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35)
첩자의 마교생활-35화(35/350)
35.
#수련의 시작 (3)
“닦으시지요.”
손과 얼굴에 피가 묻은 사도철의 옆으로 삼십 대 안팎의 분칠 가득한 여인이 다가와 공손히 손수건을 올린다.
도살방 서열 3위이자 이곳 색화루의 루주인 색월(色月) 금화빈이다.
사도철은 그녀를 쳐다도 보지 않은 채 손만 슥슥 닦아 내고는 다시 자리에 와서 앉았다.
“근데 형은 어차피 저 새끼 저렇게 만들 거였으면서 꼭 내가 나서려 그러면 말리더라. 생각하니까 또 열받네.”
동생인 사호정이 다리를 탁 꼬곤 인상을 쓴다. 이에 사도철은 그를 맹수처럼 노려보곤 답했다.
“시끄럽고, 준비나 해둬라.”
“무슨 준비.”
“조금 있으면 철마적(鐵馬賊)과의 거래일이다. 물건 정확히 받아오려면 빠짐없이 준비해.”
“하, 철마적 그 오랑캐 새끼들? 그거 형이 가면 안 돼? 난 걔들 만나면 냄새가 나. 그것도 아주 x같은 흙냄새. 아주 토 나온다고.”
“사호정.”
“하, x발. 알았어. 알았다고. 만나고 오겠다고. 가서 돈 주고 미혼산만 받아오면 되잖아. 맞지?”
사호정이 구시렁거리며 고개를 돌린다. 그러자 사도철은 이번엔 마이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장이서 쪽은 조용히 끝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투를 보건대 사과나 양해를 구하는 모습이 아니다. 이는 통보다. 사고를 좀 칠 테니 뒷수습 좀 해달라는 통보.
이에 마이신은 피식 웃고는 탁상의 미혼산을 한 움큼 주워 들더니, 그에게서 시선은 떼지 않은 채 입 안에 후룩 털어 넣으며 답했다.
“확실하게만 해.”
승낙이다. 사도철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장이서는 선을 넘었다. 간부 둘이 당한 건 실로 이례적이고도 치욕스러운 일. 그런 놈은 본보기로 확실히 부숴줘야 체면이 산다.
그가 앞에 미소 짓고 선 루주 색월을 바라보며 말했다.
“전부 소집해라. 내가 직접 사냥에 나선다.”
“예, 두목.”
“목표는 월하촌.”
사도철의 충격적인 명이 떨어졌다.
“기한은 모조리 불타 죽어 사라질 때까지.”
이에 마이신은 크게 대소를 터트렸고, 사호정은 나도 가고 싶다며 구시렁거렸다.
그리고 색월 금화빈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하겠습니다.”
도살방의 두목 사도철.
그가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도살방의 칼날이 목을 조여오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월하촌에선 때아닌 환호가 잇따르고 있었다.
“형니이이이임-!”
두 손을 휘휘 흔들며 방방 뛰어오는 흑룡파 두목 용태.
“기다리고 있었지 말입니다!”
뒤따라 인사를 올리는 메기와 흑룡파 식구들.
“오셨습니까.”
그리고 다소곳한 자세로 반갑게 인사하는 취홍란까지.
이들 모두가 다시 돌아온 두 사람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천마전의 문을 열고, 금의환향한 칠공자 마오. 그리고 그의 보좌 장이서.
바로 이들 두 사람을 말이다.
“이야, 역시 내 집이 좋긴 좋아. 저기 대나무 숲 좀 봐. 냄새가 아주 그냥 딱 내 냄새야. 응. 마음에 들어.”
마오가 칠소궁에서 월광호까지 뛰어나와 맞아주는 이들을 보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안 그래도 딱 부러진 장신에 사내다운 인상이 일품인데, 어깨 위에 창룡도까지 척 걸쳐주니 용모가 아주 멋스럽다.
용태와 메기도 이를 알아보곤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아니, 칠공자님. 그거. 그거 혹시. 그거 아닙니까?”
“예. 저거. 저거지 말입니다!”
새끼들. 꼭 이렇게 들어줘야 알아본다니까. 마오는 제 인중을 검지로 슥슥 비비며 말했다.
“그거, 저거 아니고 창, 룡, 도. 이게 바로 교주님한테 직접 하사받은 신물이다, 이 자식들아.”
