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36)
첩자의 마교생활-36화(36/350)
36.
#잔치 한 번 더 열어야겠다 (1)
취홍란은 침묵하는 장이서를 보며 눈치껏 입을 열었다.
“……편하실 때 말씀해 주세요. 소녀는 취선루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상대가 말할 마음이 될 때 듣겠다는 것. 참 생각이 깊다. 장이서는 미안함에 고개를 짧게 끄덕이곤 답했다.
“고맙다. 먼저 가 있어. 이따가 찾아가지.”
“예. 그럼.”
손을 흔들며 인사하던 마오와 장이서는 그녀가 사라지자 바로 안색을 굳힌 채 퉁명스레 대화를 나눴다.
“야, 장이서. 근데 나도 쭉 궁금했는데 말이야. 너 진짜 표정이 왜 그래?”
“뭐가 말입니까.”
“똥구멍에 종기 났어?”
“말을 해도.”
“너 딱 마교인 같아.”
“그럼 우리가 마교인이지, 정파인입니까?”
“다르지. 나는 본교의 선량한 교인이고, 넌 마공에 심취한 광인 같다고. 지금도 눈빛 봐. 도살방에서 온 자객인 줄.”
“됐습니다.”
“그러니까 뭔데. 처음엔 나 때문인 줄 알았는데, 너 눈 뜨고 난 다음부터 좀 이상해. 화나 보인다고 해야 하나.”
너희 아버님 때문입니다. 장이서가 짙은 한숨을 뱉었다.
근묵자흑이라 했던가. 마교 생활만 십수 년째. 그간 별짓을 다 해왔었다. 그중엔 분명 도의를 저버리는 일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엔 늘 정도인의 기상을 잊지 않았다.
한데 마기에 짓눌려 이리 미쳐가는 꼴이라니.
됐다는 듯 숨을 후 뱉고는 말했다.
“실없는 소리 그만하고, 이제부터 수련만이 살길이니 마음 단단히 먹으십시오.”
“흥. 못할 줄 알고? 내가 이 집에서 한 달만 버티면 지풍을 피할 수 있다 이 말 아니야.”
그것만으로는 어림도 없고. 하지만 시작은 맞다.
장이서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오가 씨익 웃으며 창룡도로 뒷목을 탁탁 두드렸다.
“좋았어. 어디 한번 해보자고. 나도 기왕 시작한 거 여기서 멈출 마음 없으니까. 일단 안으로 들어가면 되지?”
마오가 호기롭게 다시금 입구 앞에 섰다.
예전이라면 욕지거리나 뱉고 술 마시러 갔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천마전도 내 손으로 열었잖아. 이 정도는 우습지.’
새롭게 재탄생한 칠소궁. 그리고 그 첫 번째 관문인 길흉화복의 문. 마오가 심호흡을 뱉는다.
“으랴아아아아아-!”
이내 기합을 내지르며 앞으로 황소처럼 달려 나갔다.
그리고.
“컥, 커헉! 칵!”
좌우의 쇠 방망이 연타 세례에 두 걸음도 못 가고 넝마가 되어 픽 쓰러졌다.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장이서, 나 너무 아파…….”
장이서가 이마를 긁적인다. 그러곤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다가가 그가 내민 창룡도를 붙잡아 끌어당겼다.
“나…… 아무래도 오늘부터 다른 데서 자야 할 거 같아.”
“뭐라는 거야.”
“아니, 미친! 들어가게는 해줘야 할 거 아니야. 이걸 어떻게 다 맞고 가!”
“왜 맞고 갑니까? 길이 이렇게 넓은데.”
“그럼 피해서 가? 참나. 네가 해보든가.”
마오가 짜증 내며 손짓하자 장이서는 한심하다는 듯 그를 한 번 살피곤 안으로 걸음을 훅 디뎠다.
그러자, 쐐애애액! 역시나 쇠 막대가 화살처럼 빠르게 쏘아져 나온다. 하지만 장이서는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뒤로 젖혀 이를 피해냈다.
“어?”
그리고 다시 앞으로 한 발. 그러자 이번엔 우측 하단에서 막대가 튀어나온다. 이에 장이서는 가볍게 제자리에서 뛰어올라 이번에도 쉽게 피해냈다.
“뭐야. 이렇게 쉽다고?”
더구나 지금까진 장난이었던 것처럼 앞으로 툭, 툭. 걸음을 자연스레 내디뎠다.
그러자, 슈슈슈슈슉!
