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298)
첩자의 마교생활-298화(298/350)
298.
#최악의 악귀
고오오오!
천마의 몸에서 지독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봐도 봐도 적응이 안 되는 일.
마른침이 꼴깍 삼켜졌다.
그를 이만큼이나 화나게 할 존재라니.
무림맹주와 사도련주한테도 이만한 반응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대체 혈교에 누가 있길래.
그 순간, 적아린과의 대화가 뇌리를 스쳤다.
‘혈마귀를 가진 혈교의 주인이 있다는 건가?’
‘거기까진 죽어도 말 못 해. 혈교에서 저보다 위쪽을 논하는 건 절대 금기거든.’
날고 기는 초절정 고수인 그녀마저도 두려워하는 존재.
사실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단지 제게 폭풍처럼 들이닥친 일들에 애써 외면해 왔을 뿐.
침음을 삼키곤 조심스레 그에게 물었다.
“혹 혈존이 다시 나타난 겁니까?”
“……!”
진우광은 다소 놀란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 어찌 알았냐는 표정. 하지만 의문은 짧았다.
이는 독마조차도 몰랐던 사실. 장이서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다.
“네 사부가 그리 남겨두었더냐.”
뇌신 한무영.
그가 후인에게 뜻을 남긴 것.
“예.”
거짓 없이 답하자 진우광이 비소를 짓는다. 뭔가 심히 괘씸해하는 듯한 모습.
설마 저에게는 아무 말 없이 갔다고 토라지기라도 한 건가. 설마…….
궁금하지만 지금 중한 건 그게 아니다.
만일 혈존이 다시 나타난 거라면 이건 곧 천하의 위기.
알아야겠다.
“말씀해 주십시오.”
“궁금하더냐.”
“예.”
“흠…….”
천마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어어?!”
느닷없이 가벼운 손짓으로 몸을 붕 띄워 올렸다.
“이번엔 또 왜?!”
불길함에 물어보자 바깥으로 손을 내치며 사악한 미소를 짓는 진우광.
설마.
“으아아아악!”
쐐애애애애액!
그 순간 한 줄기 빛이 되어 동굴 밖으로 날려져 버렸다.
심지어 바다와 같은 호수를 가르며 끝도 없이 날아갔다.
순식간에 저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날아온 천마의 손에 목덜미를 붙잡힌 채로.
천마, 이 개새끼!
*
한참 후.
상식을 벗어난 비행 끝에 도착한 곳은 어느 마을이었다.
“여긴…….”
언덕 위에 양 떼를 기르며 사는 어느 그냥 한적한 작은 마을.
“형아 안녕!”
“와아!”
마을에 온 외지인이 신기한지 어린아이들이 달려와 화기애애 웃는다.
그 모습이 어릴 적 윤이를 보는 것 같아 놀란 표정을 지우곤,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헤헤.”
아이들의 걱정 없는 표정만 봐도 얼마나 화목한 마을인지 잘 알겠다.
아이들은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법이니까.
한데 대체 여긴 왜.
주변을 둘러봐도 천마는 보이지 않고, 하늘을 올려봐도 구름 한 점 없이 맑기만 하다.
“하아.”
길게 한숨이 뱉어졌다. 정말이지 불친절한 것도 천하제일이다.
혈존이 나타났냐 물었더니 대뜸 여기다 던져 놓다니.
설마 여기서 양털이나 깎으라는 건 아닐 터.
찾아보자.
어쩌면 이곳이 혈교의 마을일 수도 있다.
방심을 버리고, 눈매를 굳힌 채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먼 곳에서 오셨나 보오. 편히 쉬다 가시오.”
하나 노을이 질 때까지 다녀봐도 아무것도 모르는 순박한 유목민들뿐. 이상한 낌새는 일절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의심한 게 다 미안할 지경.
대체 뭐지. 오다 배 아파서 버리고 갔나.
언덕에 앉아 황금빛 평야를 바라보며 의문이 합리적 의심으로 채워질 무렵.
먼발치에 기이한 행렬이 눈에 담겼다.
드높은 고위 관직이라도 되는 듯 수많은 하인과 무사들이 앞뒤로 길을 길게 만든 행렬.
하지만 무엇보다도 시선을 잡아끈 것은.
“뭐야, 저게.”
바로 움직이는 계단이었다.
정확히는 수십 명의 노예가 두 손으로 받쳐 든 거대한 판 위에 세워진 십여 층짜리 삼각 계단.
그 모습이 실로 웅장해 마치 성탑이 다가오는 듯한 착각마저 일었다.
