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316)
첩자의 마교생활-316화(316/350)
316.
#왕이 돌아왔다
칠소궁이 결연한 의지를 다지던 그 시각.
유령마군 환사는 일소궁 흑화원에서 도저히 믿기 힘든 현실을 마주하고 있었다.
“대, 대공자님.”
목내이처럼 폭삭 상한 몰골에 헛것을 보듯 풀려버린 초점.
“어으…….”
옹알이같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까지.
단 하루 만에 자신의 주군이 미쳐서 돌아와 버렸다.
이유는 뻔했다.
“장이서…….”
그에게 당한 것이다. 조심해야 한다고 어떻게든 전했어야 했거늘.
무슨 일이 있어도 따라갔어야 했거늘.
자신의 망설임이 이리 만든 것이다.
빠득.
이빨이 갈리고 두 눈에선 시퍼런 안광과 참회의 눈물이 뿜어져 나왔다.
“크흑…….”
옆에 있던 수하는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파묻은 채 보고를 올렸다.
“칠소궁의 연통을 받고 갔을 땐, 이미 대패한 상태였고 산왕가주도 사라진 뒤였습니다.”
“사라져? 감히 대공자님을 버려두고 도망쳤다는 말이냐.”
“그렇사옵니다.”
크아아아아아!
유령마군의 처절한 포효가 울려 퍼진다.
“파군서어어어엉-!”
이 분노를 대체 어찌한단 말인가. 주군을 놔두고 저만 살겠다고 빠져나갔다니.
“한데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유령마군이 실핏줄이 터진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말하거라!”
“산왕가주가 혈교의 사람이었고, 대공자님께선 이를 알고도 손을 잡으셨다는…….”
“감히 누가 그딴 헛소리를 지껄인단 말이더냐!”
솨아아아!
유령마군의 몸에서 압도적인 살기가 뿜어지자 수하는 숨이 턱 막힌 채 바짝 엎드렸다.
하지만 할 말은 해야 했다.
“이미 월하촌에 대공자께서 혈교의 마공을 펼치는 걸 목격한 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닥치거라!”
콰아아앙! 결국 유령마군의 손에서 거침없는 장력이 뿜어졌다.
부복한 수하의 옆자리가 움푹 파인다. 맞았다면 즉사했을 수준.
하지만 차마 수하를 없애진 못했다.
마음이 여려져서가 아니다.
언행과 달리 그의 뇌리에는 지금껏 이해되지 않았던 수많은 대공자의 모습들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
무공을 수련할 땐 반드시 제게만 호위를 서게 했던 그가 한 발짝도 다가오지 못하게 한 것.
주변을 교인이 아닌 새외의 인물로 등용한 것.
일소궁에서 3년 동안 신도들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버린 것.
만일 이 모든 것이 혈교와 손을 잡았기 때문이라면…….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대공자님께서 절대 그럴 리 없다. 찢어 죽일 놈들이 모함하는 것이다. 대공자님의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명예마저 실추시키려는 것이다!’
유령마군은 수없이 떠오르던 의심을 지워냈다. 그러곤 이를 꽉 깨문 채 물었다.
“장이서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오늘 천마전으로 향한다고 들었습니다.”
“흑폭위(黑爆衛)를 불러라.”
“……!”
수하는 고개가 번쩍 들어 올렸다. 흑폭위라면 유령마군이 비밀리에 과거 흑화위의 명예를 대신하기 위해 키우고 있던 자들.
기존과 다른 게 있다면 단 하나.
금기시될 만큼 위험한 마공인 폭사공(爆死功)을 익혔다는 것.
이름 그대로 스스로를 폭발시켜 상대와 공멸하는 마공이었다.
그들을 부르라는 이유는 단 하나.
“죽일 것이다.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반드시 놈을 죽일 것이다. 죽일 수 없다면 그 주변 것들이라도 없애버릴 것이다.”
유령마군의 살벌한 거사가 시작되었다.
* * *
– 월하촌 칠소궁.
일소궁에서 위험천만한 암계가 꾸려지는 사이. 장이서는 천마전으로 돌아갈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그냥 이대로 간다고?”
방까지 쳐들어온 마오가 의자에 앉아 창룡도를 괴고 의문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예.”
“아무것도 안 하고?”
“예.”
“하!”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마오는 답답함에 한숨을 크게 뱉었다.
