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31)
첩자의 마교생활-31화(31/350)
31.
“으, 으아아아악!”
마오는 날아드는 칼을 보며 당황한 채 뒤로 철퍼덕 넘어졌다. 그러자 챙그랑! 식탁 위의 그릇들이 바닥을 나뒹굴고, 창룡도는 아슬아슬하게 가슴 위를 지난다.
수명이 십 년은 줄은 기분.
하지만 위기는 이제 시작이었다.
거꾸로 뒤집힌 시야로 저를 보며 환히 웃는 천마의 모습이 보였다. 그것도 손가락을 쭉 내민 채 죽일 것처럼 지풍을 쏘아내는 양부 진우광의 모습이 말이다.
“x발…….”
핑!
희멀건 지풍이 식탁 위를 가로지르며 독침처럼 날아든다. 이대로면 몸을 뒤로 젖힌 마오의 정수리를 그대로 관통할 각.
어찌해야 하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은 하나뿐이다.
“으랴아아아!”
마오가 기합 같은 비명을 내지르며 척! 제 가슴 위를 스쳐 지나가는 창룡도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우웅! 동시에 본능적으로 막대한 극양의 내공을 폭발적으로 손아귀에 발출했다.
그러자 여태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기연이 펼쳐졌다.
우우웅!
‘억!’
창룡도의 칼날에 뜨거운 열기와 함께 난데없이 적광이 뿜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하나 더 놀라고 있을 틈은 없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지풍이 제 몸을 뚫고 지나갈 차례.
마오는 반사적으로 앞으로 몸을 튕기며 빙그르르 회전해 칼을 들어 몸을 가렸다.
그러자, 카앙-!
“카악!”
장내에 쩌렁쩌렁 굉음이 울리고 마오는 비명과 함께 뒤로 와당탕 나자빠졌다.
양기를 뿜어내던 창룡도는 파스스 식어버렸고, 마오는 쓰러진 채 제 몸을 더듬거리며 중얼거렸다.
“주, 죽었나?”
그럴 리가.
“아직 안 죽었으니 일어나거라.”
“헉!”
들려온 목소리에 마오가 벌떡 일어나 칼을 겨누었다. 전방을 살피자 진우광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식탁에 앉아 팔을 괸 채 바라보고 있다.
“내게 칼을 겨누고 산 자는 몇 되지 않는다.”
“아…….”
마오는 그제야 제 실수를 깨닫고 칼집 대신 딱 붙인 겨드랑이에 칼을 욱여넣었다가, 뜨겁다고 소리 지르며 챙그랑 바닥에 내던졌다.
그러곤 다시 후다닥 달려가 이를 주워 들곤 무릎을 꿇었다.
참 산만한 아이다.
진우광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창룡도에게 인정받았구나.”
“예? 인정이요? 얘가 저를요?”
“그래.”
마오가 황당함에 제 손으로 고개를 떨궜다. 쥐고 있는 창룡도가 아직 식지 않은 열기를 연기로 뱉어낸다.
뭐지, 이 기분은.
왠지 모르게 꽉 쥔 손아귀가 울렁이는 게 꼭 칼이 저에게 말을 건네는 느낌이다. 더 날뛰라고. 더 휘둘러 달라고.
신물이라더니 이제 보니 요물이다.
“내기를 다루는 게 꽤 능숙해졌더구나. 귀인이 가르쳐 준 것이냐.”
“아, 아니요?”
“내게 거짓을 고하는 건 죽여달라는 소원과도 같지.”
“맞습니다. 이게 다 그놈이 가르쳐 준 겁니다. 아주 파렴치한 놈입니다!”
“그러하더냐.”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에 진우광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예? 예. 아주 개새끼죠. 그렇긴 한데……. 아직 죽일 때는 아닙니다.”
신나서 욕할 땐 언제고. 의기소침해하는 마오를 보며 진우광은 다정히 답했다.
“네가 그 귀인에게 정을 많이 준 모양이구나.”
“그게…….”
“되었다. 네 말은 잘 알겠다.”
“가, 감사합니다!”
마오가 안도의 숨을 뱉으며 배시시 웃었다.
한데.
“그럼 증명해 보거라.”
진우광이 조각처럼 아름다운 턱선을 내리곤, 깨끗한 손톱을 살피며 말을 잇는다.
“그 귀인이 정말 살려줄 만큼 가치가 있는 자인지. 네가 직접 증명해 보거라.”
“그걸 제가 왜…….”
마오가 황당함에 되물었지만, 진우광의 서늘한 눈매에 금세 말을 정정했다.
“아, 알겠습니다! 한데…… 어찌하면 될까요.”
“다음에 올 때는 신물 없이 몸으로 막아보거라.”
