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291)
첩자의 마교생활-291화(291/350)
291.
#장이서의 뒷배
“크큭. 내가 없는 사이 본교의 기강이 많이 해이해졌나 보군. 주제도 모르고 저리 함부로 나대는 걸 보면.”
사장로 몽유는 흔한 악인의 대사를 읊었다. 그 대상이 내가 아니라 제 수하여서 그렇지.
“대신 사과하지.”
도통 알 수가 없는 성미. 딱 봐도 내게 악의가 있는 건 아닌 듯하고.
“이럴 거면 왜 나온 거지. 주목받는 게 취미인가?”
“그럴 리가.”
몽유가 못마땅한 듯 주변을 쓸 듯이 훑었다.
바닥에 쓰러져 꿈틀대는 벌레들.
먼발치에 숨어 기웃거리는 벌레들.
그의 눈엔 온통 벌레투성이다.
하지만.
“이장로한테 빚이 하나 있거든.”
역시 이유가 그거였나.
“원래는 죽이려고 했는데……. 여기서 보내기엔 아깝군. 가만히만 있으면 살려는 주겠다.”
“고맙다고 인사라도 해야 하나?”
“괜한 오기 부리지 말거라. 넌 내게 인정받을 자격이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
몽유가 피식 웃으며 하늘로 고갯짓했다.
어느덧 해가 중천이다.
둥! 둥! 둥! 둥!
북소리도 아까보다 빨라졌다. 그 말은 곧 약속 시간인 정오가 머지않았다는 얘기.
“내가 멈출 것 같아?”
“살려면 그래야겠지.”
몽유가 뒷짐을 진 채 음산하게 웃었다.
솨아아아아!
그러자 엄청난 기백이 좌중을 압도했다.
‘강하다.’
그것도 그냥 강한 것이 아니라 만나 본 자들 중 손꼽힐 만큼 강하다. 짐작건대 최소 적아린과 동수.
마치 중간도 없이 최종 흑막이 나타난 기분이었다.
심지어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저벅, 저벅.
또다시 안쪽에서 범상치 않은 인물들이 걸어 나오기 시작한 것.
신도들 사이에선 그들을 알아보고 경악이 터졌다.
“아니, 저자들은?!”
“……백설검(白雪劍), 흉살귀마(凶殺鬼魔), 오검창귀(五劍槍鬼), 비문살수(飛門殺手)! 천가의 귀객들이 나타났다!”
그 수는 스물 남짓에 불과하나 모두가 일백마성에 이름을 올린 진짜배기 고수들이었다.
“음…….”
장이서도 설마 중간에 이렇게까지 몰려 나올 줄은 생각 못 했는지 짙은 침음을 뱉었다.
앞서 너무 몰입한 나머지 시간을 허비한 게 자충수로 돌아왔다.
“포기하거라. 네가 강하다는 건 알겠으나 부교주 자리는 혼자의 힘으로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사장로 몽유는 단언했다. 정치 따위는 모른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 장이서는 너무 어렸다. 단순히 나이가 적다는 꼰대 같은 생각이 아니다.
깊이. 천산에서 그의 뿌리가 영향을 미치기엔 너무 얕다고 생각했다.
반면 이장로는 말할 것도 없이 깊었고.
그러니.
“여기까지다.”
몽유의 입꼬리가 올라섰다.
*
한편 이를 지켜보던 중책들도 급변한 상황에 탄식을 토했다.
구름 위 마해산 정상에서는.
“아쉽게도 이번엔 장이서도 별수 없겠군.”
“청해에서 큰 공을 세운 건 맞으나, 아직 수뇌들 마음을 돌리기엔 부족했겠지.”
좌사 백야와 우사 흑야가 비관적인 평을 내놓았다.
이 먼 곳에서 회당이 보인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지만, 그들은 극마의 고수.
두 번 보고, 세 번 봐도 장이서가 타개할 가능성은 전무했다.
회당의 장로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인상 깊긴 했으나 무장지졸들과는 차원이 다른 일. 여기까지로군.”
삼장로 맹철용부터 오장로 광교. 그리고 칠장로 이두쌍마가 동시에 고개를 주억였다.
이장로 천오산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이 순간을 만끽했다.
‘혼자인 네놈이 뭘 할 수 있단 말이냐. 감히 누구에게 도전장을 내민 것인지 느끼게 해주마.’
반면 마의는 진작 나가지 못한 스스로를 원망하며 울분에 찬 일갈을 뱉었다.
“이놈들아! 정녕 부끄럽지도 않은 것이냐!”
물론 그딴 양심은 없다. 마교는 강한 자만 강한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도 강한 것이니.
그렇게 낙담하며 싸움은 끝났다고 단정했다.
딱 두 사람만을 제하고서.
“성급히 생각지 말게.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니.”
하나는 노련한 미소를 짓는 일장로 북명마군 마일성!
그리고 남은 하나는…….
“후후, 정말 그리 생각하느냐.”
마해산 정상에 선 천마 진우광!
바로 그들이었다.
두 사람은 생각이 달랐다.
왜냐하면.
