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338)
첩자의 마교생활-338화(338/350)
338.
#미친 심부름
맹주는 대웅전에서 만난 이를 회상하며 말했다.
“확실히 강하긴 하더군. 원래의 몸이었어도 승부를 자신하지 못했을 걸세.”
맙소사. 맹주가 저와 동수임을 인정했다.
그 말은 곧 입신지경에 오른 절세고수라는 얘기!
하나 진정한 그의 무서움은 비단 무공뿐만이 아니었다.
“머릿속에 뱀 수천 마리가 우글우글하는 자일세. 그자랑 괜히 엮였다가 죽어 나간 자들만 수백, 수천인 걸 모르는가? 어이구, 골이야.”
북개는 상상만 해도 몸이 떨리는지 침을 꼴깍 삼키곤 마저 말을 이었다.
왜 모르겠는가.
신군(神君) 화무진.
당대 황실의 3대 고수 중 하나.
잔혹하고 무자비한 성정으로 황실에 위해가 되는 자들을 사정없이 도륙하기로 유명했다.
무엇보다도 위험한 이유는.
“무림을 잠재적 반역도로 치부하는 자이기도 하지. 고황제(高皇帝)께서 정하신 관과 무림의 불가침을 인정하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그런 위험한 자를 왜 직접 만나!”
왜겠는가. 이유는 하나다.
혈교.
지난 세월 오륜회를 조사한 결과. 그들이 3년 새 이만큼 세를 키울 수 있었던 이유는 뒤를 봐주는 막강한 권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맹주는 그 유력한 용의자로 신군 화무진을 꼽았다.
언제든 무림을 없애겠다는 의지가 확고하고, 또한 뒤를 봐줄 만한 권력과 실력도 충분하니까.
하여 확인차 그를 만난 거였다.
혈교의 존재를 알리고 협조를 구하는 척. 그의 반응을 떠보려고.
“고민할 것도 없네! 하필 만나는 날. 그 장소에서 진천뢰가 터지지 않았나. 틀림없이 화무진 그자가 혈교인 게야!”
북개가 단호히 외쳤다. 한데 맹주의 표정은 떨떠름했다.
“아직 확신하기는 이르네.”
“뭘 더 고민해?! 죽은 뒤에야 그자가 혈교였다고 인정할 겐가? 백성들이 떼로 죽을 뻔했네. 그런 짓을 벌일 정도로 간 큰 놈이 화무진 아니면 누가 있겠는가!”
그럴 수도 있겠지. 아니,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단정은 금물.
정도에서 명분이 없는 심증으로 칼을 겨누는 건 근간을 잃는 행위이며 분열과 파멸을 초래할 뿐이니.
“확실한 증거를 찾아야 하네. 그전에 상대가 누구든 먼저 나설 순 없네.”
“이런 답답한!”
북개가 한탄 섞인 한숨을 뱉었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가. 최고의 정보 단체인 개방의 태상방주.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입을 열었다.
“정 그렇게 알아내야만 성이 풀리겠는가?”
“방법이 있는 것인가?”
방법? 당연히 있다.
*
“진천뢰요?”
어느 공터의 모닥불 앞. 묘채경의 물음에 장이서가 장작을 던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견고한 암벽을 깎아 만든 마애불입니다. 그만한 걸 부수려면 어지간한 진천뢰로는 어림도 없는 일. 신형으로 특수 제작된 것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랬다. 이번 일의 배후를 찾는 건 맹주 쪽만이 아니었다.
장이서 역시 그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본래 생포한 낭인들을 심문해 알아내려 했지만, 큰 소득은 없었다.
하여 생각해 낸 방법이 바로 진천뢰였다.
“하긴 중원에서 이 정도 진천뢰를 다룰 자가 그리 흔치는 않지요. 서역이면 모를까. 여기서 가까운 곳이면 호남의 화섭자(火燮子)쯤 되겠군요.”
역시. 척하면 척이다.
“그쪽을 파보세요. 뭐라도 나올 겁니다.”
“안 그래도 일을 꾸민 놈이 흥신방에 진천뢰를 구할 방도가 있느냐 물었답니다.”
일을 꾸민 자라면 흑의인?!
“암야검이라고 부르던데. 아무튼 진천뢰를 어디에 쓰려는가 싶었는데 설마 마애불을 부숴버릴 줄은 몰랐지요.”
암야검. 이름대로 노는 구나. 한데……. 장이서의 고개가 갸웃 기울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뇨, 그냥 뭔가 좀 이상해서.”
“뭐가 말입니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보다 오늘 맹주가 사찰에서 관군을 만났더군요.”
“관군을요? 이상하군요.”
이상하지. 관과 무림은 불가침이 원칙. 더구나 맹주쯤 되는 인물이 군부의 인물을 만난다면? 자칫 역모로 비칠 수도 있는 일이다.
