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339)
첩자의 마교생활-339화(339/350)
339.
#화림의 약속
장이서는 순간 제 눈을 의심했다.
“방금 무어라 했느냐.”
어째서 그가 여기서 나온단 말인가.
“바른대로 고하여라.”
신주오절 중 한 명이자 맹주와 함께 중원 제일 고수로 오르내리는 자.
서검 여중악……!
“화림의 약속이라 하였느냐?!”
고오오오!
그리고 짐작건대 지금 상황은 굉장히 위험해 보였다.
신선의 용모를 지녔으나 사마외도 사이에선 서악(西惡)으로 통하는 화산의 전설!
그런 그에게 혈마귀의 기운을 내보였다.
이게 무슨 뜻이겠는가.
“감히 마인(魔人) 따위가……?!”
지금 그의 눈이 악귀가 되었다는 말이다!
“잠시 뭔가 오해가 있는 듯합니다.”
“오해?!”
바로 그 순간, 서검이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알 수 없는 첨예한 기운이 날아들었다.
바람인가?
수와아아악!
그럴 리가! 이런 섬찟한 바람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팟!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끼고 옆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자 좌측 팔이 베이며 핏물이 튀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근막과 골막에 박힌 역근경이라면 오기 전에 이미 다 회복했다.
한마디로 어지간한 공격이 아니고선 생채기조차 낼 수 없는 금강불괴의 상태라는 얘기.
한데도 몸이 베였다.
‘강기(罡氣)?!’
그럴 리가. 빈손이었던 데다가 강기라고 한다면 발출된 진기의 흐름이 명확히 보여야 하거늘.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그냥 위험하다는 예감. 오직 그것만이 전부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상식을 벗어난 상황에 장이서가 경악에 빠진 사이. 서검 역시 속으로 크게 놀랐다.
‘팔이 잘리지 않았다.’
분명 좌수를 노린 일격이었다. 한데 잘리긴커녕 스친 게 전부였다. 심지어 상처 부위도 찰과상이라 할 만큼 얕다.
쉽게 말해 자신의 일격을 피한 것도 모자라 막았다는 얘기.
“그냥 온 놈은 아니라는 것인가. 하긴 날 잡으러 왔다면 그 정도 실력은 있어야겠지. 묻겠다. 화림의 약속은 누구에게 들은 것이냐.”
피를 본 건 아쉽지만, 다시 찾아온 대화의 시간. 최대한 화를 누르곤 답했다.
“맹주께서 심부름을 보낸 겁니다.”
“맹주를 죽였군.”
미친!
“아니, 어떻게 얘기가 그렇게 됩니까?”
“그게 아니라면 화림에서 한 약속을 네가 알아낼 순 없다.”
“왜 없습니까? 그냥 들을 수도 있지!”
“그럴 수 없다.”
이건 뭐 벽창호도 아니고! 신주오절은 다 이런가?
수와아아악!
서검의 손이 다시금 그어졌다. 젠장. 또다시 보이지 않는다.
날아드는 진기가 얼마나 긴지, 또 얼마나 다가왔는지 알 수가 없으니 그야말로 미칠 노릇.
서걱!
이번에도 나려타곤의 수법으로 몸을 날렸지만 역시나 상처가 서렸다.
그 후로 서검은 쉴 새 없이 연격을 날렸다. 그럴수록 장이서의 몸에도 붉은 실선이 새겨졌다.
여기서 계속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
‘참는 것도 여기까지입니다.’
마음을 굳게 다잡곤 자리에 우뚝 섰다.
“포기한 것이냐!”
그리고 서검의 보이지 않는 검기가 날아드는 그 순간.
『뇌전법(雷轉法)』
파직! 몸 안에서 뇌력이 터졌다.
동시에 벼락이 되어 서검에게로 쏘아졌다.
“아니?!”
눈이 뽑혀 나올 것처럼 부릅떠지는 서검.
장이서의 일장이 그의 가슴팍을 향한다. 어지간한 초식으로는 상대를 멈출 수 없다.
확실하게 간다.
『축뢰환(築雷丸)』
파지지지직!
손아귀에서 뇌기가 선회하며 구체를 이룬다.
이에 서검 역시 자하신공을 가득 끌어 올린 채 자줏빛 일장으로 응수했다.
이윽고 두 사람의 손바닥이 마주하는 그 순간.
콰과과과광!
세상이 갈려 나가는 굉음과 함께 엄청난 기파가 사방으로 번져 나갔다.
산재해 있던 안개는 백 보 밖까지 떠밀리듯 사라지고, 악두호의 고인 물은 거센 파도를 일으킨다.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접전!
파앗!
잠시 후 장이서는 뒤로 튕겨 날아가 바닥에 착지했다.
