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4)
첩자의 마교생활-4화(4/350)
4.
끼익. 장이서가 서책 하나를 손에 쥔 채 서관을 나섰다.
그리고 먼발치 건물 지붕에는 차가운 눈매로 이를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
심통 난 너구리. 제갈서관에서 장이서와 마주쳤던 그 여인이었다. 대체 그사이 언제 예까지 올라온 것인지. 시간상 그리 가까운 거리가 아니거늘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하나 더 놀라운 건 지금부터였다.
“나락(奈落).”
그녀가 누군가의 별호를 담담히 부르자 스슥! 은발의 사내가 부복한 채 뒤에 모습을 드러냈다.
눈꼬리가 손톱달처럼 환히 굽어진 백옥 같은 피부의 미남이다.
“부르셨습니까.”
“저자. 누군지 알아?”
가리키지도 않았거늘, 자연스레 그의 시선이 느릿느릿 걸어가는 흑의의 사내에게 꽂혔다. 장이서다.
“아니요. 알아볼까요.”
“저자가 내 인피면구를 알아봤다. 그것도 한눈에.”
인피면구! 그 말인즉슨 지금의 모습이 진짜가 아니라는 얘기.
그녀의 말에 나락의 고개가 갸우뚱 숙어졌다. 그녀가 쓴 면피는 마교 내에서도 최고의 실력자가 만든 물건이었다.
그리고 이를 알아봤다는 건 여럿이 곤란해질 일이기도 했다.
일단 허술하게 만들어낸 2급귀 금룡당주가 문책을 받을 것이고.
두 번째는 보필하지 못한 3급귀 보좌(補佐)인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할 일이었다.
마교에서 손꼽히는 상급직인 2급귀와 3급귀가 나란히 벌을 받아야 한다 이 말이다.
“제갈귀룡한테 가서 누굴 알아 갔는지 알아봐.”
“네.”
스슥. 나락이 답하기 무섭게 먼지처럼 자취를 감췄다. 여인은 오직 장이서에게만 시선을 고정했다.
그는 뭐가 그리 여유로운지 닭 다리를 만들고 발목을 벅벅 긁기까지 한다.
“천박한 놈…….”
여러모로 마음에 안 드는 첫인상이었다. 뭐랄까 빈둥거리고, 두껍게 생긴 게 영 별로였다. 특히 다 안다는 듯 능글맞은 눈빛이 거슬렸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오래지 않아 다시금 나락이 뒤에 모습을 나타냈다. 역시나 부복한 상태 그대로다.
“뭐라고 했어?”
“말할 수가 없답니다.”
“뭐?”
“아끼시는 자라 일단 다시 왔습니다만…… 알아낼까요?”
나락의 목소리가 사뭇 어두워진다.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고문을 가해서라도 알아내겠다는 뜻. 그리고 그라면 반드시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나.
“아니. 이미 제갈귀룡에게 대답을 들었다.”
“네?”
여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제갈귀룡이 감히 입에 담지도, 말할 수도 없는 존재. 그건 아버님. 그리고 우리 칠 남매뿐이다.”
“저자가 그걸 왜…….”
“알아봐. 뭐 하는 자인지. 왜 우리 뒤를 캐는지.”
“존명.”
스슥. 3급귀 보좌 나락. 그가 고개를 끄덕이곤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 턱 끝부터 쩌억 벗겨지는 인피면구.
그 안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완벽한 외모가 드러났다.
천하 절세의 미녀.
마교의 다음 후계로 손꼽히는 후보 중 하나.
빙화검제(氷火劍帝) 삼공녀 사해령.
그녀가 장이서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 * *
한편, 세상 물정 모르고 귀나 후비고 있을 것 같던 장이서는.
‘실제로 보니 살 떨리네. 성미가 빙설보다 차갑다더니. 왜 천마의 자식인지 알겠군.’
먼발치서 자신을 바라보는 마교의 삼공녀.
사해령을 은연중에 아닌 척 흘기고 있었다. 사실 장이서는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다.
그가 제갈서관을 찾은 것 자체가 처음부터 그녀를 노리고 온 것. 제갈귀룡이 그녀의 심복임을 알고서 말이다.
‘암각의 첩자인 내가 설마 너희를 모를까. 사해령. 넌 기억도 못 하겠지만, 난 네가 동짓날 입은 속옷도 알고 있다.’
물론 우연히 알게 된 것이다. 진짜다.
