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300)
첩자의 마교생활-300화(300/350)
300.
#수련 시작
천마와 장소를 옮긴 곳은 어느 산림이었다.
특별할 건 없는데 묘하게 어두웠고, 음기가 강했다.
그곳에서 천마는 동굴 앞에 이르러 질문을 던졌다.
“기질이란 무엇이냐.”
기질(器質).
사람이 가진 선천적인 기(氣)와 체질(體質)이다. 흔히 지체(肢體). 또는 근골이라고도 표하기도 했다.
또한 기질과 무공이 맞지 않으면 극성할 수 없으며, 이를 바꾸는 건 기적이라 불릴 만큼 험하고 힘든 일이다.
만세극이 패왕공을 익히려다 주화입마에 빠졌던 것처럼.
통설적인 답을 꺼내자 천마는 픽 웃으며 말했다.
“알고 있다니 이해도 빠르겠구나.”
“뭐가 말입니까?”
“지금 네 기질로는 절대 천마신공을 완성할 수 없다.”
“……!”
충격적인 통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단박에 와 닿는 부분도 있었다.
천마신공을 다룰 때마다 매번 엄청난 무리를 느꼈고,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기분이었으니.
그건 자신의 기질과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니 네가 천마신공을 제대로 익히기 위한 방법은 하나뿐이다.”
천마의 입꼬리가 비틀리듯 올라간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부족한 기질을 바꾸는 것.”
생각만 해도 극악과도 같은 일. 하지만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다.
“바꾸겠습니다. 어떻게든.”
“당연히 그래야지.”
고오오오오!
천마의 몸에서 끔찍한 살기가 언뜻 뿜어져 나왔다.
만일 못 하겠다고 하면 당장 목이라도 베었을 기세.
신승은 상대가 너무 곧고 순하여 반항할 수 없었다면, 이 인간은 진짜 죽일까 봐 말을 못 하겠다.
이게 정과 마의 차이인가.
“한데 제 기질에 어떤 문제가 있는 건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솔직히 부족하다고 하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그래도 나름 영리하다는 축에 속하지 않는가.
떨떠름히 쳐다보자 천마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그걸 몰라서 묻는 것이냐? 단전에 구멍이 아홉 개나 뚫려 있는 주제에.”
염병. 뼈가 시리다 못해 다 부서지겠다.
“무엇보다도 네겐 살(殺)이 빠져 있다.”
살기를 뜻하는 건가. 솔직히 구규지체를 탓하자면 수긍이 되지만 이건 좀 아니다.
그러기엔 이미 숱하게 더럽혀진 손.
“저도 베어야 할 땐 좀 벱니다.”
의기양양하게 천마를 살피자 그가 동굴을 향해 고갯짓했다.
이에 시선을 옮기자 안쪽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한 쌍의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
엄청난 살기. 전신의 털이 쭈뼛쭈뼛 설 만큼 거칠고 압도적이다.
대체 동굴 속에 누가 이런 무지막지한 살기를 지니고 있단 말인가.
경악한 채 앞으로 한 걸음을 다가섰다.
크하아아앙!
그러자 터져 나오는 포효!
“백호……?!”
놀랍게도 동굴에서 걸어 나오는 이 무차별한 살기의 정체는 영물인 백호였다.
윤기 나는 새하얀 털에 날렵한 검은 줄기.
그것도 족히 크기가 2장(6m)은 될 법한 거대한 호랑이.
몸에 아문 흉터가 가득하고, 발톱과 이빨엔 피가 절여 있는 걸 보니 일대의 음기는 이 녀석이 풍기는 게 분명했다.
짐승이란 짐승은 죄다 잡아 먹었으니 곳곳에 시체들의 기운이 만연할 수밖에.
“기질은 염(念)이다.”
천마의 가르침이 다시 시작되었다.
염이라 하면 무언가를 행하려는 생각.
“살(殺)을 품고 태어난 짐승은 상대를 죽이겠다는 생각만으로 가득하지.”
그래 보인다. 저 앞의 백호가 침을 질질 흘리며 어슬렁어슬렁 다가오는 모습을 보니.
“천마귀는 나약한 기질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저 짐승처럼 살귀가 되라는 겁니까?!”
온다. 백호가 온다!
“크하아아앙!”
포효를 터트리며 달려오는 백호!
