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37)
첩자의 마교생활-37화(37/350)
37.
#잔치 한 번 더 열어야겠다 (2)
“천마는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무공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래서 모두가 소교주에 목을 매는 것. 그럼 도대체 왜 내게 내공을 전수해 준 거냐. 설마 나더러 소교주가 되라는 건가?”
하, 가당치도 않은 소리. 천부당만부당한 소리다. 한낱 졸개인 자신에게 절대 그럴 리 없는 일.
그렇다면 서서히 미쳐 죽어가는 꼴을 보기 위해?
천마니까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유희라는 x같은 명분도 있으니. 하지만 제 수하에게 그럴 이유는 없다. 심지어 제 자식의 보좌 아닌가.
그럼 남은 건 단 하나.
‘숙제다. 네 몸을 치료할 단초를 찾아오거라.’
구규지체(九竅肢體).
바로 이 빌어먹을 몸을 치료할 기적 같은 방법이, 천마의 지독한 마공 안에 숨겨져 있다는 것.
그러니…….
살 방도를 찾아내면 일생의 기연이고, 못 찾으면 난…… 죽는다.
“후…….”
장이서는 서늘한 등골을 느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작금의 몸 상태는 충분히 잘 알겠으나, 도대체 이게 구규지체의 치료법과 어떤 연관이 있다는 건지는 도저히 감이 오질 않았다.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달라진 게 무엇일까.’
우선 조잡한 심법과 갖가지 잡초로 쌓아왔던 불순한 내공은 이제 사라졌다.
마기이기는 하나 천마의 내공. 탁기 하나 없이 무결한 것으로 치자면 소림의 신승과도 견줄 만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기존엔 없던 성질이란 게 생겼다.’
이건 뇌전법을 펼치기 전까지는 정확히 느끼지 못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뇌기의 색이 검게 물든 것을 보고는 확신했다.
분명 지금의 내공은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그것도 마(魔)의 속성을 말이다.
“완전무결한 마의 내공이라…….”
역시 감이 오진 않는다. 아니, 치료법이란 게 있다는 것도 생소했다.
과거 암각에서 훈련에 임하던 시절, 원로였던 생사신의 위자량에게 치료법에 대해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을 했었다.
‘치료법? 없다. 차라리 죽은 자를 살리는 게 더 쉬울 것이다. 또한 구규지체는 공정하신 천지신명께서 인세에 어그러짐이 없게 하시고자 내린 조치이니라. 그러니 이를 아쉬워도, 억울해해서도 아니 된다. 그건 천기를 거스르는 일이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땐 반발심에 언제고 반드시 치료하겠다는 생각도 가졌었다.
하지만 살면서 생사신의의 말이 옳았음을 백 번 정도 깨달았다.
단전의 구멍.
말은 쉽다. 하지만 실체를 본 적이 있는가?
단전이란 손에 닿지도, 보이지도 않으며 몸 안에 안개처럼 자리 잡은 우주이자 그릇이다.
내기를 통해 스스로 느껴야만 그 존재를 알 수 있는 단전을 무슨 수로 막는다는 말인가.
살이라면 실로 꿰매기라도 하지.
“근데 천마는 생사신의도 모르는 치료법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그것도 의문. 하지만 그게 중요한가. 어쨌든 돌팔이가 뱉은 허언도 그가 말하면 진언이다. 천마는 그런 존재였다.
“안 풀리는 숙제를 붙잡고 있어봤자 달라질 건 없다. 천천히 찾아보자. 아직 한 달이라는 시간이 있으니. 그리고 지금 급한 건 그게 아니야. 밀린 빚부터 해결하는 게 먼저다.”
장이서의 눈매가 좁혀지고 머릿속에 세 글자가 떠올랐다.
도살방(屠殺幫).
이쪽에서 가만히 놔둔다고 좋게 끝낼 놈들이 아니다. 임무에 방해되는 것들을 가만히 둘 마음도 없고.
장이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내 문을 열고 별관 밖으로 나서자 통로 안쪽에 죽은 듯이 엎어져 있는 마오가 보였다.
입꼬리가 피식 올라갔다. 용케 들어오는 데 성공한 모양이다. 꼴을 보니 원 없이 두들겨 맞고 기절한 듯했지만.
그래도 걱정은 없었다.
마오는 무결한 극양의 내공을 가진 천양지체. 신체 건강으로 치자면 최소 마교에서 세 손가락엔 들 놈이니.
‘그래. 그렇게 하나씩 해나가면 되는 거다.’
