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306)
첩자의 마교생활-306화(306/350)
306.
#상봉
방립은 넙죽 엎드려 공손히 패를 올렸다.
그러자 천무기는 실로 대범한 척 씨익 웃으며 몸을 돌렸다.
“태사의에 앉아 칠공자가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지 날 대신해 지켜보거라.”
“뭐……?”
그야말로 치욕적인 일.
이건 대놓고 아랫것들 앞에서 수모를 겪으라는 것 아닌가.
“왜 싫으냐?”
“아니, 차려준 밥은 먹어줘야지. 성의가 있는데.”
하나 마오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이깟 시선 따위.
망나니로 살 때는 숱하게 겪었다.
“후후후. 그럼 맛있게 처먹거라.”
천무기가 비소를 흘리며 떠나간다. 그리고 방립은 서늘한 눈빛으로 태사의에 오르며 말했다.
“뭐 하십니까. 자리로 안 가시고.”
곳곳에서 조소 어린 눈길이 쏟아졌다. 성대한 환영식이 수모로 가득 채워지는 순간이었다.
*
한편 천무기가 떠나가고.
밖에선 산왕가에 밀려 보좌에서 하수인으로 전락한 유령마군이 수하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당주들의 사망 소식이 마침내 이곳까지 전해져 온 것.
“지금 뭐라고 했느냐……?”
“호룡당주가 사망했다고 합니다.”
“어디서?”
“그게 아직 자세히 알려진 것은 아니나 본원에서 죽은 듯합니다.”
유령마군의 붕대 너머로 안광이 번뜩였다.
뭐 이런 기막힌 일이 다 있단 말인가.
세상천지 천산 내에서. 그것도 호룡당 본원에서 당주가 죽었다는 게 말이 되는가.
“복상사라도 한 것이냐?”
여색을 워낙 밝히던 놈이었으니 그럴 수도 있다.
“아직 그것까진 확인이…….”
“이런 얼빠진 놈!”
제대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지 않은가.
실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나가라 손사래를 치려는 찰나였다.
“비룡당주 고길상이 사망하였다는 전갈입니다!”
“뭐?!”
유령마군의 두 눈이 번쩍 떠졌다. 하나 아직 끝이 아니었다.
수하는 침을 한번 삼키곤 떨리는 눈으로 정점을 찍었다.
“그리고 새로운 당주가 임명되었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헛소리냐! 대공자님께서 허한 적이 없는데 누가 감히 그딴 짓을!”
하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소식은 또다시 들려왔다.
“급보입니다! 금룡당주였던 만금수가…….”
“그러니까 왜-!”
유령마군이 저도 모르게 고성을 내질렀다.
이에 시끌벅적하던 주변이 일시에 조용해지고, 유령마군은 분노에 덜덜 떨며 눈을 부라렸다.
그러자 수하가 절망적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돌아오셨습니다.”
“뭐……?”
“부교주께서 돌아오셨다고 합니다!”
유령마군의 머릿속이 휘청거렸다.
이야기를 들은 주변 곳곳에선 커다란 술렁임이 일었다.
“뇌마(雷魔)께서 돌아왔다고……?”
“제대로 들은 거 맞아?”
“분명 부교주라고 했는데…….”
유령마군이 섬찟한 눈으로 주변을 흘겼다.
흔들린다. 대공자 천무기를 향한 충성의 철옹성이 무참히 흔들린다.
고작 부교주가 돌아왔다는 말 한 마디에.
“닥치거라! 고작해야 운이 좋은 놈일 뿐이다.”
유령마군이 언성을 높였다.
하나 3년 전 이를 직접 목도한 이들은 그의 말은 귀에도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두 다리가 덜덜 떨리고, 간이고 심장이고 쪼그라들 수밖에 없었다.
홀로 천라지망을 뚫고 회당까지 들어가 부교주 위에 오른 전설적인 사내.
시간이 지났다 해도 어찌 그를 잊을 수 있겠는가.
웅성거림은 더욱 커지고, 귀는 먹먹해졌다.
“빌어먹을.”
유령마군은 끝내 진정시키기를 포기한 채 생각을 정리했다.
당장의 혼란은 둘째치고 당주 셋이 바뀌었다. 이건 결코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천무기는 산왕가를 등에 업고 자신의 시대라 자부하고 있지만, 명분만 놓고 봐도 부교주가 위다.
언제든 빼앗길 수 있는 자리라는 얘기.
전해야 한다. 산왕가의 멍청이들은 이런 기본적인 정치조차도 모르는 머저리들.
