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292)
첩자의 마교생활-292화(292/350)
292.
#마지막 비수
바다처럼 드넓은 강, 어해.
사방이 수평선밖에 보이지 않는 한 가운데에 두 개의 배가 나란히 붙어 섰다.
한쪽의 주인은 죽립을 눌러 쓴 곱슬머리의 중년 사내.
“오랜만이오.”
방첩대주 겸사익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직접 나오실 줄은 몰랐네요, 12호.”
청초한 음색. 멱리로 가렸으나 가려지지 않는 아름다움.
무림맹 암각의 부각주.
제갈소미였다.
“끌끌. 못 본 새에 더 예뻐지셨군.”
“12호께선 눈이 왜 그러죠?”
“크흠!”
눈두덩이가 시퍼렇게 멍 든 겸사익이 직접 어해로 나와 무림맹과 접선한 것이다.
장이서를 끌어내릴 마지막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원래라면 이렇게 대놓고 나오지도 못할뿐더러, 자신이 아닌 다른 이를 보냈겠지만. 아쉽게도 그럴 상황이 아니다.
“각주께선 잘 계시오?”
으레 한 말이지만, 제갈소미는 제 조부에 대해 거론하고 싶지 않은지 곧장 용건을 꺼냈다.
“……왜 불렀는지는 알고 계시겠죠.”
“알다마다. 103호 때문 아니오.”
“맞아요.”
제갈소미가 품에서 무림맹을 상징하는 청룡의 문양이 담긴 봉서(封書)를 꺼냈다.
여덟 겹으로 접힌 부분마다 맹의 인장이 찍혀 있고, 실로 교묘하게 꿰매진 것이 영락없는 무림맹이 발행한 진품이다.
“그 안에 103호의 신원을 밝힐 내용이 들어 있어요.”
겸사익의 입꼬리가 올라선다.
“알고 있소. 암각의 요원들이라면 모두가 기억하지. 떠나기 전 수장을 찍어 유서와 함께 자신의 마지막 기록을 남기고 떠나오니까.”
요원들 사이에서는 이를 두고 생존록(生存錄)이라고 불렀다.
자신이 이 땅에 살아 있었음을 남긴다는 의미.
그리고 저 봉서에 든 것이 바로 장이서의 생존록이다.
그를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는 확실한 증거!
“실수 없이 해주세요. 단 하나뿐인 원본이니.”
“걱정 마시오.”
겸사익이 이를 받아내려 하자 제갈소미가 대뜸 다시 거둬들이곤 똑바로 마주 보며 말했다.
“확실한 순간에만 써 달라는 얘기입니다.”
“흠…….”
겸사익도 그녀를 마주 보곤 보다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생각이오. 마침 좋은 자리가 마련되어 있으니. 103호가 부교주가 되는 일은 결단코 없게 하겠소.”
“부탁드리죠.”
그녀가 마침내 장이서의 생존록을 넘겼다.
이를 손에 든 겸사익은 포권을 취한 뒤 품에 넣고 다시 제 배에 올랐다.
그리고 서서히 떠나가는 그를 보며 제갈소미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103호…… 죄송해요.”
마침내 장이서의 심장을 터트릴 마지막 비수가 회당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 * *
– 천산 장로회당.
“크아아아악!”
비명이 비산한다. 그야말로 난장판.
칠소궁의 난입은 생각보다 훨씬 더 타격이 컸고, 판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쳐라!”
특히 칠무위는 강했다.
한 명 한 명이 일당백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만큼 강력해져서 돌아왔다.
내공이 있는 것도 아닌데 순간의 돌진력은 폭발적이었고, 빠질 때는 바람처럼 유연했다.
만마분총에서 익혀 온 오체풍신술(五體風身術)이 그들의 움직임에 날개를 달아준 것.
그들뿐만 아니라 칠소궁의 식솔들도 범상치가 않았다.
홍란은 백발의 마녀가 되어 무사들을 쓸어 나갔고, 맹휘는 단창을 내지르며 적진을 누볐다.
지레 겁먹은 이들이 그나마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 소오에게 눈을 돌려보지만, 그리 좋은 판단은 아니다.
“커헉!”
그의 손가락에서 튕겨 나가는 돌멩이 하나에도 그대로 기절 행이니.
그렇게 상황은 한 치도 알 수 없는 난전으로 변모했다.
더구나 마오가 쏘아낸 염화진천룡으로 인해 외문의 길도 열렸다.
“장이서 지금!”
마오의 외침에 장이서는 고개를 끄덕이곤 빛살처럼 달려 나갔다.
“감히!”
뒤늦게 열기에서 벗어난 사장로 몽유가 그를 붙잡으려 했으나 그전에 마오의 창룡도가 먼저 눈앞을 갈랐다.
‘흡!’
지독한 열기에 미끄러지듯 뒤로 피해낸 몽유가 눈매를 찌푸렸다.
“헹!”