각 층엔 벌거벗다시피 한 미녀들이 교태를 부리고, 끝자락에는 적색 태사의에 황제처럼 군림한 붉은 면류관(冕旒冠)의 미공자가 앉아 있었다.
바로 옆에는 두 눈을 띠로 가린 여인이 붉은 편복산(蝙蝠傘-박쥐우산)으로 해를 가려주었고.
그야말로 시선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는 기괴하면서도 퇴폐적인 향연.
“어? 저게 뭐야.”
“아이고, 보지 말거라.”
마을 사람들도 처음 보는 광경인지 아이들 눈을 가리고 홀린 듯이 이를 살폈다.
잠시 후 그들이 마을 언덕 인근까지 다다랐을 때.
부모의 손을 뿌리친 아이 하나가 신난다며 무리를 향해 달려갔다.
“와아!”
그러자 면류관을 쓴 사내가 힐끗 이를 살피곤 손을 들어 행렬을 멈춰 세웠다.
이내 다정히 씨익 웃고는 달려오는 아이를 보며 손가락을 탁 튕겼다.
정말 찰나의 일이었다.
말릴 틈도, 무언가를 할 여지도 없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
퍼억!
“어……?”
그때부터 머릿속이 하얘지고, 귓가엔 이명이 울렸다.
아이가 쓰러졌는데 바닥엔 붉은 피가 가득했다. 분명 몸은 있는데 머리가 없다.
부모는 넋이 나간 얼굴로 얼어붙었다.
아니, 지켜보던 모두가 그랬다.
오죽하면 누구 하나 비명도 못 지르고 숨이 멎었다.
그리고 그 정적 속에서 면류관을 쓴 사내는 다정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제 잘못도 모르는 가엾은 중생들이 여기에도 있구나. 멸(滅)하여라.”
멸하라고. 그러자 행렬의 선두에 있던 무사들이 칼을 뽑아 들고 언덕 위로 쏜살처럼 달려들기 시작한다.
“피해…….”
그때부터 멎었던 피가 다시 맹렬히 순환하듯, 장이서의 정지한 시간도 빠르게 흘러갔다.
그리고.
“다들 도망쳐-!”
“아아아악!”
비명과 함께 무사들의 추살(追殺)이 시작됐다.
이 미친 새끼들!
단전에서 이어진 길을 타고 전신의 내공이 폭발하듯 용솟음쳤다.
항마에 대항하는 황금빛 기운.
남천능가경이다!
팟!
잔상을 흩뿌리며 선두에서 설치는 무사의 흉부에 일권을 꽂았다.
『아라한신권(阿羅漢神拳)』
퍽!
“카아아악!”
비명과 함께 수십 보를 빛살처럼 날아가는 살수 하나.
“얼른 도망치십시오!”
마을 사람들을 향해 재차 외친 뒤 적들을 상대해 나갔다.
일격일살(一擊一殺).
여지는 주지 않았다.
무분별한 살육을 일삼는 자들에게 자비는 없다.
“크아아악!”
“커헉!”
어떻게든 막는다. 아무 죄도 없는 저들을 이리 허망하게 죽게 하진 않을 것이다.
조금만 더.
그들이 도망칠 때까지만 시선을 끌면 된다.
한데 바로 그때.
“흡!”
머리 위에서 간담이 서늘해질 만큼 위협적인 기운이 스쳤다.
이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자, 장정보다 거대한 칼을 휘두르는 중년 사내의 모습이 눈에 담겼다.
머리카락이 흑과 백으로 나누어진 독특한 사내.
노을을 등진 그의 모습은 실로 압도적이었고, 위협적이었으며, 또한 두려웠다.
그리고.
불안한 기분은 현실로 이어졌다.
대각선으로 그어진 그의 거검(巨劍)은.
수와아아아악!
물경 길이만 오십 장(165m)에 달하는 미친 검기(劍氣)를 쏘아냈다.
이건 이미 신의 경지!
가까스로 넘어지듯 이를 피해내자 검기는 자비 없이 머리 위를 스쳐 지나고.
“안 돼-!”
콰아아아앙!
평화롭던 마을을 송두리째 갈라버렸다.
대지를 갈라버린 거력(巨力).
비명도 없었다. 무고한 수많은 이들이 서로 작별 인사 한마디 하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
누군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누군가는 사지가 잘려 나갔다.
평화롭던 마을이 반으로 잘려버렸다.
어떻게…….
대체 어떻게 이런 참혹한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들이 뭘 그리 잘못했다고!
