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332)
첩자의 마교생활-332화(332/350)
332.
#치밀한 싸움
한편 맹주는 안색이 파리할 만큼 새하얘져 있었다.
회령초의 부작용이었다. 창자가 끊어지는 통증이 쉴 새 없이 몰아쳤다.
성역을 드러내는 건 의념의 영역이니 크게 무리가 가지 않지만, 이를 사용하려면 내기의 운용은 불가피한 일.
고작 잠깐 사용했다고 몸 안이 뒤죽박죽으로 들끓는다.
하나 입가엔 시름보단 미소가 더 컸다.
“자네의 제자를 이리 만나게 될 줄이야.”
솔직히 처음엔 반신반의했다. 그만큼 갑작스러웠고, 또 여전히 의문스러운 점이 많았기 때문.
하지만 생각할수록 확신이 들었다. 백서가 바로 무영의 제자라고.
낯도 익은 것 같고. 시건방지면서도 선을 지키는 모습이 꼭 닮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도 믿을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분명 검을 제대로 다뤄본 적도 없는 아이였다.’
입단 시험 때부터 첫눈에 알아봤다.
한데 그런 아이가 제 검을 한 번 보더니 절 귀신처럼 따라 하면서 극로를 펼쳤다.
그리고 그렇게 무섭게 남을 흉내 낼 수 있는 존재는 자신이 기억하기로 오직 한무영뿐이었다.
그야말로 그 사부에 그 제자.
그리고 그런 걸 다 떠나서 그 나이에 극로를 깨우칠 만한 천재가 어디 있겠는가.
한무영과 진우광 같은 괴물이 아닌 이상은 불가능한 일.
“무영. 난 결국 후학을 양성하는 것조차 자네를 넘지 못했군. 그것 아는가? 일평생 자네 제자와 같은 이가 나타나기를 기다려 왔네.”
살면서 수많은 천재를 보았고, 수많은 기대를 했었다.
천마 진우광.
언제고 그를 넘어설 존재가 나타나 주기를.
만일 그렇지 않는다면 중원은 다음 세대도, 또 그다음 세대도 불안에 떨며 살아가야 할 테니까.
하여 이 나이가 될 때까지 제자도 두지 않고 살아왔다.
선배들이 그러했듯, 언제고 그만한 인재가 나타나면 그에게 모든 걸 전해주기 위해.
하지만 아쉽게도 아무리 기다려도 연이 닿지 못했다.
천재는 많았지만, 천재를 넘어설 천재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
아, 딱 하나 있었다.
암각의 103호. 구규지체만 아니었다면 분명 무신이 되었을 거라고 확신했던 아이.
‘그 아이도 뇌마(雷魔)라고 불렸었지.’
순간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연배도 비슷했기 때문. 하지만 금세 고개가 저어졌다.
그 아이는 마교의 부교주. 한무영과 인연이 있을 리 없다.
또한 뇌기를 다루는 자가 극히 드물 뿐, 아예 없던 것도 아니니.
어쨌든 그만큼 오랫동안 인재를 학수고대했었다.
한데 제 호위무사가 되어 눈앞에 나타나게 될 줄이야.
솔직히 말하자면 욕심이 났다.
그야말로 마귀도 울고 갈 재능. 그런 그에게 제 모든 걸 준다면 도대체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을지.
더구나 마음의 벗이자 경쟁자였던 한무영의 제자.
굳이 배분을 따져도 제 조카와도 같은 아이이니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당장은 새로 등장한 변수에 한눈팔 때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럴수록 더 조심해야 했다.
한순간의 실수로 자칫 혈교에게 천하가 집어삼켜질 수도 있는 일이니까.
그러니까.
“아무래도 그 아이는 우리가 찾던 이가 아닌 듯하네.”
맹주의 입에서 통보가 흘러나왔다.
저벅, 저벅.
그러자 긴 시간 구보를 끝내고 돌아온 등 총관이 안으로 들어선다.
“혈교의 인물이 아니란 말씀이십니까?”
“의심 가는 구석은 있지만, 석연치 않은 부분이 더 많은 아이였네.”
“하면 어찌…….”
“그 아이는 내가 알아서 할 터이니 그냥 놔두고 계획대로 진행하게.”
총관의 눈이 부릅떠졌다.
장내에 혈교의 첩자가 들어와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데도 계획을 강행하라는 것은.
“어차피 시위는 당겨졌네. 지금은 상대를 쓰러트리는 것. 오직 그것만 생각하세나.”
