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341)
첩자의 마교생활-341화(341/350)
341.
#할 수 있는 최선
서검의 통보에 침음을 삼켰다.
‘대체 뭐지. 분명 방금 몸이 잘려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착각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생경하다.’
고개를 떨구자 손바닥엔 이미 식은땀으로 가득했다.
이건 단순한 상상이 아니었다. 절대적인 경지에 오른 감각이 울리는 경종이었다.
가만히 있다가는 반드시 죽을 거라는 위기 신호!
꼴깍 침이 삼켜지고, 얼굴에선 여유가 일제히 사라졌다.
흠뻑 젖은 손바닥으로 검파를 쥐었다 펴며 긴장을 풀어냈다.
“계속하겠느냐.”
서검이 묻는다. 이에 고개를 끄덕여 답을 대신했다.
“패기는 좋구나. 후회하지 말거라.”
수아아아악!
또다시 반원을 그리며 떨어지는 그의 손!
장이서는 이번엔 그 어떤 방비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서 있었다.
‘음?’
이에 서검은 의아함을 눈에 비쳤으나 손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핑!
장이서의 몸에서 기의 파동이 번졌다.
천마안이다!
그리고 분명히 보았다. 서검의 손에 공간을 일그러트리는 무언가가 길게 솟아나 있는 것을.
그건 검이었다.
그것도 형체가 없는 검!
팟!
몸을 옆으로 돌려 떨어져 내리는 검을 피해냈다.
그러자 서검의 눈이 크게 떠졌다.
‘심안까지 익혔단 말인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자질이구나.’
한무영의 제자라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볼수록 놀라운 존재다.
“그게 어르신께서 말씀하신 검입니까?”
장이서의 물음에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였다.
“맹주는 한무영을 꺾기 위해 검에서 벗어나려 하였고, 나는 반대로 검을 찾으려 하였다.”
중리성 현청과 서검 여중악.
유년 시절부터 오직 검을 위해 살아온 전설적인 검객들.
둘 다 극이라 할 수 있는 입신지경에 다다랐지만, 그 길은 달랐다.
맹주가 수많은 검을 떼어내 만검을 얻었다면, 그가 얻은 것은 자신에게 최적화된 단 하나의 검.
“보거라. 이것이 바로 내가 완성한 무형검이니라.”
우우웅!
서검이 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
무형검(無形劍)!
이는 그 이름처럼 실로 신묘했다.
천마안으로도 그 모습이 제대로 담기지 않았으며, 그저 일렁이는 공기만으로 그 존재를 짐작했다.
심지어 길이도, 두께도 그의 뜻에 따라 달라지는 듯했다.
‘저것이 보이지 않던 강기의 정체!’
장이서의 대뇌가 폭발을 일으키듯 맹렬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기(氣)는 곧 무형이지만 유형이다.
두 눈으로는 형태를 담을 수 없으나 수련을 통해 느낄 수는 있다.
하지만 그의 검은 달랐다.
진기의 흐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답은 의념이다.
기나긴 바람과 입신에 오른 그의 경지가 상식을 부수고 의념으로 이루어진 검을 창조한 것이다.
무형검은 그의 성역이자 신기(神技)였던 것.
그야말로 사부에게 자신할 만한 최고의 검이었다.
“수많은 검을 모두 잘 다룰 필요는 없다. 오직 나를 위한 단 하나의 검. 그것과 하나가 될 수 있다면. 그럼 베지 못할 것은 없다.”
오직 나를 위한 검.
서검의 말에 뇌리가 번뜩였다.
“이제 마지막 세 번째다. 무형검은 알아냈다 해도 막을 방도는 없다. 이번에도 막아내지 못한다면 넌 이곳을 벗어나지 못한다.”
서검의 통보가 떨어지고, 그의 손이 다시금 반원을 그렸다.
사실 이건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장이서는 검을 알지 못했고, 서검의 무형검은 완성된 경지였으니.
