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41)
첩자의 마교생활-41화(41/350)
41.
#어떤 사람입니까 (2)
맹휘는 애써 위축되는 스스로를 부정하며 당차게 외쳤다.
“지금 네가 날 협박하는 거냐?!”
협박은 네가 한 게 협박이고.
“육공자께선 대체 스스로를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맹가를 제하면. 육공자라는 신분을 제하면. 그럼 남는 게 있긴 합니까?”
“……뭐가 더 필요한데?”
맹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정말 몰라서 묻는 거구나. 그래. 그럴 수 있다. 마교에서 1급귀 신분에 힘 있는 가문. 여기에 타고난 자질까지. 그게 전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게 빠지지 않았습니까.”
암각의 첩자, 장이서의 생각은 달랐다.
“인격(人格).”
“뭐?”
태어날 때부터 배경이 만들어준 품격이 아니라, 스스로가 목적이 되어 만드는 인간으로서의 가치.
“타인의 힘에 기대 살면, 결국 타인의 기대대로 살아가야 하는 겁니다. 묻겠습니다. 지금 육공자님은 어떤 사람입니까.”
“……어?”
“가문의 위상 뒤에 숨는 건 그 가문을 본인께서 가장 두려워하기 때문은 아닙니까. 스스로를 돌아보세요. 가문에 붙잡혀 웅크려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다시 말씀드리지만, 가문으로 협박하는 건 집어치우십시오. 나한텐 안 통하니까.”
돈이라면 모를까. 장이서의 말에 맹휘는 정신이 나간 것처럼 초점이 멍해졌다.
처음이었다. 저에게 이런 말을 해준 사람은.
모두가 제 가문을 두려워했고, 그 때문에 저에게 잘해주는 척을 했었다.
인간으로 대한 것이 아니라 배경으로 대한 것.
그리고 제 아비인 맹철용을 비롯한 맹가 사람들도 그건 마찬가지. 자신을 인간으로 봐주지 않았다.
‘기억하십시오. 교주님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육공자님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저 교주의 인정을 받아올 허수아비로만 대했다.
한데…… 생전 처음 보는 보좌 놈이. 미천한 출신의 녀석이.
처음으로 그게 잘못된 것이라고 말해줬다.
“내일 해 뜨면 바로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여기 남아 계시다가 뭔 일이 생겨도 전 책임 안 집니다. 이건 경고입니다.”
장이서가 휙 몸을 돌려 위층으로 올라섰다.
홀로 남겨진 맹휘는 한참 동안을 생각에 잠긴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침 해가 떠오르는 그 순간까지도.
멍하니.
그리고.
“새끼……. 나도 좀 재워 주지.”
밖에 등 기대어 서 있던 마오도 피식 웃으며 기나긴 밤을 보내었다.
*
다음 날 아침.
새로운 처소에서 일찍이 깨어난 장이서는 기다란 창가 앞에 놓인 단상에 앉아 명상에 잠겼다.
단연 주제는 구규지체를 치료할 단초에 대한 고민이었다.
‘단전은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다. 잡히지도, 보이지도 않는 무형의 집. 하여 그 형태를 짐작하는 방법은 오직 그 안에 담긴 내공을 통해 느끼는 것뿐이다. 내기에 신경을 담고 이를 천천히 움직여 길의 유무로 알아내는 것.’
그렇다.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한쪽 벽에 손을 붙인 채 동굴 속을 걸어가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이를 머릿속으로 그려가며 단전의 모양을 파악하는 것이고, 또 이를 통해 구규지체라는 것도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아홉 개의 구멍을 느끼는 것도, 막을 수 있는 것도. 오직 내공뿐이란 얘기.’
그래. 그럴 것이다. 그러니 천마가 자신의 몸에 있던 혼탁한 내기를 마기로 덮어놓은 것일 터.
하지만 어떻게.
도대체 내공으로 무슨 수로 단전의 구멍을 막는단 말인가. 설마 내공을 실 가닥처럼 쪼개 바느질이라도 하라는 건가.
“후우…….”
오랫동안 참아온 긴 숨이 뱉어지며 장이서의 눈이 스르륵 떠졌다.
오늘 명상은 여기까지.
자리에서 일어선 장이서가 텅! 꽉 막힌 나무 창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햇살이 스미며, 본관과 정원의 모습이 한눈에 담겼다.