“뭘…… 말입니까?”
진우광은 말없이 검지로 마오의 이마를 겨누었다.
설마…….
“아니시죠?”
진우광이 손을 거두곤 다시금 제 손톱을 살핀다.
“피해도 상관없고.”
“아까 그 지풍을 말입니까? 아니, 그걸 제가 무슨 수로…….”
“그 귀인이 정말 가치가 있다면 네게 방법을 알려줄 것이다.”
지금 이게 말인가, 방귄가.
“만일 못 피하면요?”
“그럼 나는 자식 하나를 잃게 되겠지. 물론 그 귀인이라는 자도 쓸모를 다한 셈이니 당연히 죽어야 할 테고.”
x발?! 아니, 왜 얘기가 이렇게 되는 건가.
“다음 조찬까지다. 원하면 지금 해도 좋고.”
솨아아아-
천마가 가리킨 손 끝에서 지독한 마기가 뿜어져 나온다.
“다, 다음에 하겠습니다! 반드시 피해 가겠습니다!”
“좋구나. 그럼 가보거라.”
“예!”
마오가 오락가락하는지 정신 못 차리고 문이 아닌 진우광을 향해 걸어간다. 이에 진우광이 턱짓하며 친절히 말해줬다.
“나가는 길은 저쪽이다.”
“예!”
돌아 나가는 마오. 한데 얼마 가지 않아 다시 휙 돌더니 다가와 속삭이듯 말했다.
“그런데 아버님.”
“음?”
“소인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냥 그놈을 죽이는 게 좋겠습니다. 언제고 제 발목을 붙잡을 놈입니다. 그 손부터 잘근잘근 썰어버리겠습니다.”
“……다음엔 꼭 피하거라. 나도 널 오래 보고 싶으니.”
“예……! 만세무광하십시오.”
마오가 포권을 취하곤 돌아 나간다. 진우광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사라진 뒤에야 중얼거렸다.
“……만수무강이다.”
* * *
‘이건……!’
한편 그 시각, 장이서는 천마전에서 제 목숨이 오고 가는 것도 모른 채 경악에 빠져 있었다.
이유는 하나.
‘도대체 무얼 했던 분이란 말인가…….’
호룡당의 초소 인근에 있던 우물에서 그의 흔적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뇌전법과 백뢰. 그리고 뇌군삼을 남겨준 전인.
바로 그의 흔적을 말이다.
‘이곳 우물에도 암어가 적혀 있다니…….’
처음 천마고를 발견했을 때와 똑같았다. 점자로 된 기형학적인 암어. 설마설마했던 일이 일어나 버렸다.
‘설마 호룡당의 무사였던 것인가?’
가능성은 있다. 어쨌든 이곳은 천마전 앞마당에 놓인 호룡당 초소.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은 아니다.
하나 이를 추적하기엔 너무도 오래전의 일.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하나다.
백문이 불여일견.
“……가보자.”
장이서가 암어에 적힌 대로 정확히 순서에 맞춰 튀어나온 벽돌을 하나씩, 하나씩 밀어 넣었다.
그르르르르!
그러자 미약한 진동음과 함께 벽들이 갈라지며 숨겨져 있던 길이 열렸다.
*
똑, 똑.
고인 물방울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음이 청천벽력처럼 커다랗게 들려온다.
우물 속 비로(秘路)를 들어온 지 일각쯤 되었을까.
안쪽은 횃불 하나 없이 어둡고, 갈수록 천장이 낮아져 숙여 걷다가 어느새 기어가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장이서는 이 길 끝에 분명 천마고와 같은 비밀 유적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해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갔다. 그리고 다시 또 반각의 시간이 지나서야 마침내 그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역시…….”
길 끝엔 예상했던 대로 횃대가 걸려 있던 것이다.
천마고다. 이곳에도 천마고가 숨겨져 있었다.
장이서는 떨리는 마음을 다스린 채 횃대를 딸각, 딸각. 옆으로 두 번을 돌렸다.
구르르르르릉!
그러자 진동과 함께 막혀 있던 벽이 열리며 밝은 광채가 뿜어졌다.
장이서는 이에 눈을 가리고 잠시간 빛에 적응했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레 몸을 숙여 안을 살폈다.
입구 위를 무언가가 가리고 있어 자세히 보이진 않는다. 하나 밝았고, 대략 이십 보 밖엔 벽이 자리했다. 안에 누가 있는지 확인할 수 없는 상황.
하지만.
‘꼭 봐야만 알 수 있는 건 아니지…….’
장이서가 바닥에 귀를 밀착했다. 누가 있는지 알아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로 소리다.
아무리 기척을 숨겨도 심장박동이 고스란히 바닥에 울림으로 전달되기 때문. 물론 이를 듣기 위해선 고도의 훈련과 재능이 필요하겠지만, 다행히 장이서는 둘 다 해당된다.
