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327)
첩자의 마교생활-327화(327/350)
327.
#정호위
정신을 차리자 남궁신과 진자량도 답이 궁금했는지, 이쪽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의심과 시기. 그리고 호승심. 맹주를 보는 제 눈빛이 저랬을까. 참 한창나이다. 너희나 나나. 어쨌든 얽혀봤자 피곤한 일.
“뭘 어째. 그냥 남들 하듯이 했지.”
별거 아니라는 듯 답했다.
“인상 깊은 검이었네. 내 앞으로 자네만 눈여겨보지. 자네가 정도의 희망일세. 분명 이리 말씀하지 않으셨는가!”
그렇게까진 안 했고.
“그냥 하신 말이야.”
장이서가 픽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닌데? 뭔가 자네 볼 때 눈빛이 우리 볼 때랑 달랐는데?”
“쓸데없는 소리. 나만 이상한 사람 만들지 말라고. 내가 볼 땐 저 두 사람을 더 눈여겨 보시는 거 같던데.”
장이서가 힐끔 남궁신과 진자량을 턱짓했다.
“그랬나? 하긴…… 뭐 좀 그랬던 거 같기도 하고.”
“그러니까 억측은 그만하지.”
동조하듯 답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관심은 사그라든다.
내면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때마침 등 총관이 밖으로 나왔다.
“가지.”
그를 따라 자연스레 걸음을 옮겼다. 저에 대한 관심은 완전히 사라졌다.
한데.
불쑥 등 총관이 가던 걸음을 멈추곤 말했다.
“오늘부터 백서 자네가 정호위(正護衛)이니 그리 알도록.”
“커헉!”
이에 조진평은 사레가 들리고, 진자량과 남궁신은 입이 벌려진 채 얼어버렸다.
당연했다.
정호위는 가장 측근에서 주인을 보필하는 호위무사. 상식선에선 가장 믿고, 강한 자에게 부여되는 직책이다.
‘이것 봐. 뭐 있다니까!’
조진평이 눈으로 제 뜻을 피력했다. 남궁신과 진자량의 눈에 기껏 꺼진 불이 다시 거세게 붙었다.
그냥, 너희들 알아서 해라.
결국 어깨를 으쓱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맹호단에 백서라는 장작이 또 한 번 던져지는 순간이었다.
*
어느덧 저녁이 되었다.
일과는 특별히 한 것 없이 바쁘게 흘러갔다.
복식을 맞추기 위해 찾아온 재단 장인들과 차례대로 시간을 보내야 했고, 가벼운 식사 후엔 마련된 숙사(宿舍)에 방을 배정받았다.
그리고 찾아온 자유 시간.
온종일 함께 다닌 탓인지 어느새 하나둘 서먹함이 걷히고,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단연 가장 큰 화제는 그였다.
“들었는가? 정호위가 벌써 정해졌다더군.”
“누가 되었는가? 창궁룡? 진룡?”
“둘 다 아닐세. 이름이…… 백사랬나?”
백사 아니고 백서.
바로 장이서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무튼 처음 듣는 자인데 총관께서 그를 정호위로 임명하셨다더군.”
“에이, 그게 말이 되나. 시험장에서 못 봤는가? 창궁룡과 진룡이 화강암을 어찌 만들어 놨는지.”
왜 못 봤겠는가. 다 봤지.
하나는 두 동강에 다른 하나는 박살이 나버렸지 않은가.
“뭔가 착오가 있는 걸세.”
“혹시 아는가. 이곳 맹호원에 신룡(新龍)이 나타난 걸지도.”
“설마.”
곳곳에서 기대와 불신이 가득 서렸다.
그럴 만도 했다.
무명인 자가 천하의 창궁룡과 진룡을 젖히고 정호위에 올라섰으니.
그것도 다른 곳도 아닌 맹주의 장원에서 말이다.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는 일.
그리고 이러한 수군거림은 이들의 심기를 거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복도를 지나는 오륜회의 무리.
창궁룡 남궁신 패거리였다.
“하, 저 병신들이. 신아. 내가 가서 밟아버릴까?”
위지세가의 망나니 위지경이 이빨을 드러낸다. 이에 단목살과 황보병도 거들었다.
“백사고 뭐고 가문도 별 볼 일 없는 거 같던데. 더 나대지 못하게 손봐줘야지.”
“맞아. 우리 오륜회의 체면이 안 살잖아. 안 그러냐, 신아?”