당장 대공자의 옆으로 달려가 이 모든 사실을 알려야 한다. 어서 대책을 마련해야…….
그때였다.
웅성거리던 소음이 거짓말처럼 뚝 끊어지고, 서늘한 바람 아래 발걸음 소리만이 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유령마군의 떨리는 고개가 천천히 옆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보았다.
먼발치서 이쪽으로 걸어 올라오는 한 사내의 모습을.
또한 그를 뒤따르는 엄청난 무리의 행렬을!
“x발…….”
유령마군의 입에서 절망이 뱉어졌다.
*
그 시각 마오는 덩그러니 놓인 낡은 자리에 앉았다.
주변에서 수군대며 조롱하는 시선이 가득 느껴졌다.
염제 마오.
그의 명성이 드높아졌음을 부정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잘나봤자 무엇 하는가.
신하란 무릇 왕을 따르는 것. 아무리 날고 기는 명장이라도 천무기가 배척을 명했다면 그냥 배척당하는 거다.
“이놈들이…….”
노골적인 무시에 구유가 살기를 드러내며 나서려 하자.
“됐어. 하루 이틀도 아니고. 똥이 더러워서 피하냐.”
그럼 왜 피하는 거지?! 구유가 당혹에 빠진 사이, 마오는 식사를 시작했다.
“그래도 밖에서 먹는 것보단 낫네. 피 맛은 안 나. 구유. 너도 먹어 봐.”
참 속도 좋다. 구유는 얕게 숨을 뱉고는 고개를 저었다.
밖이라면 모를까, 어디 수뇌들이 가득한 자리에서 감히 주인과 겸상을 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 더 웃음거리가 되게 할 순 없다.
꼿꼿이 서서 비웃는 자들을 하나하나 기억해 주는 것이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
언젠가는 꼭 되갚아 주리란 다짐과 함께 인내하던 그때였다.
끼이이이익.
닫혀 있던 문이 조용히 열리더니.
저벅, 저벅.
이상하게 북적이는 장내임에도 누군가의 걸음 소리가 유독 귓가에 크게 박혔다.
그리고 그건 구유만 느낀 것이 아닌지 하나둘씩 모두의 시선이 입구 쪽으로 향했다.
저벅, 저벅.
그러자 흑립을 눌러 쓴 우월한 태의 사내가 유유히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누구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수뇌들은 의견이 분분했고.
“음?”
화염대장 방립 역시 낯선 이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하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또 인사를 올리러 온 수많은 수뇌 중 하나일 테니.
뻔하지 않은가.
지금은 자신이 천무기의 대행.
이내 오만한 미소를 지으며 턱을 괸 채 그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한데.
“음?”
사내는 방립이 아니라 정신없이 먹는 데 집중하던 마오 앞에 우뚝 섰다.
이게 무슨 경우인가. 수뇌라면 자신을 모를 리 없을 텐데.
오군장 중 넷째인 화염대장 방립이다.
한데 제게 인사를 와야 할 수뇌가 왜 마오 앞에…….
눈치가 없는 놈인가.
“뭐야?”
정작 마오도 이해가 안 되는지 제 앞에 서린 그림자에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뭘 또 혼자 드십니까. 정 없게.”
흑립을 벗으며 그가 자연스레 마주 앉는다.
“어……?”
“환영식이 있다길래. 그래서 왔습니다. 축하해 주려고.”
마오는 생각했다.
지난 3년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고.
수많은 적과 싸웠고, 또 생사의 고비도 수차례 넘겼다.
그럴 때마다 힘도 들지만, 늘 생각하던 게 있었다.
그 자식 오면 꼭 자랑해야지.
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제대로 보여줘야지.
그래서 그런가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었다.
하긴 어떻게 잊겠는가.
그 자식이 곧 제 혈육이고, 또 절 여기까지 오게 만든 녀석인데.
그러니까 이 녀석은 아주 괘씸한 녀석이다.
이런 식으로 어물쩍 나타나 사람들 앞에서 쪽팔리게 눈시울이나 붉히게 만들다니.
빠져 가지고.
“장이서. 이 빌어먹을 자식아-!”
벌떡 일어선 마오가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장이서는 씨익 웃으며 구유를 향해서도 눈인사를 건넸다.
‘잘 있었어?’
‘그럭저럭.’
무려 3년 만에 상봉이었다.
물론 길게 회포를 풀 만한 상황은 아니다.
“뇌, 뇌마다!”
“부교주가 나타났다-!”
