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317)
첩자의 마교생활-317화(317/350)
317.
#부교주의 기적
우사를 따라 도착한 곳은 드넓은 공동.
바닥의 석판엔 천마귀를 형상화한 문양이 크게 새겨져 있고, 벽에 걸린 화로에는 푸른 불꽃이 일렁인다.
그리고 끝의 낮은 계단 위에 놓인 태사의에는 손잡이에 마귀 머리가 인각 되어 웅장함과 기괴함을 자랑했다.
“앞으로 용무는 이곳에서 보시면 됩니다.”
고개를 끄덕이자 좌사와 우사는 얼른 가서 앉아보라는 듯 태사의를 가리켰다.
이에 떨떠름히 걸어가 태사의 대신 계단 위에 앉았다.
아무래도 익숙하지가 않았기 때문.
한데.
훅! 그 즉시 좌사와 우사가 납작 엎드린 채 고개를 파묻었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천마환과 천마령. 그리고 천마신패를 지니신 이상 부교주님께선 본교의 지존과도 같으시지요.”
“그래서요?”
“한데 그리 낮은 곳에 앉으시니 저희가 몸을 낮추는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다소 놀랐다. 광명사자는 누구보다 교리에 엄격한 자들이라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익숙하지 않아도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도.
실수를 인정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태사의에 올랐다.
“됐습니까?”
그러자 두 사람이 일어나 가지런히 손을 모으곤 씨익 웃는다.
“훌륭하십니다.”
헛웃음이 뱉어졌다. 마치 삼공(태자의 스승들)을 마주한 태자가 된 기분.
“앞으로는 존체를 다루심에 주의하셔야 합니다.”
“부교주님께서 몸을 낮추면 상대는 더 낮추어야 하는 것이 본교의 질서입니다. 어느 곳에서도 스스로를 낮추지 마십시오.”
정파의 기조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잔소리지만, 그들의 말을 허투루 듣진 않았다.
피로 가득한 마인들의 길을 답습할 생각은 없지만, 부교주라는 삶에 가벼이 임할 마음도 없기에.
“그러지.”
하여 조금은 더 딱딱하고 차가운 어투로 두 사람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에 좌사와 우사의 미소도 더욱 짙어졌다.
“지난 3년간 대공자가 행했던 것들입니다. 정세를 살피는 데 도움이 되실 겁니다.”
좌사가 품에서 서책 하나를 꺼내 올렸다. 이를 받아 살피자 지난 3년간의 일지가 빼곡히 기록되어 있었다.
“이걸 전부 직접 기록한 거요?”
“천산을 둘러보는 것도 저희의 역할이니까요.”
확실히 대단하긴 한 자들이다.
이 커다란 천마전을 단둘이 모두 관리하면서도 천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니.
심지어 둘의 무공 실력이 신의 경지에 다다른 것까지 감안하면 그야말로 만능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자들.
살아있는 전설인 1세대 인물들다운 면모다.
스륵.
어쨌든 감탄은 여기까지.
좌사가 올린 천무기의 행적을 빠르게 읽어 나갔다.
천무기는 태어났을 때부터 제왕의 길을 걸어온 자.
잠시 미쳐 혈교와 손을 잡았지만, 그래도 몇몇 가지는 곧잘 관리를 해 왔다.
수뇌들도 잘 챙겼고, 새외 세력과의 교류를 통해 오히려 금고는 더 불어났다.
장로회의 도움이 없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확실히 능력은 나쁘지 않았던 것.
다만 그의 가장 큰 문제는 이거였다.
정작 신도들을 굶주리게 했다는 것.
제 살 깎아 먹듯 이것만으로도 그의 행적은 역대 최악으로 기록될 수준.
‘교의 자산은 늘었는데 신도들은 더욱 궁핍해졌다.’
바꿔 말하자면 일부러 그랬다는 얘기.
대체 무얼 위해서.
‘대부분의 비용은 광물과 무기의 생산으로 이어졌다. 대곡고에 누적된 식량은 이미 두 해 분을 넘겼고, 마사(馬舍)의 말도 급증했어.’
이게 무슨 뜻이겠는가.
‘전쟁(戰爭).’
천무기는 어이가 없게도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던 거다.
신도들을 굶주리게 한 이유도 뻔했다.
부족한 삶에 찌들어 갈수록 독기로 가득 채워질 터.
중원의 비옥한 토지를 빼앗겠다는 명분이면, 모두가 앞장서서 달려들 게 뻔했다.
