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51)
첩자의 마교생활-51화(51/350)
51.
#사과는 받아야겠다 (2)
자객으로 위장한 장이서가 복면을 내렸다. 그러곤 아래턱을 붙잡고 얼굴 가죽을 뜯어냈다.
“인피면구?”
사도철은 충격적인 장면을 멍하니 살폈다. 너무 평범해 보여 잠깐 보면 기억도 못 하고 지나칠 얼굴. 그제야 마주했다. 자신이 만나고 싶었던 칠공자 보좌 장이서를.
“이해가 안 되는군. 고작 나와 단둘이 만나겠다고 이런 짓을 벌인 건가. 왜. 왜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로. 하나 장이서의 의도는 그 무엇보다도 단순했다.
“왜긴. 당주한테 못 들었어?”
“당주?”
“호룡당주. 내가 분명히 전하랬는데. 네 사과 좀 받아야겠다고.”
“하.”
기억이 난다. 분명히 그런 통첩이 왔었다. 어이가 없어서 바로 찢어버렸지만.
“장이서. 넌 아느냐? 네가 죽어야 할 이유가 너무도 많다는 것을.”
“아니. 근데 넌 하나야. 사과. 그것만 하면 돼. 그럼 넌 안 죽어. 자, 열 센다.”
사도철의 비틀려 있던 입꼬리가 내려가고, 눈매는 오로지 살기만이 남겨졌다.
“자신 있나?”
“아니.”
사도철이 인상을 찌푸리며 눈으로 물었다. 아니면 뭐지? 뭔데 겁도 없이 혼자 나타난 건가. 이에 대한 답은 장이서가 시원하게 웃으며 답해 주었다.
“자신 아니고 확신.”
팟! 바로 그 순간, 사도철의 신형이 사라지고 단숨에 장이서 목전에 나타났다. 엄청난 속력. 그리고 뒤이어 쇠 가락지가 가득 끼인 그의 주먹이 쏘아진다.
이에 장이서가 다급히 손을 교차로 들어서 막았다.
퍽!
그러자 땅바닥에 두 개의 실선을 만들고, 콰직! 나무 한 그루를 박살 내고서야 밀려나던 몸이 멈춰 섰다.
그냥 막아낸 것뿐이거늘, 두 팔은 부러진 것처럼 격한 통증이 밀려들었다. 이에 장이서는 감탄했다.
‘전력을 다한 게 아닌데도 이 정도면……. 힘만 놓고 보자면 호룡당주와 비등한 수준이다.’
진심이었다. 몸 안의 내기가 만일 예전의 혼탁했던 잡기였다면 뼈가 다 바스러졌을지도 모를 괴력이었다.
“제법이군.”
그리고 놀란 건 사도철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오성의 힘이 담긴 자신의 일격을 이리 맨몸으로 막아낼 줄은 몰랐다.
“역시 그냥 흔한 7급귀는 아니라는 건가.”
“아니지.”
“아니라고?”
“이젠 3급귀거든.”
장이서가 피식 웃는다. 이에 사도철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뱉었다. 그러곤 더 서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선 그 입부터 부숴줘야겠군.”
우우웅!
사도철의 몸에서 폭발적인 기운이 모아진다. 그리고 파공음을 터트리며 한순간에 빛살처럼 쏘아졌다.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움직임. 오성이 아닌 칠성의 힘이다. 이 정도면 암석도 가루로 깨부술 힘. 저깟 건방진 보좌 따위는 일도 아니다.
“죽어라.”
쐐애애액!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사도철의 주먹이 사형 선고처럼 날아들었다.
한데.
‘웃어?’
장이서는 그 순간에도 고개를 숙인 채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말했다.
“다 셌다, 열.”
파지직!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장이서의 몸에서 검은 뇌기가 용솟음쳤다.
『뇌전법(雷轉法)』
콰아아앙!
숲속에 우레와 같은 굉음이 울려 퍼졌다.
*
사도철과 사호정.
돈우촌에서 태어난 사씨 형제는 유년 시절부터 유달랐다.
젖먹이 때부터 장정처럼 악력이 강했고, 눈빛은 짐승처럼 사나웠다. 근골의 우월함과 도덕성이 배제된 타고난 살성.
그것이 사씨 형제였다.
그들이 처음 사람을 죽인 건 초여름, 옆집 또래 아이. 당과를 주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이에 그들과 달리 심약했던 부모는 호룡당에 자진 신고하였고, 그날로 두 사람은 현생지옥이라 불리는 도라옥(度裸獄)에 갇히게 되었다.
그때가 고작 사도철의 나이 아홉, 사호정은 일곱이었다.
