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337)
첩자의 마교생활-337화(337/350)
337.
#그는 누구?
맹주 현청은 실로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꿈보다는 회상에 가까웠다.
마음 한편에 늘 죄책감으로 남아 있는 어느 아이에 대한 기억.
이름은 103호.
평화의 3세대를 누리지도 못하고, 제 이름도 버린 채 요원으로 살아가야 했던 아이.
시작은 아주 오래전.
정사마가 평화 협정을 맺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첩자를 더 양성해야 하네.’
당시 절친한 벗이자 군사였던 제갈상이 찾아와 말했다.
각지에 잠입한 이들을 모두 불러들여 포상을 해주어도 부족한데, 오히려 더 모아야 한다니.
정당하지 못한 일이라 매번 탐탁지 않아 했던 맹주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하나.
‘협정을 맺었다고 다 끝인 줄 아는가? 천만에. 보이지 않는 전쟁은 이제 시작된 걸세.’
이른바 첩자의 시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정도에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자존심도 상했다.
하지만.
‘선배들께서 미래를 위해. 우리를 위해 어떤 희생을 해왔는지 벌써 잊었는가. 이젠 자네가 해야 할 때일세.’
희생. 그 두 글자에 결국 현청은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하고 싶은 일만 해서는 절대 무림을 지켜낼 수 없기에.
그저 할 수 있는 건 한무영이 있었다면 달랐을까 하는 어리석은 열등감과.
‘암각(暗閣)이라 부르겠네.’
조직에 오래전 사라진 그 이름을 부여해 주는 것뿐이었다.
다시금 제2의 한무영이 나타나 주길 바라는 간곡한 마음으로.
암각의 부활이었다.
그때부터 앞서 나가 있던 이들까지 모두 암각에 새로 배정되었다.
제갈상은 맹주에게 절대 요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도 말고, 암각을 인정하지도 말라고 하였다.
이유는 뻔했다.
그들을 키워내는 과정이 결코 정의롭지 않을 것이기에.
수많은 이가 죽을 것이고, 이들의 죽음을 외면해야 할 것이기에.
더러운 오물을 뒤집어쓰는 건 제갈상 자신 혼자면 충분하다고 말하였다.
서글프게도 맹주는 이 또한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그저 멀리서나마 요원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마음에 담는 것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죄였다.
그리고 수년 후.
그 아이가 나타났다.
‘지금 저 아이가 칠각대승의 각법을 이해한 것인가? 어찌 그 난해한 것을…….’
‘겨우 그거로 놀라면 되겠는가.’
제갈상은 자신만만해했다.
그럴 만도 했다.
아이는 단순히 무공을 빠르게 이해하는 것만이 아니라 적재적소에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야말로 한 수를 내다보는 것이 아니라 열 수를 내다보는 괴물.
‘이해력뿐만 아니라 정신력, 판단력, 사고력, 인내력까지. 모든 것이 최상급인 아이일세.’
‘허…….’
전율이 일었다.
정말 나타났구나.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제2의 한무영이 나타난 것이다.
기대는 떨림을 키우고, 떨림은 마음을 조급하게 했다.
‘여기 있을 아이가 아니다.’
결국 맹주는 단숨에 결정을 내렸다.
103호를 자신의 제자로 들이기로.
하여 이곳에서 데리고 나가 후대를 위한 영웅으로 만들어 내기로.
여태 자신이 제자를 들이지 않은 이유가 이 아이를 만나기 위함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한데.
‘제자? 안타깝지만 포기하게. 구규지체를 갖고 태어난 아이네. 단전에 구멍이 뚫려 내공을 쌓을 수 없는 몸이란 얘기지.’
현실은 야속했다.
신은 타고난 두뇌와 오성. 그리고 강인한 심기까지 내려주었으나, 가장 중요한 단전을 주지 않았다.
생사신의까지 찾아가 봤지만 대답은 한결 같았다.
불가(不可).
세상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이제야 제 모든 걸 물려줄 아이를 찾았다 생각했거늘.
‘그래도 첩자로서는 최적 아니겠는가. 누구도 저 아이를 의심하진 않을 테니. 마교로 보낼 걸세. 우리에게 언제고 가장 큰 도움이 될 변수가 되어줄 거라 믿네.’
미련과 죄의식이 동시에 마음을 두드렸다.
하나 맹주로서의 결정은 하나였다.