하지만.
‘정말 방법이 없는 것일까?’
마음의 고개가 저어졌다.
아니다.
아직 제게는 한 수가 남았다.
오직 나를 위한 검은 갖추지 못했어도, 오직 나를 위한 검로는 마주했었다.
입단 시험에서 한 번. 그리고 맹주의 초식을 필사할 때 한 번.
그 무엇이든 베어낼 수 있을 것 같았던 무적의 검로.
극로(極路).
그것이라면 막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다시 해보려고 해도 번번이 실패했었지.’
왜일까.
그때는 몰랐는데 맹주와 서검을 바라보니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았다.
그건 마음가짐의 차이였다.
맹주는 검을 알기 위해 만 개의 검을 닳도록 쓰고 버렸으며, 서검은 단 하나의 검을 찾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오직 검을 위해.
한데 나는 무엇을 하였는가.
내가 마주한 검로를 위해 대체 무엇을 하였는가.
아무것도.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어울리지도 않는 검을 들고 오만한 자세로 마주하였다.
심지어 극로는 입신에 올라야만 깨달을 수 있는 신의 경지 중 하나.
아직 육신이 신에 다다르지도 않은 주제에 어설픈 머리와 재주를 지녔다는 것만으로 얕잡아 생각했다.
당연히 성공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던 것.
오만했다. 어리석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러니까.
챙그랑!
천매검을 바닥에 내던지고, 자그마한 날붙이. 흑뢰를 움켜쥐었다.
내가 다룰 수 있는 최상의 검.
온 정신을 집중했다.
우우웅!
그러자 무아지경에 빠져들고 몸 안에 깃든 수백 개의 소단전이 포효를 터트렸다. 솜털까지 생생히 느껴지는 전신의 감각!
역근경이다.
이내 두 눈에 안광이 뿜어지고, 호흡부터 분위기가 일제히 바뀌기 시작했다.
마치 두 눈에 악귀가 서린 듯한 기분.
“……!”
이를 본 서검은 검을 휘두르면서도 눈이 부릅떠졌다.
당연했다.
『역근경(易筋經) 의태신기(擬態身氣) 서검(西劍) 여중악』
지금 장이서는 바로 자신을 흉내 내고 있었으니!
‘이건 내 모습이 아니더냐!’
분명 생긴 건 달랐으나 호흡부터 손짓, 발짓. 그 모든 것이 자신과 똑 닮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떨어져 내리는 서검의 검을 향해 장이서는.
『극로(極路)』
수와아아아악!
공간을 찢었다.
*
툭. 투두둑.
어깨 위로 소나기가 떨어진다.
촤아아아.
한계까지 가열된 소단전의 진기가 연기가 되어 증발하고, 금강불괴의 몸은 종잇장처럼 여려진다.
그 탓인지 빗방울이 마치 돌덩이가 되어 전신을 두들기는 기분.
한데도 입꼬리는 서서히 말려 올라갔다.
‘드디어…… 해냈다.’
흑뢰를 움켜쥘 힘도 없지만 분명 기억이 생생했다.
공간에 펼쳐진 단 하나의 궤적.
이를 따라가던 순간을.
입단 시험에서도, 초식필사에서도.
끝까지 제대로 펼치지 못했던 바로 그 무적의 검로를 처음으로 완성했다.
극로(極路).
신의 검로를 말이다.
물론 의태신기까지 펼쳐야 한다는 그 조건이 실로 까다롭긴 했지만 말이다.
“정녕 무형검을…… 베어냈단 말이더냐.”
그리고 이는 서검에게 하늘이 무너질 듯한 충격이었다.
정말 생각도 못 했다. 진짜로 막아낼 줄은. 아니, 설마 고작 몇 번 봤다고 자신을 똑같이 흉내 낼 줄은 몰랐다.
거기다…….
“대체 그 검로는 무엇이냐.”
자신은 한 번도 보지 못한 새로운 영역.