반면 서검은 우뚝 선 채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 살폈다.
장이서는 침음을 삼켰다. 서로 전력을 다한 건 아니지만 역시 괴물은 괴물.
설마 축뢰환을 아무 일 없다는 듯 저리 가볍게 받아낼 줄은 몰랐다.
괜한 호승심이 발끈하고 치솟는다.
물론 서검 입장에선 지금 상황 자체도 충분히 기가 막힌 일이었다.
파지직!
손바닥은 아직도 저릿저릿했고, 상대는 죽기는커녕 멀쩡했다.
무엇보다도 당혹스러운 건.
“뇌력(雷力)……?!”
뇌력은 다루기가 여간 까다로워 지난 백 년을 통틀어도 이름난 고수가 극히 드물었다.
게다가 체외에 아직도 느껴질 만큼 막대한 뇌기(雷氣)라면 더더욱.
자연스레 오래전 맹주 현청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한무영의 성명절기가 뇌(雷)를 다루는 절세 신공이라고.
그렇다면…….
“정녕 약속을 지키러 온 것이란 말이더냐!”
콰아아앙!
서검의 눈에서 자줏빛 안광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도대체 그놈의 약속이 뭐길래.
아니, 맹주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절 여기 보낸 것인가.
“맞습니다. 약속 지키러 온 거!”
“어찌 너 같은 마인이……!”
눈빛 봐라. 사람 갈가리 찢어 죽일 기세다. 이 영감은 화산이 아니라 천산에서 태어났어야 했다. 산을 잘못 골랐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전 심부름 온 것뿐입니다. 불만이 있다면 맹주께 가서 따지십시오.”
오해가 더 커지기 전에 선을 긋듯 재차 해명을 던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행히 믿는 눈치였다.
단지.
“정녕 네가 한무영의 제자가 맞다면 검을 뽑아라.”
고오오오오오!
상황이 더 악화되었을 뿐.
‘아니, 이게 무슨!’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경천동지할 투기가 뿜어졌다.
오해는 풀린 것 같은데 왜 더 악귀 눈알이 되는 것인가!
“한무영에게 패했던 날. 나는 약속했다.”
뭘.
“언제고 반드시 완성한 나의 검을 보여주겠노라고. 그것이 나와 한무영이 한 화림의 약속!”
이런 미친! 예의고 나발이고 순간 욕지거리가 튀어나올 뻔했다.
그럼 심부름이란 게 결국 서검과 한판 붙고 오라는 뜻?!
‘수고하게. 허허허.’
순간 맹주의 비열한 웃음소리가 귓가에 왱왱 울렸다.
욕지거리가 목젖까지 차올랐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도대체 사부는 뭔 짓을 하고 다녔던 걸까.
천하의 맹주도, 서검도. 모두 사부의 이름만 나오면 발작하듯 흥분해 버리니.
“검을 뽑거라. 한무영의 검과 나의 검. 누가 더 위인지 겨루어야겠다!”
천둥 같은 일갈에 침음이 삼켜졌다. 염원에 가득 찬 표정을 보니 피할 상황이 아닌 건 잘 알겠다.
그런데…….
“없습니다.”
“뭐?”
“검을 배운 적이 없다고요.”
“무어라?!”
서검의 악귀 같던 두 눈에 지진이 일었다.
*
서검이 십 년은 더 늙은 얼굴로 물었다.
“무영에게 검을 배운 적이 없다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오게 된 경위와 사부님께 배운 건 뇌력을 쓰는 심공뿐이라는 것.
“어찌 그런 일이…….”
이에 서검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하나 어쩌겠는가. 정말 배운 적이 없는데.
“무영은 검의 귀재였다. 아니, 고금을 통틀어 그보다 잘난 검의 천재는 없었을 것이다!”
그 정도였나.
“한데 제자란 작자가 검을 배우지 않았다니……. 설마 자질 문제인가?!”
저기요. 말 참 이상하게 하네. 물론 사형에 비해 조금 부족한 건 맞다. 아니, 조금은 아니고 조금 많이.
한데 누군들 단전에 구멍 뚫린 채 태어나고 싶었겠는가. 그리고 사부가 검술을 안 적어놓고 간 걸 어떡하라고.
이 정도면 앞으로 천재란 말은 사부와 사형 외에는 안 쓰는 게 낫겠다. 그냥 다 범재1, 범재2로 하자.
“넌 무영의 제자가 맞긴 한 것이냐? 너는 대체 누구냐.”
“범재입니다.”
“그게 네 이름이냐.”
됐다.
“그게 중요합니까. 범재든, 천재든 전 검을 배우지 못했으니 아쉽지만 약속은 지키지 못하겠습니다.”
