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320)
첩자의 마교생활-320화(320/350)
320.
#다녀오겠습니다
“맞나 보구먼.”
북개의 입에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이 뱉어졌다.
그날.
3년 전 군사였던 화평자 구자기가 혈교의 손에 목숨을 잃었던 사건.
지금도 많은 이가 그를 추모할 만큼 충격이 컸다.
맹주 입장에서도 최측근을 잃었으니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겠는가.
하지만.
“대체 나만 빼고 무슨 작당들을 벌인 게야?”
북개는 짐작하고 있었다.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 아무도 모르는 숨겨진 내막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서검 여중악은 그날 이후로 화산을 떠나버렸고.
신승은 절연하듯 면벽 수련에 들어섰으며.
제갈상은 소리 소문 없이 잠적해 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현청마저 맹주 직을 그만두겠다고 말한다.
아무 말도 듣지 못했지만, 북개는 그게 군사의 죽음과 연관이 있음을 확신했다.
한데 중원 최고의 정보통인 그로서도 이 이상은 알아낼 수가 없었다.
진실을 아는 신주오절 네 사람이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솔직히 서운하지 않다면 거짓말.
“그냥…….”
현청이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이네. 이젠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맡기고 물러나야 할 때가 아닐까. 뭐 그런 생각 말일세. 이제 오래되지 않았는가.”
그러니까 잘 버티다가 갑자기 왜!
북개가 답답하다는 듯 속을 끙 앓는다.
하지만 현청의 공허한 두 눈을 보곤 애써 속내를 삼킨 채 괜스레 투덜거렸다.
“답지 않게 웬 청승이야?”
“후후, 이 사람아. 이제 우리도 백수(白壽-99세)를 향해가고 있네. 이쯤 됐으면 물러설 때가 지나도 한참 지난 게지. 후학을 위해서라도 물러나야 할 때일세.”
“그럼 정리라도 잘하고 가든가. 요즘 오륜회가 날뛰고 있는 거 모르는가? 이러다 무림맹까지 놈들 손에 넘어갈 기세야!”
“그들도 모두 똑같은 정도의 연맹일세. 누가 되든 잘만 이끌어 주면 될 일이지. 무엇이 그리 중한가.”
“하는 짓이 심상치가 않으니 그렇지!”
“너무 걱정하지 말게. 내 그리 허술하게 끝내진 않을 테니.”
허! 북개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이놈이 아예 작정을 했구나.
“기어코 그리 물러나야 직성이 풀리겠단 말인가?”
“어디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후후, 문제가 있다면 다시 돌아오면 될 일이고. 나도 그 정도 책임감은 있네.”
“고집하고는! 에잉, 쯧!”
결국 북개는 고개를 저어야 했다.
이 정도까지 마음을 먹었다면 머리끄덩이 잡고 말려도 소용없는 일.
아까 따라준 차를 후르륵 마셨다.
다 식은 것이 이젠 화도 없다.
“쓸데없이 나나 찾아오지 말라고 해. 독한 놈들이 가래도 안 가고. 아주 거지보다 더해.”
맹주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할 텐데도 절 이해해 주는 벗이 너무나 고마울 뿐.
어쨌든 답답한 사연은 여기까지.
“한데 누구한테 뒤를 맡길지는 정한 건가? 자넨 아직 제자도 없지 않은가.”
북개가 모두가 궁금해할 질문을 툭 던졌다.
2세대 중에서 꼽으라면 단연 무림오성(武林五聖)이 독보적이다.
신주오절에 가려져서 그렇지, 사실상 정사마전이 한창이던 전란의 2세대에서 톡톡히 활약한 자들.
실력으로 보나, 명성으로 보나.
그들만 한 자들도 없다.
이에 맹주는 편안한 미소를 짓는다.
“글쎄. 맡긴다면 누구보다 공명하고 정대한 이에게 맡겨야겠지.”
“그러니까 그게 누군데. 검성은 지금 앓아누운 지 좀 되었고……. 아니면 설마 무당의 그 꼬맹이? 예전에 자네가 아끼던 아이 하나 있지 않은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사문이라고 특별 대우 해줄 생각은 없네.”
“미친 겐가? 남들은 다 그렇게 해!”
이 말까지 들으면 더 미쳤다고 하겠군.
“누구든 후임이 생긴다면 내 성명절기를 전수해 줄 걸세. 아무 조건 없이.”
“이런 미친놈!”
하하하! 맹주의 입에서 웃음이 터졌다.
하나 북개의 표정은 진심이었다.
미친놈.
맹주가 누구인가.
서검 여중악과 함께 검으로는 중원 제일로 꼽히는 자다.
분란을 피하겠다며 여태 제자 하나 안 구하고 스스로 무공까지 창안한 절세 고수!
한데 후임에게 이를 다 전수해 주겠다니.
그것도 아무 조건도 없이?!
돌아도 한참 돌아버린 거다.
