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293)
첩자의 마교생활-293화(293/350)
293.
#보증과 책임
“이……이익!”
한편 이장로는 울분에 차다 못해 꽉 다문 치아가 바들바들 떨렸다.
분명 준비는 완벽했다.
일천이 넘는 마인들을 모았고, 사장로와 일백마성인 천가의 귀객들도 있었으며, 하다못해 천마가 광명천마대까지 내주었다.
절대로 패할 수 없는 필승의 전략!
한데…….
“한데 어째서 네놈이 살아 있을 수 있단 말이냐-!”
이장로 천오산은 결국 체면 따위 내던지고 고성을 내질렀다.
하나 늙은이의 추태일 뿐.
모두가 보지 않았던가. 어떻게 살아남아 여기까지 올라왔는지.
장로들 중에 아직도 인정 못 할 자는 단언컨대 단 하나도 없었다.
“확실히…… 달라졌군.”
삼장로 맹철용은 웃으며 그를 환영했고.
“고생했다.”
마의는 대견하다는 듯 울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넌 최고의 기재였다.”
“늦었지만 양요의 말이 맞았음을 이제야 인정한다.”
칠장로인 양요와 양유는 과거 장이서를 특급으로 판별한 자신들을 칭찬했고, 인정했다.
오장로인 광교도 호탕하게 웃으며 그를 반겼다.
이제 더는 애송이라는 편견으로 장이서를 내려다보는 자는 없었다.
나이와 신분의 장벽을 넘어 저들과 같은 선상에 선 절대자로 인정한 것이다.
물론.
“하지만 여기까지 왔다고 끝난 건 아닐세. 아직 선거가 남았으니.”
마일성이 씨익 웃으며 일언했다.
얼마 전 겪은 장이서의 실력과 그간 비추어 본 성정이라면, 여기까지는 반드시 도달할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진짜는 이제부터였다.
이장로 천오산에게는 아직 연명부가 남아 있었다.
그것도 장로들과 1급귀. 그리고 극소수를 제한 모두의 서명이 담겼다.
이제 그의 입에서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 한마디만 뱉어지면 선거는 끝이었다.
이는 결코 뒤엎을 수 없는 불변의 수!
‘장이서. 이제 어찌할 것이냐.’
만인이 지켜보는 와중에 마일성이 흥미로운 눈으로 그를 살폈다.
하지만 그가 미처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정작 그 연명부를 쥐고 있음에도 이를 꺼내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고 있는 자가 바로 천오산이라는 것을.
‘여기서 연명부를 쓰면 저놈은 고작해야 부교주에서 떨어지는 게 끝이다. 도리어 이번 일로 모두에게 인정을 받았으니, 더 활개 치고 다니겠지! 안 된다. 그리 둘 순 없다. 이대로 놈을 살려 보낼 순 없다!’
그에게는 지금이 장이서를 반드시 없애야 하는 순간이자 기회였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바로 그 순간.
“잠시 기다리시지요!”
언덕 아래에서 구원의 목소리가 때리듯이 터져 나왔다.
천오산의 광대는 승천하고.
모두가 의아한 시선으로 슬쩍 시선을 떨구었다.
그러자 곱슬머리의 중년인이 회당으로 들어서는 것이 눈에 담긴다.
“제가 좀 늦었군요. 후후.”
장이서는 눈매를 좁혔고, 이장로는 하늘은 절 버리지 않았다며 환희에 잠겼다.
그다.
방첩대주 겸사익.
‘대주.’
‘오랜만이다. 장이서.’
그가 나타난 것이다.
암각 요원 12호로서 장이서를 몰락시키기 위해!
“선거에 앞서 소인이 한 가지 제보를 올려도 되겠습니까.”
겸사익이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제보라니. 덕분에 장내가 어수선해지고, 이장로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가져왔구나!’
장이서를 나락으로 날려버릴 확실한 증거가 들어온 것!
“여기가…… 한낱 대주가 끼어들 자리라고 생각하는가.”
일장로 마일성이 놀란 눈매를 갈음하곤 음산한 살기를 내비쳤다.
본래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자존심이 높고, 명예와 질서를 중시하는 법.
한데 거룩한 선거의 순간을 한낱 졸개 따위가 훼방을 놓고 있으니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재주가 아무리 좋다 해도 결국은 수뇌 측에도 못 드는 4급귀 대주 아닌가.
한데.
“내가 보증하겠소!”
