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334)
첩자의 마교생활-334화(334/350)
334.
#각자의 할 일
“자네 지금 뭐 하는 것인가?”
“안 그러면 계속 볼 것 같아서요.”
“그 말이 아니지 않은가! 자네가 어떻게 신선폐를……!”
“회령초는 독이지만 신선폐의 약이기도 하죠. 향을 숨기려 다른 약초들을 함께 넣으신 듯한데 효과만 떨어집니다. 환으로 만들어 드시죠. 그게 제일 나을 겁니다.”
맹주의 눈이 크게 흔들린다. 대체 이자는…….
“내기를 다루는 건 자제하시고요. 계속 쓰다 보면 장기부터 괴사하죠. 뭐 이미 잘 아시겠지만.”
심기가 혼란스러워진다. 나이가 구순을 넘어 세상 온갖 풍파 다 겪어 웬만한 일엔 동요할 일도 없다 생각했거늘.
이 자만 만나면 처음 강호에 나온 숙맥처럼 당황하게 된다.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존재. 한무영의 제자는 다르다는 것인가.
“계속 그러고 계실 겁니까? 쟤들 오해합니다.”
장이서가 고개도 못 돌리고 망을 서는 부호위들을 턱짓했다.
맹주가 한숨과 함께 기막을 없애고 말했다.
“가지.”
다시금 길을 나선다.
두 사람은 담담히 대화를 이어 나갔다.
“신선폐에 대해 먼저 이야기한 건, 저에 대한 불신이 깊으신 듯해 미리 걱정거릴 날려드린 겁니다.”
한마디로 이미 알고 있는 일이니 들킬까 봐 전전긍긍할 거 없다는 얘기.
“그럼 더 잘 알 것 아닌가. 내가 퇴임할 수밖에 없는 이유.”
알지.
“하지만 진짜 다 내려놓은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낙향한 사람한테 그게 무슨 말인가.”
“맹주께서 호위무사 하나 없이 이곳까지 낙향한 이유.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 아닙니까?”
“허.”
이젠 더 놀랄 힘도 없다. 도대체 어디까지 알아낸 것인가.
“혈교를 잡는 건 좋습니다. 하지만 그 계획이 뭐든 그리 호락호락하진 않을 겁니다.”
아니, 무조건 위험해진다.
혈교에는 그놈이 있으니까.
혈존.
맹주의 몸이 온전하다고 해도 승부를 장담하기 힘든 고수.
한데 이 몸으로 여기까지 와서 뭘 어쩌겠다고. 솔직히 여태 무사한 게 기적이다.
그런데.
“내 목숨은 그리 중한 것이 아닐세.”
이건 또 무슨 말인가. 현 시국에 그보다 중한 것이 뭐 있다고.
겸손이라면 오만한 겸손.
그가 죽는 순간 중원은 아비규환에 빠지게 된다. 그걸 모르진 않을 텐데?
“자네가 혈교 쪽 사람이 아니라는 건 믿어주겠네. 하지만 거기까지일세. 날 더 설득할 생각 말고, 왔던 곳으로 돌아가 자네 할 일을 하게.”
이쯤 되니 답답함보다는 의문이 불쑥 들었다. 대체 무슨 꿍꿍이지?
말하는 걸 봐선 제겐 그 어떤 위험이 닥쳐도 상관없다는 식.
이건 자신감과는 달랐다. 그보다 더 큰 무언가가 있다는 듯한 느낌.
생각을 정리하고 푸념하듯 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제 할 일을 하죠.”
그러곤 입을 꾹 다문 뒤 주변을 살피며 묵묵히 걸었다. 이에 맹주가 인상을 찌푸리고 말했다.
“지금 뭐 하는 것인가?”
“경계 중이지 않습니까. 호위무사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겁니다.”
“내 말을 이해 못 했군. 자네는 해고일세. 당장 짐 싸서 돌아가게.”
“그럼 저도 다 퍼트리는 수밖에요. 맹주님께서 신선폐에 걸려 죽어 간다고. 모든 곳에 다 말할 겁니다.”
“제정신인가?”
“싫으면 그만 신경 쓰십시오. 저도 더는 신경 안 쓸 테니.”
아니, 뭐 이런 맹랑한 녀석이. 맹주가 엄히 꾸짖듯 말했다.
“심히 불쾌하군. 자네는 원래 이리 막무가내인가?”
보통 맹주가 이 정도 얘기하면 고개라도 숙이는 것이 정상.
“그런 얘기 종종 듣습니다.”
하나 씨알도 안 먹힐 소리다. 장이서는 심드렁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맹주가 괘씸하다는 듯 눈매를 좁혔다.
“정말 해보겠다는 건가?”
“못 할 것 없죠.”
“알겠네. 그럼 어디 마음대로 하게.”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닐 테고. 의문스레 쳐다보자 맹주가 대뜸 기막을 지우곤 다 들으란 듯이 호명했다.
