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349)
첩자의 마교생활-349화(349/350)
349.
#새로운 판
“대체 혈교 놈들을 어떻게 잡겠다는 게냐?”
북개가 팔짱을 끼고선 미심쩍은 표정을 짓는다.
“설마 적도방을 칠 생각은 아니겠지?”
적도방. 물론 그들은 사형이 정한 평화협정을 깨트렸으니, 언제고 그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될 거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 적도방을 치면 사도련과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혈교가 좋아할 일을 해줄 순 없죠.”
“잘 아는구나. 한데 그럼 방법이 없지 않으냐. 남은 증거라곤 그게 전부인데.”
아니. 아직 방법은 있다.
놈들이 숨지 않고 기어 나오게 만들 방법이.
“맹호원을 습격한 건 금의위라고 내부적으로 표명해 주십시오.”
“그, 그게 무슨!”
맹주와 북개가 기함을 터트렸다.
이게 뭔 헛소리인가.
방금 전까진 그들이 한 짓이 아니라면서!
“혈교를 계속 움직이게 하겠다는 겁니다.”
“……!”
계획은 간단했다.
놈들한테 이번 대계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절반은 성공한 것처럼 믿게 하는 것.
어차피 그들의 최종 목적은 맹호단의 죽음이 아닐 것이다. 그건 단지 과정일 뿐.
진짜는 이를 통한 무림맹과 금의위의 전쟁!
“우리가 금의위를 계속 의심하는 것처럼 꾸미자는 말이더냐?”
정답. 그렇게만 알려줘도 놈들은 다시 움직일 게 분명했다.
물론 우려되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놈들이 그걸 믿겠느냐? 이미 실패했는데.”
“믿을 겁니다. 두 분도 제가 말하지 않았다면 믿었을 것 아닙니까.”
“그거야…… 그렇지.”
북개와 맹주가 결국 고개를 끄덕인다.
당연했다. 이번 일은 혈교가 최소 수년을 준비한 것. 단순히 금의위로 위장했다고 다가 아니라, 의심할 수밖에 없도록 천천히 쌓아 올린 대업이란 말이다.
심지어 살수들도 진천뢰를 터트려 자멸했으니, 우리 셋만 입을 다물면 아무도 모르는 일이 될 거다.
“좋다. 네 말대로 믿는다고 치자. 그럼 그다음엔? 어차피 놈들이 나타나길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신세 아니더냐.”
가만히 있다면 그렇겠지.
하지만 이번엔 다를 거다.
“화무진에게 먼저 회동을 제안하십시오. 전쟁이 아니라 화해를 제안하는 겁니다.”
“……!”
그건 놈들이 가장 바라지 않는 일. 그러니 어쩌겠는가. 어떻게든 이를 막겠다고 뛰쳐나오는 수밖에.
“역으로 위기를 자초하자는 것이구나!”
북개가 손뼉을 치며 탄성을 질렀다.
나름 그럴싸한 계획. 아니, 확실히 해볼 만한 일이다.
하지만 여기엔 한 가지 필수적인 조건이 있어야만 했다.
“자네 말대로 되려면 혈교도 우리의 움직임을 알아야 할 텐데? 그건 어찌 전할 것인가?”
맞아. 북개도 추켜 뜬 눈으로 묻는다. 이에 장이서는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그건 알아서 알게 될 겁니다.”
숨어 있는 쥐새끼가 어련히 물어가 줄 테니.
*
장이서는 계획을 밝히곤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그가 사라진 자리엔.
“음…….”
“끄응…….”
북개와 맹주가 기 빨린 사람들처럼 진이 빠져 버렸다. 이윽고 한참 후에야 북개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무영이 이놈은 제자를 머리만 보고 뽑았나?”
그만큼 기가 막혔다. 북개는 무림맹의 정보 총책. 그 역시 잔꾀로는 어딜 가든 알아주는 편.
하지만 장이서는 뭔가가 달랐다.
계략에 능한 건 기본이고, 치밀하면서도 내내 여유로웠다.
마치 상황을 머리 위에서 가지고 노는 것처럼.
저 나이에 저리 능숙하게 판을 짜는 놈은 난생처음.
“제갈상 그 친구가 봤으면 제자 삼겠다고 난리였겠구만.”
북개가 아는 한 가장 영리한 자가 바로 그였으니 그야말로 최고의 찬사.
하나 맹주 생각은 달랐다.
‘제갈상도 이처럼 빠르게 답을 찾진 못했을 걸세.’
