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329)
첩자의 마교생활-329화(329/350)
329.
#흉내
“아니, 칼 빌려 달란 말을 그렇게 크게 하나. 조용히 해도 될 것을. 자, 여기 있네.”
조진평이 민망함에 얼굴을 가리곤 칼을 건넸다.
“고맙다.”
장이서는 짤막하게 답인사를 하고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스릉!
그러곤 검을 뽑아 든 뒤 거추장스러운 칼집은 보지도 않고 옆으로 툭 던졌다.
“엇?!”
반사적으로 이를 붙잡은 위지경과 무사들의 눈에서 어처구니가 없다는 시선이 쏟아진다.
‘이 새끼 뭐야.’
‘타인의 검을 저리 함부로 다루다니. 검에 대한 예우가 없는 자구나!’
여기 모인 이들은 모두 검에 미쳐 사는 검객들. 더구나 이곳은 백도다.
검과 예를 함께 배워온 그들에겐 칼집을 내던진 장이서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나 살기 위해 칼을 잡았던 그에겐 그저 흉기일 뿐. 다른 의미 따윈 없다.
“흠…….”
장이서는 차분한 표정으로 느티나무 앞에 섰다. 그러곤 무심히 흔적을 살폈다.
‘이게 대체 무슨 의미이지?’
그리고 그 상태로 시간이 길어지자 곳곳에서 술렁인다.
누가 봐도 뭘 할 줄 몰라 가만히 서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걸 당신이 왜…….’
검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
너무나 이해를 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뿌리처럼 번진 이 검흔의 정체는…….
‘어째서 당신이 뇌전법을 흉내 내고 있는 거지?!’
뇌전법(雷轉法).
바로 자신이 익힌 무공이자 한무영의 성명절기였기 때문이다!
처음 볼 때부터 설마설마했었다.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주변에 음과 양의 기운이 몰리기 시작했고, 이내 서서히 검 안에선 뇌력이 꿈틀거렸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계승자인 장이서의 눈을 속일 순 없는 일.
맹주는 틀림없이 조화술(造化術)을 흉내 내고 있었다.
시연이 끝나고도 너무 믿기지 않아 가까이 다가와 나무의 흔적을 살핀 것.
한데 보고 나니 오히려 더 정확해졌다. 이건 분명히 뇌전법이었다.
물론.
‘조화술은 그렇게 펼치는 게 아니야. 음양의 기운을 외부가 아닌 내면에서 일으켰어야지. 이래선 위력은 둘째치고 준비가 길어져 제대로 쓰지도 못해.’
원류의 계승자인 장이서 입장에선 많은 것이 어설퍼 보였지만 말이다.
하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도대체 어떻게 맹주가 뇌전법을 알고 있는 걸까. 설마 그도 사부를 알고 있는 건가?’
생각해 보면 그럴 가능성도 있다 싶었다.
사형인 천마 진우광은 나이로 치자면 전란의 2세대. 반면 사부인 한무영은 신주오절과 같은 혼란의 1세대 인물이다.
더구나 본래 정파의 인물이 아니었던가. 마교로 떠나오기 전부터 알던 사이였을 수도 있다.
마음 같아선 당장 달려가 따지듯 묻고 싶지만.
“멀뚱히 서서 뭐 하는 거냐? 할 줄 아는 게 없으면 노래나 한 곡 부르고 들어오든가!”
“크크큭.”
위지경을 비롯해 일부 무사들의 비난이 시작되었다.
정호위에 있을 자격이 없다는 걸 에둘러 졸렬하게 까 내린 것.
본래 이런 유치한 촌극에 장단 맞춰주는 편은 아니지만.
‘꼭 그리 확인해야겠다면 보여주는 수밖에.’
자신이 이곳에 온 건 맹주의 퇴임을 막기 위함.
한데 다른 이도 아닌 그가. 어제 보여준 것만으론 부족하다고 하니, 한 번 더 비위를 맞춰주기로 했다.
하지만 뇌전법은 아니다. 원류인 본인이 아류를 따라 할 순 없는 일.
장이서는 맹주 자체에 초점을 두기로 했다. 뇌전법은 어설펐지만, 그의 검은 진짜였으니까.
솔직히 넋을 잃고 본 것도 있었다.
‘분명 시작은 나뭇가지였으나 그 끝은 신검(神劍)이었다.’
