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32)
첩자의 마교생활-32화(32/350)
32.
#천마 진우광 (3)
장이서는 속으로 전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우연히 들른 곳이 이처럼 보물로 가득하다니.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하나 들뜨기엔 섣부르다.
‘후후.’
웃음이 자꾸 속에서 뱉어지지만, 그건 본능일 뿐. 입 밖으로 웃을 때는 아직 아니다.
조사가 필요했다. 아까도 느꼈지만, 이곳을 관리하는 누군가가 있다.
‘하지만 마교 놈들 건 다 내 거. 후후.’
장이서가 음흉한 웃음을 짓는다. 어쨌든 들어오는 입구는 확실히 알겠고, 그럼 이젠 빠져나가는 출구를 찾아내야 한다.
‘좌, 우? 어느 쪽이냐.’
장이서는 납작 엎드려 바닥을 살폈다. 그러자 그의 예리한 시야에 흐트러진 수많은 모래 알갱이가 그림처럼 담겼다.
역시. 사람이 사는 곳이 확실하다.
‘흙이 널브러져 있다는 건 누군가 밖에서 밟고 들어왔단 얘기. 그리고 흙은 뒤로 갈수록 줄어든다. 그 말은 밖과 통하는 입구는 저 앞에 있다는 것이다.’
기감을 곤두세운 장이서가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다시 나타난 갈림길에서 과감하게 우측으로 몸을 틀었다.
그러자 바닥엔 빨간 융단이 깔려 있고, 장식품이 고이 담긴 유리 진열대가 이 열로 늘어선 길목이 나타났다.
‘여긴…….’
너무도 깔끔하게 정돈된 복도.
도대체 이곳은 뭐 하는 곳이란 말인가.
장이서가 넋이 나가 멍하니 서 있던 그때였다.
핑-!
먼발치 어둑한 길 끝에서 첨예한 음색과 함께 믿기지 않는 속도로 암기가 날아들었다.
그것도 형체가 없는 바람으로 된 암기가!
퍽! 휘리리릭!
꿰뚫리는 소음과 함께 장이서의 몸이 팽이처럼 회전하며 바닥에 툭 떨어졌다.
한 손으로 땅을 짚고 간신히 낮은 자세로 착지한 장이서.
그의 흩날리는 도포 끝자락엔 자그마한 구멍 하나가 새겨졌다.
“피해?”
장이서는 앞에서 들려온 낯선 목소리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이 절대 오지 말아야 할 곳에 발을 들였다는 것을.
“재밌는 아이로구나.”
지풍을 쏘아낸 손가락과 자신을 번갈아 살피며 붉은 입술에 호선을 그리는 마성의 미공자.
‘천……마……!’
천마 진우광.
그렇다.
이곳은 바로 천마전.
제 발로 지옥 불구덩이로 들어와 버린 것이었다.
*
평화의 시대를 맞이한 지도 어느덧 19년.
하지만 장이서의 머릿속에 천마는 여전히 천하의 역적이자 사상 최악의 인물이었다.
이유를 열거하자면 셀 수도 없었다. 그의 손에 수많은 가문과 문파가 멸문지화를 당하고, 문을 봉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건 정파의 입장이고, 단순히 장이서 입장만 놓고 보자면 단 세 가지.
먼저 30년 전, 정사마의 닥치는 대로 물고 뜯던 십년전쟁이 천마 진우광의 중원 침공으로 시작되었다.
그때 사망한 이들을 합산하면 무고한 백성들과 관의 무인들까지 모두 합해 수만 명에 달했다.
그리고 장이서는 그 전쟁으로 인해 고아가 되었다.
두 번째는 심장에 박힌 빌어먹을 고독이었다.
본래 이는 멸망한 혈교의 상징물이었는데, 이를 되살려낸 게 바로 마교의 육장로 독산마의(毒産魔醫)다.
당연히 천마 진우광의 지시였다.
물론 장이서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하지만 그때 고독이 부활하지 않았다면, 제갈상이 구해 올 일도 없었을 터.
심지어 지금 심장에 박힌 고독은 육장로가 와도 알아챌 수 없는 암각에서 개조한 신흥 고독이다.
이러니 원망이 없을 수가 없는 일.
끝으로 세 번째는…… 직접 봤기 때문이었다.
방첩대에서 잡아 올린 첩자 수십 명을 흡성요법(吸星妖法)으로 내기를 빨아들이는 거로도 모자라 기이한 사술로 생기까지 탈탈 털어 숙청하는 모습을 말이다.
당시 말단이었던 장이서는 삽시간에 해골이 되어버린 첩자들의 뼈를 소각해야 했다.
그리고 그때 직감했다.
이 새끼는 진짜 마귀라는 걸.
한데.
“피해?”
