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309)
첩자의 마교생활-309화(309/350)
309.
#천무기의 결단
월하촌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무르익을 무렵.
수치심과 분노로 물든 이도 있었다.
“다시 지껄여 보거라.”
태사의에 흐트러진 자세로 앉아 씩씩대는 사내.
마오를 위한 진정한 환영식을 열어준 꼴이 되어버린 대공자 천무기였다.
“송구합니다. 광명천마대와 당주들이 들이닥쳤고, 무사들이 겁에 질려 미처 막아낼 수가…….”
“닥쳐라!”
팔걸이에 장식된 용머리가 떼어져 날아가 부복한 유령마군의 머리를 가격했다.
퍽!
붕대가 시뻘겋게 물든다. 억울할 법도 하거늘 묵묵히 침묵한다.
그의 충심이 엿보이는 자세.
하나 천무기의 눈엔 그런 건 일절 보이지 않았다.
“장이서가 돌아온 것도 모자라…… 감히 내 꼴을 우습게 만들어?! 도대체 네놈은 그렇게 될 때까지 무얼 한 것이냐!”
또 사군장이 당했고, 수뇌들은 모두 무릎을 꿇었다.
그것도 자신이 자리를 비우자마자!
세상 이런 치욕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하나 더 이상의 문책은 무의미한 일.
옆에 서 있던 산왕가주 파군성이 충언했다.
“중요한 것은 장이서를 결코 이대로 두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천무기의 눈에서 서슬 퍼런 살기가 스쳤다 사라진다. 맞는 말. 유령마군 따위 잡아 족쳐봐야 뭐 하겠는가.
“장이서…….”
지금 처리해야 할 놈은 바로 그놈이다.
3년 전, 그에게 패하여 봉문에 처한 뒤. 도대체 얼마나 그를 생각했는지 모른다.
감히 단언컨대 누군가를 극도로 사모해도 이 정도까지는 아닐 것이다.
자면서도 늘 그의 꿈을 꾸었고, 밥을 씹어 삼킬 때에도 생각했다.
“더 늦기 전에 바로 죽여야 합니다.”
산왕가주 파군성이 거침없는 제안을 던졌다. 이에 유령마군은 기겁하며 말렸다.
“대공자님, 그리 쉽게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염제의 실력도 생각보다 훨씬 뛰어나고 그리고 장이서에겐 알 수 없는…….”
솨아아아.
유령마군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저를 향해 떨어지는 스산한 시선.
당장 찢어 죽이기 전에 입 다물라는 점잖으면서도 과격한 신호.
꿀꺽. 끝내 마른침과 함께 말을 삼켰다.
이에 천무기는 눈을 부라리며 명했다.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거라.”
“대공자님…….”
“꺼져.”
유령마군은 파르르 떨고는 끝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보좌였던 자신이 도대체 어쩌다 이 꼴이 된 것인가.
슬쩍 곁눈질로 옆의 파군성을 살피자 비열한 몰골로 입꼬리를 올리고 있다.
‘저 찢어 죽일 놈…….’
구와 현 실세의 처지가 너무도 극명하다.
유령마군은 끝내 힘겹게 걸음을 돌렸다.
‘장이서…… 그놈을 조심하셔야 합니다.’
끝내 그의 기이한 살기(殺氣)에 대해선 입도 뻥긋 못한 채로.
유령마군이 나가자 파군성이 승자의 비소를 짓는다.
“너무 노여워 마시지요. 아직 쓸모가 있는 자입니다.”
“보좌라는 작자가 저 모양이니 내가 3년 전 그런 꼴을 당한 것이다. 장이서 그깟 놈이 뭐라고. 그놈은 강해서 날 이긴 것이 아니다. 교묘한 술수에 당한 것뿐이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니 더더욱 장이서를 없애야 합니다. 만일 이대로 두면 그가 어디로 갈 것 같으십니까.”
“……장로회겠지.”
천무기가 이빨을 질끈 물었다.
교칙상 장로회는 부교주의 직속 산하 기관이 된다.
그리고 마일성은 이를 빌미로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고 봉문을 택했다.
그깟 교칙 따위 바꾸면 그만인 것을.
시대에 뒤떨어진 무능아들!
심지어 그중엔 제 숙부인 이장로 천오산도 있었다.
‘뇌마는……. 아니, 부교주님은 결코 이길 수 없을 겁니다.’
아주 개 같은 저주만을 남기고 사라져 버렸지만.
“그러니 지금 치셔야 합니다.”