어찌 그럴 수 있는 것일까. 장이서는 그 답이 장비가 아닌 사람 자체에 있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뭐야?”
그러자 곳곳에서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눈이 부릅떠졌다.
그러곤 곧.
“푸하!”
한순간에 모두의 입에서 웃음보가 터졌다.
장이서가 검무와는 일절 상관없이 검을 양손에 쥔 채 머리 위에서 천천히 내리긋고 있었기 때문.
심지어 눈여겨볼 것도 없다. 나쁜 건 아닌데 그렇다고 특별할 것도 없는 수준.
한마디로 별거 아닌 새끼.
“이건 뭐 열 살짜리가 재롱부리는 것도 아니고. 삼재검법이 웬 말이냐? 크하하하!”
위지경이 조롱 섞인 폭언을 뱉었다.
한데.
“음?”
저와 같이 비웃던 이들의 표정이 묘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분명히 웃고 있었는데 점점 입꼬리가 내려간다.
‘뭐야, 왜들 이래?’
당황한 위지경이 고개를 돌리자 그의 입도 점점 벌려졌다.
“이게 뭐야! 왜 저 자식한테서…….”
그는 차마 말을 다 뱉을 수 없었다. 아니,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장이서에게서 절대 닮을 수 없는 이의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
맹주 현청.
바로 그의 모습 말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태에 다들 어안이 벙벙해졌다.
진자량과 남궁신은 파르르 떨기까지 했다.
오랜 세월 옆에서 지켜본 최측근인 등 총관은 더 했다.
‘미숙하다. 검을 쥔 모습부터 베는 것까지. 오래 잡아본 자가 아니다. 한데도 불구하고 순백처럼 곧고, 용신(龍神)처럼 유연하다. 심지어 미세한 떨림의 습관마저 일치해. 이건 분명 맹주님이다! 어찌 저자가……!’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마치 검을 처음 쥔 맹주 같다.
너무 기괴하게 일치해 어지러울 지경.
이 정도면 숨겨둔 핏줄이라고 해도 믿겠다. 아니, 설령 핏줄이라고 해도 이 정도까지 똑같아 질 수가 있는 것인가?
상식선에서 절대로 이해가 안 되는 일.
하지만 그런 불가능을 가능케 만드는 존재가 바로 장이서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괴물 같은 신체와 감각이 이를 기억했다.
우우웅!
몸 안에 깃든 수백 개의 소단전이 포효를 터트리고, 솜털 하나하나가 전부 다 생생히 느껴진다.
다른 생각은 일절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지켜본 맹주 그 자체를 떠올렸다.
무아지경에 빠져들고 그 결과!
장이서는 맹주를 필사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이유는 간단했다.
역근경(易筋經).
지난 3년간 지옥 같은 수련을 겪으며 새로운 경지에 올라선 건 천마신공뿐만이 아니었다.
역근경 또한 괄목할 성장을 이루었다.
살아남기 위해선 천마의 모든 것을 닮아야 했기에. 그를 느끼고, 배우고, 흉내 내면서 장이서의 역근경도 새로운 경지를 이루게 된 것이다.
비록 찰나에 불과하나 상대를 온전히 흉내 낼 수 있는 역근경 비기.
바로 의태신기(擬態身氣)를 말이다!
물론 흉내 낼 수 있는 건 감각과 신체적인 능력뿐. 상대의 깨달음마저 가져올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천하가 경악할 만한 엄청난 권능이었다.
어쨌든 작금의 나로서는 불가능한 일을 상대를 흉내 내 가능케 할 수 있기 때문.
더구나 그 순간의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니, 한 번의 경험만으로도 엄청난 성장을 끌어낼 수도 있었다.
비록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흉내 낼 수 있는 시간과 정도가 다르고, 끝나면 한동안 역근경을 다룰 수 없어 종잇장처럼 허약한 몸이 되어버리지만.
그래도 최소한 유지되는 동안만큼은 완벽한 타인이 되었다.
바로 지금처럼!
어느새 종 베기를 마친 장이서.
모두의 경악 속에 그가 다시 천천히 검을 움직였다.
다른 이도 아닌 맹주 현청이다.
그의 감각을 헛되이 날려 보내고 싶진 않았다.
한 번만 더 펼쳐보고 싶었다.
화강암을 베어낼 때 느꼈던 바로 그 길.