마두들도 견디기 힘든 도라옥이지만, 그들에겐 삶을 뒤바꿔준 엄청난 계기가 되었다.
마침 후계를 원했던 전전대의 대마두 천악수라(千惡修羅)의 눈에 든 것.
그로부터 십 년 후.
두 사람이 도라옥에서 나왔을 땐 아무도 사씨 형제를 막을 수 없었다.
천악수라에게 배운 엄청난 무공과 도라옥의 죄인들에게 배운 잔혹한 수법들. 타고나길 악에 물든 심성.
그렇게 자신들을 도라옥에 가둔 부모를 시작으로 사씨 형제의 죄악과 명성은 이십여 년에 걸쳐 쌓아 올려졌다.
그래서 자신이 있었다. 고작 7급귀 출신의 보좌 따위야 제 밑에 무릎 꿇려 싹싹 빌게 만들 자신이.
그런데.
그런데 왜…….
“커헉!”
털썩. 사도철의 우람한 두 다리가 지저분한 흙바닥에 무릎 꿇려졌다. 두 눈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 황망했고, 코에선 피가 주룩 흘렀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검은 번개가 번쩍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다 부서진 나무 사이로 자신이 피를 흘리며 꿇어앉아 있었다.
몸뚱이는 폭포수 아래로 떨어진 돌무더기에 난타당한 것처럼 무겁고, 등줄기엔 오한이 서렸다.
왜. 대체 왜.
저벅, 저벅. 바로 그때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사도철은 자신이 끝내 부정하고 싶었던 그 이유가 지금 저에게 다가오는 저 사내 때문이란 현실을 마주했다.
지극히 평범한 용모에 어울리지 않게 기괴한 칠흑의 뇌기.
칠공자 보좌 장이서.
“정말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거였나……? 그래서 날 불러냈다고?”
분명 다른 의도가 있어야만 하는데……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사도철의 물음에 장이서는 더없이 무심해진 눈으로 나직이 답했다.
“널 잡으려던 건 맞는데, 이리로 불러낸 건 다른 이유야.”
“무슨 뜻이지?”
“칠공자가 사도철까지 꺾었다는 건 아직 시기상조거든.”
“그럼…….”
“맞아. 넌 실종될 거야. 수세에 몰리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거지. 연기처럼. 물론 실상은 오늘 여기서 죽는 거겠지만.”
“크큭.”
이놈은 미친놈이 맞았다. 혼자 상상을 너무 많이 해서 정신이 나가 버린 미친놈.
물론 한 가지는 인정해야만 했다.
“생각보단 강하구나. 그것도 훨씬. 그건 인정해 주지.”
우우웅!
사도철의 육중한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서서히 몸이 일으켜 세워진다. 동시에 다시금 막대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천악수라에게 배운 아수라멸공(阿修羅滅功) 팔성이다.
“너한테 받고 싶은 건 인정이 아니라 사과인데. 그게 어렵나?”
“고작 조악한 술수로 한 수 앞섰다고 기고만장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해? 나 지금 되게 참고 있는 건데.”
장이서가 몰라주니 서운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러곤 슥 고개를 들어 눈을 올려 떴다.
그러자 솨아아-!
엄청난 살기가 사도철에게 쏘아졌다. 그야말로 전신을 단도로 마구잡이로 쑤시는 기분.
“너…….”
사도철은 정말 오늘 여러모로 놀랐다. 뭣도 아닌 경력의 보좌 놈이 이토록 강한 것도 놀랐는데, 뭣도 아니게 생긴 얼굴로 이토록 농도 짙은 살기라니.
짐승도 동족은 알아본다고. 이 정도면 자신과 같은 살성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큭…… 크크. 가면을 쓰고 있었구나.”
“말은 바로 하자. 정확히 말하자면 가면은 아니고, 마기에 잠식당한 거지. 내가 너처럼 악인이 아니라서.”
장이서가 장난스레 어깨를 으쓱이자 사도철의 표정이 싸늘히 굳어진다.
“재밌구나.”
“그럼 계속 재밌어해라.”
파직! 장이서의 몸에서 다시금 검은 뇌기가 뿜어지고, 동시에 그의 신형도 사라졌다.
뇌전법은 천마의 마기마저도 뇌기의 성질로 바꿔놓는 희대의 마공.
여기에 전인이 남긴 영약 뇌군삼으로 다져진 장이서의 육신은 지금 벼락 그 자체였다.
사도철은 있는 힘껏 아무도 없는 허공에 일권을 내질렀다. 그러자 파직! 미약한 뇌전음(雷電音)과 함께 장이서의 신형이 아슬아슬하게 주먹을 흘리며 그 밑에 나타났다.
“눈치도 좋아.”
