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296)
첩자의 마교생활-296화(296/350)
296.
#돌아오겠습니다
“진심이야?”
너무 놀라 되묻자 그녀가 서늘한 눈매로 답했다.
“싫은가?”
“아니, 너무 갑작스럽잖아.”
당황스럽기도 하고.
“넌 부교주고, 난 삼공녀다. 연배도 비슷하고 미혼이지. 뭐가 문제지?”
“이봐.”
“다른 여인 때문이라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난 상관없으니까.”
“진산!”
“혼인하지.”
하. 깊은 한숨이 뱉어졌다. 아무리 혼사 따위 잊고 살아온 첩자 인생이라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은가.
“진산. 아무리 많은 걸 포기하고 살아가는 처지라지만, 막 가지는 말자.”
“이제 나로는 네게 부족하다는 건가?”
“세상 어느 미친놈이 그런 생각을 품을까. 그런 뜻 아니다.”
“그럼 혼인해. 너도 날 이용하면 되지 않느냐.”
이런 억지가. 표정을 보니 고집이 가득하다.
만일 과거였다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을지도 모른다.
가정을 꾸리는 건 첩자가 신분을 숨기기 위한 최적의 수단. 그런 의미에서 그녀만 한 우산도 없을 테니.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왜. 네가 원하는 건 이미 다 가졌으니까?”
아니. 그런 게 아니다.
“그럼 뭐지?”
“이용하고 싶지가 않으니까.”
“뭐……?”
“알잖아.”
그녀와의 만남은 서로 시작부터가 이용의 관계였다.
칠소궁에 오기 위해 접근했고, 그녀는 마오를 키워 제 영향을 넓히고자 했다.
이제 더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런 마음도 없는 혼인을 치르면서까지는 더더욱.
“내가 누굴 지지하든. 부교주든, 아니든. 난 네가 위험하다면 반드시 도울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왜. 내가 오늘 널 도와서?”
그녀가 비아냥대듯이 입꼬리를 올린다.
아니.
이에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네가 진산이니까.”
“뭐……?”
“이제는 진짜 내 벗이니까.”
사해령은 멍해진 시선으로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귀가 새빨개진 채 속눈썹을 파르르 떨고는, 인상을 확 찌푸리며 돌아섰다.
“부교주가 되더니 말만 늘었구나.”
“하하…….”
“넌 실격이다. 부교주로서도, 내 사람으로서도.”
“진산.”
“그리고.”
걸어가다 우뚝 멈춰 선 그녀가 흩날리는 바람처럼 말했다.
“누가 막간다는 거지?”
“음?”
“……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한 자는 나도 네가 처음이었다.”
“아니, 야…….”
말없이 떠나가는 그녀.
심장이 거세게 뛴다. 무슨 그런 말을 이렇게 숨김없이 하냐.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이내 멀어지는 그녀의 등 뒤에 활짝 웃으며 소리쳤다.
“너 나한테 아직 술 안 샀다! 또 보자, 진산!”
그러자 멈칫한 그녀가 휙 돌아보더니 무어라 중얼거린 뒤 떠나갔다.
멀어서 들리진 않았지만, 궁금하진 않았다.
배워둔 잡기 탓에 입 모양만 보고도 알아챌 수 있었으니.
“죽여버린다니. 하하…….”
아무래도 오늘 뭔가 단단히 실수를 한 모양이다. 당분간 피해 다녀야 되겠다.
헛웃음을 짓고는 몸을 돌렸다.
그러자.
“홍란?”
차갑지만 아름다운 사해령과 달리 청초하고 단아한 꽃잎 같은 그녀가 다가오고 있었다. 오늘 무슨 날인가?!
“왜 나왔어, 추운데.”
“주인님께서 오질 않으셔서요. 한데 누구와 같이 계셨던 건가요?”
“아…….”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사해령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에 픽 웃고는 답했다.
“친구.”
“좋아하는 친구분인가 봐요. 표정이 좋아 보이세요.”
“무슨.”
당황하며 손사래 친 뒤 그녀에게 말했다.
“같이 걸을까?”
다소곳이 웃는 그녀가 수줍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내 월광호를 품은 홍예교를 함께 거닐었다.
이렇게 단둘이 걷는 것도 실로 오랜만.
홍란은 고개를 돌려 흘깃 장이서를 살폈다. 못 본 새에 더 멋스러워졌다.
그래서인가. 밤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발그스름해진 얼굴을 들키지 않아도 되니까.
“마음에 들어.”
“네?!”
