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3)
첩자의 마교생활-3화(3/350)
3.
#내가 설마 너희를 모를까 (2)
장이서는 돌팔매처럼 어깨를 크게 돌리곤, 오른손을 출수할 것처럼 올려 든 채 비스듬히 자세를 잡았다.
그러곤 결의에 찬 눈으로 나직이 말했다.
“구천팔백칠십이 번째 도전. 간다.”
뒤이어 아무런 준비 자세도 없이 손을 일직선으로 뻗었다.
그러자 빛줄기처럼 앞으로 쏘아지는 쇠 끈 달린 백색 비도.
5급귀 용우를 처치했던 그의 암기다.
한데 이번엔 뭔가가 달랐다. 이전이 벼락처럼 빠른 것이었다면, 이번엔.
『백뢰(白雷)』
번쩍! 어두운 공동이 일순 환해지고.
콰지직! 비도가 진짜 새하얀 벼락이 되어 벽을 향해 쏘아졌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속도. 감히 누가 이걸 피하겠는가. 이 정도면 누가 맞든 즉사다.
하나 도전은 지금부터였다.
콱!
마치 자물쇠에 열쇠를 꽂듯 벽 중앙 홈에 비도가 정확히 들어가 박혔다. 자연스레 팽팽하게 당겨진 얇은 쇠 끈.
장이서의 입가에 미세한 웃음이 잠깐 서렸다. 오늘은 운이 좋다. 본래 이리 한 번에 넣는 것도 힘든 일.
이제 다음 차례.
우우웅!
공동 전체가 크게 울릴 만큼 그의 내기가 용솟음쳤다.
옷깃은 펄럭이고, 머리칼은 자연스레 흩날렸다.
하나 그래봤자 일류 수준.
첩자임을 생각하면 오히려 부족하고, 탁하기만 한 내공.
진짜는 이거였다.
『뇌전법(雷轉法)』
파직, 파지직! 경맥을 타고 선회하던 그의 불순한 내공이 갑자기 뇌기로 변이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경맥을 느릿하게 지나가던 기의 흐름이 급속도로 빨라졌다. 아니, 빨라진 정도가 아니라 빛 그 자체!
이내 눈에서 안광이 뿜어지고, 콰아아앙!
극에 달하자 폭음과 함께 몸 주변에 벼락이 찌릿찌릿 꿈틀거렸다.
“이제 좀 끝내자-!”
파지지직!
장이서의 몸에서 터져 나오는 뇌기가 그대로 쇠 끈을 타고 벽에 박힌 비도로 옮겨간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번쩍번쩍!
벽면을 가득 채워놓았던 미로 같은 홈에 새하얀 빛이 선을 그리며 급속도로 달려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웅장한 광경.
더 놀라운 건 빛이 채워져 점점 드러나는 홈의 정체가 흡사 마귀의 얼굴처럼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곳의 이름은 마벽.
어느새 빛은 절반을 넘어 마귀의 마지막 두 눈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장이서는 급속도로 고갈되는 내공에 애간장이 녹아 들어갔다. 손가락 빨던 갓난쟁이의 내력까지 쥐어 짜냈다.
무려 7년 동안 이를 성공시키기 위해 9천 번이 넘는 시도를 했다.
이번엔 반드시 해내리라.
반드시.
“끄아아아아!”
혼을 불사르는 듯한 마지막 절규가 뱉어졌다.
하나.
파스스스.
아쉽게도 기죽은 남편처럼 힘 빠지는 소음이 공동에 울렸다.
이내 자비도 없이 사라지는 빛.
실패다.
팍! 쇠 끈을 당겨 다시 비도를 회수했다. 이내 쇠 끈은 손목에 칭칭 감기고, 비도는 완갑(腕甲) 속으로 슥 사라졌다.
“아, 염병.”
털썩. 그리고 힘을 다한 장이서는 그대로 바닥에 대(大)자로 쓰러졌다.
“하아, 하…….”
연신 뱉어지는 숨결에 탄내가 가득하다.
하나 참으로 놀랍고도 새로운 경지였다. 사람의 몸으로 벼락을 뿜어내다니.
심지어 본디 내공이란 누가 어떤 심법을 익혔느냐에 따라 성질이 정해지는 것이 정석이거늘. 장이서는 탁한 내공을 극강의 뇌기로 뒤바꿔 버렸다.
이는 중원 어디서도 보기 힘든 신묘한 능력.
바로 이것이었다.
천마고에서 얻은 보물이.
정확히는 세 가지.
첫째는 단단하고 얇은 쇠 끈이 걸린 백색 비도, ‘백뢰(白雷).’
둘째는 해안 절벽에서 벼락을 맞고 자란 산삼, ‘뇌군삼(雷君蔘)’.
그리고 마지막 셋째가 바로.
내공을 뇌기로 바꾸는 ‘뇌전법(雷轉法).’