북개가 장고 끝에 물었다.
“그럼 나는 어떤가.”
“뭐?”
“나 좀 제자로 받아주게. 사부 잘못 만나 일평생 거지로 산 팔자 좀 바꿔보게.”
“하하하! 이 친구가 정말. 아서게. 다 늙어서 무슨 주책인가.”
“내가 뭐 어때서!”
“꿈도 꾸지 말고 가끔 놀러 와 술이나 마시고 가게.”
“친구 놈 덕에 팔자 좀 고쳐보나 했더니. 에잉!”
현청이 잔잔한 웃음을 짓는다.
“한데 떠난다면서 뭣 하러 그리 다 퍼줘.”
이유가 뭐 있겠는가.
어차피 퇴장하는 길. 새로운 영웅의 앞길에 발판이라도 되어주고자 할 뿐.
적어도 천마와 련주에 대응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군지는 몰라도 분명 바른 곳에 힘을 써줄 걸세.”
“얼씨구. 벌써 이름도 모를 제자 놈한테 빠졌구먼, 빠졌어. 늘그막에 이 뭔 팔불출이야?”
“하하하하!”
현청의 입에서 오랜만에 시원한 웃음이 터졌다.
듣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그게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제고 꼭 만나고 싶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 * *
한편 맹주가 낙향한 채 퇴임을 준비할 무렵.
이에 맞춰 음험한 흉계를 꾸미는 자들도 있었다.
온통 새카만 흑지로 가득 채워진 어두운 방. 피눈물 흘리는 불상이 즐비한 이곳의 주인.
“사흉은 조용히 정리하였습니다.”
엎드린 백발의 사내에게 보고를 받는 그의 이름은 모용소.
흉신팔주의 수장이자 일흉으로 통하는 자다!
“대업을 목전에 두고 실패하다니. 이런 멍청한 것들.”
분노가 얼마나 큰지 이빨이 빠득 갈린다.
그럴 만도 했다.
대업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으니.
대공자 천무기와 산왕가주 파군성.
그들의 이야기다.
“애초에 마교 놈들에게 기대를 한 내 잘못이다.”
그나마 대업을 위해 제 노비를 보내놓았던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어쨌든 꼬리는 잘라낼 수 있었으니.
“어찌 된 것이냐.”
“확실하진 않지만 부교주와의 정쟁에서 패한 듯하옵니다.”
“부교주라면……. 3년 전에 사라진 뇌마가 아니더냐. 그놈이 다시 돌아온 것이냐?!”
일흉의 입에서 거친 음색이 터졌다.
뇌마 장이서.
어찌 그를 모르겠는가.
3년 전 자신들의 대업을 깡그리 망쳐놓고 사라진 바로 그 원적이 아닌가!
솨아아아아!
일흉의 몸에서 걷잡을 수 없는 살기가 뿜어진다. 이에 노비는 벌벌 떨며 고개를 푹 숙였다.
하나 그도 잠시.
“흥, 차라리 잘 되었다. 어차피 마교 놈들은 내 업적을 위한 제물에 불과한 일. 무림맹만 내 손에 들어오면 직접 놈들을 무너뜨릴 것이다.”
“주인님 말씀이 모두 옳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조만간 중원은 내 발아래 놓이게 될 것이다. 그 아이에게 가서 전하거라. 반드시 맹주의 측근이 되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라고.”
“예!”
일흉의 음산한 미소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 * *
장이서가 중원행을 결정한 지도 어느덧 며칠.
그의 성격대로라면 말 나온 날 바로 길을 떠나고도 남았겠지만.
이제는 그냥 평범한 교인이 아닌 부교주. 이것저것 준비할 게 한둘이 아니었다.
하여 묘채경과 소오에게 은밀히 지령을 내려 먼저 떠나보냈고.
“당분간 천산 좀 부탁합시다. 내가 사라진 건 비밀로 좀 하고.”
장이서는 회당에 모여 앉아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쳐다보는 일곱 명의 절대자들.
일장로 마일성을 비롯한 칠대장로에게 선전포고를 던졌다.
물론.
“고작 두 달도 안 돼 또 자리를 비우시겠다는 겁니까?!”
“부교주님께선 이제 홀몸이 아니심을 어찌 모르십니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솨아아아아!
좋은 반응을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마교라서 좋은 점도 있었다.
“서로 말해봤자 입만 아플 거고. 그냥 쉽게 갑시다. 어차피 본교에 답은 하나 아니오.”
씨익. 장이서가 웃자 장로들도 입가에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강자지존(强者至尊).”
콰과과과광!
그리고 그날 회당이 무너져 내렸다.
“후, 그럼 믿고 갑니다.”
장이서는 입가에 피를 닦아내곤 비틀거리며 먼저 자리를 떴다.
“도대체…… 우리가 뭘 본 것인가?”
반면 멀쩡한 장로들은 믿기지 않는 듯 멍한 눈으로 그의 뒤를 살폈다.
