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50)
첩자의 마교생활-50화(50/350)
50.
#사과는 받아야겠다 (1)
색월은 취홍란이 무공을 익혔을 거라고는 일절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가 모르는 건 한 가지 더 있었다.
‘이년…… 고수다! 그것도 나보다 훨씬 더……! 어, 어찌?!’
솨아아아아-
등골에 서늘한 기운이 엄습하고, 이내 다시 앞을 바라보자.
취홍란의 두 눈에 실핏줄이 노을처럼 번지고, 머리카락은 마귀처럼 새하얘져 사방으로 뻗쳐 흩날렸다.
거기다 기다랗게 솟은 붉은 손톱과 새하얗게 물든 핏줄.
이를 본 색월은 경악을 넘어 혼비백산에 빠졌다.
“서, 설마 너……!”
하지만 더 이상 묻지는 못했다.
그 뒤에 그녀의 시야를 가득 채운 건.
퀴아아아악!
자신에게로 날아드는 마귀뿐이었으니.
그리고 잠시 후.
“끼아아아아악!”
챙그랑! 끔찍한 비명과 함께 유리창이 깨지고 취선루 바깥으로 볼품없이 한 여인이 떨어져 내렸다.
이에 다급히 몰려든 자객들은 시체를 보곤 그대로 자지러졌다.
온몸은 갈기갈기 베이고, 관절은 기괴하게 꺾인 채 눈도 못 감고 죽어버린 여인.
색월 금화빈의 끔찍한 시체였으니.
그리고 뒤늦게 그녀가 떨어진 위쪽을 올려다본 자객들은 두려움에 전신이 얼어붙었다.
휘이이잉!
새하얀 백발을 흩날리며 귀신처럼 내려다보는 혈안(血眼)의 마귀.
모용세가의 기재이자 마교에 납치돼 비극적인 마공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그녀.
백백혈마공(白白血魔功)을 익힌 취홍란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툭.
그녀가 마치 귀신처럼 계단 한 칸 뛰듯 툭 떨어져 내렸다.
“으으으…….”
아직 무월광의 긴 밤은 끝나지 않았다.
* * *
– 돈우촌 색화루.
평소라면 눈빛이 살벌한 도살방의 자객들이 도처에 깔려 있어야 하지만, 오늘은 휑하다 못해 꼭 폐가처럼 을씨년스럽다.
끼이이익.
그리고 정말 귀신이라도 들린 것인지 슬그머니 2층 창문이 열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귀신은 아니고, 밤손님이었다.
복면을 뒤집어쓴 도적들.
용태와 식구들이다.
그들이 커다란 마대 하나씩 움켜쥔 채 색화루에 잠입했다.
“형님, 근데 여기 정말 아무도 없는 거 맞을까요?”
똥그란 눈에 입만 댓 발 나온 수하가 비좁은 방 안을 살피며 물었다.
“몇 번을 묻니? 너도 봤잖아. 이틀 동안 아무도 안 나오는 거. 그럼 없는 거야. 아무도 없어. 여기 봐. 저거 방문 열잖아? 그럼 뭐 있을 거 같아.”
“그, 글쎄요.”
“새끼야. 딱 봐. 이거 열면. 어?”
용태가 실실 웃으며 장지문을 드르륵, 탁! 열어젖혔다. 그러자.
“워매, x발!”
만취한 것처럼 동공이 풀린 자객 하나가 귀신처럼 서 있었다.
“으음, 뭐냐…… 너희는…….”
혀, 형님……. 수하들이 애타게 용태를 부른다. 그러자 자객도 조금씩 술이 깨는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누구냐고, 새끼들아!”
“그게 그러니까…… 여기 도철이네 집 아닌가요?”
“도철이? 누구. 사도철이? 헉!”
자객이 제가 말을 뱉고도 깜짝 놀라 눈이 부릅떠졌다. 그건 제 두목의 존함이 아니던가. 당황하여 몸이 엉거주춤해지는 그 순간.
“호룡포박술!”
용태가 단호한 외침과 함께 들고 있던 마대를 자객 몸에 훌렁 뒤집어씌웠다. 그러곤 삽시간에 실뜨기하듯이 밧줄을 꽁꽁 묶는다.
“뭐, 뭐야, 이 새끼들! 푸, 풀어!”
그러곤 옆의 장식대 위에 있던 백자를 움켜쥐곤 챙그랑! 그대로 사내의 머리에 후려갈겼다.
이에 털썩 쓰러져 기절해 버리는 만취 자객.
“혀, 형님. 아무도 없다면서요!”
수하들이 당황하여 쳐다보자 용태가 뻘쭘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어, 이제 없어.”
“이런 염병!”
“자, 아무튼 시작하자! 돈 될 만한 거, 이상해 보이는 거. 가리지 말고 싹 다 담아!”
용태와 흑룡파.