‘상황은 중요하지 않다. 이루고자 한다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역천의 자질을 품은 내 사제이니까.’
‘내 자식이 멍청하긴 해도 의리가 없는 녀석은 아니지.’
두 사람에게는 보였기 때문이다.
머나먼 곳에서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달려올 그들의 모습이.
천오산은 알았어야 했다.
대공자가 왜 무릎을 꿇었는지.
그건 장이서를 혼자라고 섣불리 예단했기 때문이었다.
감히.
아주 감히 말이다.
두두두두!
대지가 진동하고.
“음?!”
고오오오!
저 멀리서 해일처럼 솟아오른 먼지폭풍에 모두의 눈이 부릅떠진다.
누가 그를 혼자라고 했던가.
천만에.
“장이서 건드리는 새끼는 다 뒈지는 거다-!”
파아앗!
거대한 도 한 자루를 손에 들고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져 내리는 미공자.
“설마……!”
그들이 왔다.
장이서의 영원한 뒷배.
칠공자 마오와 그를 지키는 수신호위.
폐관을 마친 구유와 칠무위다!
마침내 그들이 당도했다.
콰아아앙!
사장로의 눈앞에 대지가 분열하고 불꽃이 튀어 올랐다.
“큭!”
갑작스러운 열기에 주춤거리며 물러서는 몽유.
마오오오오오-!
이어 천지를 울리는 함성이 빗발치며 일백의 건장한 무사들이 달려든다.
압도적인 기백에 천가의 무사들은 우왕좌왕 혼비백산에 빠졌다.
그리고.
“칠공자님…….”
“그러고 혼자 가니까 좋냐?”
마오와 장이서.
두 사람이 다시 만났다.
그리고 이 중에서 누구보다도 가장 놀란 건 장이서였다.
사실 혼자였던 건 이번뿐만은 아니었다.
사천지부에서 천라지망이 펼쳐지고 설보산 정상으로 향할 때도 홀로 수많은 습격을 견뎌야 했다.
하지만 그때는 혼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단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다.
정상에 도달하면 마오가 분명 저에게 와줄 테니까.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마오는 오지 않는다.
아니, 올 이유가 없다.
그렇게 확신했다.
왜냐하면.
‘분명히 이젠 알고 있을 텐데? 내가 첩자라는 걸…….’
그랬다. 장이서는 알고 있었다.
사실 소오와 묘채경에겐 거짓말한 것이 하나 더 있었다.
겸사익은 놓친 게 아니었다.
일부러 놔준 거였다.
애초에 이장로의 앞마당에서 그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묘 당주가 실수한 게 아니라 그가 도망칠 수 있도록 설계한 작전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가 어디로 갔을지도 당연히 예상 범위 안에 있었다.
암각의 목표는 절 부교주에 오르지 못하도록 어떻게든 막아내는 것.
혼자 남은 그가 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쉬운 게 무엇이겠는가.
이간책(離間策).
저와 마오의 사이를 갈라놓는 것이다.
하여 칠소궁으로 가 저에 대한 모든 걸 밝혔을 거다.
그러니 마오는 오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데 왜…….
“미친 겁니까?”
“야, 이 씨! 미친 건 너고! 여기가 어디라고 혼자 와?”
“그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왜…….”
“왜기는. 헹! 그렇게 가놓고 누구 좋으라고 부교주를 허락해? 절대 허락 안 해!”
“그럼 더 오질 말았어야지!”
“그러니까!”
뭐라는 거야, 이 미친놈이.
심지어 뒤를 돌아보자 반가운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못 본 사이에 일을 더 크게 벌였군. 너답다.”
“형님, 이게 뭐요. 무덤에서 나오자마자 숨도 안 쉬고 달려왔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구유, 과평, 아신.
“장 보좌. 늦게 와서 미안해.”
“괜찮으신가요?”
맹휘와 홍란.
“주군, 저희 왔습니다!”
“장형. 이거 다 내 덕인 거 알지?”
그리고 만광과 소오.
“장이서-! 장이서-! 거기 더 세게 흔들란 말이다!”
먼발치서 뇌마가 적힌 깃발을 흔들며 연호를 선동하는 용태와 메기 식구들.
도대체 왜.
울컥해서 목이 콱 막힌다.
“……겸사익 얘기. 못 들은 겁니까?”
“들었지.”
마오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 녀석의 또 다른 이름은 103호.’
‘어……?’
‘진짜 정체는 14년 전 무림맹에서 온 첩자이지요. 알고 계셨습니까?’
분명히 들었다.
장이서는 첩자라고.
“근데 왜……?”
“흐음.”
마오는 콧김을 길게 뿜고는 팔짱을 끼며 회상했다.
*
*
*
“그는 14년 전 천산에 왔고, 칠공자님을 소교주로 만들라는 임무를 받은 자입니다.”
“장이서가 나를……?”
“처음부터 이상하지 않으셨습니까. 미래도, 가진 것도 없던 칠공자님께 갑자기 나타난 것이요.”
“그건 내가 천재라서……!”
“잘 생각해 보십시오. 이상한 점 없었습니까?”