이는 본인에게 엄청난 깨달음을 선사하기 충분했다.
“극로라고 하더군요.”
담담히 답했지만 장이서도 다소 놀랐다.
왜냐하면 서검과 달리 맹주는 극로를 알고 있었기 때문.
‘입신지경에 오른다고 모든 것에 통달하는 건 아니구나.’
생각해 보면 이해도 됐다.
범부의 경지에서 신의 영역인 화경에 들어선다는 건 우물을 나와 새로운 세상에 입역(入域)하는 것.
지금까지 배워온 상식의 틀을 부수고, 새로운 것들을 익혀야 하는 갓난쟁이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역들이나 극로. 그리고 무형검은 신의 세계에 놓인 수많은 신기(神技)중 하나에 불과했다.
입신의 경지에 오르는 것도 기적과 같지만, 그 안에서 보물과도 같은 신기를 여러 개 찾아낸다는 건 더더욱 험난한 일.
“무섭구나. 한무영도 너처럼 빨리 우리를 따라 하진 못했다.”
서검은 앞서 자질을 논하던 자신의 판단을 정정했다.
장이서를 청출어람의 인재로 올려 친 것.
하지만 여기엔 어폐가 있었다. 재능이 아니라 운 좋게 달마 조사의 역근경을 익혔기 때문이니까.
‘잠깐. 그럼 사부는 의태신기도 없이 모두를 흉내 냈다는 건가. 도대체 얼마나 미친 자질을 가졌던 거냐.’
알면 알수록 혀가 내둘러지는 존재감.
뭐 그건 그거고.
솨아아아아!
소나기가 시원하게 쏟아진다.
오늘따라 비가 왜 이렇게 아픈지.
“일단은…….”
정신이 희미해진다.
“좀 이따 얘기하시죠.”
털썩.
암전이 닥쳤다.
* * *
화림현 인근 산자락에 놓인 어느 사찰.
본래 수양하는 승려들과 신도들이 돌아다녀야 할 곳이지만, 최근 주지승이 도박에 빠져 폐사(廢寺)했다.
그리고 지금은 아무리 봐도 불교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자들이 머물고 있었다.
붉은 피풍의에 황색 갑옷. 그리고 범의 얼굴을 형상화한 가면을 쓰고 칼과 창으로 무장한 자들.
딱 봐도 수상한 행색이 역력하다.
그리고 그 모습처럼 흘러나오는 대화도 심상치 않았다.
“암야검 측에서 때가 됐다는 전갈입니다.”
누군가 본당 앞에 부복한 채 보고를 올렸다.
암야검. 동명이 아니라면 그리 불릴 자는 단 하나뿐.
“생각보다 빨리 왔구나.”
이에 본당에 선 다섯 명의 각양각색 괴한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유일하게 가면을 쓰지 않은 자들!
“흘흘, 기다리는 동안 좀이 쑤셔 죽는 줄 알았네.”
허리가 굽은 사이한 용모의 노부.
“빨리빨리 끝내자고.”
건들거리는 날카로운 인상의 검사(劍士).
“닭 모이 줘야 한다.”
한참 올려다봐야 할 우람한 덩치.
“진룡이랑 창궁룡. 둘 다 귀엽게 생겼다던데.”
고혹적인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미모의 여인.
그리고.
“준비해라.”
쌍 도끼를 허리에 차고 압도적인 기백을 뿜어내는 자!
그가 중앙의 어간문으로 나와 계단 아래를 살피자 본당 앞에 모인 무수한 범 가면들이 한눈에 보였다.
실로 엄청난 세력!
대체 이들로 무얼 하려고.
답은 뻔했다.
“맹호원을 피로 물들이고, 불타는 누각에 승리의 깃발을 꽂아라!”
존명-!
잔혹한 호령이 떨어졌다.
목적지는 맹호원.
목표는 몰살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이 늦은 밤 사찰을 나섰다.
노란 깃발을 흩날리며.