이에 마오는 보란 듯이 혓바닥을 내밀어 비웃은 뒤 장이서를 따라 사라졌다.
‘칠공자 마오.’
분명 후계이긴 하나 그의 머릿속에 단 한 번도 담아둔 적이 없는 놈팡이였거늘.
언제 제 발을 물릴 만큼 강해진 것인가.
“크큭, 본산을 오래 비우긴 했군.”
확실히 그런 것 같다.
코앞에서 저런 애송이들한테 당한 걸 보면.
하지만 몽유는 조급해 하지도, 뒤를 쫓지도 않았다.
그는 사고방식이 보다 파괴적이고 잔인한 마인(魔人).
살 기회를 걷어찬 건 장이서다.
그럼 제 방식대로 보답해 주는 것이 인지상정.
“제 발로 돌아오게 해주마.”
귀찮게 쫓을 이유? 없다. 왜? 남은 이들의 비명이 다시 그를 불러 세워줄 테니.
“모조리 뼈를 발라주마.”
그가 뒷짐 진 채 여유롭게 걸어 나갔다. 그러자 금세 먹잇감이 하나 나타났다.
거구이긴 하나 제 손에 걸리면 분쇄되는 건 시간 문제.
투투툭!
빛살처럼 상대의 몸을 수차례 가격했다.
겉보기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겠으나 흉골과 쇄골이 박살 났을 터.
그리고 그 고통은 상당할 거였다.
자연스레 이제 곧 비명이 울려 퍼질 터. 하지만 억울할 건 없다. 곧 모두가 그리될 테니.
가벼운 마음으로 사내를 지나쳐 걸어가던 찰나였다.
“다 한 건가.”
의문스럽게도 뒤에선 비명이 아닌 묵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음……?”
다소 언짢은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자 고통에 몸부림쳐야 할 거구가 너무도 무심한 눈빛으로 절 내려다보고 있다.
“네놈은…….”
그리고 그 순간.
쐐애애액!
몽유를 향해 일권이 날아들었다.
빠악!
“크윽?!”
교차로 막아낸 두 팔이 강타당하고, 바닥엔 두 줄을 긋고 한참을 밀려난다.
두 팔은 힘이 안 들어갈 만큼 저릿하다.
손가락 하나로 거구 너덧을 들어 올리는 자신의 강인한 두 팔이 말이다!
‘이게 무슨…….’
그제야 몽유는 상대를 제대로 직시했다.
범상치 않아 보이는 붉은 눈의 거구.
마오와 장이서가 설마 아무 생각도 없이 자리를 비웠겠는가.
천만에.
“너는 누구냐.”
칠소궁에는 용이 있기 때문이다.
“구유.”
전장의 용, 구유!
그것도 만마분총에서 천(天) 급의 무공을 얻고 더욱 강해져 돌아온 적룡(赤龍)이 말이다.
사장로 몽유의 안색이 굳어졌다.
*
한편 마침내 정문까지 통과한 장이서와 마오.
하나 두 사람은 얼마 가지도 못한 채 다시 걸음을 멈춰 세워야 했다.
앞을 막아선 일백의 무리.
“저, 저들이 여길 왜…….”
이번엔 장이서도 기함을 토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대들이 서 있었기 때문.
서열 3위였던 사장로가 먼저 나온 이유가 있었다.
흑색에 붉은 자수가 수놓아진 피풍의.
그리고 백색 가면을 쓴 마교 최강의 부대.
“광명천마대……!”
“쟤네가 여기서 왜 나와!”
심지어 중심에 선 왜소한 황금 가면은 구 서열 2위 광명천마대주다!
실력으로는 안 밀리지만, 일장로에게 그냥 양보했다는 것이 중론!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
천마를 지켜야 할 자들이 대체 여긴 왜 온단 말인가!
설마?!
장이서가 빠르게 하늘을 향해 고개를 짓쳐 들었다.
그리고 머나먼 구름 위 마해산 정상에는 씨익 웃는 천마가 있었다.
“역경이 클수록 역천도 빛이 나는 법이지.”
이런, 미친!
장이서는 귓가에 울리는 천마의 목소리에 입으로 욕지거리가 뱉어졌다.
저딴 게 무슨 사형인가. 원수도 이렇게는 안 하겠다.
“야, 이 씨……. 쟤들을 우리 둘이 무슨 수로 상대해!”
그러니까 말이다.
이번엔 진짜 위기다.
광명천마대는 정말 생각도 못 한 일.
이건 솔직히 천마대주 하나와 싸워도 이길까, 말까.
한데 일당천의 대원들까지 전부 상대하라니. 차라리 칼 물고 죽는 게 더 빠르겠다.
장이서와 마오는 스멀스멀 다가오는 광명천마대를 보며 서로 거리를 좁혔다.
그만큼 막연하고 긴장된다는 얘기.
둥둥둥둥둥!
그사이 북소리는 난타에 가까워졌고, 태양은 중천에 떴다.