“하지만 광명천마대가 나섰다는 건 아버님께서 돌아오셨단 얘기가 아니더냐.”
“아닙니다. 천마전의 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다고 합니다.”
“음…….”
“생각해 보십시오. 시간이 흐를수록 명분을 쥔 장이서의 세는 더욱 거세질 겁니다.”
빠득. 천무기의 이빨이 세게 갈린다.
수뇌들을 제 밑으로 모아두기까지 자그마치 3년.
한데 공들인 성탑이 장이서의 등장만으로 흔들렸다.
광명천마대에 구(舊) 당주들. 그리고 염제와 칠무위까지.
이 정도면 마교 전력의 3할은 들이부어야 승산이 있는 수준.
더구나 박쥐처럼 무릎을 꿇은 수뇌들에게 무얼 더 기대하겠는가.
하지만.
“제가 힘이 되어드리겠습니다.”
천무기의 입꼬리가 길게 올라섰다. 그래. 지금 제게는 그가 있다.
지금의 절 있게 만들어 준 산왕가주 파군성.
이들과 함께라면 못 할 것도 없는 일.
이내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월하촌에는 괴물이 살고 있다.”
지금껏 마오가 염제라 신도들에게 떠받들어지며 치고 올라오는 동안에도 죽일 수 없었던 이유.
그건 바로 월하촌에 사는 괴물.
독마 양대헌 때문이었다.
천마대주든, 당주들이든, 염제든, 장이서든!
자신이 다 상대할 자신이 있었지만 그는 아니었다.
몇 년 전 취선루를 없애는 데 실패하고, 처소에서 잠이 들 무렵.
가위에 눌려 침음을 뱉다 눈을 번쩍 떴더니 청록빛의 운무가 스산히 바닥에 깔려 있었다.
이에 화들짝 놀라 벌떡 몸을 일으키자 귓가에 섬찟한 목소리가 들렸다.
‘월하촌에 발도 들이지 말거라. 지난번엔 네 수하들이었지만, 이번엔 너다.’
그제야 천무기는 양대헌의 존재를 깨달았고, 그가 흑화위를 없앤 진범임도 알게 되었다.
‘찢어 죽여버릴 것이다-!’
이에 격노하여 복수를 꿈꾸기도 했으나 제 밥상에 49일간 독이 올라오는 걸 보곤 그 뜻을 접었다.
그에겐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장벽이었던 것.
만일 독마가 아니었다면 마오는 영영 못 돌아올 서역으로 보내버렸든가, 아니면 진작 죽여 없앴을 것이다.
한마디로 지금 월하촌으로 간 장이서를 없애려면 우선 그 괴물부터 치워야 한다는 얘기.
“염려 마십시오. 괴물을 상대하려면 똑같이 괴물을 붙이면 됩니다.”
“음…….”
파군성의 말에 천무기가 침음을 뱉었다.
독마는 입신의 경지에 오른 자.
그와 같은 괴물은 역시나 화경. 또는 극마에 오른 절대자라는 얘기다.
그리고 그는 천무기도 이미 마주했었다.
거대한 대검(大劍)을 패용한 채 세상을 내려다보던 사내.
천마전의 괴물들을 제한다면 자신이 본 이들 중 가장 강했던 자다.
생각만 해도 오싹하고, 자신에게 둥지 밖에 천외천을 깨닫게 해준 자.
“그자라면 믿을 만하지. 도와만 준다면 말이다.”
“염려 마십시오. 혈교는 언제나 대공자님 편이니까요.”
혈교(血敎)!
파군성의 입에서 충격적인 말이 뱉어졌다.
그 말인 곧…….
“내가 본교의 교주에 오르는 날. 혈교와 너희 산왕가의 공로는 잊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천무기가 혈교와 손을 잡았던 것이다.
장이서의 예상대로 3년이란 시간은 이들이 음지에서 기어 나와 활개치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독마는 그믐날이 되면 만년설산 정상으로 향하지요. 그리고 거긴 곤륜산맥의 초한봉(初寒峰)과 아주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곳. 그날 독마가 죽어 사라져도 아무도 알지 못할 것입니다.”
파군성이 스산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야말로 하루 이틀 준비한 계획이 아니다.
더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에겐 이것이 있지 않습니까.”
이것. 파군성의 말에 천무기가 음산한 미소를 짓는다.
그러곤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영롱한 빛을 발산하며 음산한 기운을 내뿜는 어딘가 낯익은 핏빛 구슬.
혈옥(血玉)이다!
