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301)
첩자의 마교생활-301화(301/350)
301.
#소오의 한숨
– 천산 집하촌 불문객잔.
소오는 매대에 기대서선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장사가 잘되던 것도 옛말. 객잔은 그저 의리로 찾아와 술이나 깨작이는 손님들이 전부였다.
여기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집하촌 전부가 그랬다.
기상천외한 물건들을 내어놓던 시장통은 텅 비었고, 손님 대신 험상궂은 녀석들로 가득해졌다.
이를테면.
“비우라고 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장사질인 것이냐?”
예의 없이 문짝을 걷어차고 들어와서는 성질부터 부리는 이놈들.
산왕가(山王家)의 졸개들 말이다.
“다들 놀라지 말고 먹던 거 마저 먹으라고. 그래도 의리로 와줬는데 빈속에 보낼 순 없지. 마셔.”
소오가 손님들을 진정시키곤 산왕가의 무사들을 마주했다.
“이봐, 형씨들. 시비도 좀 상황 봐 가면서 거는 게 어때. 이게 지금 장사하는 거로 보여? 파리 날리는 거 안 보이냐고.”
“흥, 그러게 대 오군장(五軍匠)이신 문충 님께서 친히 밑으로 들어오라 기회를 주셨거늘. 뭐 잘났다고 뻗대느냐? 뻗대기를.”
“하아.”
딱 봐도 좋은 관계는 아니다. 절로 한숨이 뱉어지는 상황.
설명하자면 길지만, 요약하자면 간단했다.
3년 새에 집하촌 북부를 담당하던 부족 산왕가가 마교에 완전히 흡수된 것.
해서 산왕가가 이곳을 전부 관리하게 되었다.
비단 이들뿐만도 아니다.
마교는 근래 인근 세력들과 고수들을 닥치는 대로 천산에 끌어들였다.
말로는 세의 확장이나 실상은 아수라장.
색마고, 마적이고 가리지 않고 받은 탓에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강하기만 하면 자리까지 내주어 체계는 엉망이 됐다.
오죽하면 이젠 진짜 마교(魔敎)가 되었다는 말까지 돌았다.
이곳 집하촌도 같은 맥락으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설치는 산왕가와 피해받는 신도들.
딱 그 정도로 정의하면 간단했다.
그리고 하필 웃대가리 중 하나가 소오의 실력을 눈여겨보곤 이 난리를 피우는 것이고.
물론 마교가 이 꼴이 난 데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형씨. 말했잖아. 이미 난 충성을 맹세한 사람이 있다니까?”
“누구. 크큭. 3년 전 무책임하게 실종된 부교주 말이더냐?”
“……!”
“뭐, 덕분에 우리는 천산에 들어와 편해졌지만.”
장내가 싸늘히 얼어붙는다.
“왜. 내가 틀린 말이라도 했느냐?”
“아니, 맞아.”
확실히 시작점은 그게 맞다.
3년 전.
교주와 부교주가 사이좋게 증발하듯 사라져 버렸다.
덕분에 마교 지휘 체계는 엉망진창이 됐다.
살았는지 죽었는지라도 알면 좋겠거늘.
이 사달이 나도록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건지.
생각하니까 또 열받네.
“알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를 부교주는 그만 잊고 너도 대세를…….”
“근데!”
소오가 정색한 채 검은 색안경을 올려 쓰며 말했다.
“내 앞에서 장형 얘기 꺼내고 멀쩡히 기어나간 놈이 없는데. 그건 알고 있나?”
솨아아아아!
그러자 음산한 어둠의 살기가 그의 몸에서 자욱이 퍼졌다.
“흐, 흣!”
산왕가의 졸개들이 진땀을 흘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들이 감당하기엔 너무도 강한 기백.
객잔 주인이기 이전에 시체 먹는 까마귀. 백오문의 소문주다!
“죽고 꺼질래? 그냥 꺼질래.”
“히이익!”
졸개들이 사색이 된 채 뛰쳐나가려던 그 순간.
“오군장이신 문충 님께서 행차하셨다! 불문객잔의 주인은 당장 밖으로 나와 맞이하라!”
……빌어먹을.
“흐, 흐흐. 하하하하! 이 새끼가 어디서 갑자기 무게를 잡느냐? 깜짝 놀랐네. 냉큼 밖으로 나오거라!”
졸개들이 안도의 땀을 닦아내며 밖으로 후다닥 달려 나갔다.
소오는 안쓰럽게 바라보는 손님들을 애써 달래주고는 밖으로 나섰다.
*
오군장(五軍匠).
산왕가를 이루는 다섯 기둥이자, 실력이 당주에 버금간다고 알려진 강자들.
그중 문충은 마지막 다섯 번째이자 청동대장(靑銅大將)으로 불리는 자였다.