“맞다, 창룡도! 도박장에서 담보로 걸었다가 홀라당 날려 먹었던 그거 아닙니까!”
“……메기, 너 이 새끼. 일부러 그 말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지.”
“어엇, 들켰지 말입니다.”
“일로 와. 이게 왜 신물인지 보여줄게.”
“악!”
마오와 메기가 애들처럼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뛰어다닌다. 장이서는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러곤 취홍란을 보며 물었다.
“제갈 영감은?”
아무리 봐도 제갈귀룡이 보이지 않는다. 이에 그녀 대신 옆에 있던 용태가 껄껄 웃으며 답했다.
“뭐, 말도 없이 갔습니다. 같이 일해 보니까 아주 보통 괴짜가 아니더라고요. 어찌나 호통을 치는지. 이 나이 먹고 별꼴을 다 겪었지 뭡니까.”
그랬을 거다. 보통 영감이 아니니까.
그래도 일 하나만큼은 확실한 자.
“칠소궁은?”
장이서가 눈매를 번뜩이며 물었다.
“가보시면 아주 깜짝 놀라실 겁니다. 근데 정말 거기서 사시려는 겁니까?”
용태가 걱정스레 묻는다. 표정을 보니 공사가 잘 된 모양이다.
“고생했다.”
장이서는 가볍게 인사를 건네곤, 대나무숲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용태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더니 조심스레 말을 걸어온다.
“고생 많이 했죠. 한데 형님……. 이게 또 힘들긴 한데 일한 게 바로바로 눈에 드러나니까, 기분은 썩 나쁘지 않더이다. 그래서 말인데……. 이참에 우리 애들하고 일이나 좀 배워볼까요.”
용태의 물음에 장이서는 피식 웃었다. 본디 흑룡파는 하는 거 없이 시비나 걸고 다니던 왈패들.
제대로 땀 흘려 일하고 산다는데 그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보람이라는 가치를 알고 사는 것과 모르고 사는 건 삶의 질 자체가 다를 테니 말이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얘기해 보지.”
“감사합니다, 형님!”
용태와 수하들이 환히 웃으며 고갤 숙였다. 제갈귀룡. 그 인간이 성질머리는 고약해도 능력은 확실한 양반. 밑에서 배우게 된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거였다.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대나무 숲을 지나 마침내 새로워진 칠소궁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기존이 다 쓰러져가는 폐가였다면, 지금은…….
“이게 다 뭐야.”
마오가 눈을 세 번 크게 깜빡이고, 슥슥 비볐다.
보고도 믿기지 않았던 탓이다.
우선 담장부터 전보다 훨씬 두꺼워졌고, 또 고개를 셋 셀 때까지 올려다봐야 할 만큼 높아졌다.
시간이 부족한 관계로 조금 투박하긴 했으나 확실히 이젠 궁다운 면모가 느껴졌다.
“대단한데?! 근데 문이 없잖아.”
마오의 말대로다. 입구로 보이는 통로엔 사람 한두 명 간신히 지나갈 만큼 좁은 길만 있을 뿐, 문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쉽게 들어오진 못할 겁니다.”
용태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못 오긴 왜 못 와. 그냥 지나가던 똥개도 다 들어오겠구만.”
이에 마오가 코웃음을 치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자, 잠깐! 용태와 메기가 이에 화들짝 놀라며 손을 뻗었지만 늦었다.
마오는 성질 급한 망나니. 말릴 틈도 없이 통로에 발을 들였다.
그러자.
쐐애애액! 퍽!
“어흑!”
통로 좌측 벽에서 느닷없이 시커먼 쇠 방망이가 튀어나와 뺨을 후려갈겼다.
그대로 철퍼덕 주저앉는 마오.
너무 황당하고 억울해 위를 올려다보자 제 뺨을 후려친 쇠 방망이가 다시금 벽 속으로 드르륵 들어가 사라진다.
“이게 무스 지시야?”
어찌나 뺨이 얼얼한지 발음도 잘 안 나오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아니, 그게…….”
용태가 제 이마를 척 짚고는 서둘러 달려가 마오의 뒷목을 잡고 주르륵 뒤로 끌었다.
그리고 이를 본 장이서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제대로 만들었구나.”
이게 어딜 봐서?! 마오의 눈이 띠용 튀어나온다.
“뭐가 제대로야! 방금 못 봤어? 나 들어갔다가 x나 세게 맞았거든? 여기 봐봐. 볼이 퉁퉁 부었잖아. 안 보여? 너 자객이니?”
