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318)
첩자의 마교생활-318화(318/350)
318.
#최선을 다했을 뿐
사실 천산을 바로 잡는 것만큼 장이서가 주력한 것이 한 가지 더 있었다.
그건 바로 세작들을 찾아내는 것.
산왕가주 파군성은 놓쳤지만, 분명 연관된 자들이 아직 남아 있을 것이라 여긴 탓이었다.
‘오호호! 싹 다 잡아들이거라!’
그때부터 비룡당과 방첩대. 그리고 백오문이 총동원됐다.
암각 최고의 요원이었던 장이서가 수장이 되었으니, 숨어 있다면 잡히지 않는 게 어불성설.
당연하게도 빠짐없이 두더지들을 잡아냈으며.
‘반갑네. 형 선생일세.’
고문가(拷問家) 형 선생의 도움으로 그들의 신원까지도 전부 알아냈다.
하지만 그래봤자 잔챙이들뿐. 의미 있는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덜미가 잡힌 건 정말 아주 의외인 곳에서였다.
“이곳입니다.”
비룡당주 묘채경이 안내한 곳은 지하 깊숙한 곳의 철문 앞.
도라옥이 무너진 후 특별 죄인들을 가둬두는 뇌옥이었다.
끼이이익!
그리고 철문이 열리자 산발 머리에 좌선하듯 뒤돌아 앉아 있는 사내의 모습이 눈에 담긴다.
딱 봐도 하루 이틀 갇혀 있던 게 아니었다. 최소 수년. 대체 이자가 누구기에.
한데 바로 그때 장이서의 입에서 믿기 어려운 말이 튀어나왔다.
“오랜만입니다, 대주.”
대주라니! 산발의 사내가 인기척에 서서히 몸을 돌린다.
잘려 나간 한쪽 팔.
그리고 음산하게 웃는 곱슬머리.
“오랜만이구나. 103호.”
그다.
“아니, 이제 부교주라고 해야 하나.”
방첩대주 겸사익.
아니, 암각 요원 12호!
“돌아왔다는 소식은 들었다. 신수가 더 훤해졌구나.”
“바깥소식까지 듣는 걸 보면 나름 잘 지내고 계셨나 보오.”
“크큭. 고작 3년 아니냐. 우리 같은 자들에게 기다림은 숨 쉬는 것만큼 익숙한 일이지. 앉거라.”
그의 제안에 묘채경이 수하에게 눈짓한다. 의자를 가져오라는 얘기.
이에 장이서는 손을 들어 말렸다.
“대주와 둘이 이야기하지.”
번거롭게 하지 말라는 얘기.
“알겠습니다.”
쿵! 잠시 후 묘채경과 수하들이 문을 닫고 밖으로 나섰다.
이를 조용히 지켜보던 겸사익은 악의 없는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확실히 거물이 됐구나. 당주를 저리 부리다니. 이렇게 성공할 줄 알았다면 나도 너한테 투자라도 좀 해놓는 건데.”
하여튼 그 입은 아직도 죽질 않았군. 하긴 장이서가 입씨름을 누구에게 배웠겠는가.
스승이 그다.
픽 웃으며 바닥에 마주 앉았다.
“가진 돈도 없는 양반이 투자는 무슨.”
“끌끌, 내가 누군지 벌써 잊은 것이냐? 나 황금 귀신 겸사익이다.”
“그런 인간이 부하들한테 밥 한 번을 안 사줬나. 기억나? 한 턱 크게 쏜다며 데려간 곳이 살혼대주 부친 장례였던 거. 그날 우리 전부 장례 치를 뻔했어.”
“크큭, 그랬지.”
“예전부터 이해가 안 됐지. 돈이란 돈은 싹 다 긁어모으던 양반이 쓰는 꼴은 보질 못했으니. 심지어 내가 바꿔주기 전까지 이 나간 칼도 안 바꿨잖아.”
겸사익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나 그것도 잠시. 금세 다시 끌끌 웃으며 답했다.
“너도 내 나이 되어보거라. 돈 나갈 일이 한둘이 아니니.”
“그렇겠지. 요원들을 위해 써야 했을 테니까.”
겸사익의 올라간 입꼬리가 슥 내려간다.
요원. 그래, 맞다. 그가 악착같이 모은 돈은 전부 천산에 잠입한 요원들을 위해 사용되었다.
피차 다 알면서 왜 묻는가.
“지금 그거 따지러 온 것이냐? 같은 요원인 너한텐 밥 한 번 제대로 안 사줬다고?”
“왜 그랬어.”
“미친놈. 뒤끝이 긴 놈이라는 건 익히 알고 있다만, 고작 그거 하나 가지고…….”