총관은 침음을 삼키곤 답했다.
“따르겠습니다.”
* * *
다음 날.
곳간에서 맹호단의 무사들은 침모들이 가져온 의복을 날랐다.
마침내 맹호단의 옷이 도착한 것.
장이서도 그 안에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냥 심심해서 온 건 아니고 접선을 위함이었다.
[아니, 그럼 맹주가 죽어가고 있다는 말입니까?]침모로 변장한 그녀.
비룡당주 묘채경과 말이다.
[그렇소.]분명 둘 다 아무 말 없이 일만하고 있는 것인데도 서로 의사가 통한다.
전음은 아니었다.
전음은 기파를 내보내야 하는 만큼, 까칠한 등 총관 같은 이에겐 간파당할 우려가 있다.
둘이 나누는 대화법은 여러 가지였다.
수화, 표식, 눈짓, 몸짓.
마교 정보 계열에서 쓰이는 암어술(暗語術)이 총망라됐다.
한데도 통했다.
방첩대의 전설 미친개와 마교 첩보계의 정점인 비룡당주가 만났는데 뭔들 어렵겠는가.
남들 하나 하기도 어려운 걸 시종일관 바꿔가며 금세 해낸다.
[이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일이 제대로 꼬여버린 것 아닙니까.] [그런 셈이지.] [혈교가 제 앞마당에서 설치는데 이런 곳에 처박혀 죽음이나 기다리는 처지라니.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군요.]묘채경은 답답함에 의복을 팍팍 털곤 눈짓을 보냈다.
[차라리 만천하에 이 사실을 알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공론화를 시키면 적어도 놈들의 무혈입성은 막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럴 필요 없습니다.] [어째서요.] [이미 맹주와 혈교의 전쟁은 시작되었으니까.] [예에?]모종의 이유로 맹주는 신선폐에 중독됐다.
예상되는 건 아마도 3년 전.
최측근인 군사 구자기에 의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았다.
혈교의 첩자였던 그의 목표는 신승 하나가 아닌 맹주도 포함이었던 것.
하지만 불행 중 다행히 군사의 죽음으로 증상이 더 악화되는 것은 막을 수 있었고.
이후 지쳤다는 핑계를 대며 독을 치료하고자 두문불출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걸린 건 신선폐.
신선도 범부로 만든다는 지독한 독이다.
서서히 바뀌어 가는 체질을 되돌리긴 쉽지 않았을 터.
그사이 일흉은 오륜회의 뒤에 숨어 보란 듯이 중원을 잠식해 나갔던 거다.
왜? 맹주가 중독된 걸 확신했을 테니까.
뒤늦게 문제를 깨달은 맹주는 조처하려 하였으나, 그땐 이미 너무 늦은 뒤.
오륜회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대체 어디까지 혈교와 연루되어 있는지는 짐작도 할 수 없었을 거다.
뿌리째 뽑아내기엔 정도가 흔들릴 테고, 그중 숨은 일흉을 찾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
결국 치료 도중 맹주는 과감한 결단을 내리게 된 거다.
이른바 퇴임을 가장한 낙향.
자신이 미끼가 되어 일흉을 끌어내겠다는 것이다.
일흉은 의문이 들었을 것이다.
이쯤이면 분명 오륜회에 대해 눈치를 챘을 맹주가 아무런 조처도 없이 대뜸 낙향을 선언했으니까.
더구나 총관 하나만 대동하고 온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
신선폐에 중독이 되어 자포자기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술수가 있는 것인지.
짐작이 되지 않아 오리무중에 빠졌을 것이다.
왜?
이를 답해줘야 할 군사 구자기가 죽어버렸으니까.
하여 불안해하고 있을 것이다.
계획대로 3년 새에 중원을 집어삼키는 데까진 성공했지만, 만일 맹주가 멀쩡하다면 말짱 도루묵이 될 테니.
맹주 현청. 강호에서 그의 이름은 그만한 힘이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지금 이 상황은 그저 단순히 낙향한 철없는 맹주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맹주와 혈교의 치밀한 두뇌 싸움이었다.
속고 속이는 난전 말이다.
이것이 바로 장이서가 생각한 사건의 전말.
[세상에. 실로 충격적이군요.]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일흉은 어떻게든 맹주의 상태를 알아내려 할 거다.
장이서의 서늘한 시선이 주변을 슥 훑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맹호단 모집은 절호의 기회였을 터. 분명 이 안에 혈교의 첩자가 있다.
