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324)
첩자의 마교생활-324화(324/350)
324.
#오륜회 망나니들
한편 맹주의 마음을 뒤흔든 정체불명의 장본인.
장이서 역시 머릿속이 온통 한 가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떻게 했던 거지?’
아까 오롯이 감각만으로 화강암을 베었던 자신만의 검로(劍路).
바로 맹주가 극찬을 토했던 극로에 대한 생각이었다.
분명히 아무런 내기도 싣지 않았었다.
한데 화강암을 베었다.
그것도 생전 보지도 못한 궤도를 그리면서.
등 총관이 칼을 빼내지 못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일직선으로 그어진 게 아니었으니까.
장이서의 검로는 그보다 훨씬 더 난해하고 복잡했다.
정작 자신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하지만 그 어느 길보다도 빨랐고, 아름다웠으며 경쾌했다.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흔히 남들은 백날, 십 년 수련해도 얻기 힘들다는 깨달음의 단계가 장이서는 아주 빠르게 찾아오는 편이었다.
보통은 이런 경우를 미친 재능이라고 평하는데, 사실 뚫린 단전만 아니었다면 스스로가 그 정도는 된다고 생각했다.
오늘 홀린 듯 베었던 검로가 대표적인 일례.
그 오묘한 이치를 파헤친다면 분명 자신이 몰랐던 새로운 영역을 깨우칠 수 있으리라.
하여 어떻게든 빨리 이를 재현해 보고 싶은 마음뿐이거늘.
“백 공. 난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딱 감이 오더라니까. 평생을 함께 갈 지기지우가 이 사람이구나. 이런 감 말일세!”
합격 기념으로 반드시 한잔해야 한다며 들러붙은 조진평과 주루에 마주 앉게 되었다.
“자네, 많이 취한 거 같은데.”
“우리 방금 앉았네!”
그랬나. 얕게 한숨을 삼켰다. 하긴 깨달음은 잡으려 하면 멀어지고, 놓으면 다가오는 꽃잎 같은 것.
챙!
결국 조진평과 술잔을 부딪쳤다.
“정식으로 다시 인사하겠네. 나 함양의 조진평일세.”
픽 웃고는 또르르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청해의 백서다. 잘 부탁하지.”
“크, 난 아직도 꿈 같네. 내가 설마 맹호원에 들어가게 될 줄이야.”
“그게 그리 좋은가?”
“좋지!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일세. 검 밥 먹고 사는 놈 중에 맹주님 옆에 있기 싫은 놈 나와 보라고 하게. 그분은 검의 신일세. 검신(劍神)!”
검신이라. 뭐, 고개는 끄덕여졌다.
예전에 사형한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사형께서 생각하는 중원 제일 고수는 누구입니까.’
사형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답했다.
‘나다.’
너무 진심이 느껴져서 더 어이가 없었지만, 뭐 사실은 사실.
‘사형 말고요.’
‘그딴 가정을 읊조리는 것 자체가 죽어 마땅한 일이지만, 그게 네 죽기 전 소원이라면…… 답은 맹주다.’
맹주 현청.
분명 사형은 그가 자신의 다음이라고 말했었다.
이에 뻔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왜입니까?’
중원에는 신승도 있고, 서검도 있으며 하다못해 사도련주와 팔대방주도 있지 않는가.
이에 사형은 잠시 고민을 하는가 싶더니 이렇게 답했다.
‘련주나 서검이 실력에서는 조금 더 앞설지도 모르지. 하지만 맹주에겐 놈들이 가지지 못한 힘이 있다.’
대체 그게 무엇이기에.
하지만 아쉽게도 뒤는 더 듣지 못했다. 눈을 부릅뜨며 뭐냐고 되묻는 순간. 악! 비명을 지르며 사형의 일장에 날아가 처박혀 버렸으니까.
‘내가 맹주의 일거일동까지 네놈한테 알려줘야 하느냐?’
뭐 그렇게 성질까지 들으면서 말이다.
어쨌든 사형조차 그를 자신의 바로 다음으로 보고 있으니 검신이라 불릴 만한 절대 고수인 건 틀림없는 사실.
“어쨌든 앞으로 잘 지내보세. 뭐, 진짜는 이제부터겠지만.”
조진평이 쓴웃음을 짓고는 주변을 살폈다.
고오오오오!
분명 음주에 흐트러져야 할 주루 안이거늘.
경쟁심과 기세가 공기를 매섭게 달구고 있다.
당연했다.
이곳 화림현에 규모 있는 주루는 이곳 하나뿐.
바꿔 말하자면.
지금 이 안에 모여 있는 손님들 대다수가 시험을 통과한 합격자들이라는 얘기.
“이보게 백 공, 자네보다 밥 한 끼라도 더 먹은 내가 충고하나 할까.”
“동갑이라고 하지 않았나.”