어쨌든 무림맹으로부터 임무를 하달받지 않은 동안에도 조사를 게을리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어떤 임무가 올지 모르니 주요 인사에 대해서는 빠삭하게 꿰고 있었다.
그러니 이 칠공자 마오에 대한 정보가 담긴 서책은 어디까지나 사해령을 꿰어내기 위한 덫. 바로 미끼였다.
그래, 바로 너. 삼공녀…… 헉!
장이서는 순간 너무 놀라 휘청이며 큰 실수를 범할 뻔했다.
‘아니, 미친x인가? 인피면구는 갑자기 왜 벗어.’
말대로였다. 그녀가 갑자기 인피면구를 대뜸 벗어젖혔다. 그러자 몸은 가짜 의복으로 뚱한데 얼굴만 작아져 매우 해괴한 여인이 되었다.
설마 자신이 보고 있는지 낚기 위함인가. 너무 갑작스러워 심장이 벌렁거린다.
심지어 그 와중에.
‘예뻐.’
예뻤다. 아주 많이. 장이서가 눈을 질끈 감고 휙 몸을 돌렸다. 억지로 돌아가는 시선을 차단한 것.
‘독사 같은 것. 위험하기 짝이 없는 여인이다.’
본래 첩자가 기피 해야 할 대상 1호가 바로 저런 말도 안 되게 예쁜 꽃이다. 함부로 다가갔다간 도리어 잡아먹히기 일쑤. 더구나.
‘3급귀 보좌 나락. 사해령의 오른팔인 그놈은 특히 더 조심해야 한다.’
눈치도 빠른 놈이 무공도 자비 없이 강한 게 바로 나락이다.
조금이라도 허술하게 틈을 보였다간 시작도 전에 모든 계획을 다 들키고 말 거다.
‘이렇게 바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생각보다 일이 빨라지겠어.’
씨익. 희미한 미소가 입가에 서렸다.
계획은 이미 시작되었다.
*
“칠공자 마오. 나이는 열아홉. 훤칠한 장신에 사내다운 용모를 가진 호남아. 괴물같은 단전의 잠재력을 높이 평하여 삼 년 전, 일곱 번째 양자가 됨.”
나무 한 그루 없이 깨끗한 둥근 언덕. 그 중앙에 놓인 작은 정자.
본래 이곳은 은밀한 대화를 나누는 자들이 자주 찾는 곳이었다.
사방이 훤히 뚫려 있어 엿들을 자가 없기 때문.
장이서는 이곳에서 낮잠 자고 일어나 마오에 대한 정보가 기록된 서책을 활짝 펼쳐 읽고 있었다.
교인이라면 누구라도 다 알 만한 내용이었다.
본래도 마교의 3대 명가인 ‘마가’ 출신 귀족인데다 숨만 쉬어도 저절로 내공이 쌓인다는 천양지체(天陽肢體)를 갖고 태어난 금수저 중의 금수저.
하지만.
“근성 있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수련을 죽도록 싫어하고, 베짱이보다 더한 게으름뱅이에 단순하고 무지한 머리는 최악 중의 최악.”
무엇보다도 교주에게 하사받은 신물(信物) 창룡도(蒼龍刀)를 도박장 담보로 걸었다가 제대로 낙인찍힘.
그 덕에 모든 지원 다 끊기고, 그가 머무는 칠소궁은 하인 하나 없이 귀신이 산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도는 중.
한데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술과 도박에 여기저기 시비만 걸고 다니니 망나니라는 말이 찰떡궁합.
이것이 바로 칠공자의 실태였다.
“그나마 놈이 말을 따르는 건 삼공녀 사해령뿐이지.”
그 독사 같은 여자야 대공자와 이공자. 두 사람과 소교주를 놓고 경쟁 중이니 하나라도 제 편을 만들려고 한 것이겠지만.
칠공자에겐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바로 그녀였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사해령을 자극한 이유이기도 했다.
척. 장이서가 서책을 접고는 씨익 웃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언덕 아래 드높은 마천루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슬슬 가볼까.”
그가 벌떡 일어나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커다란 마천루.
바로 방첩대 본관이 있는 곳으로.
* * *
팔 층으로 이루어진 방첩대 본관은 다른 어느 부대보다 화려했다.
색색 별로 빛나는 등롱이 걸려 있고, 복도에 깔린 바닥마저 다양한 문양이 양각되어 있을 정도였다.
이는 곧 방첩대가 얼마나 커다란 권력을 지니고 있는지를 알게 해주는 일례였다.