동시에 대여섯 개가 번갈아 쏘아져 나온다. 이에 장이서는 몸을 수그려 이를 흘리고, 그 상태로 앞으로 구르며 피해냈다.
그야말로 곡예와도 같은 몸놀림.
심지어 마지막엔 일부러 막대를 손바닥으로 탁 막아낸 뒤, 이에 밀려나는 반동으로 반대편 벽으로 날아가 탁탁탁, 옆면을 밟고 가듯 문 안쪽에 착지했다.
“와…….”
마오는 놀리려던 것도 잊은 채 손뼉을 치며 감탄을 터트렸다. 점수를 주자면 만점이다. 이에 장이서는 무덤덤하게 돌아보며 물었다.
“잘 보셨습니까?”
“어? 어.”
“됐습니다, 그럼.”
돼? 뭐가. 마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자 장이서는 등을 휙 돌리곤 칠소궁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 야! 잠깐!”
“왜요.”
“그냥 가? 나는.”
“알아서 들어오셔야죠.”
“오늘만. 나 딱 오늘만 봐주면 안 될까? 나 진짜 배가 너무 아파서 그래. 보름 동안 긴장해서 똥도 못 눴어. 알잖아. 나 귀하게 자라서 내 집 아니면 원래 잘 못 누는 거.”
바닥이나 쓸던 서출이 무슨. 장이서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좋습니다. 방법을 알려드리죠. 그 무엇에도 놀라지 말고, 침착하게 그냥 받아들이십시오. 그럼 어느 순간 저것들도 다 느리게 느껴지는 순간이 올 테니.”
“침착……하게?”
그렇다. 장이서가 자못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이 바로 길흉화복의 문으로 가르쳐주고 싶었던 첫 번째 감각.
인지력(認知力)이었다.
*
무인과 일반인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반사적으로 나오는 공격적인 초식들? 수련을 거친 비상한 몸놀림?
물론 그것도 맞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인지의 차이였다.
무엇이든 제게 위협이 될 수 있고, 또 제가 쓰러트려야 할 상대가 될 수 있다는 생각.
그로 인해 미리미리 상황을 준비하는 마음의 자세.
무인으로서의 개안(開眼)은 바로 거기서부터였다.
그리고 이를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위협과 친해지는 것이다.
물론…….
장이서가 피식 웃고는 자비 없이 칠소궁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빨리 오십시오. 늦으면 저녁 없습니다.”
“으아아아! 저 피도 눈물도 없는 자식. 내가 못 할 줄 알고? 두고 봐. 나 마오야-!”
쐐애애액, 퍽!
“억.”
제법 긴 고통의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
“오…….”
안으로 들어온 장이서는 새롭게 바뀐 칠소궁을 보며 미약하지만, 탄성을 터트렸다.
기관진식이야 당연히 제갈귀룡이 알아서 잘했겠거니 싶었지만, 이렇게 외관마저 신경 써서 만들어줄 줄은 몰랐던 탓이다.
특히 마오가 머물던 본관은 허름했던 모습을 버리고, 붉게 칠해진 나무와 검은 벽. 그리고 짙은 회색 기와가 너무도 멋스럽게 어우러져 있었다.
그리고 옆에 자그마한 정원에는 돌담으로 만든 연못과 차를 마실 수 있게 작은 탁자와 의자까지 마련되었다.
잘할 것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런 섬세함도 있을 줄이야.
뭣보다 기존엔 없던 2층짜리 작은 별관이 하나 지어져 있었는데, 그곳이 이제부터 장이서가 머물 처소였다.
‘이걸 고작 보름 만에 해냈다고? 괴물이네.’
이 정도면 부실 공사라고 해도 이해할 지경. 하나 그건 까탈스러운 제갈귀룡의 성격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짧은 기간 내에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인력과 자본이 투입됐겠지만, 상관없었다.
액수가 중한가, 돈 나가는 주머니가 중하지. 어차피 모두 마오가 내야 할 몫.
끼이이익.
장이서는 망설임 없이 별관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곧장 입꼬리가 미약하게 올라섰다.
“쓸만하네.”
아주 마음에 든다는 얘기.
1층은 붉은색으로 옻칠을 한 마룻바닥에 투박한 기둥과 계단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수련하기엔 딱 좋은 공간이다.
2층으로 올라서자 좌우에 빈방이 2개씩 붙어 있고, 사이 복도를 지나 안쪽 끝으로 가면 창가로 본관이 내려다보이는 커다란 방이 나왔다.
앞으로는 이곳에서 머물면 될 터.
“후.”