세 사람의 기세가 매섭게 쏘아진다.
당장 남궁신의 명만 떨어지면 박살을 낼 기세.
하나.
“위지경.”
“어.”
“가서 자라.”
“나 안 졸린데?”
“자라고.”
서슬 퍼런 눈초리. 그제야 상황을 직감한 무리가 깨갱 고개를 숙였다.
“너희도 쉬어라.”
“어, 알았다. 신아.”
“그럴게.”
살벌한 기세에 남은 이들도 눈치를 살피며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그들의 빈자리를 보며 남궁신은 중얼거렸다.
“한심한 것들.”
의외였다. 남들이 보기엔 그가 악의 축 같지만 천만에.
그는 남궁가의 대공자이자 정도 제일 후기지수.
저들의 유치한 장단에 놀아줄 마음 따윈 없었다.
그냥 집안 어르신들의 서로 잘 지내라는 당부가 있어 어울려 준 것뿐.
‘백서…….’
지금 그의 머릿속엔 오직 백서라는 이름뿐이었다.
분명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거늘. 온종일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았다.
남궁세가의 대공자인 자신이 언제 이처럼 의문의 굴욕을 맛본 적이 있던가.
아니, 없다. 맹세컨대 단 한 번도 없었다.
‘네가 정말 그럴 만한 실력이 있는지. 확인해야겠다.’
그의 마음에 짙은 투기가 서리는 순간이었다.
* * *
한편 맹호단이 그의 이름에 들썩이고 있을 무렵.
정작 당사자인 장이서는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 등을 기댄 채 서 있었다.
그건 바로 어느 한적한 담벼락.
빛 한 점 없는 이곳에서 지나는 이의 금품이나 갈취하려는 것은 아닐 테고.
여기에 온 이유는 간단했다.
“정호위라니요. 첫날부터 그게 가능한 겁니까?”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여인의 목소리. 바로 묘채경과의 접선이었다.
“오호호, 이제 보니 무림맹에 계셨어도 잘나가셨겠습니다.”
잘나가긴. 죽다 살았지.
“어쨌든 금방 일이 끝날 것 같아 다행입니다. 계속 계시는 것도 영 모습이 이상했는데.”
그렇긴 하지.
“그보다 서신에 알아볼 게 있다고 적어놨던데.”
“아, 맹호단을 조사하던 중에 이상한 소문을 들어서요.”
그녀가 호흡을 가다듬곤 말을 이었다.
“화림현 인근에서 누가 칼 좀 쓰는 낭인들을 모으고 있답니다. 그것도 돈만 되면 뭐든 다 하는 자들로.”
칼 쓰는 낭인이라. 이런 경우는 뻔했다.
전쟁을 준비할 때.
이른바 부족한 머릿수를 채워 줄 칼받이가 필요할 때 흔히 낭인들을 모으곤 했다.
“한데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했다. 그것도 많이.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이 촌구석엔 전쟁 벌일 만한 곳이 없는데 말이지요.”
그녀의 말대로. 화림현은 워낙 외져 칼을 든 자조차 보기 어려운 곳이다.
한데 전쟁이라니.
“맹호원을 노리는 거라고 보는 겁니까?”
“그걸 알아보려고 간 겁니다. 근데 그건 그거대로 이상하니 답답할 노릇이지요.”
하긴. 어떤 미친 자가 맹주와 전쟁을 벌이려고 하겠는가. 그것도 낭인으로. 황실의 십만 대군을 끌고 오는 거라면 모를까.
“그래서 알아냈습니까?”
“아직입니다.”
그녀에게 지금껏 뒤를 밟히지 않을 정도라면, 절대 보통 녀석들은 아닐 거다.
무엇이든 혈교가 도사리고 있는 이상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그들이 누구인지 찾아내세요.”
“존명.”
벽 너머의 인기척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 * *
다음 날 아침, 모두가 다시 연무장에 모였다.
통일된 복식은 아직이라 여전히 옷차림은 각양각색이고, 서로 얕보이지 않겠다고 눈빛은 부리부리하다.
맹호단 출범 이래 하루가 지났지만, 여전히 한 식구라고 부르기엔 어폐가 있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전부 모였나.”
“예!”
등 총관만큼은 모두가 인정했다는 것.
그의 등장에 흐트러진 자세가 바로 서고, 눈빛도 선명해진다.