“왜 날 첩자로 밀고한 거지?”
“뭐……?”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씩이나.”
겸사익의 표정이 멍하니 굳어진다.
“한 번은 이해가 가. 내가 부교주로 당선이 되었을 때는 제갈상과 틀어진 뒤였고. 일부러 그러도록 유도한 것이니까.”
그건 당연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 건 그전이었다.
곤륜산맥에서 남천능가경을 익히고 돌아오던 날.
천무기가 사공자와 비룡당주를 앞세워 절 첩자로 붙잡았던 바로 그때 말이다.
“그때도 이해가 되지 않던 게 하나 있었지.”
사공자 한이 아무리 제 뒤를 캐고 다녔다고 해도, 천산 밖으로 나간 것까진 결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정확히 자신이 돌아오는 날 나타났다.
그것도 비룡당주와 함께.
“다른 건 다 그럴 수 있다고 쳐. 하지만 흑거가 조사 대상에 오른 건 도통 납득이 되질 않더군. 그건 내부에서 밀고한 게 아닌 이상 알 수가 없는 거거든.”
그때도 생각했었다.
‘대공자는 아니다. 그보다 날 더 잘 아는 자가 뒤에서 제보하고 있는 거다. 대체 누가.’
제보자가 있다고. 자신이 아닌 흑거를 겨냥해 정보를 흘린 결정적인 제보자가.
“그런데 얼마 전 이장로가 지나가듯 말해주더군. 당신이 날 첩자로 내몬 게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었다고.”
“……!”
분명히 그랬다.
‘자네가 지난번에 뇌마를 첩자로 몰아간 자였나?’
‘뭐 몰아갔다기보다는 의심 가는 구석이 있어서 제보를 한 거지요. 하하!’
심지어 그때는 암각과 틀어졌을 때도 아니었다.
오히려 제갈상은 제 사상을 검증하기 위해 밖으로 불러냈던 상태.
그러니까 그 말은 곧.
“당신이 날 밀고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는 거야. 암각의 12호라면 더더욱.”
한데도 불구하고 그는 장이서를 밀고했다. 첩자로 몰아 죽이려고 했었다.
대체 왜.
암각의 요원인 그가 무슨 이유로.
오기 전 이에 대해 찬찬히 생각해 봤다.
“처음엔 제갈상이 천무기한테 붙은 게 아닌가 싶기도 했어.”
암각 입장에선 훗날 교주가 될지도 모르는 천무기와 가까워져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자신을 희생시켜 관계를 깊이 다질 수 있다면 그것도 있을 순 있는 일.
하나 아무리 조사해도 둘 사이의 연고점은 더 이상 없었다.
더구나 바로 직후 청해에서 만난 제갈소미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듯했고.
그렇다면 무엇일까.
생각을 바꾸어 보았다.
“애초에 제갈상이 한 일이 아니었다면.”
“뭐?”
“당신이 독단적으로 일을 벌인 거라면 말이 되더군.”
“그게 무슨 말이냐. 크큭. 내가 굳이 왜…….”
“이중첩자(二重諜者).”
“……!”
“암각 말고도 당신한테 명령을 내리는 곳이 또 있었던 거야.”
겸사익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물든다.
“천무기 말고도 그토록 날 죽이고 싶어 하던 자들이 누구일까. 생각해 보니 딱 하나가 더 나오더군.”
장이서가 눈매를 굳히곤 일언했다.
“혈교.”
“……!”
사도철부터 광의. 그리고 뇌옥왕까지.
번번이 그들을 무너뜨리던 시기다.
천무기의 뒤에 숨어 자신을 사지로 밀어 넣기엔 충분하고도 남을 일.
“농담이 지나치군…….”
겸사익이 힘겹게 웃으며 애써 부정한다. 하나 무의미한 일이다.
그의 앞에 툭 붉은 가면을 던졌다.
안쪽에 삼(三)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는 붉은 악귀의 가면.
“당신의 안가를 샅샅이 뒤져 찾아냈지. 삼흉이라고 불러줘야 하나.”
실로 충격적인 일!
암각 요원 12호가 혈교의 삼흉이었다니!
겸사익은 파르르 떨리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이는 스스로 인정해 버린 것과도 같은 일.
장이서는 쓰린 침을 삼키곤 말을 이었다.
“광의가 구룡성에 갇혀 미혼산까지 풀며 기다리던 것도 당신이었어.”
분명히 그랬다.
‘날 구하러 온 게 아니라면…… 사마균 그 늙은이가 보낸 놈이더냐?’