* * *
한편 장이서가 다시 눈을 뜬 건 새벽녘이 되었을 때였다.
“깨어났느냐.”
가까이서 들리는 서검의 목소리.
옆에는 쟁반 위에 젖은 헝겊이 놓여 있고, 몸에는 소침이 가득 꽂혀 있다.
솔직히 당혹감이 먼저 들었다.
“설마 절 간호해 주신 겁니까?”
몸을 일으키자 서검이 쳐다도 보지 않은 채 묵묵히 말한다.
“……말하지 않았느냐. 난 마인을 옆에 두지 않는다고. 내보내려면 빨리 깨워야 했을 뿐이다.”
아니, 그게 무슨.
“간호는 했지만, 걱정하진 않았다?!”
“허튼소리 하는 걸 보니 멀쩡한가 보구나. 와서 앉거라.”
서검이 근엄한 모습으로 협탁에 가서 앉는다. 소침을 다 뽑아내 쟁반에 놔두곤 마주 보며 포권을 취했다.
“걱정은 안 하셨다고 해도 치료해 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서검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진다.
“왜 그러십니까.”
“네겐 마인의 길이 어울리지 않는다.”
이젠 놀랍지도 않다. 갑작스레 툭툭 뱉는 저 성정도 이젠 익숙해진 모양.
픽 웃고는 자리에 앉으며 답했다.
“모두가 원하는 길만 갈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어르신께서 지금의 시대를 원치 않으셨듯이요.”
“한 마디도 지지 않는 걸 보니 마인인 건 확실하구나.”
“제가 얼마나 누워 있던 겁니까.”
“네 시진쯤 되었다. 어쩌다 그리된 것이냐.”
서검 입장에선 조금 당혹스러운 상황이었다.
그가 본 장이서는 입신지경에 근접한 자. 한데 그런 그가 열병을 앓고 쓰러지다니.
“별거 아닙니다. 뱁새가 황새 쫓다 그리된 거죠.”
그것도 흉내 낸 것도 모자라 신의 기예까지 펼쳐냈으니. 다리 한번 시원하게 찢었다.
이를 들은 서검은 무슨 소리냐는 듯 인상을 찌푸렸지만 길게 설명할 생각은 없었다.
“어쨌든 약속은 지킨 겁니다. 제가 어디를 가든, 무얼 하든. 이제 말리지 마십시오.”
본론이다. 단도직입적인 직언에 서검은 침음을 삼키곤 말했다.
“그전에.”
“음?”
“한 가지만 약속하거라.”
“사전에 우리한테 그런 조건은 없었을 텐데요.”
또 눈에 악귀 서린다. 얕게 숨을 후 뱉고는 말했다.
“그래도 들어는 보죠. 뭡니까.”
“이번 일이 끝나면 이곳을 떠나거라.”
“……!”
비정한 일언에 살짝 놀랐다. 그렇게나 싫은가. 쓴웃음을 짓고는 답했다.
“난 또 뭐라고. 그건 굳이 약속 안 해도 그럴 겁니다. 걱정할 필요…….”
“약속하거라!”
왜 이래. 이해할 수 없는 언성에 지그시 서검을 바라봤다.
심란해 보이는 눈빛.
불안한 어투.
설마!
다시 고개를 돌려 바닥을 살폈다. 다 마른 헝겊과 몸에 꽂혀 있던 소침이 보인다.
그런 건가. 하긴. 역근경이 사라진 제 몸에 침을 꽂았으니. 속을 들여다보는 것도 어렵진 않았을 터.
근데 그러니까 더. 왜 이리 야속하게 느껴지는 걸까.
예의가 배어 있던 자세를 풀고, 몸을 뒤로 젖혔다.
그러곤 차가워진 눈매로 담담히 물었다.
“윤이는…… 잘 지냅니까?”
“……!”
서검의 눈이 어느 때보다도 크게 흔들린다.
“아셨지 않습니까. 제가 누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