그럼 이렇게까지 하려고 했던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굳이 듣지 않아도 뻔했다.
‘혈교. 놈들이 계획한 거다.’
아마 이를 대가로 천무기와 밀약을 한 것일 터.
그에겐 힘을 빌려주고, 반대로 세상을 전란에 빠트린다.
그리되면 천무기도 사형 몰래 벌여놓은 짓들을 자연스레 묻을 수도 있고.
이래저래 둘의 성정을 가늠해 보면 이보다 찰떡궁합도 없었을 거다.
‘만일 내가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
더 큰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닐 거라는 거다.
툭. 서책을 덮고는 이를 다시 좌사에게 건넸다. 그러자 좌사가 눈매를 좁히며 말했다.
“다 보신 겁니까?”
너무 대충 본 게 아니냐는 반어적 물음. 이에 거두절미하고 답했다.
“두 사람도 알고 있었습니까?”
“무엇을 말입니까.”
“대공자가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
그러자 오므렸던 좌사의 눈이 번쩍 떠졌다. 이 찰나에 거기까지 알아냈다는 것에 경악해 버린 것.
감탄을 터트리며 이실직고했다.
“맞습니다. 대공자는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걸 알고도 가만히 놔둔 거요?”
“부교주님께서 오시길 기다렸지요.”
하, 그게 말인가.
“내가 더 늦었으면 어쩌려고.”
“그럼 부교주님께서 할 일이 더 많아지셨겠지요.”
미친. 너무 어이가 없어서 쳐다보자 두 사람이 걱정 없는 미소를 짓는다.
깜빡했다. 이들이 누구인지.
천마가 마의 신이라면 이들은 그 신을 보필하는 최강의 마룡(魔龍).
아마 마교에서 사형 다음가는 미치광이들이 바로 이들일 거다.
“이제부터 모든 걸 정상으로 되돌리시면 됩니다.”
그럴 생각이다. 아니, 그래야만 하겠다.
“물론 쉽지만은 않으실 겁니다. 지난 3년간 대공자가 지나온 발자취가 작지만은 않을 테니.”
좌사와 우사의 입가에 얄궂은 미소가 서렸다. 어찌 해결해 나가는지 어디 한번 지켜보겠다는 표정.
그래. 분명 쉽지는 않을 거다.
“어디 가십니까.”
태사의에서 내려오자 좌사가 묻는다.
이에 스쳐 지나며 툭 뱉었다.
“되돌리러.”
하지만 그 쉽지 않은 걸 해내는 게 장이서다.
부교주로서의 활약은 이제부터였다.
*
천마전에 돌아온 이후의 나날은 정신없이 바빴다.
“오늘부터 신도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십시오. 누구도 부족함이 없도록.”
가장 먼저 금룡당주에게 대곡고의 문을 열도록 하였다.
수뇌들이 성탑이라면 신도들은 대지.
그들의 굶주림은 결국 근간을 흔들고 모든 걸 무너뜨릴 것이다.
“앞으로 교내의 소사는 본래 하던 대로 일장로께서 관리해 주십시오.”
이어서 행한 일은 흐트러진 관리 체계를 돌려세운 것.
그리고 지금 가장 중한 것은 빠른 안정과 단합.
잡음이 들리지 않도록 과거 본교의 실세들을 모두 복직시키는 쪽을 택했다.
“후계들에게도 이젠 모두 복귀해도 된다고 알려주시고요.”
“예. 그리하지요.”
물론 전부 너그럽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쳐라!”
천무기가 들여와 신도들을 핍박하던 마인들과 양심까지 팔아넘겼던 수뇌들에겐 자비 없이 도륙을 명했다.
일말의 아량도 없었다.
죄가 많거나 큰 자들은 도리어 보란 듯이 효수하였다.
“끄아아아악!”
매일 같이 비명이 끊이질 않았고.
“부교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다!”
반면 찬양도 끊이지 않았다.
경외(敬畏).
장이서는 자신의 기조를 그렇게 잡았다.
평화의 이면에 공포를 새겨 누구도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덕분에 마교는 놀라울 정도로 빨리 안정을 되찾아 갔다.
그야말로 부교주의 기적이었다.
*
이른 새벽.
장이서는 천마전 정상에 앉아 명상에 잠겼다.
정신없는 정사(政事)를 마치고 오랜만에 취하는 휴식.
