면 반드시 들어가는 게 바로 그다. 그만큼 위험한 인물.
생각지도 못한 거대한 벽이 나타났다.
“조금 전엔 몹시 인상 깊었다.”
“어련히 찾아가 주겠다는데. 마중까지 나온 걸 보니 성미가 급한 모양이야.”
고오오오오!
툭 받아 친 말에 몽유의 몸에서 지독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크크큭.”
그러곤 흥미롭다는 웃음을 흘렸다. 이에 주변에서 눈치를 살피던 무사 하나가 외치고 나섰다.
“감히 어디서 함부로 입을 놀리는가! 사장로께 예를 갖추……!”
쐐애애액, 척!
하나 무사는 끝까지 말을 뱉진 못했다.
쳐다도 안 보고 옆으로 뻗은 몽유의 손에 끌려와 턱이 붙잡혔기 때문.
그가 한 손은 뒷짐 진 채,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곤 겁에 질린 무사를 무심히 보며 물었다.
“누가 나서라 했느냐.”
“끄아아아악!”
빠가가각! 그리고 무자비한 분골음과 함께 무사는 왔던 방향으로 날아가 철퍼덕 쓰러졌다.
빠르다. 턱을 잡은 손을 거두고 땅이 발에 닿기도 전에 수십 번을 가격했다.
그리고 쓰러진 자는 사지가 다 부서져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장이서는 이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분근착골수(分筋錯骨手)의 고수답구나.’
본래도 요주의 인물인 만큼 몽유에 대해서라면 빠삭했다.
경신술과 수공(手功). 그리고 지공(指功)의 대가이며 그가 익힌 무공만 여든 가지가 넘는다고 하였다.
손가락 하나의 힘이 장정 너덧을 들어 올릴 만큼 강하고, 스치기만 해도 죽는다 하여 찰과살(擦過殺)이라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이장로처럼 허세가 있는 자도, 일장로처럼 노련한 정치의 고수도 아니다. 이자는 마(魔). 그 자체다.’
장이서는 직감했다.
그의 두 눈은 남의 시선이나 계산 같은 건 일절 존재 하지 않는 마귀 그 자체라고.
수틀리면 누구든 해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자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