지난 3년간 혈교의 꼬리도 잡지 못했거늘.
장이서는 고작 하루아침에 혈교의 흉계를 끊어놓은 것도 모자라 잡아들일 계획까지 세워버렸다.
더구나 머리만 난 놈이 아니라 머리까지 난 놈.
볼수록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오는 아이였다.
문득 3년 전, 신승이 제갈상에게 했던 말이 스치듯 떠올랐다.
‘그대가 버린 장 대협이라면 분명 방법을 찾아냈을 것이외다!’
103호 장이서…….
어째서일까. 아닌 걸 알면서도 백서에게서 자꾸 103호가 떠오른다.
왠지 그라면 3년 전에도 다른 답안을 찾아냈을 것만 같은 기분.
만일 백서가 103호라면…….
‘혹 신승이라면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분명 그는 103호와 인연을 맺었다. 오래된 것도 아니니 만나면 곧바로 알아볼 수 있을 터.
알 수 없는 기대감에 마음이 술렁였다.
*
한편 밖으로 나온 장이서는 은밀히 객잔으로 향했다.
대낮에 갑자기 술이 고파 온 건 아니고, 사람을 좀 만나러 왔다.
북개가 진천뢰 조사를 마치고 돌아왔다는 건, 그녀 또한 지금쯤 도착해 있을 공산이 높다는 뜻.
“아니, 예까진 어쩐 일이십니까? 안 그래도 찾아뵈려고 했습니다만.”
아니나 다를까, 객실 안으로 들어서자 절 보며 화들짝 놀라는 여인.
비룡당주 묘채경이 와 있었다.
“화섭자는 만나셨소?”
웃으며 들어가 협탁에 앉았다.
“만났지요.”
따라 앉는 그녀가 무섭게 웃는 걸 보니 원하는 걸 얻은 모양.
“놀라지 마십시오. 최근 화섭자가 만든 진천뢰들이…….”
“금의위 손에 들어갔겠지.”
묘채경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걸 어찌 알았냐는 표정.
“아쉽지만 허탕이오. 일흉이 꾸며 놓은 함정이었으니까.”
“그게 무슨 말입니까?”
“맹주가 비운 사이 맹호원이 급습당했소.”
“헉!”
놀란 그녀에게 그간 있었던 일들을 모두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묘채경은 경악하면서도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이미 오래전에 함정을 판 것이군요. 맹주가 금의위를 치게끔.”
역시 척하면 척이다.
“그럼 이제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그녀가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묻는다. 할 일은 간단했다.
“쥐새끼 하나만 감시해 주시죠.”
“쥐새끼요?”
적도방은 맹주가 자릴 비운 틈을 정확히 노리고 습격을 가해 왔다.
이 말은 곧 혈교가 내부의 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다는 얘기.
바꿔 말해 내부에도 첩자가 있다는 말이다.
“하긴 없는 게 더 이상한 일이긴 하지요. 더구나 낙향했다는 소문부터 놈들의 계획이었다면 더더욱 맹호단에 들어오지 않았을 리도 없고요. 한데, 놈이 누군지 아시는 겁니까?”
알다마다.
분명 놈은 맹주와 가까운 곳에 있을 것이다. 당연히 부호위 중 하나일 터.
처음엔 오륜회에 속한 남궁신과 위지경 패거리가 의심스러웠으나 그러기엔 너무 맹탕인 녀석들.
그럼 남는 건 하나였다.
입단 시험을 치르던 날부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던 텁석부리.
‘함양의 조진평일세. 미혼이지.’
조진평.
바로 그다!
* * *
화림현 인근의 어느 의원.
“미안하네, 내가 순찰을 나가자고만 하지 않았어도…….”
멀쩡히 있어야 할 오른팔이 사라진 단원 앞에 텁석부리의 사내가 고개를 푹 숙였다.
조진평이다.
“아닐세. 이게 어찌 자네 탓이겠는가. 너무 심려치 말게.”
팔이 잘린 단원은 애써 웃으며 도리어 그를 달랬다.
그리고 병문안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 조진평은 햇살을 마주하자 어둠이 걷히듯 침울했던 표정을 갈음했다.
‘미안하지만 내 탓이 맞네. 적도방이 올 걸 난 이미 알고 있었으니.’
당연했다. 적도방에 의뢰를 한 자가 바로 그였으니까!
‘그래도 너무 서운해 말게. 원래라면 팔이 아니라 그 목이 잘렸을 테니.’
조진평이 픽 웃고는 길을 나섰다.