“그래도 시도는 해본 건가.”
피식. 장이서의 입가에 미소가 서렸다.
본관 앞에 대자로 누워 있는 마오 때문이었다. 어제만 하더라도 별관에 몸 딱 붙이고 대기하길래, 밤새 안 들어가고 잔꾀나 부릴 줄 알았거늘.
너저분해진 옷을 보아하니 그래도 노력은 한 모양이다.
“그래. 하고자 하는 마음이 반이다.”
장이서는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복도로 나섰다.
이에 좌우를 흘기며 빈방들을 살폈다. 한데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떠난 것인가.”
육공자 맹휘.
뭔가 좀 어리고 딱해 보이긴 했다. 마치 사막 한가운데에 버려진 아이를 본 기분.
원래라면 오지랖을 좀 부려봤을 텐데, 지금은 남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당장 마오를 소교주로 만들려면 넘어야 할 태산만 수백 개.
게다가 누가 누굴 걱정하는가. 그래도 육공자는 집안에서 밀어주기라도 하지.
“누군 형이라는 놈이 죽이겠다며 날뛰고 앉았으니. 쯧.”
장이서는 입맛을 다시며 별관 밖으로 나섰다. 역시나 육공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일찍 집으로 돌아간 모양.
반면 마오는 세상 떠나갈 듯 코를 골며 단잠에 빠져 있다. 그냥은 안 일어날 거 같고.
“흐음.”
주변을 둘러보자 연못 앞에 바가지 하나가 놓여 있다. 이거면 되겠다.
장이서가 그대로 바가지에 물을 가득 담아 마오 앞에 섰다. 그러자 인기척에 놀랐는지 마오가 눈살을 비비며 일어난다.
“뭐야. 언제 왔…… 푸악!”
촤악!
얼굴에 차가운 물이 확 끼얹어졌다.
“뭐, 뭔데!”
“일어나십시오.”
“야, 씨! 일어났잖아! 안 보여?”
“보여.”
“아, 이거 진짜 가만 보면 나한테 원한 있다니까.”
원한은 무슨. 다 애정이다. 장이서가 피식 웃고는 그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바로 그때.
“좋은…… 아침.”
입구에서 귀엽게 생긴 소년 하나가 어색한 인사를 건네며 안으로 들어섰다.
“뭐냐, 애송이. 집에 안 갔냐?”
마오가 경계의 눈썹을 올리며 묻는다.
육공자 맹휘. 바로 그였다.
이른 아침에 산이라도 뛰고 온 건지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혀있다.
“오늘은…… 급하게 해야 할 수련이 있어 못 간 거다.”
“별.”
정말 별 수준 낮은 변명이다. 마오가 코웃음을 치자 맹휘는 죄지은 아이처럼 쭈뼛거리며 장이서의 눈치를 살폈다.
실은 주마지 인근까지 갔다가 홀린 듯 되돌아온 거다. 솔직히 자신도 왜 다시 돌아왔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의 옆에 조금만 더 머물며 지켜보고 싶었다. 그는 어떤 사람인지. 정말 그의 말이 옳은 것인지.
‘그런데 그냥 나가라고 하면 어떡하지?’
바보처럼 거기까진 생각을 못 했다.
한데.
웬일인지 장이서는 슬쩍 한 번 보기만 할 뿐, 별 관심 없다는 듯 마오에게 물었다.
“밤새 집엔 들어가지도 못한 겁니까.”
“갈 수 있게 해줘야 가지. 무슨 천장에서 쇠공이 떨어지질 않나, 벽에서 대침이 쏘아지질 않나. 저길 어떻게 가!”
그래도 대침까진 가봤네. 마오의 툴툴거림에 장이서는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마오는 당연히 위에서 떨어질 커다란 쇠 추를 떠올렸다.
한데.
“어?”
장이서가 안으로 들어가 저를 돌아보는 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뭐야. 왜 이래. 고장 났어?”
심지어 장이서가 복도를 쭉 들어갔다 다시 밖으로 나오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분명 새벽까진 안 이랬는데. 황당함에 마오가 뒤따라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철컥. 뭔가 마룻바닥이 살짝 들어가는 듯한 촉감과 함께 부웅! 위에서 쇠 추가 떨어져 내렸다.
“으아아악!”