이상한 점 같은 건……! 있었다. 아니, 생각해 보면 너무 많았다.
제게 올 이유가 없는데도 찾아왔고, 떠나라는데도 남아 있었다.
청해에선 신승을 구해주었고, 쳐들어온 원담은 살려주었다. 아무리 소문이 이상하게 나도 해명조차 하지 않았다.
심지어 능가경은 보란 듯이 태워버렸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그냥 모든 게 이상했다.
“장이서는 첩자가 확실합니다.”
마오의 두 눈이 흔들린다. 겸사익은 확신에 찬 듯이 말했다.
“또한 지금 그 녀석이 부교주가 되려는 이유는 무림맹에서 버림받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는 마오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진짜야?”
“예?”
“방금 한 말 진짜냐고. 버림받았다는 말.”
“예, 근데 그게 중요한 건 아닙니다. 놈이 지금까지 칠공자님을 속였다는 게…….”
“흐흐흐흐.”
그때부터였다. 마오의 입에서 귀신 같은 웃음이 새 나오기 시작한 것이.
“그러니까 장이서가 부교주 하러 떠난 건 나 때문이 아니라는 거네. 흐흐흐.”
“제 말 제대로 알아들으신 겁니까? 첩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첩자.”
“그딴 건 난 모르겠고!”
“예? 그걸 모르면 어찌…….”
“내가 진짜 생각 많이 했거든? 다들 나랑 있으면 장이서가 아깝다잖아. 그래서 난 걔도 이제 내가 쓸모없어져서 떠난 줄 알았지.”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근데 아니었던 거네. 어쩔 수가 없었던 거네, 그 녀석도.”
이게 뭔…….
“그러니까 장이서가 날 배신한 건 아니었던 거야. 우하하하! 맞지?!”
“배신자를 첩자라고 부르는 겁니다! 그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십니까?”
“뭐, 이 자식아?”
화르륵! 그 순간 마오의 몸에서 짙은 화염이 뿜어졌다.
“크윽?!”
겸사익은 지독한 열기에 당황하며 뒤로 물러섰다.
“생각하니까 열받네. 너 할 일이 그렇게 없어?”
“아니, 이게 제 할 일입니다만…….”
“닥쳐! 예전에 장이서 이 집에 처음 왔을 때. 너 그때 나한테 뭐라 그랬어. 한번 식구는 영원한 내 식구라고. 그래서 살 집 정도는 봐 둬야 하는 거라고. 그랬어, 안 그랬어.”
그렇게 말을 하긴 했었다.
“근데 그건 갑자기 왜…….”
“왜? 왜애애애?! 그게 식구가 할 소리냐, 이 새끼야-?!”
“크학!”
빠악! 마오의 불 주먹이 눈두덩이를 갈겼다. 와당탕 나가떨어지는 겸사익. 이 미친놈이……?!
“너. 당장 내 앞에서 꺼져. 그리고 똑바로 기억해. 장이서 네 식구 아니고 내 식구야. 그리고 난 내 혈육 건드리는 새끼는 가만 안 둔다. 알겠어?”
“아니, 첩자라는데 뭐 이딴…….”
“염화표풍-!”
“으아아악!”
화르르륵!
그날 칠소궁은 화려한 불꽃이 되었다.
*
*
*
“그렇게 된 거다, 장이서.”
회상을 끝낸 마오가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하셨습니다.”
“됐고! 장이서, 네가 어디서 뭘 하든 이제 상관없어. 원한다면 해. 부교주.”
“왜 갑자기……?”
“대신 이거 하나만 기억해. 칠소궁이 곧 네 집이라는 거.”
내 집은 칠소궁…….
대체 그 말이 뭐라고 이리 속을 울리는가.
장이서는 마오를 비롯해 절 위해 달려와 준 식구들을 넋 놓고 살폈다.
모두가 활짝 웃으며 절 바라본다.
“그러니까 갔다 와. 가서 너 할 거 다 하고 와. 집은 우리가 지키고 있을 테니까. 물론 너무 늦게 오지는 말고. 우하하하!”
마오의 웃음에 모두가 따라 웃는다.
빌어먹을.
정말 끝까지 빌어먹을이다.
“……오래 안 걸릴 겁니다.”
“그럼 더 좋고! 지금까지 솔직히 우리 챙긴다고 고생 많이 했잖아. 이번엔 우리가 네 뒷바라지 제대로 해줄게.”
스릉! 마오가 창룡도를 뽑아 들곤 사장로를 가리켰다.
“그러니까.”
이내 모두의 눈빛이 바뀌고, 서서히 공기가 가열된다.
“장이서 막는 새끼들…….”
마오가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우렁차게 외쳤다.
“싹 다 조져-!”
마오오오오오!
해일처럼 앞으로 쏘아져 나가는 칠소궁!
“막아라!”
사장로 몽유와 천가의 식객들도 이에 맞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이서 가라-!”
『염화진천룡(炎火振天龍)』
콰아아아아아-!
거대한 화룡이 마침내 길을 열었다!
다시 출발이다.
회당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