하나 그런 권력의 수장인 대주 겸사익마저도 그녀 앞에서는 상석을 내주고 공손히 선 채 고개를 조아려야 했다.
“삼공녀님께서 이 누추한 곳까지 어쩐 일이신지…….”
삼공녀 사해령. 그녀였다. 그녀가 나락을 대동한 채 인피면구와 뚱해 보이는 옷도 벗어 던지고 본 모습으로 나타났다.
붉은색과 검은색이 조화를 이루는 화려한 복장에 신물 화천검(火天劍)과 빙해검(氷海劍) 두 자루를 차고서.
“겸 대주와는 사이가 꽤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아쉽네요. 일이 있어야만 오는 곳이었나요?”
참으로 묘했다.
분명 최상위 계급인 1급귀이자 고고함이 극에 달한 삼공녀가 고작 4급귀인 겸사익에게 존칭을 쓰다니. 이는 그만큼 그의 존재감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하하! 당연히 그건 아닙니다만, 아시다시피 시국이 시국인지라 말입니다.”
겸사익이 제 콧수염을 쓸어내리며 슬쩍 웃음을 지었다. 의중을 떠보는 듯한 눈빛이 실로 노련하고, 능글맞다.
하긴 용모만 봐도 어깨까지 오는 곱슬머리에 산전수전 다 겪은 호남형 무장. 그만큼 쉽지 않은 상대다.
더구나 시국이 시국이라는 말이 틀린 말도 아니다.
지금은 향후 소교주 자리를 두고 치열한 암투가 시작된 시기.
각 조직의 수장 입장에선 후보들을 공공연하게 만나서 좋을 게 하등 없다. 오해받기 딱 좋은 일이니.
“오라버니들한테 설지. 아니면 내 손을 잡을지. 판단이 어려우신가 봅니다.”
“저 같은 말단이 서고 말고 할 것이 뭐 있겠습니까. 그저 녹 주는 사람을 따르는 것이지요.”
“결국 많이 주는 쪽을 택하겠다는 말로 들리는군요.”
“받은 만큼 일하는 게 사람 도리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후. 사해령이 고개를 저었다. 돈밖에 모르는 양반.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역시 우린 일이 있을 때만 만나야 하는 게 맞아요.”
“하하, 그렇습니까? 그럼 이제 절 찾아오신 그 일이 뭔지. 들어봐도 되겠습니까?”
그럴 생각이다.
사해령이 안색을 차갑게 굳히곤 본론을 꺼냈다.
“장이서.”
음? 생각지도 못한 이름에 겸 대주의 고개가 갸우뚱 기울었다. 빌어먹을 삼조장의 이름이 저 고운 입에서 왜 나오는가.
“그자. 대체 뭐 하는 자입니까?”
사해령이 정정하듯 다시 입을 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죠. 삼조장 장이서. 겸 대주께서 보낸 자입니까?”
나락이 뒷문을 힐끗 보곤 서늘하게 입꼬리를 올린다. 그리고 두 손은 뒷짐 지듯이 등 쪽으로 모은다. 삼공녀의 명만 떨어지면 당장 혁대에 감춰둔 쌍 단도를 뽑아 겸사익을 베겠다는 뜻이다.
그것도 그의 본진에서.
그럴 만도 했다.
교주 후계 자리를 놓고 자식들 경쟁이 치열한 요즘이다. 장로들은 물론이고, 오룡당주에 이어 수많은 대주까지. 섭외를 위해 별별 짓이 다 벌어지고 있었다.
한데 교주 직속 방첩대 조장 장이서가 칠공자의 정보를 가져갔다.
그것도 몇 없는 삼공녀 사해령의 사람인 마오의 정보를.
비록 한낱 대주에 불과하나 겸사익은 권력과 명망을 갖춘 자. 만일 대공자나 이공자 측에 붙어 제게 수작을 부리는 것이라면…….
출혈이 있더라도 오늘 베는 것이 낫다.
“설마 모른다는 말은 안 하시겠죠.”
허를 찔렸기 때문인가. 겸사익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이는 사해령이 한 질문의 의미를 해석하기 위함이었다.
장이서.
그는 누구인가.
첫째. 돈에 미친놈이다.
둘째. 권력을 휘두를 때 희락을 느끼는 변태다.
셋째. 예의가 없는 개새끼다.
그러니까 결론은.
“장이서. 일 하나는 기가 막힌 녀석이죠. 내공이 조금 미흡하나 워낙 자질이 좋아 실력도 방첩대 발군이고.”
#나한테 반해서 찾아온 건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