그렇다. 이곳 천마고는 먼 옛날 누군가가 자신이 이룬 무공을 후대에게 전하기 위해 남긴 비고(秘庫)였다.
장이서는 그렇게 이곳 마교에서 기연을 만난 것이다.
문제는…….
“진전이 없어. 진전이.”
뇌전법은 심법이 아닌 이미 쌓인 내공을 폭발적인 뇌기로 바꿔, 기의 흐름을 폭발적으로 가속하는 사술에 가까운 마공.
그리고 뇌군삼은 그런 뇌기를 몸이 견딜 수 있도록 하는 영약.
마지막 백뢰는 그 힘을 최상으로 담아낼 수 있는 일격필살의 무기.
모든 걸 이해했고, 또 제 것으로도 만들었다.
하여 순간적이지만 비약적인 속도와 힘을 낼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설명은 없고 구결만 있었지만, 장이서의 천부적인 오성이 이를 가능케 했다.
그리고 장이서는 직감했다.
지금 이게 끝이 아니라 저 벽화에 빛이 전부 채워지는 순간. 다음 단계로 가는 문이 열릴 것이라는 걸.
“근데 성공을 못 해. 이유는 뻔하지. 이 빌어먹을 썩은 단전. 내공은 뇌전법의 장작과도 같다. 그런데 이리 탁하고 불순한 장작을 넣으니 불길이 타다 말 수밖에.”
장이서는 분명 암각에서도 인정한 천재 103호.
하지만 신은 그에게 묘리를 깨닫고 이를 동작으로 표할 수 있는 재능은 허하였으나, 근간이 되는 단전은 허락하지 않았다.
절맥까지는 아니나 선천적으로 경맥이 탁하고, 단전에 아홉 개의 구멍이 뚫려 일정 이상 내공을 쌓을 수 없는 구규지체(九竅肢體)를 갖고 태어난 것.
바로 이게 문제였다.
분명 뇌전법으로 선천적인 몸의 한계를 넘어 벼락처럼 움직일 수 있게 되었지만, 부실한 내공에 그마저도 어느 단계 이상은 무리였다.
“뭐, 내일은 되겠지.”
하나 이런 답 없는 시도마저 웃으며 승화할 수 있는 자가 바로 장이서였다.
장이서는 벌떡 일어나 무구가 있는 진열대로 향했다.
“보자, 뭘 줘야 대주가 반하려나.”
방첩대주 겸사익.
나이는 마흔둘. 어깨까지 오는 곱슬 장발에 여인은 많으나 처는 없다. 성미가 고약하나 제 수하 목숨은 잘 챙기는 편. 그래서 은근히 따르는 녀석들이 많다.
직급은 대주이고 4급귀. 하나 실력은 2급귀인 당주에 필적.
참고로 마교에 당주는 단 다섯 명뿐이다.
바꿔말하자면 좌우사자에 칠장로. 교주 자식들에 숨은 고수들까지 다 합한다고 하더라도 겸사익은 능히 서열 50위 안에 들고도 남을 거물이란 소리.
“근데도 진급을 안 해. 왜? 돈이 좋으니까. 나라도 안 하지. 내가 대주였으면 벌써 이 안을 다 채웠다. 부럽다, 부러워.”
그런 자에게 기껏 모은 애장품까지 넘겨야 한다니. 배 아파서 전신이 부르르 떨린다.
하나 임무를 위해서라면 보직 이동은 불가피한 일.
“이거면 되나.”
장이서가 제 턱을 쓰다듬으며 진열대에 걸린, 기다란 환도 한 자루를 척 집어 들었다.
얼핏 봐도 광채가 서린 적색 칼집에 흑색으로 조각된 꽃무늬. 거기에 패용된 황금패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금삭도(金削刀)】
스릉! 지이잉!
“소리 죽이고.”
장이서가 칼을 뽑아내자 은은한 황금빛이 서린 첨예한 날이 피를 갈구하듯 기승을 부렸다.
명검이다. 그것도 누가 봐도 아주 값비싼 명검.
“금삭도엔 순도 최상인 진짜 황금이 섞여 있지. 돈 귀신인 대주에게 이보다 어울릴 녀석은 없다.”
착! 장이서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칼을 넣었다.
겸사익은 이거면 됐다. 본래 칼에 환장하는 자이고, 요즘 새로운 환도 하나 구하겠다고 수하들한테 눈치도 많이 줬었다.
이제 필요한 건 행동이다.
망나니 칠공자.
그에게 다가가기 위한 은밀한 범행.
첩자답게 말이다.
* * *
해가 뉘엿뉘엿한 시각.
장이서는 처소 인근에 작은 촌락을 찾았다. 마을 이름은 방가촌(方家村). 이름 그대로 천산의 방가가 모여 사는 집성촌이다.
이런 곳에 왜 왔나 싶겠지만, 첩자에게는 다양한 거래처가 존재한다.