“정호위!”
갑작스레 불길한 기분.
설마.
“심부름 좀 다녀와 주겠나.”
아니, 잠깐만.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쳐다보자 문제 있냐는 듯 눈썹을 올린다.
“갑자기 말입니까?”
곧장 되묻자 부호위들도 이쪽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 숙였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각 나서 말일세.”
“아직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장원에 있는 이들을 시키시지요. 맹주님 가시는 길에 정호위인 제가 빠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부호위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맞는 얘기라는 뜻. 하나 그게 뭐 중하겠는가. 상관이 까라면 까는 거지.
“자네에게만 맡길 수 있는 일이네. 부탁하겠네.”
심지어 부탁이라는 말이 나오자 곳곳에서 부러움 가득한 시선이 일시에 쏟아졌다.
“백서 자네는 정말……. 부럽네!”
조진평은 엄지까지 추켜세웠다. 천하의 맹주가 저리 말하는데 어느 누가 부럽지 않겠는가.
순식간에 명분마저 잃었다.
흘깃 노려보자 맹주가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기막을 펼쳤다.
“자넨 자네 할 일을 하게. 난 상관으로서 내 할 일을 할 테니.”
“원래 이리 약은 분이셨습니까?”
“맹주의 자리에 있다 보면 자네처럼 뻔뻔한 자들도 상대해야 하는데 별수 있는가.”
“하, 참.”
장이서가 헛숨을 삼키자 맹주는 흐뭇한 표정을 짓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자네가 아무리 자질이 좋다 하더라도 수 싸움으론 아직 한참 이른 나이일세. 그러니 괜한 짓 말고 물러가 있게.’
그야말로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
“좋습니다. 뭘 하면 됩니까.”
결국 장이서가 두 손을 들었다. 맹주는 담담히 말했다.
“남쪽으로 가면 악두호(岳頭湖)라는 호수가 있네. 그곳에 가서 사람 하나를 찾으시게. 혼자 있을 테니 어렵진 않을 걸세.”
“찾아서 뭘 하면 됩니까?”
“화림의 약속을 지키러 왔다고 하게. 알아들을 테니.”
느닷없이 무슨 약속.
“그럼 수고하게.”
맹주가 허허 웃고는 길을 나선다. 부호위들도 수고하라며 손 인사를 건넸다.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장이서.
누가 맹주를 대인 중의 대인이라 했는가. 이제 보니 옹졸한 꼰대 영감이다.
잠시 후 모두가 사라진 뒤 차분해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도대체 무슨 짓을 벌이려는 거지?”
이 정도까지 절 떼어내려 한다는 건, 오늘 일정에서 모든 변수를 제거하기 위함.
반면 신원도 확실하지 않은 부호위는 그대로 대동한 채 길을 떠났다.
이게 무얼 뜻하겠는가.
‘부호위들도 그의 계획에 포함됐다는 얘기다.’
그들 중 첩자가 숨어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럴 수도 있다.
저들에게만 동선을 알리고, 뒤를 밟으면 효율적으로 물색해 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과연 그것뿐일까.
‘신선폐는 한 번 내공을 쓰면 족히 열흘은 치료에 전념해야 한다. 아직 맹주의 몸이 다 회복되지 않았다는 얘기. 한데 등 총관마저 떨어트린 채 길을 나섰다.’
도대체 어디를 가는 것이길래.
“이제부터 알아보면 될 일.”
어느덧 멀리까지 인기척이 사라지자 장이서는 맹주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심부름하라는 말은 없었으니까.”
애초에 혼자 남은 이유는 홀로 다니는 게 더 편하기 때문.
누가 그랬는가. 그가 수 싸움에 약하다고. 천만에. 다 잘하지만 그중 제일 잘하는 게 바로 그거다.
팟! 장이서의 신형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은밀한 미행이 시작되었다.
*
한편 그 시각 도박장을 평정한 묘채경은 홀로 살아남은 두목 용철과 대화가 한창이었다.
“흐음, 그러니까 낭인들을 고용한 자가 누군지 모른다?”
“예! 정말 모릅니다! 저도 알아보려 했는데, 어찌나 철두철미한지. 진짜입니다!”
“알아보려고 했다?”
“예? 아니. 그, 그게 제 부하 놈들도 거기 가 있어서 걱정이 되어 갖고…….”
푹! 용철을 스치고 날아간 단검이 벽에 박혔다. 더듬더듬 목을 만지자 손이 빨갛다.
“히익!”
“저 살겠다고 부하를 방패로 삼던 놈이 걱정이 되어 알아봐 주려고 했다?”
“아, 아니. 그, 그것이…….”
“눈이 거짓을 고하고 있구나. 감히 내 앞에서.”
네가 누군데, 이 여편네야! 용철은 눈물을 삼켰다.
“지, 진짜입니다. 믿어주십시오!”
“기어코 두 다리를 잘라줘야 바른말이 나오겠구나.”