이에 천마는 여전히 태연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살(殺)을 품은 존재마저 압도하는 기질. 그것이 바로 천마의 자격이다.”
그리고 그 순간!
고오오오오!
그의 몸에서 하늘마저 진동할 만큼의 압도적인 살기가 뿜어졌다.
솨아아아아!
이에 산세가 겁에 질린 듯 휘청였고, 숨이 멎듯 시간도 멎었다.
세상 다 찢어발길 것처럼 달려들던 영물마저도.
“이것이 바로 천마의 살(殺)이다.”
천마는 웃으며 제 앞에 사색이 된 채 벌벌 떨고 있는 백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백호가 사정없이 떨리는 눈으로 배를 까뒤집고 교태를 부린다.
“할 말 있느냐?”
있을 리가. 너무 경악스러워서 뭐 더 할 말이 없다. 이런 게 살(殺)의 기질이라면 자신에겐 없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니, 이게 천마가 아닌 이상 누가 가능하겠는가.
“없습니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자 천마는 픽 웃고는 몸을 돌렸다.
“살(殺)을 배우려면 살(殺)에 익숙해지는 것이 우선.”
“예?”
“사흘. 그동안 저 동굴 안에서 살아남아 보거라.”
“이 녀석하고 말입니까?”
“털끝도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게 무슨…….”
아니, 안 건드리고 저 좁은 동굴에서 어떻게 살아남으란 말인가.
하나.
“아니, 저기 사형?!”
천마는 제 말만을 남기곤 하늘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크르르르…….”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돌리자 아양을 떨던 백호가 서서히 육중한 몸을 일으키더니 곁눈질로 죽일 듯이 절 노려보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지옥 같은 수련은 이제 시작이었다.
*
천마 진우광.
그는 하늘 위로 날아오른 채 먼발치의 태양을 눈에 담았다.
장이서를 생각하니 음험한 웃음이 새었다.
사부는 늘 자신의 살(殺)을 누르려 하였다. 한데 자신은 사제에게 살(殺)을 심어주려고 한다.
반대로 가는 대물림이 퍽 재밌지 않은가.
“넌 사부와 같은 정(正)이 아닌 나와 같은 마(魔)가 되는 것이다.”
하여.
“올려주마. 아무도 오르지 못할 곳으로. 내가 너를 키워주마.”
물론 고되긴 하겠지만 말이다.
진우광은 씨익 웃으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곳의 호랑이는 그냥 백호가 아닌 영산의 기운을 모조리 받고 태어난 영물.
손도 쓰지 않고 사흘을 견디는 게 마냥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아니, 살아남는다는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
하지만 장이서는 이 또한 이겨낼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역천의 자질일 테니.
그리고 사흘이 지났다.
*
천마가 다시 동굴에 나타났을 땐 장이서가 피투성이가 된 채로 서 있었다.
반면 백호는 부서진 이빨과 갈려 나간 발톱을 내세운 채 지쳐 쓰러져 있다.
벽에 할퀴고 깨문 자국이 가득한 걸 봐선 제 스스로 공격하다 저리된 모양.
털끝도 건드리지 말라는 약속은 지킨 셈이다.
‘제법 머리를 썼구나.’
천마는 무심한 눈으로 장이서를 흘겼다. 단순히 살아남았다고 다가 아니다.
무공을 펼치면 애초에 일초지적도 안 되는 미물일 뿐.
중요한 건 얼마나 깨우쳤느냐다.
살을 익힌다는 건 웬만한 절세 무공을 익히는 것보다도 어려운 일.
당연했다.
평소 안 그러던 사람이 성정을 바꾸는 게 하루아침에 되겠는가.
하여 타고나길 살을 품고 태어난 백호와 동거를 하게 한 것이다.
사흘을 함께 지냈으니 자질이 있다면 보고 느낀 바가 있을 터.
“용케 살아남았구나.”
나지막이 말을 건네자 장이서가 백호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용케. 그 말이 참 와닿는다.
첫날은 이 비좁은 동굴 안에서 쉴 새 없이 호랑이의 화풀이를 받아내야 했다.
지치지도 않는 공격.
끝도 없는 포효.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건 백호의 눈이었다.
기 빨리듯 무한한 살기를 뿜어내는 바로 저 눈을 계속 마주해야 한다는 것.
이에 눌리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스스로와의 싸움을 이어가야 했다.
“이제 저 미물은 쓸모가 다 하였으니 네 뜻대로 하거라.”