갑작스러운 고백에 화들짝 놀랐다. 한데 장이서의 시선을 보자 그 대상이 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를 따라 정면으로 고갤 돌리자 어느새 화려하게 빛나는 취선루가 먼발치에 담긴다.
아…….
괜스레 얼굴만 더 새빨개졌다.
“정말 잘 키워냈어. 전부 홍란 덕분이야.”
진심이었다. 홍란 혼자서 이 정도까지 키운다고 고군분투했을 모습이 떠오르자 염치없음에 미안함이 가득해진다.
“아닙니다. 주인님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거면 됩니다.”
홍란은 고개를 저으며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마음이 아렸다.
장이서는 훨훨 날아 올라가는데 이젠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조금씩 그의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것만 같아서.
괜히 울적해지는 마음에 살짝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하하하!”
다행히 어린아이를 비롯한 사람들이 왁자지껄 웃으며 지나간다.
바로 그때 장이서가 스쳐 가듯이 말했다.
“이제 얼마 안 남았어.”
“예?”
“모용세가. 진짜 너희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줄게.”
그녀가 걸음을 우뚝 멈춰 세웠다. 그리고 장이서를 바라보자 그의 눈에서 진심이 느껴진다.
‘잊지 않고 계셨구나…….’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너무나 따스해져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아니에요. 돌아간다고 이젠 가문에서 누구도 절 반겨주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아직 살아 계시잖아.”
“……!”
그녀의 부친은 모용세가의 가주이자 검성(劍聖)으로 알려진 모용학.
지금은 지병으로 쓰러져 오랜 세월 의식을 잃은 상태였으나 그래도 아직 살아 있었다.
마치 그녀가 다시 돌아오길 간절히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조금만 더 기다려. 이번에 수련이 끝나고 나오면 어떻게든 데려가 줄게.”
“주인님…….”
“만나 보고 그 후에 어떻게 할지 다시 생각해 보자.”
홍란이 눈물을 떨구며 살포시 다가와 어깨에 안긴다.
“감사합니다…….”
아직 해준 것도 없거늘. 머쓱하게 웃으며 그녀의 등을 조심히 토닥여 줬다.
사이가 조금은 더 깊어진 밤이었다.
*
다음 날.
명상을 마친 뒤 밖으로 나섰다.
채비랄 건 딱히 없었다. 맨몸으로 왔으니 맨몸으로 가면 되는 일.
“벌써 가게?”
이른 새벽임에도 마오가 정원에 앉아 배웅을 했다.
“왜 더 안 주무시고.”
“지난번처럼 몰래 도망 못 가게 미리 대기 중이었다, 왜.”
“제가 무슨 좀도둑입니까. 도망을 가게. 그땐 어쩔 수 없었던 거고. 이번엔 인사드리고 가려고 했습니다.”
“헹! 웃기시네.”
가까이 다가서자 마오가 픽 웃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이내 괜히 코끝을 비비며 말했다.
“뭐, 좀 더 있다 가도 되는데. 뭐가 이렇게 급해?”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내일부터 수련이라고.”
“참나. 하여튼 주객도전이라니까. 자식인 나도 아직 못 해본 걸.”
“앱니까? 질투하게.”
“아니거든!”
괜히 성질을 부리는 마오를 보곤 픽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뭐가.”
첩자인 날 이해해 준 것도. 아무것도 묻지 않아 준 것도. 그냥 믿어준 것도. 전부 다.
“그냥요.”
마오의 옆에 마주 앉았다. 어디부터 말을 해야 할까.
“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동생? 진짜로?”
“예. 딱 칠공자님하고 같은 나이의 사내 녀석이죠. 그래서 처음부터 칠공자님이 남 같지가 않았습니다.”
“쳇……. 여동생이냐?”
내 말 듣냐. 사내라고. 너도 봤잖아. 윤이.
“어릴 때 배고픔이 싫어 무작정 따라간 게 그곳이었습니다.”
마오는 그제야 장이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를 깨닫고 입을 꾹 닫았다.
과거.
자신의 과거를 말하려는 것임을 알았기에.
긴 이야기가 흐르고, 마오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너나 나나 참…… 그렇다. 그렇지?”
“아뇨. 전 좋은데요. 칠공자님을 만나서 가족이 생겼고. 이제는 돌아올 집도 생겼으니까.”
장이서가 씨익 웃으며 일어선다. 그러곤 마오의 앞에 서서 그의 손을 꼭 잡곤 무릎을 꿇었다.
“그러니 부디 건강히 잘 계십시오. 괜히 걱정하게 하지 말고. 수련도 게을리하지 마시고요.”