그러곤 비아냥과 함께 사도철의 아래턱을 향해 일장을 올려 쳤다. 구부러진 손끝이 마치 범의 손아귀처럼 뭐든 다 찢을 기세다.
하나 상대는 도살자 사도철.
아무리 빨라도 미리 알면 당할 이유가 없다. 촤아아악! 사도철의 고개가 뒤로 확 젖혀지고, 턱 끝이 얕게 갈라지며 피가 뿜어진다.
그리고 그 순간 사도철은 악귀처럼 환히 웃으며 아래를 흘겨보더니 좌수로 장이서의 손목을 척 낚아챘다.
“이런?”
뒤이어 몸을 뒤로 확 틀며 그대로 장이서를 바닥에 내리꽂았다. 퍽!
“컥!”
장이서의 비명이 터지고, 사도철은 다시금 몸을 뒤집어 반대편 바닥에 또다시 내리꽂았다.
쐐애애액!
하나 장이서도 이번엔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이대로 또 고꾸라지면 연이어질 공격을 막아낼 재간이 없음을 잘 알기 때문.
슈슈슈슉!
한순간에 사도철의 왼쪽 손목에 혈선이 일곱 가닥 그어지고, 휙! 장이서를 땅에 처박기 전에 손을 놓았다.
“……단도?”
난도질당한 제 손목을 내려다본 사도철이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그리고 바닥이 아닌 먼발치 나무로 던져진 장이서는 핑그르르 공중제비를 돌아 나무를 박찬 뒤, 파직! 다시 신형이 사라졌다.
“귀찮게 하는구나.”
우우웅!
사도철의 몸에 더 강대한 기운이 자리 잡는다. 얼마나 위압감이 강한지 그의 주변 일대가 뭉개져 보이는 듯한 착각마저 일었다.
아수라멸공(阿修羅滅功) 구성이었다.
이제는 정말 본인 역시도 자신의 힘이 어디까지인지 짐작이 안 될 정도.
어느새 시뻘건 실핏줄이 돋아난 그의 동공이 좌우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자 지금까진 보이지 않던 사방을 헤집는 장이서의 잔상이 느껴졌다. 형체는 여전히 없다. 말 그대로 검은 벼락 그 자체. 그만큼 빠르다는 얘기다.
쾅! 사도철이 오른발로 바닥을 세게 내리찍자 파파파팟! 흙과 자갈 수백 개가 주변에 치솟아 올랐다.
“어디 계속 도망쳐 보거라!”
수만 개의 돌무더기를 기예처럼 공중에 띄워놓고, 사도철의 두 주먹은 수많은 잔상을 남기며 팔방을 향해 쏘아졌다.
퍼퍼퍼퍼퍼퍽!
그러자 쇠 가락지와 돌무더기가 부딪치며 연달아 타음이 울리고, 동시에 진천뢰가 터진 것처럼 흙과 자갈이 사방으로 암기처럼 쏘아졌다.
주먹을 내지르면서 내기를 조절해 돌무더기를 부수지 않고 튕겨낸 것.
실로 믿을 수 없는 경지.
그야말로 사천당가의 노고수가 만천화우를 펼친 듯했다.
그리고 이를 마주한 장이서의 심경은 섬찟 그 자체였다.
‘힘이 강하기만 한 게 아니라 정교하고, 섬세하다.’
생긴 것처럼 괴력 빼면 아무것도 없을 줄 알았는데, 이 정도로 내기를 잘 다룰 줄이야. 설마 자신의 움직임을 잡아내기 위해 공간 자체를 암기로 가득 채워놓다니. 이건 생각도 못 했다.
척. 덕분에 장이서는 움직임을 멈추고, 단도를 휘둘러 이를 막아내기 시작했다.
슈슈슈슈슉!
날카로운 절삭음이 울리고, 어느새 하나, 둘, 셋…… 마흔일곱. 마지막 눈으로 날아드는 모래 알갱이까지 횡으로 양단하는 그 순간.
쐐애애액!
부지불식간에 나타난 사도철의 주먹이 그대로 장이서의 복부로 날아들었다.
퍽!
“큭!”
휘리리릭, 척! 장이서의 육신이 옆으로 수십 번을 돌며 날아가 바닥에 착지했다.
찰나의 순간 간신히 주먹을 흘려보내긴 했으나 옷깃은 말려서 찢겨나갔고, 복부엔 회오리치며 움푹 파인 자국이 남았다.
내상은 당연했고,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
물론 사도철 역시 무사한 건 아니다. 언제 꽂았는지 고개를 떨궈 바라보자 옆구리에 단도 한 자루가 깊숙이 꽂힌 채 상의를 피로 물들이고 있다.
그야말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접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