광의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고, 추락한 후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삼흉. 겸사익이 데려간 것이다.
“방첩대주였으니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겠고.”
그래서 마의도 수상함을 느끼지 못했던 거다. 방첩대가 이탈자를 쫓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니.
이것이 바로 사건의 전말.
“……그만해라.”
“아니, 이제 시작이야. 끝까지 들어.”
진짜 의문은 여기서부터였다.
“궁금했어. 대주가 왜 혈교와 손을 잡았는지.”
대체 왜.
그가 뭐가 아쉬워서.
암각의 명이라서?
천만에.
제갈상은 장이서가 거론하기 전까진 혈교에 대해 알지도 못했다.
그럼 그가 진짜 처음부터 혈교의 사람이었을까?
아니, 그것도 아닐 거다.
그랬다면 그런 엉성한 증거를 들이밀진 않았을 거다.
‘이달 그믐. 청해호(靑海湖). 12호 접선 요청.’
오히려 그의 태도는 양쪽 모두에 자신의 충성을 증명하려는 듯 보였다.
아슬아슬하게 외줄 타듯이.
대체 뭣 때문에.
“생각해 보니 간단하더군. 당신은 암각도, 혈교도 아니었던 거야.”
겸사익의 얼굴이 절망으로 가득해진다. 하지만 장이서는 잔혹하게도 그가 감추고 싶었던 진실을 꺼내버렸다.
“당신이 진짜로 따르고 있던 사람은 따로 있었던 거지.”
“그만!”
“천마. 바로 마교의 교주였던 거다.”
그랬다.
겸사익은 암각의 12호이자, 혈교의 삼흉이었으며, 천마의 하수인이었던 거다.
그래서 처리한 요원들의 신상이 담긴 기록을 건넸을 때도 천마는 놀라지 않았던 거다.
왜?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천하의 사형이 자신의 직속 부대인 방첩대가 첩자들 소굴이라는 걸 몰랐을 리가 없지 않은가!
장이서가 말을 끝내자 겸사익은 기나긴 침묵 끝에 허탈한 음색으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 어디에도…… 내 행동에 거짓은 없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실로 얼토당토않은 궤변에 기함이 터졌다.
“당신 대체 뭐야.”
“난 그저 최선을 다한 것뿐이었다.”
“뭐?”
“처음엔 살아야 했고, 그 후엔 버텨야 했으니까.”
겸사익의 삶은 참으로 기구했다.
요녕의 빈민가에서 태어나 타고난 자질로 그의 나이 일곱이 되기 전에 정무방이라는 문파로 팔려 갔다.
‘금방 올게!’
굶주린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애써 웃으며 떠났지만, 안타깝게도 그곳은 평범한 문파가 아니었다.
속내는 살수를 양성하던 자객 단체.
그들은 아이들 사이에 칼 하나를 던져주었고, 겸사익은 그날 첫 번째 살인을 했다.
살기 위해.
‘버텨라. 그럼 네 가족들은 부족함 없이 살게 될 테니.’
그 뒤부터는 버티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지옥 같은 훈련.
지옥 같은 살인.
하지만 괜찮았다. 자신이 버티면 제 가족들은 행복할 테니.
그렇게 악착같이 버티기를 삼 년째.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의 인생을 뒤바꿀 사건이 벌어졌다.
‘크아아아악!’
정무방에 그들이 들이닥친 것이다.
정도무림맹(正道武林盟).
그들은 가차 없이 살수들을 소탕했고, 아직 어린아이였던 그는.
‘나와 함께 가겠느냐.’
그의 손에 거두어졌다.
암각의 각주 제갈상.
그리고 다시 3년.
‘널 천산으로 보내야 하는 날 용서해 다오. 네 가족들은 부족함 없이 살게 될 것이다.’
바뀐 건 없었다.
단지 살수에서 첩자가 되어 이곳 마교로 오게 된 것뿐.
여전히 버텨야 했고,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그래야 가족들이 평안히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천마지존 만마앙복!’
방첩대는 교주 직속 특무대.
천마를 마주한 순간 모든 것이 비틀어졌다.
‘재밌는 아이구나.’
철저히 신분을 감춘 그도 모든 걸 꿰뚫는 천마의 신안(神眼)을 피해 갈 수 없었던 것.
‘혈교에 들어가거라. 그게 네가 살 수 있는 방법이니.’
그때부터 겸사익의 인생은 생각지 못한 풍파 속으로 뛰어들었다.
천마의 명으로 혈교에 잠입하였고.
암각의 명으로 방첩대주가 되었으며.
혈교의 명으로 장이서를 첩자로 내몰았다.
삼중첩자(三重諜者)의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