별호에 걸맞게 외관 역시 실로 위압적.
웬만한 장정보다 머리 두 개는 더 컸고, 청동 갑주로 무장한 채 긴 곱슬 장발을 풀어헤쳤다.
두툼한 입술과 단단하고 큰 아래턱. 여기에 매부리코와 부리부리한 눈매를 더하면 얼핏 기괴함까지 자아냈다.
한마디로 무섭게 생겼다는 얘기.
하지만 더 무서운 건 그가 입을 열었을 때였다.
“오랜만이로군요. 나의 소오 군.”
속이 다 메스꺼울 만큼 느끼한 음색과 과도한 손짓.
소오는 속에서 올라오던 아침 식사를 간신히 돌려보내곤 답했다.
“한참 자리 비운다더니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나.”
“후후후. 아닌 척하면서 내 소식을 모두 꿰고 있었군요. 나의 소오 군?”
“그쪽이 직접 말하고 간 거거든?!”
“내 말을 그리 오랫동안 잊지 못하고 계셨습니까? 귀엽군요, 소오 군.”
아, 이 새끼 그냥 한 번 뜰까.
소오가 이마를 척 짚고 잠깐 고민에 빠졌다.
하나 역시 그건 아니다.
주변만 봐도 이미 그의 수하들만 일백이 넘고, 문충은 진짜 힘을 쓰지 않으면 상대하기 어려운 고수.
더구나 집하촌은 그의 관리구역.
문제 생기면 저만 골치 아프다.
“됐고. 밑으로 들어오란 얘기 하러 온 거면 돌아가. 그럴 생각 추호도 없으니.”
“후후후. 그 말을 하러 온 게 아닌데. 소오 군도 속으론 원하고 있었나 보군요.”
“뭐야. 아니야? 그럼 뭔데.”
“오늘부로 소오 군이 나 문충의 부관이 되었음을 통보하러 왔습니다.”
“더 최악이잖아!”
소오가 소리를 빽 내지르자 문충은 변태처럼 웃으며 답했다.
“후후훗! 이미 위에서 내린 결정이니 토 달지 마시길. 오늘부터는 어딜 가든 내 옆에 함께 하는 겁니다.”
“장난쳐? 직책이 없는 거지, 나 너랑 같은 3급귀야. 근데 누구 마음대로 통보를 해?”
“누구겠습니까. 대 천마신교의 주인이신 교주님께서 명하신 거지요.”
소오의 미간에 주름이 깊게 파였다.
확실히 지난 3년간 마교의 지휘체계가 엉망이 된 건 수장인 장이서와 진우광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
하지만 아수라장이 된 건 그들 때문이 아니다.
진짜는.
“교주님이 아니라 교주 대행이겠지.”
봉문을 깨고 가장 윗자리까지 치고 올라간 대공자 천무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사라지고 한동안 텅 비어있던 왕좌를 숨죽이고 있던 그가 신분을 들먹이며 꿰차버린 것.
이후 따르지 않는 요직은 모두 좌천됐고, 후계들은 새외 정벌을 빌미로 전장을 떠돌았다.
반면 충성을 맹세한 새외 세력은 무혈입성하여 천산의 권력을 쥐었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이었다.
“이번엔 빠져나갈 수 없을 겁니다, 소오 군.”
“빌어먹을…….”
“또한! 오늘부터 부관이 되어 내 방에서 불침번을 서십시오, 소오 군.”
“x발! 누가 봐도 제일 안전해 보이는 새끼 방에 무슨 불침번이야! 그리고 자꾸 내 이름 뒤에 군 붙이지 마!”
“소오 군을 모시거라. 깨끗이 씻겨 내 방에 데려다 놓도록.”
“이 미친놈이?!”
소오가 당황하며 좌우를 살폈다.
하나 무정하게 길을 좁혀오는 산왕가의 무사들.
“오지 마. 오면 내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거부하면 본교의 명을 어기는 것! 그럼 그땐 부관이 아니라 내 노예로 오게 될 겁니다. 아니, 어쩌면 그걸 원했던 걸까요, 소오 군? 후후훗.”
“제발 좀 닥쳐!”
소오의 낯빛이 사색으로 물들고, 주변을 살피며 경계 자세를 취했다.
결국 이렇게 진짜 힘을 쓰게 되는 건가.
낭패감에 진땀이 흐른다.
한데 바로 그때.
탕!
불문객잔의 문이 활짝 열리며 새하얀 멱리를 쓴 장신의 공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음?”
일순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리고, 이어 가장 먼저 객잔에 들이닥쳤던 졸개들의 눈이 띠용 커졌다.
“저런 놈은 없었는데?”
“그러게요.”