이곳은 천마가 가장 애용하던 장소라고 했다. 이유는 단번에 깨달았다.
천산에서 가장 흉험한 마기(魔氣)가 넘쳐흐르는 명소였으니.
후.
가볍게 숨만 들이켜도 폐부에 묵직한 돌덩이가 들어설 만큼 고강했다.
정공 수련을 한 이들이라면 바로 메스꺼움에 헛구역질을 뱉고, 휘청거렸겠지만.
‘좋구나.’
안타깝게도 장이서는 마공을 익힌 자.
그것도 독(毒), 살(殺), 마(魔).
하나만 알아도 섬찟하기 그지없는 심법들을 고루 익혔다.
성정은 둘째치고 익힌 것만 보면 희대의 대마귀가 따로 없는 일.
지금도 그저 수련을 하는 듯 보였으나 모습은 범상치 않았다.
고오오오오!
지독한 살기가 마른하늘에 먹구름을 일으키고.
솨아아아아!
어깨 위로 떠오른 시퍼런 독무는 서서히 바닥에 낮게 드리워진다.
퀴아아아아!
품 안에 잠들어 있던 혈마귀는 포식하듯 몸 밖으로 빠져나와 머리 위에 우뚝 자리한다.
콰과과광!
하늘이 격노하여 번개까지 내리치니 그야말로 마중의 마.
소천마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지경.
심지어 여기서 끝도 아니었다.
본디 남천능가경의 성장은 항마(降魔)에서 비롯되는 법.
마기가 강해질수록 덩달아 자연스레 정공의 기운도 거세졌다.
우우웅!
하여 황금빛 기운이 몸을 감싸니 그야말로 황홀한 전경이 아닐 수 없다.
한마디로 각기 다른 네 개의 진기를 동시에 다루고 있다는 얘기.
여기에 내면의 근골을 이루는 역근경까지 생각하면 무려 다섯 개의 절대 기운이다.
오죽하면 호위를 서던 좌사와 우사도 감탄을 터트렸다.
‘3년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저 마귀의 형체는 성역이 분명한데. 정작 본인이 극마에 오르신 것 같지는 않으니.’
그들 정도의 연륜과 실력이라면 대충 보기만 해도 상대의 수준이 가늠이 된다.
자신의 발끝인지. 아니면 마주 볼 만한 상대인지.
하지만 지금의 장이서는 모든 게 미지에 둘러싸여 있었다.
마치 안개 속에 사는 사람처럼.
분명 자체만 놓고 보면 초절정 경지에 머무른 듯 보이지만.
하늘 위에 서린 마귀의 성역이나, 뿜어져 나오는 경천동지할 살기.
그리고 은은히 퍼지는 이 정대한 기운은 두 사람마저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하여 지금 그와 겨룬다면 그 무엇도 자신할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강하다!’
광명사자도 이제는 함부로 내려볼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얘기.
그것도 고작 3년 만에 말이다.
더구나 반년은 걸릴 거라 생각했던 본교의 안정도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후…….”
장이서가 길게 호흡을 내뱉으며 지그시 눈을 떴다.
그러자 주변에 펼쳐졌던 신묘한 현상들도 서서히 자취를 감춘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서자 좌사와 우사가 본능적으로 흠칫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곤 그런 본인들의 태도에 놀라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지존 외에 우리가 이리 긴장한 적이 있었나?’
‘없다.’
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제야 깨달았기 때문.
천마의 명이 아니더라도 자신들이 장이서를 천산의 작은 주인으로 인정했다는 것을 말이다.
지나가는 그의 어깨에 피풍의를 둘러주고, 빼놓았던 천마환과 천마령을 끼워주었다.
공손해진 모습이 볼만하다.
장이서도 이젠 일말의 어색함 없이 덤덤히 서서 이를 받았다.
우사는 그 모습에 뿌듯함을 느끼며 물었다.
“부교주님 덕분에 본교는 금세 안정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혈교 놈들은 도리어 꼭꼭 숨어 버렸으니……. 이제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그의 말대로다. 천산이 견고해질수록 혈교는 습성처럼 음지로 숨어버렸다.
이대로면 또다시 기약 없는 숨바꼭질이 이어질 터.
하나 장이서는 걸어 나가며 일말의 고민도 없이 답했다.
“아직 하나 남았소.”
“뭐가 말입니까?”
“혈교를 잡아낼 마지막 꼬리.”
“……!”
이제 잡으러 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