그들의 전리품 약탈이 시작되었다.
* * *
까악, 까아악.
월하촌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곰과 같은 거구의 사내.
오늘 참극의 주역, 사도철은 여전히 죽은 산돼지 위에 무심히 앉아 있었다.
달라진 건 없었다.
걸터앉아 있는 자세도, 동요 없이 매서운 눈매도.
모든 게 그대로였다.
하지만 반 시진이 흐른 지금.
그는 처음으로 뭔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
우선 화마에 휩싸이고도 남았을 월하촌이 여전히 어두웠고, 고요했다. 그리고 진작 산 채로 끌려 왔어야 할 장이서란 보좌도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자신의 계획에 없던 일.
그러니 결론은 하나였다.
실패.
“……무능한 것들.”
하지만 놀랐다거나 조급해하지는 않았다. 그저 본래 다분했던 살기가 한층 더 쌓인 것뿐.
오히려 모자란 수하들에 대한 걱정보단 장이서를 향한 관심이 조금 더 늘었다.
부수고, 빼앗고, 탐하고.
오직 본능에 충실한 괴물 사도철이었지만, 그렇다고 눈치가 없는 건 아니었다.
마이신의 명을 받아 칠공자를 압박해 온 세월만 삼 년.
지금까진 이렇게 반항이 심했던 적이 없었다.
보좌라고 해봤자 고명한 자들은 마이신이 나서서 다른 자리를 권유했고, 어중이들은 도살방이 오래지 않아 시체로 만들어버렸다.
이는 삼공녀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교주가 암묵적으로 허락한 일이고, 후계에게는 정치적 권한이 없었으니.
그래서 마오는 늘 혼자여야 했다. 저에게 다가오는 자를 꺼려야 했고, 밀쳐내야 했다. 제 손으로 죽였다는 죄책감에 빠지고 싶지 않다면.
마이신이 바란 것도 딱 그거였다.
‘난 그 녀석이 제가 누구인지. 얼마나 천한 존재인지. 그것만 잊지 않으면 돼. 바라는 건 그것뿐이야.’
한 마디로 주제 파악.
그리고 그 계획은 분명 성공적이었다.
모두가 마오를 우습게 보며 힐난했고, 그 역시 술에 절어 망나니로 살았으니.
분명히 그랬었다.
보좌 장이서.
그놈이 나타나기 전까진.
‘그 녀석의 존재로 칠공자의 입장이 바뀌고 있다.’
막귀를 막아내고, 요도순을 해치웠다. 게다가 오늘도 살아남는다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누가 칠공자를 무시할 수 있겠는가.
분명 한낱 7급귀 조장 출신이라고 했지만, 이 정도면 숨겨둔 뭔가가 있는 게 틀림없다.
“확인해 주지.”
사도철이 거구의 몸을 일으키자 무게에 옆구리가 움푹 들어간 산돼지의 처참한 모습이 보인다.
이내 그가 언덕 아래를 바라보며 걸음을 떼려는 찰나였다.
“큰일 났습니다!”
복면을 쓴 자객 하나가 황급히 뛰어 올라와 부복한 채 보고를 올렸다. 예상은 갔다. 월하촌의 항전 의지가 만만치 않다는 것일 터.
하나 상관없다. 어차피 제가 나서는 순간 모든 건 끝나있을 것이니.
하여 무미건조하게 앞장서라는 말을 하려는 찰나였다.
수하가 고개를 들어 올리더니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색화루에…… 색화루에 적들이 쳐들어왔다는 급보입니다!”
“뭐?”
솨아아아-
사도철의 몸에서 압도적인 살기가 뿜어져 나온다. 이에 수하는 덜덜 떨리는 음색으로 보고를 이어 나갔다.
“아무래도 인근에 은신해 있다가 저희가 나온 것을 보고 침입한 듯합니다.”
“감히 어떤 새끼들이……!”
콰앙! 분을 참지 못한 사도철의 흉포한 주먹이 죄 없는 나무 한 그루에 박혔다. 꺼어억! 쿵! 그러자 비참한 비명과 함께 두 손으로 감싸기도 힘든 고목이 부서져 고꾸라졌다.
하나 그런다고 상황이 바뀌진 않는다. 오히려 답답함에 화만 더 치밀어 올랐다.
하필……!
솔직히 기루 하나 사라지는 건 아무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 안에 둔 대량의 미혼산은 얘기가 달랐다.
환각제는 교내에서 금지된 약물. 하여 팔면 비싸고, 잘못 걸리면 대가가 큰 달콤한 독이었다. 한 마디로 도살방의 돈줄이자 생명줄.
“어, 어찌할까요.”
“……돌아간다.”
사도철이 길지 않은 고민의 답을 내렸다. 어차피 보좌 하나 따위는 언제든 자신이 처리하면 그만. 지금 중요한 건 미혼산의 확보다.