아무리 생각해도 객잔 안에는 별 볼 일 없는 놈 서넛이 전부였기 때문.
물론 반대편 문에서 들어왔을 수도 있겠으나 거긴 교외의 영역.
저들의 허가 없이는 절대 불가능하다.
뭣보다 저렇게 허우대가 좋은 자라면 눈에 띄어 몰랐을 수가 없다.
“뭐 해? 치우지 않고.”
“예!”
하나 뭐든 뭔 상관이랴.
중요한 건 지금 이 자리에서 주목받을 놈은 아니라는 것.
“거슬리지 말고 꺼지거……라아악!”
퍽! 공자를 밀쳐내려던 무사 하나가 역으로 내지른 일장에 얻어맞더니 빛줄기처럼 날아가 담벼락에 처박혔다.
와르르. 그대로 무너진 돌 더미에 깔려버린 무사.
모두의 눈이 띠용 커졌다.
‘보통 놈이 아니구나!’
‘누구지?’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무언의 긴장을 표했다.
가볍게 친 일장에 이 정도 위력이면 최소 오군장 급.
슬그머니 졸개들이 청동대장 문충의 눈치를 살핀다. 어찌하냐는 물음.
이에 문충은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답하곤 걸어 나가며 말했다.
“이런. 소오 군에 이어 또다시 흥미로운 소자(少者)가 나타나 버린 걸까요? 하지만 내 수하를 건드린 대가는 꽤 가혹하답니다. 후후훗.”
우우웅!
문충의 눈이 무섭게 더 커지고, 몸에선 막대한 양기가 뿜어져 나왔다.
어느새 몸 주변 공기는 이글거리고, 차갑던 기온은 뜨거워졌다.
이에 수하들도 움츠러들었던 어깨가 쫙 펴졌다.
청동대장 문충을 오군장에 앉을 수 있게 해준 그의 성명절기!
설산의 눈보라도 그에겐 닿지 못한다는 북두양공(北斗陽功)이기 때문.
이 정도면 상대도 지레 겁먹을 수밖에 없는 일.
한데.
“아, 쫑알쫑알 되게 시끄럽네.”
하얀 멱리의 사내는 경박하기 그지없는 말투로 코웃음을 치며 다가섰다.
“지금…… 내게 한 말일까요?”
문충의 커다란 하관이 파르르 떨리고 눈은 더 무섭게 떠진다.
한데.
“어이, 객잔 주인. 잘 있었냐?”
그의 물음은 철저히 무시한 채, 소오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넨다.
“어, 어…….”
소오도 아는 눈치인지 오만 표정이 다 드러났다. 기쁨과 서러움. 그리고 무한한 반가움. 그냥 너무 좋다는 얘기.
“감히 나도 받아보지 못한 소오 군의 마음을……?!”
덕분에 문충의 분노는 극에 다다랐다.
고오오오!
북두양공의 열기는 더 강해져 그의 수하들은 신음을 뱉으며 열 걸음을 물러섰고, 소오도 인상을 찌푸리며 소매로 얼굴을 가렸다.
하나 정작 하얀 멱리의 공자는 태연하기만 하다.
“소오 군? 야, 객잔 주인. 너 쟤랑 그런 사이냐?”
“무슨 그런 망언을 하십니까. 전혀 아닙니다. 남입니다. 아니, 남보다 못한 사입니다.”
“소오 군! 교주님께서 내린 명을 잊은 겁니까? 당신은 내 부관을 명 받았습니다!”
“아, 그런 거야? 그 인간이 나 없는 동안 또 행패를 부리고 있었구만.”
하얀 멱리의 공자가 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문충을 보며 일언했다.
“어이, 쭉정이.”
“쭈, 쭉정이……?!”
“오늘은 내가 기분이 좋으니까 그냥 가라.”
나름 배려해 준 말이지만, 문충은 마침내 참을성이 한계에 다다랐다.
이내 성큼성큼 걸어가 한 걸음을 앞에 두곤 우뚝 섰다.
“소오 군. 아무래도 우리의 첫날밤은 조금 미뤄야겠습니다. 오늘은 먼저 손 봐줘야 할 소자가 생겼군요.”
“후회할 텐데?”
후회? 그딴 건 애송이 들이나 하는 것. 문충의 눈에 시린 살기가 서렸다.
“후후후, 나 청동대장 문충. 소자께 세 수를 양보해 드리지요.”
“세 수는 무슨. 넌 한 수면 돼.”
“나 청동대장 문충의 몸은 양기로 다져져 강철보다 단단한…….”
“다.”
그때였다. 공자의 주먹에서 거침없는 열기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은.
“뭐지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일순 당황에 빠졌다. 하나 물어봤자 들려오는 대답은 하나였다.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