그런 그를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줄이야. 그것도 하필 몰래 숨어 들어왔다가 집주인에게 들켜버린 쥐새끼 꼴로 말이다.
어찌해야 하는가. 싸워야 하나? 아니면…….
“재밌는 아이로구나.”
장이서는 빙석처럼 굳어졌다가 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는 순간, 철퍼덕 엎어지며 오체투지를 했다.
“천마지존 만마앙복! 신 칠공자 보좌 장이서. 교주님을 뵙습니다!”
싸우긴 개뿔. 천마가 힘을 일 할만 담아도 즉사다. 덤벼봤자 개죽음. 장이서는 마른침을 꼴깍 삼키고 그의 대처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사이에 최악의 상황을 대비했다.
‘천마와 나의 거리는 대략 십 보. 여기서 백뢰를 쏘아 맞힐 확률은? 일 할도 안 돼. 최소 삼 할로 올리려면 못해도 거리를 삼 보 이내로 줄여야 한다.’
장이서의 머릿속에 수많은 패배의 양상이 그려진다. 한데 교주의 반응은 그런 생각이 어색해질 만큼 덤덤했다.
“마오가 말한 귀인이 너였구나.”
“예……?”
“일어서거라.”
“아…….”
장이서가 얼떨떨한 얼굴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진우광을 조심스레 살폈다.
백발을 한 사내임에도 여전히 천하절색이란 말이 아깝지 않을 용모. 한데 저리 웃을 줄도 아는 자였나.
기억 속 모습과 달리 너무나 다정한 얼굴이다.
더구나 뭐랄까.
그의 두 눈은 공허함으로 가득 차 보였다. 마치 모든 걸 다 이뤄 더는 미련이 없는 사람처럼.
“왜. 내가 신기한 것이냐.”
“소, 송구합니다.”
장이서가 황급히 부복했다. 너무 빤히 살폈다. 이에 고개마저 숙이는 그 순간.
‘헉!’
너무 놀라 비명을 내지르며 옆으로 구를 뻔했다. 고개 숙여 내려다본 바닥의 그림자 때문이었다.
대체 언제 움직인 것인지 십 보 앞에 서 있던 진우광이 바로 뒤에 나타나 있었다. 그러곤 스산한 기세를 풍기며 장이서의 손목을 덥석 붙잡아 맥을 짚었다.
“기감은 쓸만한데 단전에 쌓인 내기는 혼탁하고 가볍기 그지없구나.”
그 얘기를 왜 주적인 천마에게 들어야 하나. 장이서는 왠지 모를 수치심에 미간이 좁혀졌다.
한데.
“힘들었겠구나. 머리로는 이미 정상을 지나 다다음 산을 향하고 있었을 텐데. 몸이 따라주질 못하니 답답했겠지.”
장이서는 제 귀를 의심했다. 대체 무엇인가. 이 다정다감한 말들은. 지금 이자가 천마 진우광이 맞긴 한 것인가.
제 몸에 대해 살면서 처음으로 받은 위로가 천마라니.
진우광은 장이서의 손을 원래 자리로 내려놓곤 손을 떼었다. 그러곤 뒷짐 진 채 앞으로 걸어 나가며 말을 이었다.
“내 아이가 네게 빚을 졌더구나. 아비로서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 원하는 걸 말해 보거라.”
쿵!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천마가 지금 제게 원하는 걸 주겠다고 한 것인가.
두근, 두근.
호흡이 빨라지고, 피가 뜨거워졌다. 욕심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건 명백한 거짓.
하지만.
“없습니다.”
장이서는 단호히 답했다. 자신은 첩자고, 상대는 천마 진우광이다. 어설프게 물었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당한다.
“정말 없느냐?”
진우광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곤 물었다. 이에 장이서는 또렷이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없습니다.”
“그렇구나……. 그럼 죽거라.”
뭐?! 솨아아- 천마의 몸에서 지독한 살기가 뿜어져 나온다. 장이서는 당황하며 외쳤다.
“갑자기 왜…….”
“난 원하는 게 없는 자를 살려두지 않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강도로 돌변하는 소리인가. 원하는 게 없다고 죽이겠다니. 심지어 얼굴은 여전히 해맑다.
“왜인지 아느냐?”
“전혀 모르겠습니다.”
“원하는 게 없는 자들은 아쉬울 게 없다. 해서 쉬이 굽히지 않는다. 진정으로 따르지도 않는다. 설령 지금은 고개를 숙인다고 해도 언제든 다시 일어나 등 뒤에 칼을 들이밀지. 해서 난 그들을 살려두지 않는다. 본교는 일인지존. 나의 일신이 곧 전부이기에.”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것인가? 장이서가 황당하다는 듯 억울함을 호소했다.
“전 교주님과 본교를 절대 배신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원래부터 믿은 적이 없기 때문. 하지만 진우광은 생각보다 더 자신만의 가치관이 확고했다.
