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52)
첩자의 마교생활-52화(52/350)
52.
#사과는 받아야겠다 (3)
겉만 보면 한 수 주고, 한 수 받은 셈.
하지만 실상은 사도철의 패였다.
‘이거였나. 요도순을 죽인 방법이.’
사도철은 칼 박힌 옆구리에서 고개를 틀어 제 팔을 살폈다. 부르르 떨려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어깨부터 손등까지. 총 일곱 군데의 혈이 박살 난 게 느껴졌다. 이미 시커멓게 사혈까지 차오른 상태.
‘일각을 날려 팔을 부서트리고, 뒤이어 단도를 던져 꽂았다.’
이 정도면 빠르기만 한 게 아니라 거의 묘기에 가까운 움직임.
이윽고 서로를 다시 바라보는 두 사람.
파직! 뒤이어 동시에 둘이 자취를 감췄다.
퍼퍼퍼퍽!
콰직! 쾅!
그리고 속절없이 황폐해져 가는 주변의 광경과 끔찍한 굉음들만이 남겨졌다.
이내 울창했던 숲은 온데간데없고, 오롯이 다 무너진 잔해만이 남겨졌을 때.
두 사람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
서로 십여 보 떨어진 거리에서 마주 보는 모습으로.
다툼의 흔적이 여실함에도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는 살기 어린 눈빛과 어깨 위로 솟아오르는 투기.
이젠 서로를 보며 놀라워하는 기색도 없다.
충분히 알았고, 깨달았다.
‘사도철. 알려진 것보다 더 괴물이구나.’
‘이놈. 그냥 보좌가 아니다.’
의심으로 점철된 시선이 서로 엇갈린다. 하나 누구도 입을 열진 않았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상대를 궁금해할 자격을 갖는 건 오직 이 싸움의 승자뿐이란 것을.
콰아앙!
먼저 사도철이 움직인다. 그의 몸에서 폭발음이 치솟으며 알이 깨진 것처럼 웅장한 기세가 퍼졌다.
특히 전신에 울퉁불퉁하게 두드러진 붉은 힘줄은 섬찟한 분위기마저 풍겼다.
이제 그의 주변은 공간이 뒤틀려 도화지에 형형색색 물감을 묻혀놓은 것처럼 뭉개져 보였고, 그는 마치 거인처럼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아수라멸공(阿修羅滅功)의 극.
십성이었다.
반면 장이서는 이제 단도도 없고, 전신을 휘몰아치는 뇌기도 그 끝을 고해가는 중이었다.
아홉 개의 구멍으로 부족한 내공의 한계가 여실히 나타난 것.
“쉽지 않네.”
장이서가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다.
솔직히 조금 아쉬운 심정이었다.
천마로부터 받은 내공 때문이었을까.
본래의 장이서는 효율적으로 상대를 죽이기 위한 수를 펼치는 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싸우고 싶었다.
더구나 이런 강자와 숨김없이 힘을 드러내며 싸우는 건 절대 흔하지 않은 일. 자신이 알고 있는 무리(武理)를 좀 더 펼쳐보고 싶었다.
하나 이제 누가 죽든 끝내야 할 시간.
싸우는 게 아니라 죽이기 위한 수를 펼쳐야 한다.
“날 홀로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게 네 인생의 가장 큰 실수가 될 거다.”
사도철의 표정이 싸늘히 굳어지고 파앗! 동시에 자릴 박차고 쏘아져 들어온다.
빛살처럼 날아드는 믿을 수 없는 속도.
파직!
이에 장이서가 벼락과 같은 움직임으로 옆으로 내달렸다.
본래라면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 있는 속도.
“크하하하!”
하지만 이젠 사도철의 웃음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진다. 아까까진 분명 속도에서 우위를 점했다. 하나 지금은 아니었다. 사도철은 악귀의 웃음을 지으며 바로 옆에서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아니, 조금씩 따라잡히고 있었다.
급격히 줄어든 내공 탓에 뇌전법도 미약해진 것.
콰과과과!
두 사람의 추격전에 대지가 비명을 지르고, 이내 장이서의 표정이 난처함으로 물든다.
이런.
그리고 그 순간, 콰앙-!
흙먼지가 가득 피어오르고, 잠시 후 바닥에 쓰러진 장이서와 그 위에 목을 움켜쥐고 올라탄 사도철의 모습이 나타났다.
“사술같은 네 묘기도 이젠 한계인가 보구나. 움직임이 그새 느려진 걸 보니.”