장이서는 대견하다는 시선을 뒤통수에 꽂아주곤, 말없이 통로를 지나 밖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뒤늦게 깨어난 마오는…….
“배 아파. 똥 나올 것 같아.”
콕콕 찌르는 아랫배를 부여잡고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다 죽어가는 몰골로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모습이 강시가 따로 없다.
하나 명색이 천하의 칠공자. 아무 데나 지릴 수는 없는 일.
있는 힘을 다해 변소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길목에 도달한 그 순간.
“뭐, 뭔데……?!”
쿠궁! 제갈귀룡이 준비한 두 번째 회심의 역작.
비좁은 길목 좌우에 일렬로 늘어서 있는 사천왕의 얼굴을 가진 백팔 개의 목인장.
팔 하나만 툭 건드려도 톱니바퀴처럼 뒤로 돌아가 다른 목인장을 발동시켜, 종국엔 백팔 개 병마용의 무차별한 공격이 쏟아지게 만든 지옥의 사투장.
싸고 싶다면 싸워라.
백팔번뇌의 길을 마주하고 말았다.
“야, 이 x발놈들아-! 흐어어엉!”
위기는 위급한 순간에 닥치는 법.
마오의 수난은 오늘부터다.
*
월하촌을 대표하는 객잔으로 자리매김한 취선루.
비교적 이른 시간임에도 월광호는 수많은 인파로 북적이고, 취선루의 등롱은 화사하게 빛을 내뿜는다.
그리고 손님들 모두가 한 번이라도 올라 보길 희망하는 꼭대기 8층에는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그가 자리해 있었다.
취선루의 진짜 주인.
그간의 장부를 무공서마냥 진중하게 훑어보는 장이서였다.
“며칠 문 닫았던 것 치곤 그리 큰 손해는 안 났어. 고생했네.”
“예, 찾아주신 감사의 뜻으로 모든 분께 여아홍(女兒紅)을 한 잔씩 올렸습니다.”
“여아홍을?!”
장이서의 얼굴이 화들짝 놀랐다. 그럴 만도 하다. 여아홍은 술 중에서도 가장 값비싼 품목. 돈 귀신인 장이서에겐 비수가 날아와 꽂힌 것과 같은 이치. 하지만 장이서는 그냥 돈 귀신이 아니라 총명한 돈 귀신.
“여아홍 한 잔이라……. 그리 독하지 않아 여운이 남고, 과일 향이 좋아 입맛을 돋우지. 추가 주문을 하지 않고는 못 배겼을 거야. 더구나 값이 비싸 곳간에만 쌓여있기 일쑤. 출혈은 아프지만, 생색내기엔 훌륭한 선택이었어. 칭찬해.”
“과찬이십니다.”
취홍란이 부끄러운지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장이서는 오늘 하루 중 가장 환하게 웃으며 척 장부를 덮었다.
역시 영민하기 그지없다는 모용세가의 여식.
이 정도 수완의 재원을 오히려 한낱 객잔에 묶어두는 게 미안할 지경이다.
또르르.
취홍란은 화려하게 차려진 술상에 잔을 채웠다. 장이서는 이에 술잔을 붙잡고 슬쩍 그녀를 곁눈질로 살폈다.
잔잔한 미소 뒤에 근심이 보인다. 아마도 아까 칠소궁에서 보았던 제 표정 때문일 거다.
“천마전에 다녀왔다.”
장이서는 거두절미하고 담담하게 운을 떼었다. 그러자 취홍란은 눈을 동그랗게 뜨곤 감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뜻.
이에 그는 자신의 체질인 구규지체에 대한 이야기부터 천마 진우광이 그의 몸에 마기를 전수하고, 이를 고칠 방법을 찾아오라고 한 것까지. 당장 죽어간다는 말만 빼고 하나하나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 나갔다.
사이사이 술도 마시고, 안주도 먹고. 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그러기를 어느새 반 시진.
취홍란의 눈시울은 붉어져 있었다.
“여태 그 몸으로…… 그리 큰일을 해오셨던 겁니까…….”
“큰일까지야. 그냥 돈이나 모은 게 다지. 그리고 나 멀쩡해. 알잖아.”
“주인님…….”
장이서가 뇌전법에 대해선 일절 말하지 않았지만, 그녀도 중원에 이름난 무가의 여식. 그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범상치 않은 실력을 갖췄음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충격이었다. 단전에 구멍이 뚫린 참혹한 천형을 안고 살고 있었다니.
그에 대해 잘 안다고 여겼거늘. 여전히 아는 게 너무도 없다. 그래서 더 슬프다.