‘아무도 없다.’
장이서의 눈이 번뜩였다. 적어도 오십 보 내엔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정도면 나가볼 만하다.
후.
호흡을 가다듬고 엉금엉금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구르르르릉! 깜짝 놀랄 만한 굉음이 뒤에서 울렸다.
이에 황급히 뒤를 돌아보자 들어온 문이 사라져버렸다.
‘이런!’
벽을 짚어보지만, 개구멍은 언제 있기나 했냐는 듯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퇴로가 없어진 것.
‘남은 건 전진뿐이구나…….’
어차피 엎질러진 일. 장이서는 마른침을 꼴깍 삼키곤, 조심스레 기어가 마침내 온전히 바깥으로 나왔다.
그러자 확 트인 공간이 시야에 담겼다.
널따란 방. 북서쪽엔 기이한 문양이 서린 문이 하나 보이고, 사방을 둘러싼 테두리엔 온갖 약초들이 고이 눕혀진 다섯 층짜리 진열대로 가득했다. 개구멍을 가리고 있던 곳도 바로 이 진열대였던 것.
‘이것들은……?!’
그리고 이를 본 장이서는 경악에 빠졌다. 아니, 홀린 듯 다가가 눈을 감고 향취를 음미했다.
쓰으으읍, 하아.
고가(高價)다. 아주 값비싼 냄새가 난다.
향취가 곱고, 영롱한 기운이 가득한 게 어디 가서 천금을 주고도 구하기 힘든 영초(靈草)들이 분명했다.
도대체 이 많은 것들이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
아니, 그것보다도.
‘약재들의 보존 상태를 보건대 그리 오래된 것들이 아니다. 그럼…… 지금도 누가 이곳에 살고 있다는 건가?’
머릿속이 혼란으로 가득 찼다.
대체 누가.
설마 백뢰의 전인(前人)이 살아 있단 말인가? 그건 상상도 못 했던 가정이었다.
당연히 고대의 벽화를 보고 머나먼 과거의 인물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우선 더 조사해보자.’
장이서는 값비싼 영초들을 뒤로한 채 망설임 없이 앞으로 걸어 나갔다. 순간의 욕심에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드는 건 하수다. 취하더라도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취한다. 그것이 장이서가 오랜 시간 부를 축적한 비법.
최대한 벽에 밀착한 채 게걸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내 꽉 닫힌 문 앞에 다다라 가볍게 손을 얹었다. 한데 천천히 밀어봐도 문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설마. 마벽과 같은 원리인가.’
깊게 파인 기이한 문양과 푸르스름한 색감이 아주 낯익다. 장이서는 문밖에 귀를 가져다 대고 한참 기척을 살핀 뒤 가볍게 문으로 내기를 발출했다.
우우웅!
그러자 그려진 문양에 빛이 서리기 시작하고 드르르륵! 서서히 문이 좌측으로 밀려 열렸다.
‘됐다!’
역시, 마벽과 같이 내공에 반응한다. 장이서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곤 밖으로 나와 고개를 좌우로 돌려 살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복도.
슥. 장이서는 기척을 최대한 숨기곤 자연스레 밖으로 나왔다.
그르릉! 그러자 자동으로 문이 닫힌다.
‘정말 볼수록 놀랍구나. 고도의 기관진식이라니. 대체 누가 이런 것을…….’
모르겠다. 마교에 십수 년을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곳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 복도에는 자신이 나온 문과 똑같은 문이 다섯 개가 더 있다. 예상은 간다. 믿기지 않을 뿐.
‘설마…… 이곳에 모두 보물이 숨겨져 있다고?’
장이서가 침을 꼴깍 삼키고 옆의 문으로 다가가 똑같이 귀를 가져다 대보곤 내기를 발출했다.
드르르륵!
그러자 옆으로 문이 열리고 안쪽에선 눈부신 광채가 뿜어졌다. 정확히는 번쩍번쩍한 온갖 무구들이 야명주의 빛을 반사시킨 것.
‘미친…….’
장이서는 너무 기쁜 나머지 입 안에서 욕설이 머금어졌다. 입가는 벌써 귀에 걸렸고, 눈은 탐욕으로 어질어질했다.
이 무슨 횡재인가. 멀리서 살펴도 알겠다. 이곳에 있는 무구들은 벨 때 느껴지는 쾌감보다 발검할 때 타인의 시선에서 더 희열이 느껴지는 명품 중의 명품들.
드르르륵!
한동안 멍하니 지켜보자 정신 차리라는 듯 다시 자동으로 문이 닫혔다.
그리고 결정했다.
‘오늘부터 천마고는 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