103호를 떠나보내기로 했다.
다만 못난 변덕이 너무도 미안해서.
이것밖에 안 되는 어른이라는 게 비참해서.
그래서 처음으로 요원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수련을 마치고 대자로 누워 있는 아이.
103호 앞에 말이다.
‘힘든 것이냐.’
103호는 쳐다도 안 보곤 누운 채로 답했다.
‘아니요.’
버릇이 없는 건가. 순간 당황했다. 애는 애라는 건가. 하지만 이어진 말에 숨이 턱 막혔다.
‘아저씨가 맹주예요?’
입도 다물어지지 않았다. 아니라고 부정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궁금함이 더 컸다.
‘어찌 안 것이냐.’
그러자 103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앉더니 무심히 고개를 들어 쳐다보곤 답했다.
‘원래 일각하고 열 세기 전에 각주가 날 불렀어야 하거든요. 그는 시간을 어긴 적이 없어요. 그런데 지금은 저기서 눈치를 보고 있네요.’
뒤를 돌아보자 먼발치에 제갈상이 서 있다. 고작 그것 하나만 보고? 고개가 절절 저어졌다. 실로 영리한 아이다. 너무 아까워서 마음이 저릴 만큼.
‘힘드세요?’
또다시 허를 찌르는 질문. 맹주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그래 보이느냐.’
‘예. 꼭 어쩔 줄 모르는 사람 같아요.’
맹주는 입을 꾹 다문 채 103호의 눈을 살폈다. 모든 걸 관통하듯 깊으면서도 깨끗한 눈동자.
‘넌 선천적으로 무공을 익히기 어려운 몸이다. 알고 있느냐.’
‘그렇다고 하네요.’
아직 와닿지 못하는 어린아이이기 때문이었을까. 무덤덤한 모습에 가슴이 저릿했다. 미안했다. 진심으로.
‘똑똑히 봐두거라.’
그리고 맹주는 차마 사과의 말은 뱉지 못한 채 검을 공중에 띄웠다.
비록 사제지간의 연은 맺지 못했으나 하나라도 가르쳐주고 싶었다.
언제고 기적처럼 이 아이가 한계를 넘게 된다면, 그럼 그때라도 부디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의 심득을 전해주고 싶었다.
일평생 함께 한 검 한 자루와 무극심결의 구결을.
‘음양은 천지 만물을 이루는 근간이오, 흐름이니라. 때로는 대립하나, 때로는 공존하며, 어느덧 조화와 평형이 유지되니 그것이 곧 우주이리라.’
맹주의 손에서 이기어검이 펼쳐지고 무극심결이 꽃을 피웠다.
‘그러니까 이건 절대 익히지 못할 거라는 거죠?’
그런 뜻은 아니었다. 하지만 부정하지는 않았다. 단전이 없는 아이로서는 절대로 닿지 못할 무공이었으니.
맹주는 더는 답하지 않고 검을 탄 채 유유히 떠났다.
103호는 자리에 한동안 남아 있었다.
분명 뭐라고 말하는 듯했지만 듣지 못했다.
그런데 왜.
‘익혀 볼게요. 오늘이 아니면 내일. 언제든. 그러니까…….’
그때 듣지 못했던 말이 꿈속에서는 이리도 선명히 들리는 걸까.
그것도 아이가 아닌 제 옆을 스쳐 떨어지며 구원해 주던 바로 그 장성한 모습으로!
‘믿으세요.’
*
*
*
“헉……!”
맹주가 거친 숨을 뱉으며 다시 정신을 차린 건, 어느덧 해가 저문 늦은 저녁이 되어서였다.
“괜찮으십니까?!”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자 그새 몇 년은 늙은 듯한 등 총관의 모습이 보였다.
“……괜찮네.”
말로는 괜찮다 했으나 쿨럭 기침이 터져 총관의 눈에 괜히 걱정만 더 커졌다.
“도대체 왜 그러신 겁니까.”
나무라는 말에 맹주는 얕게 한숨을 뱉었다.
방금 깨어난 자가 무슨 정신이 있다고 바로 타박인지. 하나 앓는 소릴 하기엔 맹주라는 위치가 그리 가볍지가 않다.
“백성들은 무사한가.”
가장 먼저 대불사에 몰려 있던 백성들의 안위를 물었다.