“죽여도……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천마가 음산한 미소를 짓는다.
백호의 살(殺)을 보고 느낀 게 있다면 분명 장이서의 살기(殺氣)도 달라져 있을 것이다.
‘어디 너의 살(殺)을 보여주거라.’
기대감을 잔뜩 안고 기다렸다.
한데.
“가거라.”
챙그랑! 기대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버린다.
장이서가 살길을 열어준 것. 넋 놓고 보는 사이 백호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기껏 살을 배우라고 데려왔더니. 이런 병신 같은 짓을 해?
약해빠진 천성은 어쩔 수가 없단 말인가?!
“감히…….”
우우웅!
천마가 손을 뻗자 장이서의 몸이 허공에 붕 떠오른다.
“커헉!”
이내 기도가 턱 막히고,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네 수준이 겨우 이거였더냐.”
살을 이루는 가장 쉬운 방법은 원(怨)과 증(憎).
사흘 동안 백호와 지내면서 그것마저 키우지 못했다면 이건 자질을 넘어 아예 살을 배울 자격이 없는 것이다.
실망이 극에 달하다 못해 죽여 버리고 싶은 마음. 아니, 그냥 죽여야겠다.
“한낱 미물 따위도 죽이지 못하는 네놈이 뭘 할 수 있겠느냐. 그냥 죽거라.”
고오오오오!
천마의 눈에서 섬뜩한 기세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백호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살(殺)!
이 정도면 누구든 질식해서 숨넘어갈 수준.
한데.
“해하지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겁니다!”
장이서의 입에서 생각지 못한 말이 뱉어졌다.
“뭐……?”
“뜻대로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순간 천마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의 말이 어렵다는 것이 아니다.
제 살(殺)을 받고도 멀쩡히 눈을 뜨고 견디는 장이서가 이해가 안 됐다.
심지어는.
고오오오!
더더욱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살(殺).
미약하긴 하나 절 노려보는 저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은 분명 살(殺)이었다.
지금 그걸 천마인 제게 쏘아내고 있는 거였다.
그래 놓고는 이런 충고까지 던진다.
“사형이 바라는 건 한낱 미물의 죽음이 아니지 않습니까.”
솨아아아!
동굴 밖의 산세가 흔들리고, 대지가 울리기 시작했다.
“하……?”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헛숨이 뱉어졌다.
이놈 봐라.
제대로 배운 적도 없는 놈이 기본을 넘어 진짜 살(殺)을 뱉는다.
기는 법을 가르쳤더니 일어나 달리고 있는 격.
‘살(殺)을 이루는 가장 쉬운 방법은 원(怨)과 증(憎). 하지만 본질은 의(意)다. 누구든 내 손으로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는 전능한 의지. 벌써 그걸 깨우쳤단 말이냐.’
이미 다 익혔는데 하찮은 미물 따위야 당연히 죽일 이유가 없는 일.
천마의 입꼬리가 길게 올라섰다.
‘재밌구나. 네놈이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천마는 철퍼덕 장이서를 바닥에 내팽개친 뒤 말했다.
“……기억하거라.”
콰과과과광!
천마의 몸에서 뻗쳐 나온 광활한 살의가 천지를 관통한다.
벼락이 내려치고, 사지가 바들바들 떨린다.
대체 이게 무슨!
장이서는 숨도 안 쉬어지는 이 순간을 기억하며 천마를 살폈다.
“이것이 네 기질을 바꿔줄 무공. 귀천살마공(鬼天殺魔功)이니.”
“……!”
진우광이 천마의 자리에 오르기 전.
살혼대 살수였던 시절에 익힌 귀혼살마공(歸魂殺魔功)을 극성으로 익히다 못해 저만의 것으로 재탄생시킨 무공.
그것이 바로 귀천살마공이었다.
지금의 천마를 있게 해준 근간과도 같은 것!
“부단히 따라와야 할 것이다. 죽이든, 살리든. 네 뜻대로 살고 싶다면.”
내 뜻대로…….
장이서는 침음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가 걸리든 반드시 이루어 내주리라.
하여 첩자 장이서가 아니라 천산의 장이서로서 다시 태어나리라.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내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
그때까지 수련. 또 수련이다.
‘금방 돌아가겠습니다.’
식솔들을 향해 작은 마음의 인사를 마쳤다.
그리고…….
3년의 세월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