* * *
“이런 쳐 죽일 놈을 보았나!”
한편 객실에선 묘채경이 분개했다.
혈교의 첩자 주제에 지금껏 감히 부교주인 장이서에게 치근댔다는 게 화가 치밀었기 때문.
“한데 그자가 첩자인 건 어찌 아신 겁니까? 신원은 확실했을 텐데요.”
확실히 그랬다. 자료만 봤을 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자였다.
함양에서 나고 자랐고, 대인관계도 평이한 데다 노모까지 있었으니.
하나.
“처음부터 수상했습니다.”
첩자가 다수의 무리에서 의심을 피하기 가장 쉬운 방법은 모르는 이들과 친분을 쌓는 것.
‘기다리기 적적하니 말동무나 하자는 거지.’
그리고 그는 이를 누구보다도 잘 활용하는 자였다.
사람 좋은 미소에 털털한 성격.
대부분이 허물없이 그를 대하였고, 그만큼 그의 인간관계는 그물처럼 번져 나갔다.
하여 처음부터 그를 의심했었다.
첫날부터 객잔에서 술자리를 함께 가졌던 것도 그에 대해 더 알아내기 위함.
그리고 그 수상함이 극에 달한 건 바로 사찰에 들렀을 때였다.
일주문에 단목살과 황보병.
중문에 송옥과 위지경.
대웅전 앞에는 진자량과 남궁신.
분명 부호위는 일곱인데 단 한 명, 조진평만 보이지 않았던 것.
그래도 그땐 그저 우연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습격이 벌어졌던 날.
의심은 완전한 확신이 되었다.
‘미, 미안하네.’
하필 적도방이 쳐들어온 날, 부호위였던 그가 정찰조로 나가 놈들의 인질이 되어버린 것.
그리고 결정적인 증거는 바로 적도방 살수의 눈이었다.
‘그건 알고 있나? 너희한테 의뢰를 맡긴 자가 혈교라는 거.’
자신이 질문을 던진 그 순간.
스르륵.
그의 초점은 자신이 아닌 맹호단 쪽으로 향했었다.
그때 두 눈은 배신감과 충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해명을 요구하듯이.
그리고 그 눈에 비친 인물이 바로.
“조진평. 그놈이었군요.”
“눈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한마디로 적도방에 의뢰를 맡긴 자가 바로 그였다는 것.
묘채경은 질린다는 표정을 짓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혹 제가 부교주님을 배신해야 하는 날이 온다면 그냥 두 눈을 뽑겠습니다.”
농담도 참. 피식 웃고는 말했다.
“당분간 제 세상인 것처럼 날뛰게 두세요. 때가 되면 한 번에 정리할 것이니.”
“존명!”
“일흉의 계획은 계속될 겁니다. 내가 끝내기 전까지는.”
화림현에서 새로운 판이 깔리기 시작했다.
장이서가 만드는 혈교 지옥의 판이!
* * *
– 천산 천마전.
장이서가 중원에서 반격을 준비할 무렵.
그의 소식은 마교까지 날아들었다.
“크, 큰일 났습니다!”
화로가 일렁이는 사이한 공동.
육장로 마의가 서신 하나를 손에 쥔 채 사색이 된 얼굴로 지팡이를 짚으며 헐레벌떡 들어섰다.
그러자 안쪽 태사의에 앉아 눈을 감고 있던 사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내 스르륵 떠지는 마성의 눈.
이젠 제법 마교 대공자의 면모가 엿보이는 붉은 머리의 미공자.
칠공자 마오다!
“잠들었다고 생각했겠지만 틀렸어. 잠시 정신을 잃었던 거다.”
안 물었다. 그리고 그게 그거 아니냐?!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이서. 아니, 부교주께서…….”
“장이서?! 걔가 왜! 설마 왔대? 어디야!”
마오가 후다닥 달려와 마의의 멱살을 쥐고 흔든다. 이 손 놓아라! 이리저리 휘둘리다 간신히 떨쳐내고 말했다.
“그게 아니라 적들에게 습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뭐, 뭐야?!”
“그것도 수백 명이 야밤에 기습을!”
감히…… 어떤 자식이!
화르륵!
마오에게서 화염이 용솟음친다.
“당장 장로들 불러. 아니, 전군 소집해. 전쟁이다! 장이서 건드린 새끼들은 내가 가만 안 둬!”
“예! 한데 이미 다 죽였답니다!”
“누가?”
“부교주가.”
오늘도 태평하기만 한 마교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