이장로 천오산이 화통한 목소리로 나섰다.
“자네가?”
“그렇소. 부교주를 뽑는 일이오. 문제 될 게 있다면 미리 들어 나쁠 것 없는 일. 전부 내가 책임지겠소.”
“음…….”
마일성이 얕게 침음을 뱉고는 흘깃 장이서를 살폈다.
‘네 생각은 어떠하더냐.’
하나 아무리 봐도 모르겠다. 눈빛은 공허하고 입술은 가지런히 다물어져 있다.
괜히 헛웃음이 뱉어진다.
‘어련히 알아서 할 놈을 괜히 내가 걱정을 하고 있구나.’
요즘 뇌마에게 빠져든 이들이 한둘이 아니라던데 이러다 저까지 빠지겠단 생각이 문득 든 마일성이었다.
“오래 주진 못하네.”
일장로가 물러서자 겸사익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여기 있는 부교주 후보는 한때 방첩대 삼조장으로 제 밑에서 오래 활동해 온 자입니다.”
그건 이미 다 아는 일. 이제 와서 자랑하려고 떠든 건 아닐 테고.
“할 말이 무엇인가.”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뼈를 깎는 심정으로 사실을 밝히고자 합니다.”
“사실?”
“부교주 후보로 이 자리에 올라온 장이서는…… 무림맹에서 숨어든 첩자입니다!”
웅성웅성!
그의 커다란 외침에 곳곳에서 소란이 빗발쳤다.
뇌마가 첩자라니. 이게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인가!
“가아아알! 지금 그 말, 감당할 수 있겠느냐!”
마의의 몸에서 짙은 분노가 뿜어졌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다.
대체 언제까지 이런 망언을 들어줘야 하는가. 이번에도 참으면 형도 아니다.
“만일 확실하지 않으면 그 책임은 자네 목으로도 부족할 걸세.”
마일성이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그러곤 흘깃 이장로 천오산까지 살핀다. 너도 무사치 못할 거라는 얘기.
이에 천오산은 엄지손톱까지 질끈 물어뜯었다. 이미 같은 수에 대공자가 나락 간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
하나 이번엔 달랐다.
“확실합니다. 장이서. 자네가 얘기해 보게. 아니, 103호라고 불러야 하나?”
겸사익이 씨익 웃으며 장이서를 지목했다.
그러자 어느새 뛰어 올라온 마오가 대신 답했다.
“장이서, 저딴 새끼 상대하지 마! 말 들어줄 것도 없으니까. 눈탱이가 아니라 이빨을 부서트렸어야 했는데.”
아드득. 죽일 듯 노려보자 겸사익이 슬쩍 움찔거린다. 어쩐지 대주 눈두덩이가 시퍼렇더라니. 네가 한 짓이었냐.
장이서는 얕게 숨을 뱉고는 앞으로 나섰다.
어차피 여기부턴 제가 해결해야 할 문제.
“대주.”
“후후, 아직도 날 대주라고 부르는 거냐.”
“그리 돈만 밝히더니, 얼마 받고 이런 일까지 하는 거요.”
“뭐? 크크큭. 하긴, 쉽게 인정하면 어디 그게 미친개 장이서겠느냐.”
“인정하고 말고 할 게 뭐 있나. 난 첩자가 아닌데. 그러는 대주가 더 의심스럽소. 얼마 전엔 방첩대 본관이 전부 불탔다던데. 이런 곳까지 나올 여유가 있으셨던 거요?”
“뭐……?”
겸사익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네 손으로 그리 만들어 놓고는 뻔뻔하게 잘도 떠드는구나.
“아무튼 난 대주의 말을 인정할 수 없소.”
장이서가 몸을 돌리곤 확실하게 단언했다.
“어떻게 된 것인가. 아니라지 않으냐. 증거. 증거를 내밀거라.”
천오산이 마른침을 삼키며 재촉한다. 이에 겸사익은 서늘히 답했다.
“저놈은 첩자가 맞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근거로!”
“제 손에 이를 증명할……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겸사익이 품에서 봉서 하나를 꺼냈다!
“저건……!”
“무림맹에서 발행한 봉서가 아닌가.”
이것이 바로 장이서를 끌어내리기 위한 명명백백한 증거다.
‘여기까지다.’
겸사익이 이를 넘기자 이장로는 뺏어 들고 골똘히 살피더니 점점 입꼬리가 다시 올라갔다.