취홍란이 톡 건드리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처럼 바라보자 장이서는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안 죽어. 걱정 마. 누가 보면 오늘내일하는 줄 알겠다.”
“위험하신 건 맞지 않습니까. 주인님께서 이리 가시면 저는…….”
“가긴 누가 가. 그리고 설령 내게 무슨 일이 생겨도 넌 반드시 집으로 돌아가게 될 거야. 가서 잘 살면 돼.”
평화의 시대가 열렸다지만, 천산에서 직급과 권한도 없는 교인이 허락 없이 밖으로 나가는 건 엄격한 교리에 위배되는 일.
나가는 순간 방첩대의 추격 끝에 구족을 멸했다.
하여 지금은 홍란을 밖으로 내보낼 방법이 없었지만, 언젠간 꼭 그녀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주인님……. 몸이 많이 안 좋으신 거군요?”
취홍란은 그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채 일순 허를 찔렀다. 역시, 영리해. 장이서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한 달 안에 답을 못 찾으면 난 마기에 미쳐 죽게 될 거다.”
결국 그녀의 눈에서 또르르 눈물이 떨어진다. 장이서는 고개를 절절 흔들곤 채워진 술잔을 비웠다.
그러자 취홍란은 코를 한 번 훌쩍이곤, 소매로 눈물을 닦아 냈다. 그리고 더는 울지 않겠다는 듯 충혈된 눈을 부릅떴다.
자신이 울어봤자 장이서에게 부담만 준다는 걸 잘 알기 때문. 게다가 그녀는 누구보다 그를 맹신했다.
“괜찮으실 거예요.”
“당연하지. 그 인간이 허튼소리를 할 위인은 아니야. 그리고 난 답을 찾아낼 거고.”
그 인간은 설마 천마를 뜻하는 건가. 푸훗. 대찬 막말에 취홍란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힘차게 답했다.
“예!”
이에 장이서도 환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건 그거고. 조만간 해줘야 할 일이 하나 있는데.”
“시켜주시면 무엇이든 해내겠습니다.”
취홍란이 눈을 꾹 감아 남은 눈물방울을 흩트리곤 결의 가득한 목소리로 답했다.
역시 믿음직해. 열 사내 안 부럽다.
장이서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잔치 한 번 더 열어야겠다.”
그것도 아주 큰 잔치로.
* * *
천산 동부 끝자락.
이곳엔 다른 곳에 비해 비교적 지대가 평평하고 기온이 낮아 마교의 명마를 사육하는 주마지(走馬地)라는 곳이 나온다.
뛸 주(走)에 말 마(馬) 자를 쓴 것인데, 울타리 하나 없이 드넓은 언덕을 원 없이 달려야 명마가 탄생한다고 해서 그리 이름 지어진 곳이었다.
그리고 이 주마지를 대대로 관리해온 가문이 마교 3대 명가 중 하나인 맹가(孟家)였다.
당대의 맹가는 그 어느 때보다도 권세가 대단했는데, 권솔인 맹갑귀마대(孟鉀鬼馬隊)의 사기는 극에 달했고 가주는 가전무공(家傳武功)인 대파열창술(大破裂槍術)을 대성했다.
그뿐인가. 무려 교주의 양자녀로 가주의 조카인 오공녀 맹원원과 막내아들인 육공자 맹휘.
지학(15살)도 안 됐을 때 두 아이가 나란히 입적하는 명예까지 이루었다.
그리고 이는 모두 가주이자 삼장로인 신창마귀(神槍魔鬼) 맹철용의 완벽에 가까운 성향 탓이란 것이 세간의 정평이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완성된 가문.
분명히 그랬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반드시.
“백부님! 나, 다녀올게!”
주마지에서 새하얀 백마를 탄 여아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이름은 맹원원.
이제 고작 열여섯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일찍이 교주의 눈에 들어 다섯 번째 양녀가 된 오공녀였다.
“주십시오. 칼은 함부로 다루는 거 아닙니다. 일단 익숙해질 때까진 제가…….”
“뭔 소리야? 내가 이거로 아버님 지풍까지 막아냈는데.”
“교주님의 지풍을 말입니까?!”
무슨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나 천재잖아. 몰라?”
모르니까 이러지. 황당함에 헛숨이 다 뱉어진다. 생전 칼도 제대로 안 잡아본 녀석이 무슨 수로 교주의 지풍을 막았다는 건지.
“진짜라니까?!”
장이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겠다. 그럼.
“한 번 휘둘러 보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