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313)
첩자의 마교생활-313화(313/350)
313.
#탐닉의 시간
“흡?!”
천무기는 순간 귀청을 때리는 굉음에 화들짝 놀라며 주변을 두리번 살폈다.
분명 마귀의 포효가 들려왔기 때문.
‘내가 잘못 들은 것인가?’
일순 착각인 줄 알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바로 그때.
덜덜덜.
“무슨……?”
제 몸이 미친 듯이 떨리고 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손끝부터 시작된 떨림은 벌레처럼 타고 올라와 어느새 턱 끝까지 흔들렸다.
‘독?’
그럴 리가.
“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
퀴아아아아아!
제 앞에 자신 따위는 감히 마주할 수 없는 절대마귀가 서 있다는 것을.
“어, 어으으으…….”
천무기는 초점이 풀린 채 넋이 나갔다.
“왜 그러십니까?”
당황한 파군성이 달려와 묻자 덜덜 떠는 손으로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안 보이느냐. 저 마귀가…… 네겐 보이지 않는 것이냐?!”
“무슨…….”
뭐가 보인단 말인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말에 파군성이 고개를 돌렸다.
하나 그곳엔 장이서가 미소를 지은 채 서 있을 뿐. 마귀 같은 건 일절 없었다.
“뭐야, 왜 저래.”
마오와 칠무위도 이해가 안 되는지 모두 어리둥절했다.
그럴 수밖에.
지금 이 안에서 장이서의 진짜 모습이 보이는 건, 혈옥의 힘을 빌려 일시적이나마 입신지경에 오른 천무기밖에 없었으니.
‘퀴아아아아아!’
바로 눈앞에서 포효를 내지르며 날뛰고 있는 거대한 혈마귀의 성역(聖域) 말이다!
저벅, 저벅.
이윽고 걸음을 떼기 시작하는 장이서.
고오오오오!
그럴수록 그의 눈빛도 점점 살기로 가득해진다.
귀천살마공이다.
“무, 무슨.”
그제야 파군성도 이상함을 느끼곤 당황에 빠졌다.
성역은 볼 수 없어도 살기는 느낄 수 있기 때문.
그리고 그건 압도적이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날 때부터 전쟁터를 휩쓴 자신을 범 앞에 선 열 살배기 꼬마로 만들 만큼 폭력적이었고, 무서웠다.
마치 공기와 함께 사지가 얼어붙고, 세상의 모든 색이 바래 회색빛으로 변모하는 기분.
“으으으으…… 오, 오지 마!”
천무기는 완전한 공포에 휘감긴 채 뒷걸음질을 쳤다.
하나 늦었다.
그 말은 혈옥을 꺼내기 전에 해야 했다.
혈옥으로 빚은 혈기(血氣)는 혈마귀에겐 그 무엇보다도 달콤한 영약.
참아내기엔 너무 오래 굶주려 있었다.
하여 귀천살마공은 이미 펼쳐졌고.
혈마귀는 문을 열어 달라 아우성쳤으며.
장이서가 이를 수용해 주었으니.
그러니까.
‘탐닉의 시간이다.’
어느새 앞에 다다른 장이서가 섬찟한 눈으로 바라본다.
“으아아아아아아!”
천무기가 비명을 내지르며 일검을 그었다.
과아아앙-!
그러자 하늘에 서린 붉은 핏빛 태양에서 붉은 섬광이 수십 갈래의 포물선을 그리며 장이서를 향해 쏘아져 내렸다.
그야말로 신의 영역에 걸맞은 엄청난 힘!
“장이서-!”
뒤늦게 엄청난 기운을 느낀 마오가 다급히 소리친다.
하나 이미 막기엔 늦었다.
콰과과과광!
굉음과 함께 장이서의 육신에 동시다발적으로 꽂히고, 이내 붉은 아지랑이가 가득한 일검이 정수리 위로 떨어져 내린다.
‘역시 네놈에게 내가 겁을 먹었을 리 없다! 하하하하!’
동시에 천무기의 입꼬리는 크게 올라섰다.
그리고 이제 끝이라고 생각한 그 순간!
“어……?”
천무기는 보았다.
분명 혈기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야 할 장이서가 아주 멀쩡히 서 있다는 것을.
그것도 마귀처럼 불그스름하고 거대한 기운으로 가득한 손 하나만 뻗친 채 말이다.
‘어…… 어떻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
하나 너무 뒤늦은 물음이었다.