“명주실에 남긴 문양부터, 매듭까지. 무림맹에서 발행한 것이 틀림없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제갈상이 암각에서 직접 쏘아 보낸 비수이니.
“그 안에 장이서가 첩자라는 명명백백한 증거가 담겨 있습니다! 그걸 보고도 믿지 못하시겠다면 제 목을 치셔도 됩니다.”
웅성거림이 커진다. 그냥 던진 말처럼 보이진 않기 때문. 이번엔 장로들의 표정도 짐짓 굳어졌다.
옆에 선 마오마저 다급히 속삭였다.
“야, 장이서 어떡해.”
그야말로 난처하기 그지없는 상황. 절체절명의 위기다.
“장이서는 무림맹의 밀명을 받아 숨어든 첩자로서 그동안 무려 14년을 활동해 왔습니다. 그런 자가 부교주라니 가당치도 않은 일입니다!”
겸사익이 크게 외치곤 가까이 다가와 장이서의 코 앞에 마주 섰다.
‘대주. 꼭 이래야만 했소?’
‘장이서. 더 추악해지기 전에 순순히 인정하거라. 네 생존록까지 모두의 앞에 드러내고 싶지는 않다.’
한때는 의형제처럼 의지했고, 이면에는 똑같은 암각의 요원으로서 같은 길을 가던 두 사람.
한데 이제는 완전히 반대로 걷게 되었다.
장이서는 잇새를 질끈 물었다가 또박또박 말했다.
“나는 첩자가 아니오.”
“그렇다면…… 네 민낯을 모두에게 밝히는 수밖에!”
겸사익이 이장로에게 어서 열라며 눈짓하자 장이서가 다급히 외쳤다.
“그걸 열었을 때도 내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감당할 자신 있으시겠소?”
잘못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
하지만.
“네놈이 첩자가 맞구나!”
이는 되려 천오산에게 확신을 주는 한 수가 되었다.
이곳에 있는 자들이 누구인가.
마교를 이끌어 온 지배층이자 수많은 경쟁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장로들이다.
저런 분간도 못 하는 협박에 속아 넘어갈 군번이 아니라는 얘기.
“이장로!”
장이서가 당황하며 소리치자 천오산은 웃음을 숨기지 못한 채 크게 외쳤다.
“크크크! 왜. 두려운 것이냐?! 그러게 자리를 보고 누웠어야지! 감히 네놈이 누굴 건드렸는지 뼈저리게 후회하거라. 이 봉서가 무림맹의 진품임을 나 이장로 천오산이 보증할 것이다!”
모두의 눈이 당혹과 의문으로 물들고, 이장로는 희열에 찬 얼굴로 결국 봉서를 부악! 뜯었다.
그리고 거칠게 펼친 서신을 확인하는 순간.
“……!”
이장로의 두 눈에 핏줄이 곤두서고, 두 손은 부들부들 사정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한순간에 휩싸이는 군중의 정적.
“이, 이게 무슨…….”
그 와중에 천오산이 중얼거렸다.
대체 이게 무엇인가.
분명히 장이서가 첩자라는 증거라고 하였거늘.
왜.
어째서?
어떻게!
【103호 천무기 무림맹 소속 기록.】
대공자 천무기로 둔갑한 가짜 자료들이 여기서 튀어나오느냐는 말이다!
“왜 그러십니까.”
상황을 눈치 못 챈 겸사익이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다가오자. 천오산이 이빨을 딱딱 털어대며 고개를 돌렸다.
“감히…… 네놈이……?”
내가 뭘. 영문을 모르는 겸사익이 고개를 갸웃하며 웃어대자.
쐐애애액!
밑도 끝도 없이 마기가 가득 담긴 일장을 그의 가슴에 꽂았다.
“커헉!”
와당탕! 한순간에 피를 토하며 불쌍하리만치 나가떨어지는 겸사익.
그가 물 밖에 나온 생선처럼 꿈틀거리며 각혈한다.
한데도 아직 진정이 안 된 천오산은 제 손에 들린 서류에 삼매진화를 일으켰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휙! 뒤에서 장이서가 뺏어가기 전까지는.
“원하는 내용이 들어있지 않았나 보군.”
귓가를 때리는 목소리에 천오산은 사색이 된 채 몸을 돌렸다.
“이, 이놈이!”
그리고 장이서의 표정이 연기라도 한 것처럼 씨익 웃는 걸 보고서야 깨달았다.
‘내가 또 물렸구나!’
아주 x됐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