쿵! 서검이 망연자실에 빠져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런 표정도 짓는구나 싶을 정도. 하지만 그만큼 충격이 컸다.
늘 무영과 다시 만날 날만을 학수고대하며 무예를 연마했다.
물론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다신 못 만날 수도 있겠단 생각도 당연히 했다.
하지만!
제자란 작자가 검을 익히지 않고 나타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어째서 무영이 너처럼 검도 못 다루는 마인을 제자로…….”
그럼 뭐 다른 제자라도 소개해 드릴까요? 대신 생존은 장담 못 하겠지만.
“……무영의 검은 그 무엇으로도 막지 못했다. 싸구려 철검이라도 그가 쥐면 신검이었고, 유명한 장인의 명검도 그 앞에선 산산이 부서졌다.”
수취명검. 당대의 맹주 현청 앞에 붙는 수식어 중 하나이지만, 서검은 알고 있었다.
그건 현청이 아직까지 십 대 때 본 무영의 검을 흉내 내고 있다는 것을.
하여 수없이 많은 검을 다루었고, 이내 만검(萬劍)이라는 성역을 완성했다.
하지만 자신은 달랐다.
흉내? 그딴 건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일평생 부서지지 않는 단 하나의 절대신검을 완성하는데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무영에게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었거늘. 기껏 나타난 게 이런 애송이 마인일 줄이야.”
거 듣자 듣자 하니까 끝이 없네. 윤이 소식이라도 알 수 있을까 싶어 최대한 맞춰보려 했거늘. 더는 못 들어주겠다.
“그럼 더 할 말 없겠군요. 심부름은 다 한 것 같고. 애송이 마인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차갑게 몸을 돌리려 하자 서검이 근엄하게 말했다.
“서거라.”
“왜요. 더 할 말 남으셨습니까?”
“아무리 상종하고 싶지 않은 마인이라도 내가 인정한 무영의 제자.”
서검이 휙 몸을 돌리곤 오두막으로 들어선다.
“들어오거라. 차라도 내어줄 테니.”
얕게 한숨이 뱉어졌다.
*
맹주도 그렇지만 참 도인이라 그런가 그의 오두막은 소탈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침상도 없고, 보이는 건 협탁 하나.
바닥에 색 바랜 자리를 보아하니 저곳에서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잠기는 듯했다.
하긴 입신지경에 오른 그에게 잠이 무슨 필요겠는가.
“들어라.”
서검은 찻잔을 건네곤 협탁에 마주 앉았다.
“나와 겸상한 마인은 네가 처음일 것이다.”
“고맙다고 해야 합니까.”
“마인임을 부정은 안 하는구나.”
생각지 못한 유도 질문에 흠칫했다. 들켜서 놀란 게 아니라 고지식해 보이던 그에게도 이런 면모가 있음에 다소 놀랐다.
후릅. 자연스레 차를 마시며 답했다.
“시대가 바뀌지 않았습니까.”
이른바 평화의 시대. 정사마가 서로의 존립을 인정하고, 무분별한 살육을 일삼지 않는 그런 시대 말이다.
물론 그 이면에 첩자들이 넘쳐나게 되었지만.
“나는 바란 적 없다.”
“그런 얘기는 제 세대에서나 할 수 있는 말이죠. 어르신께선 바라지 않은 게 아니라 바꾸지 못했던 것 아닙니까.”
천마를 이기지 못했으니까. 그야말로 정곡을 찌르는 말. 서검의 눈매가 확 좁혀졌다.
“무영의 제자가 맞구나.”
어디를 봐서.
“되바라진 것이 그 녀석과 똑같아.”
말은 험하게 하면서 표정은 웃는다. 이를 보곤 상했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그에게 사부가 어떤 존재였는지 느껴졌기 때문. 벗. 그것도 꽤 가까운 벗을 생각하는 눈빛이었다.
“무영에게는 빚이 있다. 그를 만나지 못했다면 오랜 시간 틀에 박혀 벽을 뚫지 못했을 터. 제자인 너에게 무엇이든 내어주고 싶지만…….”
굳이 더 듣지 않아도 뒷말을 알 수 있었다. 한마디로 사마외도와는 사적으로 선을 긋겠다는 것.
하지만 일관된 그의 마음이 오히려 나쁘지 않았다. 동생 윤이도 그리 가르쳤을 것 같아서.
“괜찮습니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담담한 대답에 서검의 눈매가 침중해졌다.
분명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고, 또 음험한 속내를 가진 마인이라면 결코 이리 쉽게 수긍하지 못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
욕망(慾望).
최소한의 아쉬움이나 미련을 보였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한데 장이서는 그게 없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며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도 하지 않는 듯했다.
사마외도의 검은 속내를 어찌 다 알겠느냐만, 그래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서검은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물었다.
“사형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