이제 진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야말로 짙은 낭패감에 빠져들던 그때!
“오호호호! 어디 서열 2위. 아니, 이제 3위 따위가 1위를 막아선단 말이더냐!”
어딘가에서 이젠 반갑기만 한 그녀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에 두 사람이 고개를 휙 돌리자!
“이건 또 뭐야!”
비룡당주가 아니라 웬 여우 가면을 쓴 괴한들이 나타났다!
깃털로 된 옷을 입은 여인, 금룡포를 입은 두꺼비, 그리고…….
“우리는 뇌마를 추대하기 위해 모인 자들. 더는 누군지 알려 하지 마시오!”
“뭘 알려 하지 마! 눈치 없는 호랑이 지대호잖아!”
크하아아앙!
누가 봐도 지대호와 만금수. 그리고 묘채경과 번천검객이다. 더구나 이게 다도 아니다.
“꼭 이런 것까지 써야 돼?”
“싫으면 벗으시든지.”
“누가 그렇대? 넌 꼭 말을 그렇게 밉게 하더라.”
걸어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위엄이 느껴지는 두 남매.
여우 가면에 가려 이름은 차마 알 수 없지만…….
“둘째 형님하고, 셋째 누님?!”
“시끄럽다.”
“그 입 닫아라.”
이공자 무한성과 삼공녀 사해령.
천군만마와도 같은 그들이 합류했다.
누가 대체 장이서에게 깊이를 논하였는가. 누가 그의 뿌리가 얕다 하였는가.
천만에.
비록 시간은 짧았으나 장이서가 이곳 마교에서 지난 일 년간 쌓아온 인맥과 뿌리는 그 어떤 누구보다도 깊었고, 단단했다.
“가라, 장이서. 여긴 우리가 열어줄 테니.”
여우 가면을 쓴 화천검과 빙해검의 주인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진산…….”
마음이 울컥해 벗으로서 그녀의 이름을 불러본다.
“아직도 날 그리 불러주는구나.”
이에 다정한 미소로 답해주는 그녀. 이젠 신분을 넘어 진정한 벗이 되었음을 느낀다.
“시간 없다. 서둘러!”
파아앗!
사해령을 시작으로 여우 가면을 쓴 자들이 광명천마대를 향해 쏘아졌다.
장이서는 그들의 뒷모습을 살피며 진심으로 감사를 담아 포권을 취했다.
“장이서, 빨리!”
그리고 마오의 외침에 다시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옆에서 쏘아지는 칼날을 묘채경이 쳐내고, 달려드는 대원은 지대호가 묵중한 어깨로 밀쳐버린다.
다시 너덧이 길을 막아서지만.
“밟고 가십시오!”
번천검객이 칼을 휘두르며 등을 내어주고.
팟!
이를 밟아 뛰어오르자 사해령과 무한성이 뒤를 봐준다.
한참을 지나 바닥에 착지. 천마대원들이 다시금 몰려들지만.
“으랴아아아아!”
뒤따라온 마오의 불길에 다시 길이 열린다.
모두의 바람을 타고 또다시 자리를 박차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갈 수 없다.”
수와아악!
전방에서 황금 가면을 쓴 광명천마대주의 검기가 수백 갈래로 쏘아져 나왔다.
그야말로 피할 구멍이라고는 일절 보이지 않는 완벽한 맹공!
“장이서-!”
“안 돼!”
모두의 걱정 어린 외침이 귓가를 때린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들에게 진심이었던 것은 저 혼자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첩자로 살아온 지난 세월은 허허벌판이 아니었다는 것을.
봄에 피어난 꽃처럼 저도 모르는 사이 함께 하며 길을 비춰주고 있었음을.
그러니까 난…….
가야겠다.
이곳에서 살아남아야겠다.
길이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진 뇌전법(眞 雷轉法)』
쩌어엉!
장이서는 수백 갈래의 검기 사이로 한 줄기 광망이 되어 쏘아졌다.
그리고.
“아니……?!”
“말도 안 돼!”
모두의 경악을 넘어 마침내.
둥둥둥둥둥둥!
북소리가 극한까지 빨라지고, 정오에 다다르는 그 순간!
척!
도착했다.
첩자의 신분을 버리고, 마교인이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
마교의 칠대장로(七代長老)가 서 있는 회당 앞에!
한순간 정적이 흐르고.
일장로 마일성이 씨익 웃으며 두 팔 벌려 외쳤다.
“부교주 선거를 시작하노라-!”
와아아아아아아!
신도들의 함성이 빗발치듯 터져 나왔다.
이로써 구유와 몽유도.
칠소궁과 일백마성도.
여우 가면들과 광명천마대도.
모든 싸움이 끝이 났다.
장이서가 끝내 증명해 낸 것이다.
부교주 후보로서의 자격을!
“후후, 이것이 바로 역천이다.”
천마의 자애로운 웃음이 구름 위에 널리 퍼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