“천산을 바로 잡겠다며.”
그랬지.
“근데 그냥 이대로 휙 가버리면 어떡해. 천무기 밑에 있던 놈들이 딴짓 못 하게 일망타진하든가 해야지. 그놈들이 얼마나 영악한 놈들인데.”
얘 봐라. 눈매를 좁힌 채 마오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뭐.”
“많이 컸어.”
“야, 장이서!”
픽 웃고는 걱정 말라는 듯 말했다.
“염려 마십시오. 본교가 괜히 본교겠습니까. 억지로 돌려세우려고 하면 말 더 안 듣습니다.”
“아니, 그렇다고 이렇게 그냥 가면 어떡해. 가는 길에 습격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그건 그거대로 좋고. 옷매무새를 다듬고는 씨익 웃은 뒤 밖으로 나섰다.
“야, 장이서!”
이내 대문으로 향하자 식솔들이 기다리는 모습이 눈에 담겼다.
“다녀오겠습니다.”
가볍게 그들에게 인사를 건네곤 길을 나섰다.
“같이 가!”
결국 마오와 칠무위는 호위를 자처하며 함께 했다.
“이제라도 돌아가자.”
“진짜 그냥 가?”
“갈 거야?”
“너 똥 밟았어.”
어떻게든 멈춰 세우려고 되는 대로 질문을 던져보지만, 장이서는 요지부동.
‘이래 갖고 도대체 뭘 어떻게 바로 잡겠다는 거야.’
사실 그렇지 않은가.
이곳은 마교. 야욕으로 가득한 마인들 천지다.
이렇게 허술하게 움직였다간 누가 또 무슨 짓을 해올지 모른다.
한데 천마전에 간다고 동네방네 소문은 다 내놓고 만사태평하게 세월아 네월아 기어가다니.
그야말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일!
하지만 불신도 잠시.
첫 번째 관문을 지나면서부터 마오는 뭔가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허허허, 오셨습니까. 부교주님.”
금룡당주 황금 거북이 만금수.
그가 품격 있는 예복을 갖춰 입은 채 수하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던 것.
심지어 장이서를 위한 멋들어진 피풍의와 커다란 흑마까지 준비하고서 말이다.
“고맙게 받겠소.”
심지어 장이서도 이미 예상했다는 듯 피풍의를 어깨에 걸친 채 말에 올랐다.
그리고 다시 떠나는 여정.
놀라움은 이제 시작이었다.
“오호호! 참 늦게도 오십니다.”
두 번째 관문에서는 묘채경과 비룡당이 합류하였다.
“우리, 왔다.”
세 번째 관문부터는 방첩대부터 군소 세력들이 따라붙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마오는 비로소 뭔가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인지했다.
장이서가 천마전으로 향한 것뿐이었다.
한데 습격은커녕 수많은 이가 마중을 나와 장이서를 보필했다.
그리고 마침내 천산채에 도착했을 땐.
와아아아아아-!
온점처럼 가득 채워진 신도들의 함성이 자신들을 맞이했다.
‘이거였구나.’
그제야 마오는 깨달았다.
장이서가 괜찮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애초에 그는 알고 있었던 거다.
천무기가 무너진 순간 자신에게 대항할 존재는 더 이상 이곳 천산에 없다는 것을.
3년 전 모두에게 자신의 능력을 입증했고, 또한 3년 후엔 천무기를 하루 만에 몰락시켰다.
입지전적인 행보.
그런 그에게 누가 감히 칼을 들 수 있겠는가.
이곳은 미치광이 마인들이 서식하는 마의 소굴임과 동시에 힘 앞에 진심으로 충복하는 강자지존의 마교였으니.
그러니까 이건 왕의 귀환이었다.
뇌마 장이서라는 천산의 왕이 돌아왔음을 알리는 공식 행보였던 것.
해서 천마전으로 향한다는 말 한마디면 되는 거였다.
그럼 알아서 기어 나와 그의 앞에 복종을 맹세할 것이니.
‘대단해……!’
그리고 마오는 그런 장이서의 위풍당당한 뒷모습을 보며 커다란 전율을 느꼈다.
아버지에게서, 형에게서 느껴보지 못한 본받아야 할 어른의 향취를 느껴버린 것.
이는 새로운 감정이었다.
동경이라는 찬란하고도 떨리는 감정.