“말은 누구나 그럴싸하게 하지.”
“그럼 어찌해야 믿으시겠습니까.”
“원하는 게 없다면 원하는 걸 만들면 된다. 그럼 너무나 간단하지 않겠느냐? 가령 아프면 낫고 싶을 것이고, 가족처럼 소중한 게 생겼다가 사라지면 되찾고 싶겠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의 사고방식에 입이 벌어지고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인질로 쓸 테니 가족을 만들어오라는 말과 뭐가 다른가.
한데 바로 그때.
진우광이 장난기 가득한 눈매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넌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무슨 말씀이신지…….”
“넌 이미 내게 원하는 게 있다는 말이다.”
장이서는 답답한 속내를 숨기고자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진우광의 뒤이어진 말에 다시 고개를 번쩍 들 수밖에 없었다.
“구규지체(九竅肢體).”
“흡!”
장이서의 눈이 빠져나올 듯이 커졌다. 처음이었다. 무림맹의 원로 생사신의(生死神醫) 위자량을 제하고 자신의 체질 명을 이리 직접 거론한 자는.
“단전에 아홉 개의 구멍이 있어 고금제일의 심법을 익혀도 고작 일류를 넘지 못하며, 만년하수오(萬年何首烏)와 공청석유(空淸石乳)를 백날 취해봤자 내공은 한 줌도 쌓이지 않고 흘러나가지. 하여 더 힘들었을 것이다. 축적은 노력의 산물이거늘, 넌 아무리 해도 축적이 되질 않았을 테니.”
장이서가 입을 벌린 채 기함하자 진우광이 또다시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묻는다.
“놀랐느냐?”
이에 장이서도 용기를 내어 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솔직히 충격이었다. 그가 구규지체를 알고 있어서가 아니라, 천마라는 존재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어서 충격이었다.
박식했고, 장난도 칠 줄 알며, 웃을 줄도 안다. 또 위로도 한다.
이건…… 자신이 기억하던 마귀와는 너무도 다른 인간적인 모습.
우우웅!
장이서의 초점이 흐려져 있던 그때. 진우광의 몸에서 걷잡을 수 없는 마기가 쏘아져 나왔다.
퀴아아아아-!
거뭇한 기운이 어깨 위로 아지랑이처럼 흘러나와 어두운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모습.
마치 세상을 찍어누를 듯한 엄청난 기백이다.
이것이 천하제일인의 위용!
장이서가 완전히 넋이 나간 채 이를 바라보자 진우광이 서늘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시커먼 마의 내기가 수천 마리의 독사처럼 아지랑이가 되어 뻗쳐 나온다.
“이것이 내가 주는 선물이다.”
그리고 콰악!
그대로 날아와 장이서의 아랫배에 비수처럼 쑤셔박혔다. 쉴 새 없이 스며드는 마기.
“커헉!”
숨도 못 쉴 통증이 뒤따르고, 두 눈의 흰자위가 시커멓게 변한다. 그뿐 아니라 혈관 역시도 검은 피가 지나가듯 모든 핏줄이 흑색으로 돌변했다.
이는 단전에 들어온 천마의 마기가 경맥을 휘저으면서 벌어진 증상.
도대체 왜.
이해할 수 없는 처사에 장이서가 마지막 이성의 끈을 붙잡고 그를 노려봤다.
그러자 진우광이 여전히 다정한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숙제다. 네 몸을 치료할 단초를 찾아오거라. 물론, 시간은 그리 많지 않겠지만 말이다.”
털썩. 장이서는 그 말을 끝으로 혼절했다.
잠시 후 거뭇하게 부풀었던 그의 핏줄도 서서히 가라앉으며 본색을 찾았다.
그리고 진우광은 이를 지그시 살피며 중얼거렸다.
“구규지체를 가진 아이라……. 아홉 개의 구멍을 모두 막으면 천하를 내려다볼 수 있겠으나 그건 신이 와도 불가한 일. 더 이상 이곳 천산에 내가 관심을 둘 아이는 없다고 여겼거늘.”
그의 입가가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길쭉하게 호선을 그렸다.
하나 천진난만한 모습과 달리 이어진 말은 실로 섬찟했다.
“단초를 찾지 못한다면 네 몸은 채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이는 몰래 숨어들어온 네게 내리는 벌.”
그가 먼발치 어둑한 전방을 살피며 외쳤다.
[와서 데려가거라.]그러자 잠시 후.
천마전의 문 앞에서 내공이 회복되기만 기다리던 마오가 헐레벌떡 달려와 화들짝 놀라더니 장이서를 둘러메고 사라졌다.
진우광은 그런 두 사람이 사라질 때까지 흥미롭게 지켜보다 슥 몸을 돌렸다.
언제고 저들이 다시 돌아와 무료한 삶에 재미를 줄 날을 고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