본래 인정만 하면 마음의 만리장성도 허물어지는 게 사내 아닌가.
모인 용건은 간단했다.
“지금부터 임무를 배정하겠다.”
임무 배정!
맹호단에 뽑힌 인원은 총 오십 명.
힘들게 경쟁률을 뚫고 들어왔지만, 역할이 다 같은 건 아니었다.
조진평의 말대로 누군가는 맹주를 지키고, 누군가는 대문을 지켜야 한다는 것.
서열이 갈린다는 얘기다. 당연히 모두가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문제.
“맹주님을 보필할 정호위부터 호명하겠다.”
흡! 서두부터 제일 호위무사?! 모두가 숨이 얹힌 듯 바짝 경직됐다.
하나 등 총관은 그딴 사정 알 바 아니라는 듯 거침없이 뱉었다.
“백서. 앞으로 나오도록.”
웅성웅성! 소란이 크게 인다. 소문이 다 사실이었단 말인가.
모두가 화들짝 놀라며 뒤에 선 장이서에게 시선을 꽂았다.
“정말 저자가 제일 무사라고?”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
“백서란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어.”
대체로 좋은 평은 아니었다. 눈빛엔 불신이 가득했고, 분노한 자들도 여럿 보였다.
본래 강한 사내들일수록 인정할 수 없는 자가 위에 서는 건 자존심이 허락지 않기 때문.
물론 장이서는 덤덤했다. 귀찮게. 딱 그런 표정이었다. 마교 부교주인 그에게 제일 무사 따위가 뭐 별거겠는가.
하나 이들에겐 의미가 컸던 모양이다.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앞으로 나가려는 찰나, 묵직한 음색이 흐름을 끊었다.
장신에 딱 벌어진 체격. 섬찟한 눈매를 가진 창궁룡 남궁신이다.
“지금 뭐라고 하였는가.”
“저자가 정호위라는 것이 납득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고오오오!
등 총관의 눈빛에서 압살할 듯한 철혈의 기세가 뿜어진다.
아무리 그라도 상관의 뜻에 불복하는 건 용서되지 않는 일.
꿀꺽. 그때 모두 깨달았다. 입관식 때 본 총관의 모습은 조족지혈이었다는 것을.
그야말로 스치기만 해도 베일 것 같은 명검 그 자체.
하나 그가 2세대의 주역이었다면 남궁신은 떠오르는 3세대의 핵심. 뚝심 있게 말했다.
“이곳에 모인 저희는 오직 맹주님을 모시겠다는 마음으로 모였습니다.”
그럼 제 말은 듣지 않겠다는 건가. 등 총관의 눈매가 꿈틀거린다.
“그래서?”
“당연히 가장 가까이에서 맹주님을 모시길 모두가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겁니다.”
“용건만 말하게.”
“저자가 정말 정호위에 어울리는 자인지. 모두가 납득하고 따를 수 있게. 확인할 기회를 주십시오.”
웅성웅성! 또다시 소란이 빗발쳤다.
이번엔 부정이 아닌 긍정이다. 그것도 과한 초긍정!
“맞습니다! 확인시켜 주십시오!”
“실력도 없는 자를 위에 둘 수는 없습니다!”
군중이 남궁신의 발언에 힘을 싣는다. 총관의 미간이 더 찌푸려지지만 아랑곳없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등 총관도 궁금한 건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봐도 맹주님께서 관심을 기울일 만한 아이가 아니다.’
눈을 씻고 다시 봐도 평범 그 자체.
더구나 썩 마음에 들지도 않았다. 흡사 사마외도를 보듯 어딘가 묘하게 사이함이 느껴졌기 때문.
지금도 보라. 팔짱 툭 끼고 시건방진 자세로 입꼬리를 올리고 있지 않은가. 마치 남의 집 불구경하듯이.
보통 이런 상황이면 조바심이 일어야 정상이거늘.
‘마음 같아선 나 역시 백 번이고 확인해 보고 싶다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의 원칙에 상명하복은 기본. 어쨌든 맹주가 직접 내린 명이다. 번복은 있을 수 없다.
단호히 안 된다고 잘라내려는 찰나.
“모두가 이토록 바라는데 그리해 주게.”
뒤편에서 중후한 음색이 흘러들었다.
그러자 일시에 소음이 멎고, 모두가 정중히 예를 갖춘다.
등 총관 역시 고개를 숙이며 옆으로 물러섰다.
맹주 현청.
그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