마오가 괜히 코를 찡긋거리곤 고개를 휙 돌린다.
“너나 잘 지내. 툭하면 쓰러지는 주제에.”
“그동안 거두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마오에게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마오는 괜히 붉어진 눈을 피하며 말했다.
“고마우면 나중에 톡톡히 갚아. 알지? 나 소교주 하고 싶어 하는 거. 너 나중에 가서 맹휘 편들고 그러면 그땐 진짜…….”
“되실 겁니다. 소교주.”
“뭐야. 갑자기 왜 진지한데. 농담 몰라?”
알지. 그래도 내가 어떻게든 만들어 줄게. 설령 교주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러니까.
“강해져서 돌아오겠습니다. 그러니 칠공자님도 더 강해지세요.”
“왜. 소교주가 되어야 하니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제가 없더라도 식구들을 지킬 수 있게. 더는 빼앗기지 않게. 강해지는 겁니다.”
마오의 얼굴이 강하게 굳어진다.
장이서가 없는 칠소궁.
그곳을 이제는 자신이 지켜내야 한다.
굳은 결심.
어리기만 한 마오의 가슴에 신념이라는 연륜이 살포시 한 겹 쌓아지는 순간이었다.
“나 강해질게. 반드시 내가 지킬 거야.”
마오가 그제야 눈을 맞추며 힘 있게 답했다. 그래. 그거면 됐다.
후련하게 입구로 향하자 독마 사숙부터 식솔들이 모두 나와 서 있다.
하나하나 잊지 않으려 눈에 담았고, 다가가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대문을 지나 대나무 숲에 다다랐을 때.
“장이서! 반드시 돌아와야 해-!”
마오가 먼발치서 손을 흔들었다.
이에 웃으며 포권을 취한 뒤 다시 길을 나섰다.
그리고 마오는 끝내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그렇게 다시 천마전으로 향했다.
이제부터는 첩자 장이서가 아닌 진짜 장이서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머릿속엔 걱정과 기대. 그리고 궁금증으로 가득 채워졌다.
‘천마에게 받는 가르침은 어떤 것일까.’
명실상부 천하제일인으로 불리는 자.
물론 그에게 배우는 게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과거엔 지나가듯 알려준 것이고, 이번엔 정식으로 배우는 거였다.
아마도 소림의 전설인 신승에게 배웠던 것과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으리라.
그렇게 부푼 마음을 잔뜩 안고 마침내 천마전에 다다라 그와 다시 마주했다.
그리고 역시나 늘 그렇듯 후회는 빠르게 찾아왔다.
“저기 교주님? 갑자기 여기는 왜.”
휘이이잉!
세찬 바람이 몰아치는 천마전 정상.
서늘한 감각이 등골을 스친다.
“말하지 않았느냐. 키워준다고.”
그러니까. 그건 알겠는데. 왜 자꾸 절벽으로 몰아세우는 건데!
“뒤에 길 없습니다. 낭떠러지예요.”
“알고 있다.”
“근데 왜…….”
천마의 손바닥이 다가온다.
설마.
퍼억!
“아니, 그러니까 왜애애애애애애!”
가차 없이 쏘아진 일장에 얻어맞곤 시간이 느려지듯 절벽 밑으로 서서히 몸이 넘어간다.
귓가에는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뒤집히는 시야에는 온통 구름만이 가득해졌다.
“으아아아아악!”
그렇게 육신은 신명 나게 추락했다.
도대체 왜.
왜 이 인간은 매번 이런 식인 걸까.
사랑을 못 받고 자랐기 때문인가. 아니면 남을 괴롭히는 데 희열을 느끼는 변태이기 때문인가.
뭐든 이 새끼는 정상이 아니다.
아무리 역근경으로 다져진 몸이라고 해도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지면 즉사다.
키워준다고 하더니 황천길로 밀어버린 것.
“후…….”
분노를 가다듬고 머릿속을 비워냈다.
다시 생각해 보자.
천마가 미치지 않고서야 죽이려고 민 건 아닐 거다.
마해산 뒤로는 바다와 같은 호수가 있다.
수심이 깊고 잔잔하며 암초가 적은 곳.
그래. 그거다!
천마는 애초에 죽지 않을 걸 알기에 민 것이다. 마교의 교주답게 담력을 보고 싶었던 것.
하지만 잘못 봐도 한참을 잘못 봤다.
이미 죽을 위기는 숱하게 넘겨보았으니.
피식 웃으며 몸을 돌려 아래를 살폈다.
그러자 어느덧 구름이 걷히고 숨겨졌던 전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거기엔 아름다운…….
“맨땅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