급소 부위마다 전부 한 군데씩은 옷이 베어진 채로.
그렇게 천산의 뒤를 맡긴 뒤 장이서는 곧바로 칠소궁으로 향해 마오와 대면했다.
“당분간 자리를 비울 생각입니다.”
“설마 맹주 만나러 혼자 가겠다는 건 아니지? 너 인마, 부교주야.”
마오가 인상을 찌푸리곤 팔짱을 낀다. 당연히 좋은 말이 나올 거란 생각은 안 했다.
하지만 일을 크게 키우면 그만큼 변수도 커진다.
조용히 찾아가 그에게 사실을 알리고 뜻을 전하는 게 낫다.
마음을 다잡고 마오를 설득하려는 찰나.
“자신은 있는 거지?”
“……!”
녀석에게서 생각지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네가 말린다고 들은 녀석도 아니고. 또 못 해낼 것도 아니잖아.”
3년이 길긴 길었구나.
“천산은 걱정하지 마. 아무도 못 설치게 내가 지키고 있을 테니까.”
이젠 진짜 너 소교주 해도 되겠다. 픽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칠공자님만 믿겠습니다.”
“쳇. 말은. 전쟁 나기 싫으면 잘해. 조금이라도 너한테 문제 생기면 그날로 쳐들어갈 거니까.”
협박도 참 너답게 한다. 하지만 참으로 마음이 든든해지는 협박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마오와 인사를 마치고, 다음으로 홍란과 사숙을 찾았다.
두 사람은 취선루에 앉아 차를 마시는 중이었다.
냄새만 맡아도 혼미한 독차(毒茶).
놀라는 두 사람 앞에 다가가 담담히 말했다.
“사숙. 홍란을 데리고 요녕에 좀 다녀와 주십시오.”
요녕. 이곳 천산이 서쪽 끝이라면 거의 동쪽 끝에 자리한 머나먼 땅.
그리고.
“주, 주인님…….”
그녀의 집인 모용세가가 자리한 곳이었다.
독마도 이미 알고 있던 것인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차를 들이켰다.
“이제야 약속을 지키게 됐어.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
홍란은 금세 떨어트릴 듯 눈물을 글썽였다.
“아, 그리고 이거.”
그녀에게 황금 포장지에 쌓인 환단 하나를 건넸다.
“이게 뭔가요?”
천마전의 3대 보고인 영생고에서 가져온 영단이었다.
양기가 강하고 회복력을 극한으로 끌어 올려준다는 마신단(魔神丹).
소림의 대환단과 필적한다고 하여 영생고에도 딱 2개밖에 없는 귀한 물건이다.
“별거 아니야. 부친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감사합니다…….”
홍란은 결국 눈물을 떨구며 두 손에 꼭 마신단을 쥐었다.
이렇게까지 절 챙겨주니 이 고마운 마음 어찌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중원 정세가 좋지 않습니다. 모용세가도 혹 오륜회와 개입되어 있을지 모르니 사숙께서 꼭 함께 가주십시오.”
“흐음, 오랜만에 중원 나들이를 다녀오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역시. 일말의 고민도 없는 승낙이다.
“그럼 잘 다녀와.”
그녀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리고 다음 날 그녀는 천산을 떠났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마침내 장이서도 떠날 시간이 찾아왔다.
천마전 정상에 오른 채 천산을 내려 살폈다.
거친 바람이 몰아치고, 마른하늘에선 천둥이 울린다.
아마 자신이 다시 돌아올 때는 혈교가 이 땅에서 사라진 이후일 거다.
그러니까.
“다녀오겠습니다.”
휘이이이잉!
천마전 정상에 서늘한 바람만이 남겨졌다.
첩자의 중원생활.
이제부터 시작이다.
* * *
한편 장이서가 떠나고 난 후.
홀로 남겨진 천산의 신.
천마 진우광은 모처럼 오랜만에 천마전을 찾았다.
요즘 들어 하늘이 얼마나 날뛰는지.
걸핏하면 멀쩡한 하늘에 벼락이 떨어지고, 고요하다가도 태풍이 몰아치며 암석이 날아들었다.
해가 지날수록 멈추지 않고 강해지는 천마에게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
물론.
“패배자의 아우성일 뿐이다. 후후.”
누가 감히 유아독존 천마의 길을 막아설 수 있겠는가.
“피곤하군.”
하지만 아무리 그라도 평소보다 피로한 건 어쩔 수 없는 일.
이럴 때마다 그도 즐겨 찾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직접 영초들과 내단을 공수해 만들어 둔 절세의 영약.
영생고(永生庫)에 특별히 2개만 비축해 둔 마신단이다!
한데.
“다 어디로 간 것이냐.”
휘이이잉.
도둑이 왔다 간 것인가.
“장이서…….”
빠득. 사제 때문에 심히 심기가 불편해지는 천마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