[그럼 이제 어찌하실 겁니까.]밤새 생각해 봤지만 답은 하나뿐.
[아무래도 당분간 여기 있어야겠소.] [진짜 맹주의 호위무사라도 되시겠단 겁니까?]필요하다면 그래야지. 그녀의 물음에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사해 본다던 건 어찌 되셨소. 인근에서 낭인을 모으고 있다면서요.]묘채경이 괜스레 의복을 탁탁 털고는 인상을 찌푸린 채 신호했다.
[아직입니다. 하지만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흥신방(興信幫)이란 모리배 놈들이 인근에서 일어나는 일은 뭐든 다 꿰고 있다더군요. 돈 되는 일은 귀신처럼 들러붙는 놈들이니 털면 뭐라도 나올 겁니다.] [상황이 상황이니 작은 것도 놓치지 말고 알아봐 주십시오. 난 이곳에 들어온 자들을 조사해 볼 테니.] [존명.]그녀가 마지막 옷을 건네곤 침모들과 함께 밖으로 나섰다.
* * *
– 요녕성(遼寧省) 심양(沈陽).
모용세가는 먼 옛날 연나라를 세운 왕족 가문으로 전통과 예를 매우 중요시했다.
이를테면 가문의 대는 반드시 장자가 이어야 했고, 가전 무공 또한 오직 장자의 핏줄만이 익힐 수 있었다.
설령 아우의 자질이 훨씬 더 뛰어나다고 해도 말이다.
“참으로 불공평한 일 아니오. 모든 게 장자 중심이라니.”
무심한 인상의 중년인이 침상에 누운 사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이름은 모용소.
오륜회을 구성하는 주축 중 하나이자 흉신팔주의 수장.
일흉이다!
모용소는 백색증의 수하가 가져온 젖은 수건으로 오랜 세월 혼수에 빠진 형의 얼굴을 닦아냈다.
한데 용모가 너무도 흡사하다.
마치 같은 사람인 것처럼.
“한데 그거 아시오? 난 한 번도 형님을 미워한 적이 없소. 누리는 자가 있다면, 누리지 못하는 자도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 그 이유가 고작 졸사간에 먼저 태어났다는 것뿐이지만. 그래도 억울하지도, 화나지도 않았소.”
그랬다. 두 사람은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 찰나의 순간이 둘의 운명을 갈랐다.
하나는 모용세가의 가주 검성(劍聖) 모용학으로. 다른 하나는 그의 그림자인 검영(劍影) 모용소로.
하지만 단 한 번도 억울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왜?
“그래야 내가 뭘 하든 형님도 억울하지 않을 것 아니오. 그러니 너무 서운해 마시오. 란이를 헐값 주고 팔아버린 것도, 형님의 식수에 독을 탄 것도. 전부 그러려니 하시오. 원래 그런 것 아니겠소. 가지는 자가 있다면 잃는 자도 있는 것이 순리이니.”
모용소의 섬찟한 입꼬리가 씨익 올라간다. 참으로 무서운 자다.
그는 날 때부터 그랬다.
아이들이 깔깔대며 웃을 때 왜 웃는지를 몰랐고, 아이들이 슬퍼 울면 웃음을 지었다.
사고 관념이 비틀린 자.
그런 그에게 그림자의 삶은 수용도, 반항도 아닌 새로운 목적을 제시해 줬다.
‘이자를 키워서 삼키면 되는 거구나.’
그림자로서 뒤에 숨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자. 그것이 일흉의 신념이자 삶이 되었다.
그렇게 모용학의 뒤에서 묵묵히 그의 명을 따랐고, 검성이라는 그의 이름이 극에 달하였을 때.
‘꺽……!’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제 형을 눈도 못 뜨는 꼭두각시로 만들어 버린 채.
그리고 이젠 무림맹 차례였다.
닦아준 수건을 무심히 수하에게 건네고 물었다.
“귀주 쪽은 어찌 되었느냐.”
“암야검(暗夜劍)을 보내 놓았으니 아무 문제 없을 것입니다.”
서늘한 눈빛에 백색증 사내는 흠칫하며 부언했다.
“귀주가 이름난 곳 없는 촌구석이라 하나 엄연히 사도련 적도방(赤刀幇)이 관리하는 곳. 그들을 이용하라 하였습니다.”
그제야 모용소는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아무 문제 없어야 할 것이다. 널 위해서라도.”
오소소. 백색의 사내는 사색이 된 채 식은땀을 흘리며 힘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귀주에 서서히 먹구름이 몰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