가령 까마귀 우는 살구나무에 장소와 시간을 계피 향 나는 서신에 써서 걸어두면 백오문(白烏門). 통칭 ‘까마귀 청소부’라는 녀석들이 나타나 어지럽힌 현장을 정리해준다.
비용은 꽤 크지만, 마무리가 좋아 첩자들 사이에 신뢰가 높다.
또 천산 앞 어해촌에 있는 객잔에 가서 서역의 은원(銀圓) 두 개를 비스듬히 겹쳐 올리면, 백주를 하나 주는데 마개로 꽂힌 천을 펼치면 중원의 최근 소식을 점자로 받아볼 수 있다.
이처럼 낮이 있으면 밤이 있듯이, 곳곳에 숨어 암약하는 자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이번 역시도 마찬가지.
7년 전, 알게 돼 종종 애용해 왔던 작은 서관이었다.
【제갈서관(諸葛書館)】
고개 들어 검지로 슥 흑립의 챙을 올리자 허름한 간판이 눈에 들어선다.
이건 뭐 반항하는 것도 아니고, 방가들 틈에 제갈 성씨라니. 그것도 마교의 천산 안에서.
배포 한번 대단하다. 하지만 여기서 더 어이없는 건 사실 주인장은 제갈세가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떡하니 저 낳아준 방씨 부부가 있는데, 다 커서는 본인이 제갈량의 후손이라며 대뜸 개명을 해버렸다. 말로는 제 부모가 중원에 나갔다가 아기가 바뀐 거라나, 뭐라나.
참고로 방씨 부부는 천산을 떠나본 적도 없는 촌사람들이다.
아무튼 이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주인장 성미가 보통은 아닌 곳이었다. 당연히 하는 일도 보통이 아니고.
끼이이익.
“주인장 있으신가.”
장이서가 책장 가득한 서관 안으로 발을 들였다. 한데 아무 반응 없이 조용하다. 주변을 살피자 주인장은 안 보이고, 먼저 온 손님만 눈에 띄었다.
동시에 장이서의 눈에 짧게 이채가 서렸다.
첩자의 필수 요소 중 하나.
최소한의 정보로 단번에 상대의 신원을 캐내야 한다는 것.
장이서는 돌아선 상대를 빠르게 위아래로 훑었다.
제 턱까지 오는 신장. 위로 묶은 고운 머릿결에 천상 예쁜 귀. 가느다란 목선.
그리고…….
‘심통 난 너구리?’
몸을 돌린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둥그런 코에 심술 가득 내려간 두툼한 입술.
장이서의 얼굴이 와락 찌푸려졌다. 이를 본 여인은 기분이 나쁘다는 듯 따지듯이 물었다.
“왜 그렇게 보지?”
“아. 그게…….”
머리를 긁적였다. 왜냐고 물으면 할 말이 하나밖에 없는데.
“그냥 좀 이상하게 생겨서.”
“뭐?”
“아, 기분 상하셨다면 미안하오. 본의이긴 하나…….”
“천박한 놈.”
휙! 그녀가 경멸하듯 쳐다보곤 옆을 스치고 밖으로 향한다.
“이보시오, 낭자. 거 말이 심하구려. 내가 태어날 때부터 기품이 넘쳐 길 가던 시종도 고개를 숙였다던데. 아니, 거기 좀 서 보시오!”
붙잡으려고 손을 내뻗는 순간, 안쪽에서 노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정신 나간 놈이 헛소리를 지껄이나 했더니, 역시 너였더냐?”
옆으로 둥그렇게 말려 올라간 콧수염. 마찬가지로 잘 말린 제갈량이 쓰던 윤건.
“주인장.”
서관의 주인, 제갈귀룡이다.
끼이이익! 탕!
잠깐 고개 돌린 사이, 여인이 거칠게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하, 이런. 장이서는 입맛을 다셨다.
“대체 뭔 짓을 한 게야?”
“글쎄. 저 여인이 내게 반하였나?”
“이런 미친놈을 보았나. 그러니 네놈이 장가를 못 가지.”
“같은 총각끼리 너무한 거 아니야?”
“시끄럽고 온 용건이나 말해. 내쫓기기 싫으면.”
성질은. 장이서가 미간을 박박 긁었다. 그러곤 매대에 서 있는 제갈귀룡에게 다가가 품에서 두툼한 전낭을 툭 올리고 말했다.
“위인전 하나.”
덫을 놓는다.
“누구.”
“마지막 소마귀(小魔鬼).”
천마의 마지막 일곱 번째 양자.
망나니 소공자 마오.
“어디까지.”
그를 잡기 위한 덫을.
“전부 다.”
제갈귀룡과 허공에서 시선이 얽혔다.
그리고 그가 슥 전낭을 품에 넣었다.
거래, 성공이다.
씨익. 입가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서렸다.
마오. 기다려.
내가 곧 너에게 간다.
#내가 설마 너희를 모를까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