물론 이런 장이서의 모습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은 건 마오뿐만이 아니었다.
“어, 어째서……?!”
흑폭위를 이끌고 기습을 준비하던 유령마군 환사.
그도 이 안에 있었다.
신도들 사이에 숨어 기습을 노리던 그는 멍해진 시선으로 장이서의 위엄을 지켜봐야 했다.
“어찌할까요.”
뒤늦게 다급함을 느낀 수하의 재촉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명령을 내리려 하였으나…….
“오래 기다렸습니다, 부교주님.”
천산채 입구에서 그를 기다리던 일곱 명의 절대자에 결국 입을 다물어야 했다.
칠장로 이두쌍마 양요와 양유.
육장로 독산마의 사마균.
오장로 팔마객 광교.
사장로 백귀신마 몽유.
삼장로 신창마귀 맹철용.
이장로 마선 천오산.
일장로 북명마군 마일성.
“늦었습니다.”
그들이었다. 3년간 숨죽이고 있던 칠대장로. 그들이 봉문을 깨고 나온 것이다.
그것도 천마를 알현할 때 입는 피풍의까지 갖춰 입은 채.
이게 무슨 뜻이겠는가.
“보좌님!”
수하가 떠나가는 장이서를 보며 다급히 외쳤다.
하나 그는 진심으로 깨달아버렸다.
대공자를 믿었었다. 본산의 태양은 오직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장이서는 그런 대공자를 밀어내려는 간악한 무리일 뿐이라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대공자가 당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며.
장이서가 대공자를 모함할 이유도 없었다.
그냥 자신들은 저무는 달이었고, 장이서는 월동을 마치고 떠오르는 태양이었다.
그게 다였다.
이젠 자신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위대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대체 언제부터.’
모르겠다. 3년 전?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저 눈이 멀어 보지 못하였을 뿐.
파르르 떨리는 눈으로 그의 마지막 모습을 담았다.
그리고.
“……대공자님께 돌아간다.”
유령마군이 몸을 돌렸다.
이어서 결심했다. 죽는 순간까지 다시는 세상에 나타나지 않기로.
일평생 대공자만을 보필하며 은둔한 채 살아가기로 말이다.
‘장이서. 이젠 너의 시대로구나.’
그렇게 유령마군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천무기의 시대가 끝이 났음을 스스로 증명한 채.
그리고.
“장이서! 장이서!”
신도들의 연호와 함께.
부교주 장이서의 시대가 개막되었다.
*
장이서가 천마전에 입궁했다.
신도들은 오늘을 역사적인 날로 기억했다.
칠대장로와 당주들. 이 밖에도 수뇌들이 모두 모여 고개를 조아리던 모습은 그야말로 경이 그 자체.
어디 그뿐인가.
호룡당 앞에서 구유와 칠무위가 멈춰 서고, 마중 나온 천마대주가 이를 이어받듯 호위하던 건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단 한 번의 행보로 천산은 이제 부교주의 차지가 되었음을 증명한 셈이다.
그리고 이는 당연하게도.
“교주님께서 내리신 임무를 훌륭히 완수하셨군요.”
천마의 시험을 통과했다는 방증.
“받으시지요. 마땅히 지닐 자격 있으십니다.”
장이서는 우사가 건네는 흑옥함(黑玉函)을 열어 그 안에 든 반지와 장신구. 그리고 칠흑빛 완갑을 착용했다.
천마전의 어디든 출입과 이용이 가능한 천마환과 직속 산하 부대를 다루는 천마령.
그리고 가장 기대가 컸던.
‘흑뢰.’
사형이 사부를 기리며 만들었다는 흑뢰다.
확실히 투박하고 단출했던 백뢰와 달리 새겨진 문양부터 섬세함과 화려함이 느껴지는 게 천마의 성정이 묻어 있었다.
“후후, 마음에 드십니까.”
옆에 선 좌사의 물음에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들다마다.
당장 뇌전법을 일으켜 어디든 쏘아보고 싶을 정도다.
외관도 마음에 들었다.
첩자로 살아갈 때를 생각하면 튀지 않는 백뢰가 더 나았겠지만, 가면을 벗고 나니 이게 더 낫다.
“집무실로 안내하겠습니다.”
“그럽시다.”
한껏 좋아진 기분으로 가볍게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