사도철이 월하촌을 한 번 훑고는 눈매를 좁힌 채 가차 없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 왔던 길목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수하 역시 말없이 앞으로 달려 나가 길을 안내했다.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었다.
본래 색화루를 이리 텅 비워두지도 않지만, 이번엔 하필 둘째인 사호정은 철마적과 거래하러 천산북로로 떠났고, 간부는 둘이나 죽어 남겨둘 녀석도 없었다.
한데 하필 이때를 노리다니.
‘장이서…….’
이것도 그의 짓임이 분명했다. 고작해야 촌구석의 하찮은 7급귀 출신 보좌 주제에. 이제 보니 생각한 것보다 더 영악한 놈이다.
자신을 속속 파악하고 있던 것이다.
그게 아니고서야 자신이 월하촌 습격에 미리 움직이지 않을 것이란 것도, 또 색화루를 치면 되돌아갈 것이란 것도 알지 못했을 터.
너무 안일했다. 설마 이런 계획을 가지고 있을…….
“잠깐.”
한참 걸음을 옮기던 사도철이 숲속에서 걸음을 우뚝 멈춰 세웠다. 그러곤 고개를 갸웃 저으며 중얼거렸다.
“급보라고?”
“예.”
수하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담담히 답했다.
그게 이해가 안 됐다.
이상하지 않은가. 위급한 상황에 돈우촌의 떨거지들이 이리로 산 넘어 달려왔을 리도 없고, 저놈이 대체 무슨 수로 연통을 받겠는가.
그나마 빨리 알 방법은 전서구뿐인데…….
하지만 전서구는 비둘기가 가진 귀소본능을 이용하는 것. 따라서 훈련된 제집으로 보낼 수는 있어도, 이동하는 주인을 찾아가게 할 수는 없다.
당연히 도살방에 월하촌 같은 촌구석까지 날아가도록 훈련 시킨 비둘기도 없다.
한마디로 전서구도 아니라는 얘기.
그럼 남은 건 하나.
“너. 누구냐.”
저놈이 거짓을 고하고 있다는 것.
솨아아아-
사도철의 몸에서 짙은 살기가 뿜어지고, 두 눈이 부릅떠졌다.
그리고 이에 호응하듯 수하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놀랍도록 차분한 눈빛. 그리고 미세하게 떨리는 광대.
이건…….
“웃어?”
놈이 웃고 있었다. 분명 복면에 가려져 있지만, 웃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뒤이어 더 믿을 수 없는 말을 뱉었다.
“아, 보기와 달리 머리는 있네. 바보는 아니야.”
“뭐? 하. 하하하.”
사도철은 몰랐는데 이제 보니 졸렸던 모양이다. 그의 말에 잠이 확 깨고 정신이 개운해진 걸 보면.
“뭐 하는 놈이냐.”
타인보다 무감각한 자신을 웃게 해준 보상이랄까. 사도철은 평소와 달리 얕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를 청했다.
어차피 밤은 길고, 여기는 으슥한 숲속. 월하촌으로 가봤자 늦었을 테고, 무료함을 달래려 얘기 나누기엔 최적의 장소다.
물론 상대도 그래서 여길 고른 것이기도 했다.
“어때. 장소 괜찮지. 원래 좀 더 가야 되는데, 여기도 괜찮겠어.”
“내가 이쯤에서 눈치챌 것도 알고 있었나?”
오. 복면을 쓴 사내가 눈을 크게 뜬다. 이 정도면 확실히 눈치는 빠른 편.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제야 사도철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까악, 까악!
느껴지는 기척이라곤 까마귀와 풀벌레뿐.
여기에 제 기감을 숨길 만한 고수가 은신해 있을 리도 없고.
“혼자인가?”
“아니, 둘. 너 있잖아.”
“크큭.”
두 번째로 실소가 터졌다. 수하로 위장한 것도, 유인한다는 계획도, 마련해둔 장소도. 전부 다 좋았는데 이놈이 자꾸 하나씩 어긋난다. 그래서 웃겼다. 그 하나가 하필 저에 대한 무시라서 더 웃겼다.
“내가 누군 줄은 알고 온 거겠지?”
“야, 그건 질문이 좀 그렇지 않냐. 지금까지 내가 벌인 수고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도철이 아니야. 사도철이.”
적반하장으로 따지는 모습에 사도철이 고개를 절절 저었다. 그러곤 뻐근한 목을 풀며 다음 질문을 던졌다.
“이제 보니 제정신이 아닌 녀석이었군. 좋아. 날 찾은 용건은?”
“네가 나 찾았다며.”
“뭐?”
“그래서 와 줬지.”
사도철이 순간 이해를 하지 못하고 미간을 좁혔다. 그러곤 잠시 후 점점 눈을 크게 뜨고 중얼거렸다.
“……장이서.”
정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