내리친 검이 장이서의 머리에 닿기도 전에.
파아아앗!
손아귀에 흡수되었던 혈기가 역으로 일장이 되어 쏘아졌다.
그것도 훨씬 더 강한 폭풍 같은 힘으로!
“카아아악!”
그대로 전신을 강타당한 채 한참을 날아가 버리는 천무기.
“커, 커헉…….”
와당탕! 한참 바닥을 뒹굴더니 새우처럼 굽어 연신 피를 토한다.
“대, 대공자님!”
뒤늦게 장이서의 살(殺)에서 벗어난 파군성이 눈을 부라리며 외쳤다.
“쳐라!”
하지만 실로 어리석은 판단.
퍽-!
차륜으로 달려드는 순간, 실로 끔찍한 결과가 벌어졌다.
투두둑.
“끄아아아아악!”
파군성을 비롯한 수하들의 팔이 그대로 잘려 나간 채 바닥에 떨어진 것.
칼도 놓지 못한 채로 말이다.
심지어 이를 제대로 본 사람도 없었다.
그나마 만안을 가진 전장의 용 구유만이 장이서의 두 팔이 움직였다는 걸 목격했을 뿐이었다.
물론 그마저도 귀신처럼 잔상만 흐릿하게 보인 것이지만 말이다.
저벅.
장이서가 고통에 움츠러든 산왕가를 무시한 채 앞으로 나아간다.
“으으으으…….”
이에 바닥에 쓰러져 있던 천무기는 지독한 겁에 질린 채 신음을 뱉었다.
도대체 어쩌다 이런 상황이 오게 된 것일까.
분명 자신은 3년 동안 오늘 이 순간만을 수만 번. 아니 수천만 번을 상상했었다.
하지만 이런 악몽 같은 결과는 그 어떤 상상 속에도 없었다.
늘 이기는 건 자신이었고, 울면서 비는 건 장이서였으니까.
그런데 왜…….
“사, 살려다오.”
어째서 자신이 애처로이 빌고 있는가.
“제발…….”
어째서 제 눈에서 이리도 끔찍한 눈물이 흐르고 있는가.
어째서…….
어째서 자신이 아닌 장이서가 섬찟한 미소를 짓고 있단 말인가!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했다.
지금 손을 뻗고 있는 저자는 자신이 알던 장이서가 절대 아니라는 것.
저건……. 절 잡아먹을 마귀라는 것을 말이다!
“으, 으아아아아아악!”
장이서가 손을 뻗치자 천무기의 몸에서 붉은 혈기가 뽑혀 나온다.
솨아아아아!
하늘에 서려 있던 태양 같은 성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모조리 집어삼키듯 그의 손안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3년을 준비해 온 노고가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억겁 같던 찰나의 시간이 흐르고.
“꺼어…….”
천무기는 생령이 다 빠져나간 목내이처럼 변해버렸다.
힘이 넘치던 흑발은 백색이 되었고, 젊기만 하던 피부는 중년을 넘긴 것처럼 주름이 가득해졌다.
“어으…….”
탁해진 눈빛은 누가 봐도 정신이 나가버린 모습.
혈기가 뇌수까지 뻗친 상태에서 본래 지니고 있던 기력까지 모조리 빼앗긴 탓에 벌어진 대참사였다.
대공자의 실로 허망하고도 참담한 최후.
반면 장이서는…….
씨익. 희열에 찬 표정으로 무섭게 웃고 있었다.
뇌옥왕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이처럼 강한 혈기를 흡수한 것은.
“마음에 들어.”
덕분에 지금 장이서는 완전히 혈마귀와 하나가 된 상태.
아니, 원래보다 더 강해져 버렸다.
그리고 그 파장은 고스란히 주변에 드러났다.
고오오오오!
귀천살마공의 살기가 요동을 치자 마른하늘에 먹구름이 서리고, 스산한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한 것.
천마의 존재에 하늘이 노하듯이, 장이서한테도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세상의 질서를 무너뜨릴 마귀의 탄생을 예고라도 하는 것처럼.
“장이서……?”
이에 이상함을 느낀 마오가 그의 이름을 부른다.
평소와 너무도 다른 섬뜩한 분위기.
그에게서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웃고 있는 표정은 딱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모조리 다 죽이리라.
전부 없애주리라.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다.
“마오 물러나라.”
오죽하면 구유조차도 위기감을 느끼고 마오의 앞을 가로막았다.