“어, 얼굴을 보게. 더 쪘지 않은가.”
“그래서. 충고할 게 뭔데.”
“오늘 같은 날엔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나서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 하네.”
“왜지?”
“왜긴. 한 우리에 갇힌 짐승들. 긴장감이 오르겠지. 입술은 바짝바짝 마르고, 피는 뜨겁게 끓는 거야. 보글보글. 그럼 어찌 되겠는가?”
“죽겠지.”
“아니지! 이럴 땐…… 반드시 사달이 나는 걸세.”
알겠으니까 눈 크게 뜨지 마. 조진평이 휙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말했다.
그러자.
와당탕! 나자빠지는 사내 하나가 보인다.
“시작됐군.”
조진평은 한숨을 길게 내쉬곤 고개를 저었다. 장이서는 지그시 상황을 살폈다.
“눈을 얻다 뜨고 다니는 거야?! 엉?”
딱 봐도 비좁은 길에 일부러 어깨를 쳐서 넘어트린 상황.
무슨 일인지 눈짓으로 묻자 조진평이 찰떡처럼 알아듣고 답했다.
“저 시비 거는 말상이 위지세가의 셋째 위지경. 성질머리가 드세기로 유명한 자이지.”
위지세가. 들어본 적 있다.
하북의 알아주는 삼대 명가 중 하나.
한데 저자가 왜.
“뻔하지 않은가. 서열 싸움. 누가 위고, 아래인지 보여주겠다는 걸세. 주변에 앉은 자들 보이는가?”
보인다. 하나 같이 값비싸 보이는 옷들.
“맨 앞에 쥐 머리는 황보병. 그 옆의 들창코는 단목살. 이외에도 모두 쟁쟁한 가문들이지. 저들의 공통점이 뭔지 알겠는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륜회로군.”
위지세가, 황보세가, 단목세가. 오대세가에 들진 못했으나 모두 이름 있는 명가.
지금은 오륜회 산하에 속해 있는 곳들이었다.
만일 혈교에서 심어둔 이들이 있다면 가장 먼저 의심해야 할 자들.
조진평은 씨익 웃고는 답했다.
“과거엔 구파일방 눈치 본다고 조용했는데, 이젠 저들 세상이라 이거지. 무엇보다도.”
조진평이 코밑을 긁는 척 한 사람을 가리켰다.
“믿는 구석이 있거든.”
가장 안쪽에 고고히 술잔을 든 채 앉아 있는 사내.
“창궁룡 남궁신.”
강직한 용모와 더불어 우월한 체격.
“내가 아까 소피 누러 갔다가 우연히 들었는데, 시험장에서부터 먹잇감을 점찍었다더군.”
먹잇감이라. 표현이 거칠긴 하지만 일리는 있다. 만만해 보이는 자 하나 골라다가 본보기로 밟아주겠다는 것.
이어진 상황도 예상되는 그대로였다.
똑같이 합격했다 해도 엄연히 실력엔 차등이 있는 법.
위지경의 엄포에 상대는 아무 말 못 하고 고개만 숙였다.
이에 술잔을 빙그르르 돌리자, 툭! 조진평이 손목을 붙잡곤 고개를 저었다.
“백 공, 참으시게. 참아야 하네.”
이에 멀뚱히 그를 바라보곤 답했다.
“누가 나선대. 그럴 생각 전혀 없어. 손 치워.”
“아, 그래? 미안. 왠지 꼭 나설 것 같아서. 하하.”
얕게 헛웃음을 뱉었다. 보기엔 딱하지만 나서줘 봤자 잠시뿐.
“칼 밥 먹고 사는 무림인이라면 제 가치는 스스로 증명해야지.”
조진평이 놀란 듯 눈썹을 곤두세웠다. 생각보다 비정한 말이었기 때문.
하지만 틀린 말도 아니다.
난 여기서 이렇게 당할 놈이 아니라고.
이 정도에 겁먹을 줄 알았다면 큰 오산이라고.
이 정도는 스스로 보여줘야 험난한 강호에서 버틸 수 있는 거다.
그게 안 되면 비굴하게 빌붙어 살아남든가. 아니면 제 발로 떠나든가.
둘 중 하나뿐.
“귓구멍 열고 잘 들어라! 같은 신분이 됐다고 맞먹을 생각하지 마. 주제에 맞게 처신하라는 얘기다. 못 볼 꼴 보고 싶지 않으면.”
어느새 상황을 마친 위지경이 다 들으란 듯 떠든다.
분위기가 침중해졌다.
모두 알기 때문이었다.
지금 저 말이 누구 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경고였다.
눈치껏 기어다니라는 오륜회의 졸렬한 선전포고.
물론 장이서한테는 하등 영양가 없는 일이었다.
뭐, 저들이 혈교라면 조금 달라지겠지만.