“크윽…….”
장이서가 뼈가 바스러지는 고통에 신음을 뱉었다. 사도철은 이에 자비 없이 커다란 우수를 꽉 움켜쥔 채 눈앞에 들이밀었다.
이제 이대로 수직으로 떨어져 내리는 순간, 얼굴은 형태도 남지 않고 함몰되리라. 피할 방도도 없다.
이미 몸 위엔 사도철이 올라타 옭아매고 있으니.
한마디로 끝이란 얘기다. 더는 뇌전법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항거불능의 상태.
“아직도 내게 사과를 원하나.”
사도철이 피식 웃으며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승리한 자의 오만한 얼굴. 유언을 뱉으라는 말이다.
이에 장이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크큭, 크하하하!”
사도철은 이를 듣곤 대소를 터트렸다. 장이서가 이제야 제 분수를 깨달았다고 생각했다. 살려 달라고 빌고 싶겠지. 하나…….
“늦었다.”
사도철이 잔인한 통보를 뱉고는 어깨를 한껏 뒤로 젖혔다. 한데 바로 그때 장이서의 담담한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알아.”
그리고 번쩍!
“컥?!”
사도철의 등을 뚫고 검은 빛줄기가 하늘로 쏘아졌다.
『백뢰(白雷)』
아니, 이제는 암뢰(暗雷)라 불러야 마땅한 비장의 한 수.
항거불능의 상태는 장이서뿐만이 아니었다. 올라탄 채 객기에 젖어 있던 사도철 역시 마찬가지.
장이서가 노린 것도 바로 이것이었다.
싸우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상대를 죽이기 위한 최선의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
그게 설령 자신을 미끼로 던지는 일이라고 해도 말이다.
촤르르륵!
하늘로 쏘아졌던 백뢰가 돌아와 장이서의 손에 안착한다. 뒤이어 제 위의 사도철을 옆으로 밀쳐 털썩 쓰러트리곤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후, 네 사과는 아까 내가 열 셀 때 끝났어. 늦었다고.”
“컥, 커헉!”
사도철이 대자로 쓰러진 채 역류하는 사혈을 연거푸 토해낸다. 가슴 중앙을 관통하며 심장에도 치명상을 입었다. 대라신선이 와도 살아나는 건 불가능.
사도철의 눈에 실핏줄이 사라지고, 두 눈의 초점이 바로 잡힌다. 회광반조다. 회복되지 않는 생명의 근원. 선천진기(先天眞氣)를 태우기 시작한 것.
“이대로…… 끝날 거라고 생각지 마라…….”
“끝나면 안 되지. 너한테 못 받은 사과, 다른 녀석한테라도 받아야겠거든. 그게 마이신이든. 아니면 마가 전체든 말이야.”
“미친놈…….”
“근데 말이야. 너 혹시 아수라멸공 외에 다른 마공까지 익힌 거냐?”
“크큭, 지옥이나…… 가라…….”
음산한 웃음을 흘리며 목소리가 끊겼다. 곁눈질로 힐끗 살피자 눈도 감지 않은 채 비웃는 얼굴로 그의 숨이 끊어졌다.
도살방 서열 1위, 사도철.
날 때부터 악명을 떨쳐온 도살자의 쓸쓸한 최후였다.
달빛 한 점 없이, 아무도 모르게 사라질.
*
까악, 까아악!
까마귀 울음소리가 가득한 숲속.
장이서는 아직도 열기가 식지 않은 사도철의 시체의 눈을 감겨주곤, 옆의 나무로 가 털썩 기대앉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번엔 마기가 침범해 머리가 깨질 듯 아플 일은 없었다. 새 나가지 않았다는 건 아니고, 간헐적인 증상인 듯했다.
덕분에 오히려 수련을 마친 것처럼 정신은 개운했다. 팔다리가 떨릴 만큼 힘이 없어서 그렇지.
“후. 생각보다 더 강한 놈이었어.”
도살방 서열 1위, 사도철.
물론 마교 서열 100위에 드는 고수이니 쉽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정도면 서열 50위에 든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겠는데……. 한낱 자객의 수장이 이럴 수 있나.’
보통 고수들 사이에서 승부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종이 한 장을 메꾸기 위해 평생을 노력해야 하고.
그러면 100위와 50위는 어느 정도겠는가. 비약적으로 얘기하자면 무려 종이가 오십 장 차이다.
그리고 뭣보다도…….