장이서는 바로 옆에서 앵앵대는 마오를 휙 밀어낸 채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용태가 헛기침을 두어 번 터트리곤 설명했다.
“일단 이번에 칠소궁에 새롭게 만들어진 곳은 세 군데입니다. 하나는 입구인 길흉화복(吉凶禍福)의 문. 걸음을 디딜 때마다 쇠 막대가 이곳저곳 마구잡이로 튀어나오는데……. 어휴, 제갈 선생도 포기하고 사다리로 담 타고 다녔습니다.”
“x발, 그럼 길흉화복이 아니지! 그냥 무조건 처맞는 흉흉이잖아!”
끝까지 좀 들으십시오. 채신머리없게. 장이서는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하라는 듯 용태에게 턱짓했다.
“예, 두 번째는 백팔번뇌(百八煩惱)의 길이 있고, 세 번째는 안식불가(安息不可)의 방이 있는데…… 그것들은 아주 아주 위험합니다. 어쩌면…… 목숨이 위태로울지도. 예. 우리 애들도 그거 때문에 여럿 골로 갔습니다.”
“야, 이 씨! 그런 위험한 데서 내가 왜 살아!”
왜 살긴. 그래야만 네가 하루빨리 강해지니까.
무공이란 단순히 내공을 늘리고, 초식을 외우는 게 다가 아니다. 경지가 비슷하거나 한 단계 차이일 땐 승패의 핵심은 숙련된 감각에서 비롯된다.
아무리 절정의 고수라 할지라도 방심하는 순간 수명이 다하는 게 바로 이 무림이라는 곳이었으니.
한데 마오는 감각은커녕 무공조차 제대로 익힌 적이 없는 초짜 중의 초짜.
그런 그가 이제라도 형제들을 따라잡기 위해선 어중간한 수련으로는 턱도 없었다. 보다 확실한 자극이 필요했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바로 이 칠소궁의 재건축이었다.
삶 속에 위협을 녹여내는 것.
바로 자신이 암각에서 배웠던 것처럼 말이다.
“지금부터 제 말 잘 들으십시오.”
장이서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한 달 뒤에도 살아남고 싶으면 여기서 무슨 수를 쓰든 버텨야 하는 겁니다.”
“야, 장이서……!”
“반드시. 버텨내셔야 합니다.”
장이서가 고개를 옆으로 슥 돌린다.
이제 남은 시간은 한 달.
그때까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칠공자도. 그리고 자신도.
*
칠소궁에서 인사를 마치고, 용태와 메기는 있어야 할 자리로 되돌아갔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했지 말입니다.”
그렇게 두 사람과 흑룡파가 떠나가고, 한결 주변이 조용해지자 장이서는 얕게 숨을 뱉었다. 이제야 좀 집에 돌아온 기분이다.
옆에서 지켜보던 취홍란이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표정이 좋지 않으십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벌써 장이서를 수년간 봐온 그녀였다. 한데 오늘은 묘하게 표정이 어둡다. 본래 염세적이긴 했어도 눈빛엔 장난기가 있고, 입가엔 은은한 미소가 서려 있었거늘. 꼭 살심으로 가득한 마인 같다.
“……별일 아니다.”
“별일 아니긴. 한 달 뒤에 죽게 생겼구만.”
“예?”
취홍란이 화들짝 놀라 되묻자 마오가 입술이 댓 발 나와서는 툴툴거렸다.
“아버님께서 나한테 말도 안 되는 숙제를 내주셨거든. 나더러 본인의 지풍을 피하래. 그게 말이 돼?! 내가 무슨 수로!”
“아…….”
취홍란이 하얀 손으로 입술을 가린 채 탄식을 뱉었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한데…….
‘주인님의 표정은 그 일 때문이 아니신 거 같은데. 뭐랄까…… 무서워 보여.’
정확했다.
사실 지금 장이서의 속 상태는 보이는 것보다 더 심각했다.
천마의 내공이 조금씩 그의 정신마저 물들이고 있기 때문.
마기가 왜 마기(魔氣)겠는가.
순리를 벗어나 몸을 해치는 흉험한 기운이기 때문에 마기인 것이다.
그중에서도 장이서가 품은 건 지존이라 감히 칭할 수 있는 천마의 마기.
그게 단전의 구멍으로 술술 새 나오고 있으니 당연히 미쳐갈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