그러자 등 총관 대신 뾰족한 음색이 답해 왔다.
“지금 그것부터 걱정이 드는 겐가?”
땅바닥에 앉아 오만상을 다 찌푸리고 있는 거지 노인.
“걸륜.”
북개 취걸륜이다.
낙향한 이유를 끝까지 파내더니, 결국 모든 계획을 알아내고 지금은 옆에서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는 중이었다.
“자네 죽을 뻔했네! 이러려고 그동안 내게도 숨겼던 겐가? 이제 목숨 따윈 아무렇지도 않은 게야?”
맹주는 얕게 한숨을 삼키곤 정중히 고개를 숙여 사과의 뜻을 표했다.
“미안하네.”
그가 얼마나 절 걱정하는지 잘 알기에.
“끙!”
북개 역시 그런 맹주를 보곤 차마 더 말을 뱉지 못했다.
벗에도 수많은 종류가 있지만, 수십 년이 흘러도 서로를 위하고 배려하는 벗이 있다면 그게 바로 이들 둘을 말함이리라.
“아무튼 무사하셔서 천만다행입니다.”
등 총관이 밝게 웃으며 화제를 전환했다. 한데 맹주와 북개의 표정이 당황으로 번진다.
“자네부터 진찰을 받아야겠군.”
“예?”
“코에서 피나네. 거 얼마나 걱정을 했으면. 에잉, 쯧.”
등 총관이 당황하며 제 코를 더듬었다. 그러곤 고개 숙여 인사하곤 밖으로 나섰다.
맹주가 미안한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어떻게 된 건가. 왜 자네가…….”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나? 정상에 쓰러져 있는 걸 간신히 업고 뛰어왔네.”
그제야 맹주는 주변을 살피곤 자신의 침소가 아님을 깨달았다.
이곳은 북개가 몰래 머무는 안가(安家)다.
“나야말로 물어야겠어. 분명 누가 자네를 구한 것 같던데. 나 말고 숨겨둔 이가 또 있었는가?”
북개가 궁금해 죽겠다는 듯 쳐다본다. 이에 맹주는 침묵하며 고개를 떨궜다.
솔직히 저 역시도 궁금했다.
불현듯 나타나 절 비롯한 모두를 위기에서 구하곤 사라져 버린 자.
“나도 처음 보는 자였네.”
설핏 낯이 익긴 했지만.
맹주가 제 몸 안이 비교적 양호하다는 걸 뒤늦게 깨닫곤 물었다.
“내상을 치료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자네가 한 것인가?”
“나한테 그럴 능력이 있어 보이는가?”
“그럼?”
“그자가 한 거겠지.”
설마.
“그것도 내가 정상으로 올라가기까지 불과 일각도 안 되는 시간에. 나 원 참. 이게 말이 되는 일인 게야?”
입이 벌려졌다. 말 안 된다. 절대 될 수가 없다.
자신이 창안한 무극심결은 음양의 폭발이 거듭되는 최상위 심공.
섣불리 이를 건드리려고 했다간, 그대로 상대의 내기에 들러붙어 폭발을 일으킨다.
아무나 치료할 수도 없고, 또 하려고 하면 오랜 세월 공을 들여야 한다는 얘기.
한데 그걸 일각도 안 된 시간에 해냈다고?
그런 괴물이 있을 리가.
“의심 가는 자도 없는 것인가?”
걸륜의 물음에 문득 머릿속에 103호가 떠올랐다.
‘믿으세요.’
아닐 거다.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103호라면 뼈 아픈 일이지만 당대의 마교 부교주가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은 소식으론 천마와 함께 사라졌다고도 했다. 그런 그가 이곳에 갑자기 왜.
‘아니면 설마 백서?!’
눈이 부릅떠졌다. 한무영의 제자. 숨겨진 실력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게다가 자신의 몸 상태도 이미 알고 있던 바.
하지만 그는 제가 심부름을 보냈다. 더구나 분위기도 완전히 다르다.
‘그럼 대체 누구인가…….’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지자 낯빛이 창백해진다. 그만큼 몸이 좋지 않다는 방증.
“어이구. 그 몸으로 그자를 만나러 갔으니. 살아 돌아온 게 기적이지!”
북개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탕탕 치며 말했다.
그자. 맹주가 사찰에서 비밀리에 만났던 바로 그 관군을 말함이다.
대체 그가 누구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