“그래. 이 혈옥만 있다면 상대가 누구든 날 넘어설 수 없을 것이다. 후후후.”
우우우웅!
천무기의 몸에서 거침없는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이에 동하듯 혈옥이 번쩍거린다.
그렇다.
천무기는 지난 3년간 그저 세만 키운 것이 결코 아니었다.
혈교의 마공을 익히지 않고도, 혈옥의 힘을 쓰는 법을 배운 것이다!
하여 신도들의 원한과 고통으로 혈기(血氣)를 가득 채웠다.
뇌옥왕의 것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지금의 그를 한 단계 더 올려주기엔 충분한 일.
“당장 혈교에 내 뜻을 전하거라. 마침내 시기가 도래했다고.”
마침내 천무기의 결단이 내려졌다.
“존명!”
3년간 쌓인 지독한 악연이 끝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 * *
고즈넉한 이른 아침.
장이서는 당주들과 천마대까지 각자의 위치로 돌려보낸 채 창가에 앉아 명상에 잠겼다.
3년 새 풀벌레 소리가 가득한 자연이 편해진 줄 알았거늘, 확실히 집은 집이다.
심신이 편안한 게 집중도 더 잘 되는 느낌.
우우웅!
곧장 운기조식을 취했다.
그러자 층층이 쌓인 각양각색의 내기가 차례로 움직인다.
흑색의 천마신공부터 녹색의 불사독마공. 황색의 남천능가경을 지나 주황색을 띠는 역근경까지.
하나만으로도 천하를 뒤흔들 네 개의 기운이 신룡(神龍)처럼 몸 안을 주유한다.
이중 과거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다섯 번째 층이 생겼다는 것!
그것도 죽음의 강처럼 짙은 회색빛의 기운.
천마 진우광이 창안한 귀천살마공(鬼天殺魔功)이다.
솨아아아!
기질을 바꿔야 한다는 그의 지론에 따라 이를 대성하면서 다섯 번째 천공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 광오한 마공에 대해선 두 글자로 정의할 수 있었다.
최악(最惡).
천마신공처럼 폭발적이지도 않고, 불사독마공처럼 독하지도 않으며, 남천능가경처럼 현묘하거나, 역근경처럼 강인한 것도 아니었다.
이건 그냥 악(惡)했다.
내기 자체가 살(殺)로 이루어져 조금만 운용해도 머리털까지 살의로 가득 채워졌다.
고오오오오!
지금도 그저 운기조식만 취했을 뿐이거늘, 장내가 살의로 물들었다.
이 정도면 평범한 범인은 호흡이 멎어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는 수준.
이러니 어찌 최악이라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특히 나중에야 알았지만, 귀천살마공을 익히는 것 자체가 굉장히 위험한 시도였었다.
사형은 본래 천살성(天殺星)을 품고 태어난 자로 날 때부터 살(殺)이 강했다고 했다.
산모가 죽고 태어났음에도 울지 않았고, 처음 발견한 이가 아기의 눈빛이 너무 섬뜩해 마교에 팔았다는 설은 유명했다.
그런 사형이 자신의 살을 녹여 만든 무공이 바로 귀천살마공이었다.
애초에 천살성이 아니면 익힐 수가 없는 무공이었던 것.
그러니 몸이 버티겠는가.
그야말로 살(殺)에 미친 살귀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심지어 사형은 그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따지듯 물었더니.
‘그것마저 이겨내는 것이 바로 역천이다.’
아주 천마만 아니었으면 살(殺)이 뭔지 제대로 보여줬을 것.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성공이었다.
귀천살마공을 대성한 후에도 이성을 잃지 않고 살의에 빠지지 않았던 것.
우우웅!
심장부에서 몰아치는 녹색의 기운.
항마의 기운을 가진 남천능가경 심궁의 힘이 반사적으로 정신을 보호해 준 것이다.
물론 그로 인한 문제도 생겼다.
기질을 완전히 바꾸려 했던 천마의 목표가 반만 성공하고, 반은 실패한 것.
쉽게 말해 귀천살마공으로 살(殺)을 일으키지 않으면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는 거였다.
덕분에 살기등등한 사제의 모습을 기대한 사형의 표정은 썩 볼만했다.
입을 벌린 채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으니.
그 후로 달마 조사의 무공을 익히게 된 배경부터 줄줄이 토해내야 했고.
‘크아아아악!’
한 달간 대련을 빙자한 고문을 겪어야 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평생 못 볼 사형의 표정을 볼 수 있었으니. 그건 평생 못 잊지.
그리고 얻은 건 하나 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