“대체 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벽력같은 고함을 끌어냈다. 헛되이 사라져 버린 이들의 앞날에 허망한 눈물이 서렸다.
정적이 찾아들고, 계단 위 면류관의 사내는 무심한 표정을 짓고는 역으로 물었다.
“왜냐고?”
그래 왜. 대체 왜 죽인 거냐.
이리도 선량한 사람들을 대체 왜!
목이 메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눈으로 물음을 대신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감히 본좌(本座)의 길을 막지 않았느냐.”
“뭐……?”
그게 이유라고? 순간 인간에 대한 가장 극심한 경멸을 느꼈다. 아이부터 마을 사람들을 학살한 이유가 고작…… 길을 막아서?
“서패왕(西覇王)의 검을 피하긴 쉽지 않았을 텐데. 혹 본좌를 만나러 온 것이더냐.”
안색이 파리해지고 맺힌 눈물이 사그라든다. 반면 두 눈엔 실핏줄이 솟았다.
널 만나러 왔냐고?
“네가 뭔데.”
“음?”
“아니, 네가 뭐든.”
그냥.
“죽어야겠다, 너.”
팟! 자리를 박치고 쏘아졌다.
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없앤다. 없앤다. 반드시 없애버릴 것이다.
오직 죽여야겠다는 일념으로 달렸다.
“컥!”
“크악!”
살수들 사이를 유영하듯 거침없이 베어 넘기고, 그에게로 달려 나갔다.
그러자 검기를 쏘아 보냈던 자가 앞을 막아선다.
서패왕이라 불린 자다!
그가 일도양단의 기세로 칼을 돌린다.
수와아아악!
이윽고 또다시 괴물 같은 검기가 쏘아진다. 아까보다 크기는 다소 줄었으나 훨씬 더 빠르고 정교하다!
하나.
『진 뇌전법(眞 雷轉法) 뇌신화(雷神化)』
파지직!
전신에 검은 뇌기가 요동치며 터졌다. 이어서 찰나의 순간 갈지(之)자로 번쩍거리며 검기를 피해 갔다.
“음?!”
예상 못 한 일인지 중년인이 당황하며 이미 지나가 버린 자리를 돌아 살핀다.
하지만 늦었다.
어느새 계단 앞까지 다다른 장이서는 팟! 공중으로 날아오른 후, 사신처럼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심판을 날렸다.
“죽어.”
『진 뇌전법(眞 雷轉法) 백뢰(白雷)』
콰지직-!
그리고 손끝을 타고 쏘아지는 무자비한 백뢰!
공간이 비틀리듯 엄청난 뇌기가 뿜어진다.
모두의 얼굴에 경악이 서리고, 면류관을 쓴 사내는 제게로 날아드는 벼락에 눈을 부릅떴다.
이내 백뢰가 사내에게 적중하는 그 순간!
“어떻게……?”
장이서는 경악을 넘어 혼미해졌다.
세상 모든 것을 다 찢어발길 듯했던 백뢰가…….
파지지직!
고작 그의 손바닥 하나를 찢지 못하고 멎어버렸기 때문.
어떻게든 뚫어보겠다고 백뢰가 비명을 내지르지만 어림없다.
“어, 어떻게…….”
망연자실한 눈으로 그를 살폈다. 그러자 그가 섬찟한 표정을 짓고는 뇌기도 무시한 채 백뢰를 꽈악 움켜쥔다.
“너……. 뇌신하고 무슨 사이냐.”
“뭐?”
“뇌신이 보낸 것이구나. 날 죽이라고 그의 망령이 보낸 것이야. 이 지긋지긋한 놈들. 감히 또다시 본좌를 해하려 하는구나! 감히……. 감히이이이이-!”
콰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뇌기가 터지고, 긴 세월을 함께 싸워 온 백뢰도 가루가 되어 흩날린다.
“아…….”
바닥에 떨어져 넋이 나간 얼굴로 그를 살폈다.
그러자 그가 성난 악귀처럼 대로한 채 자리에서 일어선다.
고오오오오오!
그때부터였다. 천지가 진동하기 시작한 것이.
어느새 노을이 저물고 어두워져야 할 하늘은 동이 트듯 붉게 달아올랐다.
공기의 밀도는 숨이 막힐 듯 조여오고, 지독한 공포가 엄습했다.
우우웅!
남천능가경이 아니었다면 이미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정도.
그때야 깨달았다.
천자를 빙자하며 하늘로 천천히 떠오르는 저자가 바로.
“혈존(血尊)…….”
사상 최악의 악귀.
혈교의 주인인 혈존이라는 것을.
나는 혈존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