별관을 모두 둘러본 장이서는 다시 1층으로 내려와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는 가부좌를 한 채 털썩 주저앉았다.
마오의 감각을 일깨워 주기 위해 칠소궁을 바꿔 놓았지만, 그도 지금 제 코가 석 자다.
우우웅!
장이서가 단전에 손을 얹고 가볍게 소주천을 운기 하자 혈관이 시커멓게 물들고, 몸에서 지독한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천마의 내공이다.
그가 쏘아 보낸 마기가 몸 안으로 스며들면서 벌어진 일.
하지만 이게 얼마나 황당무계한 일인지는 강호에서 칼밥 좀 먹은 이들이라면 누구나 다 알 일이었다.
이른바 천마가 대체로 죽기 직전 사부가 제자에게 내공을 전수해 줄 때 사용하는 격체전공(隔體傳功)이라는 최상위 기예를 펼친 것인데.
보통 이걸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며칠간 물만 먹여 체내를 깨끗이 비운 뒤, 벌모세수(伐毛洗髓)를 통해 막힌 기혈을 뚫어준 다음. 내공을 수용할 수 있도록 해당 심법을 익히게 한 후에, 사부가 두 손을 제자 등짝에 짝 붙이고 펼쳐야 그나마 가능성이 대충 삼 할쯤 되는 위험천만하고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하지만 천마는 지나가는 똥개에게 옜다, 이거나 처먹으라는 듯이 던져주었지. 심지어 몸에는 손도 대지 않고 말이야.”
이걸 직접 겪었음에도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 이런 것보다도 가장 황당한 건.
“내가 살다 살다 천마의 내공을 거저먹게 될 줄이야.”
바로 첩자인 자신이 교주의 내공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후.”
어쨌든 황당한 건 황당한 거고, 이미 일은 벌어졌으니 확인은 해 봐야 할 일.
장이서가 숨을 뱉고는 몸 안의 마기를 뇌기로 전환시켰다.
『뇌전법(雷轉法)』
파직!
몸 안의 모든 내기가 벼락으로 바뀌고 단숨에 대주천을 끝냈다. 그리고 화들짝 놀랐다. 본래도 빨랐지만, 그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기 때문. 아니, 대주천이 이렇게 개운한 일이었던가.
“이게 천마가 가진 내공의 힘…….”
지금이라면 뭐든 다 펼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한 마디로 극상의 쾌감.
장이서는 이번엔 멈추지 않고 뇌전법을 극한의 단계까지 끌어올렸다.
그러자.
파지지직!
몸 밖으로 새어 나온 뇌기가 주변을 어른거리고, 머리카락은 마귀처럼 사방으로 뻗쳐올랐다. 그리고 장이서는 손을 들어 새어 나오는 뇌기를 확인하곤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뇌기의 색이…… 검게 변했어?!”
뇌전법은 내공을 원료로 하는 술법. 기존의 탁했던 내공이 아니라 천마의 마기로 재료가 바뀌니 색도 변한 것이다.
“이렇게 영향을 받다니.”
참으로 신묘했다. 심지어 전보다 더 날카로워진 듯한 생각도 들었다. 왠지 더 파괴적인 느낌.
파스스스.
장이서가 심호흡을 토해내며 뇌전법을 해제하자 머리카락이 가라앉으며 다시금 정순한 마기가 몸 안에 자리 잡았다.
“음…….”
그리고 장이서는 확신했다.
확실히 강해졌다. 양이 늘어난 것도 아니고, 그저 내공이라는 재료만 바뀌었을 뿐이거늘. 뇌전법의 효과는 확연히 느껴질 만큼 상승했다.
장이서로서는 평생 한 번 겪기도 힘든 절대 기연을 얻게 된 셈.
문제는.
우우웅! 갑자기 전신에 검은 힘줄이 튀어 오름과 동시에 두 눈이 지독한 마기와 살기로 찌들기 시작했다.
“크윽…….”
당장 모든 걸 다 찢어 죽이고 싶은 섬찟한 생각이 뇌리에 파고든다.
무리해서 내기를 운용하자 마기가 몸을 잠식해가는 속도도 빨라진 것.
쉽게 말해 구멍 난 단전에서 새 나가는 마기를 몸이 견디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천마가 준 선물의 후유증.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지독한 마기를 다스려 줄 심법의 부재.
그 이름도 찬란한 천마신공의 부재였다.
그리고 이것이 의미하는 건 하나였다.
이 길의 끝은 절망밖에 없는 결말이라는 것.
미치든가, 죽든가.
아주 x같은 결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