고오오오오!
그렇게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고조되던 그 순간.
“큭……?”
장이서가 일순 야차처럼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제 심장을 움켜쥐었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부에서 청록빛의 영롱한 기운이 태동을 시작한 것.
남천능가경이다!
“안 돼-!”
장이서가 다급히 소리쳤다.
아직 제대로 시작도 못 했는데.
아무도 죽이지 못했는데!
우우웅!
장이서의 손아귀 위로 혈마귀의 붉은 혈기가 손톱처럼 희미하게 자리 잡는다.
뭐든지 다 찢어버릴 것 같은 엄청난 기운!
이내 살광을 번뜩이며 겁에 잔뜩 질린 산왕가 무사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단숨에 휩쓸어 버리려던 그 순간.
‘여기까지다.’
내면에서 정대한 목소리가 심판의 못처럼 심장에 박혔다.
“크윽……!”
장이서가 휘청거린다. 깨질 것 같은 두통에 관자놀이를 붙잡았다.
그리고 그사이.
“마, 막아라! 무조건 막아야 한다!”
팟! 파군성이 수하들과 천무기를 뒤로한 채 몸을 날려 도주했다.
“이 새끼들이……! 잡아!”
와아아아아!
마오의 명에 다시금 시작되는 무사들의 난전.
“야, 장이서 괜찮아?”
마오가 한숨을 내쉬곤 가까이 다가와 조심스레 묻는다.
그러자.
“……예. 다행히도요.”
장이서가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살기로 가득하던 눈빛은 사라지고, 어느새 단단한 원래의 눈으로 돌아와 있다.
이에 마오가 숨을 뱉으며 웃었다.
“놀랐잖아.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말하자면 길다. 혈마귀가 흡수한 힘이 생각보다 커서 잠깐이나마 이지(理智)가 흔들린 것.
남천능가경이 금세 바로 잡긴 했지만 그래도 위험할 뻔했다.
아무도 다치지 않아 천만다행.
아무튼 그것보다도.
“산왕가주를 잡아야 합니다. 그자가 혈교의 첩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장이서의 말에 마오도 고개를 끄덕였다.
“구유가 갔으니까 걱정 마.”
마오는 말을 마치곤, 슬쩍 넋이 나간 채 체액을 흘리며 앉아 있는 천무기를 살폈다.
“저 자식은…….”
아마 죽지는 않을 거다. 잘 먹고 쉬다 보면 기력도 금세 회복될 테고.
다만.
“제정신으로 돌아오긴 힘들 겁니다.”
혈옥은 타인의 선천진기를 모아 만든 원한의 결정체.
한데 이를 혈마공도 제대로 익히지 않은 자가 다루다 탈이 났으니…….
“멍청하게 혈교랑 손이나 잡고. 참 지랄 같은 최후네.”
마오가 시원섭섭하다는 듯 말한다. 어찌 됐든 제 형제였던 자. 썩 편치는 않을 거다.
“아, 맞다. 독마 영감!”
잠시의 침묵 끝에 마오가 떠오르는 게 있는지 손뼉을 치며 소리쳤다.
“저 자식이 독마 영감이 곧 죽을 거라고 했었어! 아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혈교랑 손을 잡은 거면 이거 위험한 거 아니야?”
장이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평소라면 그저 코웃음 치며 반응했을 거다.
천하에 독마를 해할 수 있는 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 일.
하지만 천무기는 혈교와 손을 잡았다. 그리고 혈교에는 놈들이 있다.
‘혈존…….’
자신이 만났던 혈존과 서패왕.
그들이 나선다면 독마 사숙이 위험할 수도 있다.
“가봐야겠습니다.”
“잠깐, 나도 같이 가!”
“아뇨. 칠공자님은 여기 남아 뒷수습을 해주십시오.”
마오가 이를 꽉 깨물곤 주변을 살폈다.
신도들은 겁에 질린 채 벌벌 떨고 있고, 월하촌은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젠장……. 알았어. 조심해.”
마오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에 장이서도 마주 고개를 끄덕이곤.
파앗!
순식간에 자취를 감춰버렸다.
마오는 황당한 표정으로 그의 빈자리를 살피곤 이내 당당하게 외쳤다.
“혈교의 잔당들이다! 한 놈도 빠지지 말고 싹 다 조져-!”
마오오오오오-!
칠무위의 함성과 함께 다시금 피 튀기는 접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