신의 검로를 말이다!
슥.
검이 비스듬히 비틀어진다.
내기를 실은 것도 아니고, 그저 별거 아닌 동작이었지만 모두가 마른침을 삼키고 위축됐다.
압도된 것이다.
일시적이지만 맹주와 하나가 된 그의 자태에!
그리고 장이서의 눈에 벼락과 같은 안광이 내뿜어지는 그 순간!
수와아아악!
대각선 위로 빛의 궤적이 그어졌다!
쩌엉!
그러자 영롱한 음색과 함께 별 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검의 파편.
“……!”
좌중이 경악에 빠진다.
그리고 무아지경에서 깨어난 장이서는 제 손에 들린 검파를 내려 살폈다.
성공인가……?
‘아니야. 실패다. 검로는 찾아냈지만, 검이 견뎌내질 못했어. 어째서지?’
무언의 충격이 머릿속을 맴돈다.
느낌만은 확실했다. 다름 아닌 맹주의 감각으로 펼친 일검.
분명 성공할 거라고 여겼거늘.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그어볼 수 있다면…….
진한 충동이 손을 간지럽힌다.
하나 마음과 달리 머리는 알고 있었다.
산화한 진기를 연기처럼 뿜어내는 358개의 소단전.
이미 역근경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을 말이다.
‘산뜻한 선풍도 칼날처럼 느껴지는데 모를 수가 없지.’
역근경이 꺼지자 금강불괴와 같던 도검불침의 몸도 두부처럼 연해진다.
이렇게 육신에 고통이 느껴지는 것도 실로 오랜만.
‘그래도 사형보다는 낫네.’
한번은 천마를 상대로 의태신기를 펼쳤다가 피 토하며 기절한 전적이 있다.
역근경의 경지는 상승했으나 정작 그를 완전히 흉내 내진 못했던 것.
어쨌든 지금 상태로는 다시 펼친다고 해도 절대 해낼 수 없는 일.
그저 신의 검로에 한 번 더 근접했었다는 것에 만족해야겠다.
“뭐, 뭘 본 거지?”
“방금 대체 무슨 일이…….”
물론 지켜보던 이들은 모두 두 눈을 비비며 혼란에 빠졌다.
등 총관도 입을 떡 벌리고 서 있는 걸 봐선 분명 뭔가 엄청난 게 지나간 것 같았는데, 제대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
위지경이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곤 다급히 외쳤다.
“뭐냐, 이게. 뭐 대단한 거라도 보여주는 줄 알았더니. 그냥 내력도 제대로 못 다루는 애송이였잖아! 손질도 안 된 검에 잘못 내기를 불어넣으니 부서지지! 안 그래?”
그런가? 일리는 있다. 간혹 금이 서린 검에 잘못 내기를 넣으면 저렇게 가루가 되어 부서지곤 하니까.
오륜회가 애써 웃으며 동조하려는 찰나.
“닥쳐라, 위지경.”
가만히 지켜보던 남궁신의 살벌한 일갈이 터졌다.
“어……?”
“제발 눈치가 없으면 그 입이라도 닥쳐라.”
“신아…….”
짙은 배신감에 위지경이 애처롭게 쳐다본다. 하나 남궁신은 매몰차게 고개를 돌렸다.
검이 부서진 게 중요한가.
아니.
‘난 저 검을 막아내지 못했을 거다.’
조금 전 장이서가 펼친 일검이 제게로 날아들었다면 분명 제 몸이 두 동강 났을 것이다.
이게 중요한 거였다.
‘백서…….’
그의 이름이 제왕의 핏줄인 남궁신의 어깨에 태산처럼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물론 그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대체 그 검로는…….’
검로를 읽는 눈을 가진 진자량의 충격은 더 컸다.
장이서의 검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당연했다. 직선도 아닌 꾸불꾸불한 기괴한 검로였다. 최적일 수 없는 최악의 궤적.
한데도 그 어떤 검보다도 빨랐다.
“정말 대단한 친구군.”
“음.”
옆에 선 송옥의 말에 진자량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이에 좌중은 다시 침묵했다.
분명 저들과 또래이지만,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그 이름 백서.
그 이름이 이젠 일평생 잊을 수 없는 이름이 된 것이다.
물론.
맹주 현청의 눈빛은 더더욱 무거워졌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