“그럼 비명밖에 더 나오겠습니까!”
“최소한 거짓은 아니겠지.”
이런 미친!
“제발……. 저 이거 누설하면 이 업계에서 정말 일 못합니다. 흑…….”
“지금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느냐.”
묘채경이 웃는다. 저 마귀 같은……. 용철이 결국 울상을 짓고는 말했다.
“정말 그것만 말하면 살려주시는 겁니까?”
“보거라. 널 위해 수하들도 말끔히 처리해 주었지 않았느냐. 너만 입 다물면 뭘 불든 아무도 모를 거라는 얘기지. 도망갈 시간은 충분할 거다.”
용철이 침을 꼴깍 삼키곤 주변을 살폈다.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진 제 수하들이 보인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게 말입니다.”
용철이 술술 입을 열었다.
요지는 간단했다. 평화롭던 마을에 맹주가 나타나 예의주시하고 있었는데, 대뜸 누가 찾아와 낭인을 모아 달라 부탁을 했다는 것.
“네놈이 모집책이었구나!”
“흐익! 아니, 전 그냥 소문만 내준 겁니다.”
“건방진 새끼. 그래서. 놈을 직접 보았느냐?”
“예, 칠흑처럼 검은색으로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차려입은 놈이었는데. 그 뭐라더라. 암야검(暗夜劍). 예, 암야검이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암야검……?”
금시초문. 고개를 갸웃거리자 용철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신기한 건 인피면구를 쓰고 있었다는 겁니다.”
“인피면구?”
“두 번을 만났는데 얼굴이 달라졌습죠. 워낙 정교해 다른 사람 아닌가 했지만, 제가 또 기억력은 확실하거든요.”
묘채경의 표정이 진중해진다.
인피면구는 만들기도 힘들지만, 눈치 못 채게 사용하는 것도 힘들다.
특히 표정을 지으려면 평소보다 근육을 더 크게 써야 하기에 초보자들은 곧바로 티가 났다.
한데 이를 이름깨나 있는 정보 조직의 수장인 녀석이 두 번 보고야 알았다는 건 상대가 숙련자라는 얘기.
그 말은 곧.
‘우리 과구나.’
고도의 훈련을 받은 살수 아니면 첩자라는 뜻이다.
용철은 어차피 다 불어버린 거 더는 숨기지 않겠다는 듯 열변을 토했다.
“아, 그리고 놈이 진천뢰를 구할 방법이 있느냐고도 물었습니다.”
“진천뢰? 그건 또 왜.”
“모르죠.”
용철은 시큰둥하게 답했다가 분출하는 살기에 식겁하며 정정했다.
“근데 좀 이상했습니다. 그 뭐라더라. 화력이 엄청 센 걸 찾더라고요. 이건 뭐 황궁이라도 무너뜨릴 생각인지…….”
묘채경의 일관된 표정 뒤로 내면엔 침음이 삼켜졌다.
‘맹주를 노리는 것인가.’
과거라면 걱정 하나 없었겠지만, 지금은 맹주의 상태를 들어버린 상황.
살다 살다 맹주의 안위를 걱정하는 날이 올 줄이야.
“그래서. 구해다 주었느냐?”
“어휴, 제가 그걸 어디서 구합니까. 황실에서 진천뢰를 얼마나 철저히 관리하는데. 어설프게 만든 거야 뭐 금방 구해도 화력 좋은 건 힘들죠. 그냥 저기 군기고(軍器庫)나 털라고 그랬습니다.”
“이런 미친놈이 다 있나.”
“말이 그렇단 거지요. 설마 진짜 갔겠습니까. 갔나? 아무튼 이건 진짜 비밀인데 말입니다.”
여태 비밀이 아닌 것도 있었냐.
“놈의 목적지가 사찰인 것 같았습니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걸 들었거든요.”
“사찰? 널린 게 사찰 아니냐.”
“그야 그렇지요. 한데 이 동네는 아닙니다.”
아니라니.
“원래 세 군데가 있는데 그중 둘이 주지가 도박에 미쳐 절을 담보로 걸었거든요.”
“도박?”
“끌끌, 예. 접니다. 제가 작업 좀 쳤지요.”
자랑이다. 미친놈.
“아무튼 이제 하나 남았는데, 그 마지막 하나가 대불사(大佛寺)라고.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습지요.”
회심의 표정을 보아하니 거짓말은 아닌 모양.
“제가 아는 건 딱 여기까지입니다.”
“그래. 수고했다.”
“예! 그럼 살려 주시는…… 꺽?!”
서걱! 용철의 목에 붉은 실선이 그어졌다. 손으로 급히 막아봤자 소용없다. 촤아아악! 이번엔 진짜 동맥이다.
“야, 약속했잖아……?!”
“오호호! 약속을 지키는 그런 착한 마인(魔人)도 있느냐?”
용철의 눈이 부릅떠졌다.
“마, 마교…….”
도박장이 활활 불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