* * *
한편 맹주 현청은 장원으로 돌아왔다.
“벌써 다 보고 오신 겁니까.”
등 총관은 기다렸다는 듯 달여놓은 차를 내왔다.
떫고 진한 차향이 방 안에 가득 퍼진다.
또르르.
그리고 이를 따라주며 조심스레 맹주의 안색을 살폈다.
그를 보필한 지도 어느덧 수십 년.
이제는 숨소리만으로도 맹주인지 아닌지를 분간하고, 나아가 기분마저 통찰하는 경지에 올랐다고 자신했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지금의 맹주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만족해하고 있다는 것을.
3년 내 본 맹주의 모습 중 가장 눈매가 곱게 휘어 있다.
물론 예상은 갔다.
“진룡과 창궁룡의 실력이 확실히 대단하더군요.”
진자량과 남궁신. 평화의 3세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최고의 인재들.
그들의 수준을 확인하고 온 것일 터. 자연스레 넌지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한데.
“그런 것 같더군.”
뭔가 이상하다. 맹주의 올라가 있던 입꼬리가 오히려 조금 가라앉은 것.
‘왜지?’
의문이 가득 차 있던 순간, 맹주가 차를 톡 내려놓곤 다시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맹에서 가장 예민하다는 등 총관의 눈에도 띄지 않은 자였나 보군.”
“예……?”
“이러니 더 궁금해지네. 겉으로 보기엔 특별할 것 하나 없었다는 말일 테니.”
그게 무슨…….
하지만 더 물을 수는 없었다.
맹주의 눈을 보고 그가 사색에 잠겼음을 깨달았기 때문.
이럴 땐 묵묵히 기다리는 것이 수하의 자세.
‘대체 누굴 보신 것인가.’
또르르.
차 따르는 소리만이 고요히 흐르는 밤이었다.
* * *
사흘이 지났다.
명상에서 눈을 뜨자 창 틈새로 비추는 여명에 서서히 어둠이 걷힌다.
잠이 든 건 아니다.
지금의 장이서는 사나흘에 한 시진(2시간) 정도면 잘 잤다 말할 정도는 됐다. 두 시진이면(4시간) 날아다닐 정도고.
그게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가능하다.
이는 장이서가 탈인(脫人)의 경지. 곧 입신지경에 가까워졌기 때문.
남들은 입신(入神)의 경지를 두고 다양한 추측을 내놓지만, 장이서의 지론은 의외로 간단했다.
단전에서 파생한 절대적 기운이 체(體) 내외를 감싸 물리적 충격을 넘어 시간마저 비껴가게 하는 것.
이른바 육신이 시간의 굴레에서 해방되는 것을 입신지경으로 정의했다.
하여 더는 노화 현상이 일어나지 않으며, 먹어야 할 이유도, 자야 할 이유도 사라지는 단계에 이르게 되는 거다.
불멸의 시작점에 오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장이서는 정확히 그 지점 앞에 멈춰 서 있었다.
이미 머리는 단계를 넘어섰으나 막혀버린 구규지체가 따라주지 않은 것.
천마에게 배운 귀천살마공으로 다섯 번째 구멍은 막아냈으나, 그다음은 하늘에 별을 따는 것만큼 소원했다.
애초에 여기까지 온 것도 기적 그 자체.
그래서일까.
‘결국 찾아내지 못했다.’
사흘간 숱한 궤적을 그어 보았지만, 시험장에서 펼쳤던 그 검로는 찾아내지 못했다.
3년 전 무아지경에 펼쳤던 소림의 무공을 다시 펼치지 못하듯,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어렴풋하게나마 기억은 있는데, 다시 그 길이 재현되지는 않았다.
길게 숨을 뱉어내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안 되는 걸 억지로 쫓는 건 무의미한 일.
오늘이 안 되면 내일이 있다.
마음을 비우고 옆의 탁상을 흘겼다. 서류가 가득하다. 인사 기록이었다.
이번 맹호원 호위무사 시험에 합격한 오십 명.
그들에 대한 정보를 묘채경이 직접 발로 뛰며 조사해 온 것이다.
‘시간이 없어 많이는 못 찾았습니다. 따로 알아볼 게 있어 놓고 갑니다.’
그것도 잠시 밥 먹으러 자릴 비운 사이, 서신과 함께 놓고 나갔다.
그녀 말로는 적다고 했지만, 이 짧은 기간에 믿기 힘들 정보량.
이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됐다.
만일 이 중에 혈교에서 보내진 자가 숨어 있다면, 그게 누구든 결코 뜻대로 되지만은 않을 것이다.
결연한 눈빛으로 텅!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지금부터 제1기 맹호단(盟護團)의 입단식을 시작하겠다!”
강렬한 태양 빛 아래.
각자 봇짐을 싸 들고 모인 오십 명의 무사들.
맹호단의 첫날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