수뇌들도 하나둘씩 알아보곤 밥 먹다 말고 벌떡 일어선 채 그를 연호했다.
순식간에 장내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뇌마 장이서.
3년 전 천산을 뒤엎고 사라져 버린 전설의 부교주!
그가 나타났다.
누구도 환영해 주지 않는 칠공자의 환영식에.
유일하게 그를 환영해 줄 첫 번째 손님이 되어.
“저자가 뇌마라고?!”
뒤늦게 그를 본 방립도 입을 떡 벌린 채로 경악했다.
자그마치 3년이라고 들었다.
그사이 아무리 찾아도 코빼기도 비추지 않던 자가 뜬금없이 여길 찾아온 것.
한데 그건 그거고.
방립은 고개를 갸웃하며 새로운 의문에 빠졌다.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지?’
입구에 진을 치고 있는 무사들만 수백이오, 그중엔 유령마군도 포진돼 있다.
비록 저들에게 밀려 좌천된 자이나 실력 하나만큼은 산왕가주에 버금가는 자.
한마디로 허락받지 않은 자는 절대 들어올 수 없다는 얘기다.
하나 상관은 없다.
“후후후……. 생각지도 못한 대어를 여기서 잡게 되는구나.”
자신은 화염대장 방립.
어차피 제 손에 무릎 꿇게 될 것이니.
부교주의 목이라면 그 어느 것보다도 큰 공이 될 터.
“그대가 뇌마인가?!”
방립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일갈하듯 물었다.
그러자 수뇌들은 합죽이처럼 입을 다물었다. 방립은 천무기의 대행. 실상 그가 왕이라는 얘기.
“이야기는 익히 들었다. 난 방립이다. 교주님께 대행 권한을 위임받았으니 하대를 해도 되겠지?”
딱 봐도 어이가 없는 말.
제깟 놈이 뭔데 감히 주제도 모르고 부교주에게 하대를 친단 말인가.
심지어 새외 부족 출신에 정식으로 입교한 자도 아니다.
하나 수뇌들 중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왜? 천산의 왕은 천무기니까.
한데.
“아는 놈입니까?”
장이서가 지나가는 개를 보듯이 묻는다. 이에 마오가 우하하!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세상에 지금 본교에서 오군장을 모르는 건 아마 장이서뿐일 거다.
순식간에 모르는 놈이 되어버린 방립은 화염대장이란 별호에 걸맞게 얼굴까지 시뻘게져서는 격노했다.
“감히 겁도 없이 까부는구나! 당장 요절을 내주마!”
방립이 벌떡 일어나 칼을 뽑아 들자 수뇌들도 뒤따르듯 거센 투기를 일으켰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
“이 새끼들이, 구유!”
이에 마오와 구유가 장이서의 앞뒤를 보호하듯 막아섰다.
확실히 3년이란 시간이 길긴 했는가 보다.
마오가 이리 대견해진 걸 보면.
그간 얼마나 많은 사투를 벌여왔는지 눈빛만 봐도 알겠다.
그야말로 감개무량.
이에 묵묵히 앉아 있던 장이서가 미소 짓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춘풍이 일 듯 나지막이 한마디를 뱉었다.
“칠공자님.”
“어? 왜!”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갑자기?!”
“예. 그리고 무사히 돌아오신 것을 경하드립니다.”
이내 허리를 숙이며 포권을 취하는 장이서.
“……!”
이에 모두가 어안이 벙벙해졌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인가.
분위기 파악이 안 되는 건가.
맥락이 안 맞지 않은가.
다 죽게 생긴 마당에 환영 인사라니.
“크큭…… 크하하하하하!”
결국 방립이 대소를 터트리고, 수뇌들도 낄낄 웃음을 뱉었다.
이런 병신이 다 있나.
방립은 고개를 저으며 역시라고 생각했다.
‘이런 놈이 부교주? 하긴 천산의 머저리들이 추켜세우는 게 뻔하지. 오늘 네놈의 부풀어진 허명을 끝장내주마.’
방립이 자신만만하게 코웃음 치며 싹 다 죽이라고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콰아아앙!
한순간에 문짝이 부서지며 주르륵! 사내 하나가 바닥을 쓸 듯이 밀려왔다.
“……!”
장내가 얼어붙고, 눈이 부릅떠진다.
이 중 가장 놀란 건 화염대장 방립이었다.
“유령마군?!”
붕대로 휘감은 유령마군이 흰자위만 남긴 채 미동도 없이 쓰러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