한데 사찰에서 비밀 회동이라니.
“중원은 믿을 수가 없으니 황실에라도 도움을 청해 보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 황실과 손을 잡는 순간 강호를 부정하는 것이니까. 그야말로 소를 취하고 대를 잃는 것.
“맹주의 옆에 지내다 보면 차차 알게 되겠죠.”
장이서는 둔부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헤어질 시간.
“다녀와서 봅시다.”
“예, 한데 이 밤에 어딜 가시는 겁니까? 맹호원은 남쪽이 아니라 북쪽인데요.”
그녀의 물음에 얕게 한숨을 삼키곤 남쪽으로 걸어 나가며 답했다.
“심부름하러 갑니다.”
*
– 귀주 악두호(岳頭湖).
아침이 밝아올 무렵, 안개가 자욱한 숲에 도착했다. 이곳이 맹주가 말한 악두호라고 하여 찾아오긴 했거늘…….
“여기 사람이 산다고?”
귀신도 아니고, 아무리 봐도 아닌 것 같다.
“날 따돌리려고 지어낸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그렇게 유치하려고. 그래도 맹주인데. 불안감에 정색하곤 천마안을 펼쳤다.
핑!
그러자 숲의 전경이 머릿속에 담긴다. 하나 온통 안개로 가득할 뿐. 호수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바로 실망할 건 아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니까.’
이번엔 기운 그 자체에 집중했다.
목(木)과 토(土)를 기반으로 수(水)의 기운이 먼지처럼 분산되어 있다.
그중 유독 수기(水氣)가 강한 곳으로 거슬러 올랐다.
‘찾았다.’
북서쪽 오르막길. 천마안을 거두곤 망설임 없이 걸음을 놀렸다.
그리고 오래되지 않아 마침내 호수를 발견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네.’
호수는 그리 높지 않은 난간 아래에 고여 있었는데, 밑에 서린 안개가 꼭 구름처럼 보여 산 정상에 오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왜 호수의 이름이 산꼭대기인 악두(岳頭)라 불리는지 이제야 이해가 됐다.
‘그나저나.’
흘깃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악두호에 오면 사람은 어렵지 않게 찾게 될 거라더니.
작은 오두막 옆에 웬 초로의 노인이 돌아선 채 낚싯대를 잡고 앉아 있었다.
신선처럼 새하얀 도포에 긴 머리.
선기(仙氣)가 가득 느껴지는 게 딱 봐도 범상치가 않다. 맹주가 말한 이가 분명하다.
“실례합니다.”
예를 올리고 한 걸음을 디뎠다.
그러자.
“……!”
일순 제3의 영역에 들어선 것처럼 발끝부터 파장이 번지고, 온 세상이 일렁였다.
마기(魔氣)를 짓누르는 엄청난 선기(仙氣)!
[퀴아아아아!]이에 심장부에서 혈마귀가 저항하듯 비명을 질렀다.
하필 지금!
당황하여 기운을 억누른 채 다시 고개를 들었다. 설마 들킨 건 아니겠지?
“감히 사마외도 따위가 날 찾다니……. 죽으러 온 것이냐!”
들켰구나!
신선 같은 겉모습과 달리 섬찟하다 못해 전신을 짓누르는 압도적 기운이 뿜어진다.
위험하다.
여기서 한마디라도 잘못하면 목이 날아갈 거다.
대체 누구길래 이런 영험하면서도 위험한 기세를!
침을 꼴깍 삼키곤 다급히 외쳤다.
“화림의 약속을 지키러 왔습니다!”
“……!”
그러자 노부가 시간이 멎은 것처럼 경직되더니.
스르륵.
잠시 후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와 마주한 장이서는…….
‘다, 당신은?!’
경악에 빠졌다.
* * *
그 시각 북개의 안가(安家).
“누가 왔다고?!”
맹주는 어느 정도 심신이 회복됐는지 등 총관을 장원에 돌려보내곤, 협탁에 앉아 북개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한무영의 제자가 날 찾아왔었네.”
청해의 백서.
바로 그의 이야기였다.
“아니, 잠깐만.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게지? 누구?”
“벌써 잊었는가. 한무영. 오래전 암각에서 만났던 바로 그자 말일세.”
“맙소사. 그 괴물이 살아 있었는가?!”
맹주가 씁쓸한 표정을 짓고는 고개를 저었다.
“타계했다더군.”
“허……. 어찌 이런 일이.”
서 있던 북개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침상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무영을 마주했던 건 맹주뿐만이 아니었던 것. 정확히 말하자면 신주오절 전원 다였다.
“그럼 아까 자넬 구했다는 놈이……!”
맹주가 고개를 저었다.
“가능성은 있지만 확실한 건 아닐세. 뭐, 실력만 놓고 보면 충분히 의심이 가지만.”