퍽! 그대로 맞고 튕겨 나오는 마오. 그나마 바닥에 곤두박질치기 전에 가볍게 몸을 날린 장이서가 부드럽게 허리를 받쳐 세워준다.
그러곤 힐끗 본관을 턱짓하며 물었다.
“차이가 뭔지 아시겠습니까?”
어. 확실히 알겠어. 마오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저 새끼, 사람 가리네.”
그럴 리가. 장이서는 단칼에 고개를 젓고는 맹휘를 슬쩍 보며 말했다.
“다녀오십시오.”
“어? 나? 내가?”
“예.”
“그, 그래!”
맹휘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곤, 집 안으로 불쑥 몸을 들였다. 근데 내가 왜 장 보좌 말을 듣고 있지? 뭔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어쨌든 왠지 모르게 기분은 좋다.
“돼, 됐어?”
맹휘가 입구에 다다라 돌아서서 수줍게 묻는다. 이번에도 쇠 추는 떨어지지 않았다.
“이거 봐. 진짜 사람 가린다니까!”
마오가 호들갑을 떨자 장이서는 맹휘가 서 있는 바닥의 마룻바닥을 가리키며 말했다.
“답은 걸음의 무게 때문입니다.”
“무게?”
그렇다. 장이서와 맹휘는 되고, 마오는 안 되는 이유.
그건 바로 걸음걸이의 무게가 원인이었다.
“그만 나오셔도 됩니다.”
장이서가 맹휘에게 말하자 그가 다시 소리 없이 걸어 나온다. 확실히 이제 겨우 열다섯인 나이를 생각하면 기본기부터 경지까지. 모든 게 경이적인 수준.
“무게라니. 뭔 말이야.”
마오가 현기증 난다는 듯 답을 재촉한다.
“칠공자님께서 한 달 후 교주님의 숙제를 무사히 끝낼 방법은 단 두 가지. 하나는 절세의 보법을 익히는 겁니다.”
보법(步法).
그렇다. 무예의 가장 기본은 바로 발의 움직임이다.
보법을 쓰지 못한다면 아무리 훌륭한 무공을 익혀도 제 위력을 발휘할 수 없고, 위험한 순간에서 빠져나올 수도 없다.
그러니 보법을 익히는 게 교주의 지풍을 피하는 가장 쉬운 방법.
“절세보법-! 그거로 하자. 나, 감 왔어. 봐봐. 발재간 봐. 느낌 오지.”
마오가 양발을 번갈아 움직이며 오두방정을 떤다.
“불가.”
“아, 왜!”
당연히 보법을 익히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겠지만, 한 달 안에 천마의 지풍을 피할 수준까지는 불가능하다.
남은 방법은 하나.
그건 바로 몸의 무게를 다루는 것.
안식불가의 방은 마오에게 바로 그 기초를 가르쳐주기 위한 장소였다.
“무공을 익힌다고 해도 한 달은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러니 감각을 높이고, 걸음의 무게를 없애 민첩함을 극한으로 올리는 게 최선.”
“무게를 없앤다라……. 그게 가능해?”
팟! 백문이 불여일견. 장이서의 신형이 불현듯 사라지고, 어느 순간 마오의 어깨 위에 올라섰다.
와. 맹휘는 빠른 움직임에 놀랐고, 마오는 당황하며 매우 불쾌감을 표했다.
“뭔데. 기분 x나 나빠.”
“제 무게가 느껴지십니까?”
“어. 좀 무거운데?”
“아뇨. 칠공자님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전 방금 어깨에서 머리 위로 올라왔으니까요.”
“뭐야, x발!”
툭. 장이서가 바닥에 내려와 착지하자, 마오가 더럽다고 소릴 지르며 제 머리를 툭툭 턴다.
하지만 솔직히 놀라긴 했다.
왜냐하면 어깨 위에 올라왔을 때나, 머리 위로 발 위치를 바꾼 순간엔 무게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
“와…….”
이는 맹휘에게도 아직 불가한 영역. 진심으로 감탄이 터졌다.
“내기는 단순히 발출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심오하죠. 가령 하지로 내기를 보내 하중을 가할 수도 있고, 반대로 걸을 때마다 모인 내기를 흩트려 없앨 수도 있습니다.”
“천근추(千斤錘)의 묘리!”
어느새 마오 옆에 앉은 맹휘가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그래. 정답이다.
#폭풍전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