장이서는 황폐해진 주변을 훑으며 고개를 저었다.
특히 돌무더기에 구멍이 숭숭 뚫린 나무들을 보면 혀가 내둘러졌다.
이 부분이 아주 이상했다.
사도철이 익힌 건 도라옥에 갇힌 천악수라의 아수라멸공.
전전대에 워낙 유명했던 대마두였던 터라 그에 대한 정보는 꽤 많이 알려져 있었다.
대표적으로 폭발적인 위험한 괴력의 마공이라는 것. 하여 그만큼 정교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
한데 사도철은…….
‘어디 계속 도망쳐 보거라!’
엄청난 힘과 속도로 주먹을 내질러 돌무더기를 암기로 바꿔놓는 섬세한 기예를 펼쳤다. 이는 둘 중의 하나.
‘아수라멸공 외에 또 다른 무언가를 익혔거나, 그도 아니면……. 오성이 극에 달한 천재거나.’
장이서가 다시금 죽은 사도철의 얼굴을 살폈다.
눈은 감겨줬는데, 입은 여전히 웃고 있다. 저것도 내려줄 걸 그랬나. 묘하게 기분 나쁘네.
“마교에서 마공 하나 더 익히는 거야, 예삿일이지.”
그래. 천재든, 마공이든. 다른 곳도 아니고 마교에서 그게 뭐 대수겠는가. 당장 인간 같지도 않은 천마가 버젓이 살아 있는 곳인데.
아무튼 이것으로 얼추 도살방 정리는 끝났다.
아직 둘째인 사호정이 남긴 했지만, 사실상 두목인 사도철이 당했고, 월하촌으로 간 간부들도 오늘을 넘기기 힘들 테니 와해하였다고 봐도 무방했다.
월하촌은 직접 본 건 아니다. 하지만 취홍란이 마을에 있으니 안 봐도 뻔한 일.
“잠깐. 근데 맹휘랑 마오, 이 새끼들 설마 다친 건 아니겠지?”
괜한 불안감이 짓쳐 든다. 하지만 아닐 거다. 둘 정도면 동탁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만약 둘이 어리숙하게 굴다가 다쳤으면? 이거 갑자기 걱정이…….
“푸하!”
장이서가 한껏 굳어진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헛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하는 것인가.
맹의 첩자가 마교의 후계를 이리 걱정하다니. 과유불급이다.
게다가 바보도 아니고, 설마 조금만 생각해도 뻔히 이길 수 있는 싸움에서 다쳤을까.
“그나저나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장이서가 두 공자에 대한 걱정은 밀어두고,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살폈다.
누굴 기다리는 것인가? 이 시각에 이런 곳에서 만날 사람이라니.
한데 잠시 후.
놀랍게도 그가 기대앉은 나무의 머리 위 가지에서 노곤한 어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고를 크게도 쳐놨군.”
씨익. 장이서의 입꼬리가 올라섰다. 이내 위를 올려다보자 가지 위에 쪼그려 앉은 흑의의 사내가 눈에 담겼다.
한데 행색이 참으로 특이했다.
새하얀 부리의 까마귀 가면과 챙이 작은 흑립. 검은 장갑에 검은 장화. 그리고 광택이 나는 검은 가죽 재질의 도포.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행색은 아니다.
하나 이보다 더 그들을 대변할 수 있는 차림도 없긴 했다.
“왜 이렇게 늦어? 백오문 요즘 일 많아?”
백오문(白烏門). 통칭 까마귀 청소부.
까마귀 우는 살구나무에 장소와 시간을 계피 향 나는 서신에 담아 걸어두면 어떤 현장이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치워준다는 그들이다.
장이서가 앞서 이곳 근처로 약속을 잡아뒀던 것.
툭. 청소부가 바닥에 떨어져 내리곤 주변을 돌려 살핀 뒤 말했다.
“여긴 네가 말한 장소에서 정확히 남서향으로 삼백오십칠 보가 떨어진 곳이다. 지점에서 백 보가 멀어지면 미리 뿌려놓은 탈취향(脫臭香)을 거둬야 하고, 이백 보가 멀어지면 준비해둔 인력을 재배치해야 한다. 또한 본래 심어진 나무와 잡초들이 달라지는 비극도 일어날 수 있겠지. 결국 이 모든 건…….”
“돈.”
돈이 문제지. 장이서가 씨익 웃으며 한마디를 던지자 새하얀 까마귀 부리가 잠잠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