실력. 북개가 바라본 광경은 거대한 바위가 불그스름한 광채를 사방으로 뿜어내며 소멸하는 모습이었다.
이걸 실력으로 따지자면 입신지경에 이르러야만 가능한 일.
“몇 살인데.”
“안 믿기겠지만 이제 겨우 이립쯤 되었을 걸세.”
“하!”
북개가 탄성을 터트리자 맹주는 속으로 픽 웃었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기 때문.
개방의 태상방주인 북개도 아흔이 다 될 때까지 입신지경은 넘지 못했다. 한데 고작 서른이라니.
“당연히 안 믿기겠지.”
“왜 안 믿어?”
“음?”
“당연히 믿지! 한무영은 십 대 때 이미 우리뿐만 아니라 선배들까지 가지고 놀았는데. 그의 제자면 이립이 아니라 스무 살이래도 믿어야지!”
맹주가 헛웃음을 뱉었다. 한무영의 그림자가 컸던 건 저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긴 신주오절 중 누군들 안 그랬겠는가.
“한무영은 괴물이었어. 하나라도 부족해야 하는데 모든 방면에서 압도적이었지. 말하지 않았는가. 그가 있었다면 진우광도 없었을 거라고.”
“그랬지…….”
옛 추억을 회상하듯 두 사람의 초점이 흐려졌다. 패배감과 경외감이 동시에 뒤섞인다.
물론 그의 제자가 진우광임을 알게 된다면 기절초풍했겠지만 말이다.
“한데 이제 와 한무영 제자가 갑자기 왜 나타난 건데? 설마 제 사부와 같은 이유인가?”
혈교를 막겠다는 일념. 맹주의 고개가 찬찬히 끄덕여졌다.
“호위무사로 들어와서는 나더러 맹으로 돌아가라더군. 이대로 퇴임하면 혈교가 중원을 삼킬 것이라고.”
“그새 거기까지 알아낸 겐가? 허, 참으로 기특한 놈일세.”
“그뿐만이 아닐세. 내가 신선폐에 중독된 것도 바로 알아보더군. 이곳에 온 이유까지도.”
북개가 입을 떡 벌린 채 중얼거렸다.
“한무영 제자 맞네. 맞아!”
“놀리는가?”
“안 그래도 자네 혼자 두고 놈들 뒤 캐러 다니느라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이제 한시름 놓아도 되겠구먼. 낄낄.”
“그걸 지금 말이라고! 이곳이 얼마나 위험한지 잊었는가? 그의 제자가 맞다면 더더욱 여기 두어선 안 되네.”
“호위무사라며. 알아서 지켜주겠다는데 뭐가 문제야?”
“예기치 못한 변수는 도리어 일을 망칠 수도 있음을 모르는가?”
“그럼 지금 그 몸으로 뭘 어쩌겠다고?! 맹에도 안 알리겠다, 사문에도 안 알리겠다. 손 하나도 부족한 상황이구먼!”
맹주는 입안을 질끈 물었다. 그의 말을 인정한다는 게 아니다. 그냥 지금 제 꼴이 뭐라 말할 처지가 아닐 뿐.
“그래서 지금 어디 있는데. 맹호원?”
북개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묻는다. 이에 맹주는 고개를 돌리며 답했다.
“보냈네.”
“보내? 어디로.”
“악두호.”
악! 북개의 입에서 비명에 가까운 괴성이 뱉어졌다.
“미쳤어?! 거기가 어디라고 애를 보내!”
북개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하나 맹주는 단호했다.
“무영의 제자에게까지 신세를 질 순 없네.”
한무영의 제자가 확실하다면, 그럼 더더욱 이번 일에선 빼놓고 싶었다.
그저 출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일평생 그림자로 살아야 했던 그의 제자를 제 손으로 위험에 빠트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
죄책감이라고 해도 좋고, 이기심이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이것이 한무영에게 갚는 일말의 속죄였으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뭐라고 하고 보냈는데?”
“악두호로 가서 화림의 약속을 지키러 왔다고 전하라 했네.”
“이 인간아-!”
북개의 고성이 다시금 터졌다.
“그게 살라고 보낸 건가? 죽으라고 보낸 거지. 미쳤구먼, 미쳤어!”
“한무영 제자라면 다 가능할 것처럼 말하던 건 자네 아닌가?”
“그게 이거랑 같아?!”
“걱정 말게. 아무리 그라도 무영의 제자를 바로 죽이진 않을 테니. 차라리 그곳에 있는 게 어느 곳보다도 안전할 걸세.”
맹주의 잔잔한 웃음에 북개는 침을 꼴깍 삼키며 생각했다.
이놈이 노망이 났구나.
그럴 만도 했다. 왜냐하면 화림의 약속이란 그가 일평생 칼을 갈며 학수고대 해온 일이니까.
다른 이도 아닌 화산의 전설.
바로 서검(西劍) 여중악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