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55)
첩자의 마교생활-55화(55/350)
55.
#승자의 권리 (2)
“자네…… 그새 입이 더 교활해졌어.”
“요즘 바쁘게 살다 보니 그렇게 되더군요. 어쨌든 본론으로 넘어가시죠. 길어서 좋을 거 뭐 있습니까. 어차피 도살방 놈들이 여기 올 것도 다 알고 계셨으면서. 교주님 명 때문에 미리 못 오신 거 아닙니까.”
장이서의 덤덤한 말에 지대호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영리한 건 알고 있었지만, 역시 볼수록 난 놈이다.
그래, 맞다.
사도철이 도살방을 이끌고 간 걸 알지만 못 왔다.
결과가 궁금해 내내 잠을 못 잤고, 무사하단 소식에 안도의 한숨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이런 순수했던 마음은 의심과 의문으로 가득 채워졌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건가.”
무사해도 너무 무사했기에.
도살방의 간부 둘이 당했고, 자객은 사상자가 여든을 넘었다.
반면 월하촌은 건물 몇 개 부서진 게 다였다.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지대호가 추궁하듯 노려보자 장이서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죽이겠다고 덤비는데 별수 있습니까. 마을 교인들까지 합심해 한 번 꿈틀대 본 겁니다. 근데 놈들이 거기 지레 놀라 당한 거죠.”
“겸손도 지나치면 사기인 걸세.”
“그럼 악에 받쳐 깨문 걸로 하죠.”
“물려서 죽을 자들이면 여태 살아 있지도 못했겠지.”
“그래서 죽었지 않습니까.”
“사도철까지 죽일 줄은 몰랐네.”
“사도철은…….”
쉬지 않고 답하던 장이서가 말끝을 흐리며 지대호를 나직이 훑었다. 표정을 보니 어서 답해 달라는 듯 얼굴 근육이 꿈틀꿈틀한다.
역시 이거였나. 사도철의 실종. 그게 궁금해서 찾아온 것인가.
장이서는 속으로 웃음을 삼키곤, 겉으로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맑은 눈을 깜빡이며 찬찬히 답했다.
“사도철은 안 왔는데요.”
“하!”
지대호가 탄식을 터트리며 고개를 확 뒤로 젖혔다.
그렇게 어물쩍 알아내기엔 상대가 하필 암각의 첩자 장이서다. 이런 뻔한 유도신문에 넘어갈 리 만무한 일.
“사도철이 월하촌 인근까지 다다른 걸 호룡당에서 직접 확인했네. 근데 제 수하들이 다 죽어가는 와중에 월하촌엔 오지 않았다? 그걸 믿으라는 말인가?”
“안 온 걸 안 왔다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합니까.”
크하아아앙! 지대호가 매섭게 노려보는 것만으로도 범이 포효를 내지르는 것 같다.
하지만 그가 이만큼 화가 난 이유도 분명히 있었다.
그건 아무 교인을 붙잡고 물어도 정말 마을에서 사도철을 본 자가 없다는 것.
설득을 하든, 회유를 하든. 증인이 많으면 하나는 불기 마련이거늘.
다른 얘기는 다 나왔어도 사도철을 봤다는 자는 진짜로 없었다.
그렇다면 그의 포악한 성정과 실종된 작금의 상태를 미루어, 호룡당주로서 내릴 수 있는 가정은 단 하나.
‘누군가 언덕으로 가 혼자 남아 있던 사도철을 제거했다.’
그리고 유력한 용의자는 똑같이 마을에서 끝날 때까지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장이서. 그뿐이었다.
“사도철은 패한다고 물러설 자가 아닐세. 본능에 충실한 맹수에 가깝지. 한 번 먹잇감을 정하면 사흘 밤낮 수백 리를 쫓아가서라도 물어 죽이는 그런 곰 같은 맹수 말일세. 그리고 자네는 바로 그가 정한 먹잇감이었네.”
“무섭군요.”
“그런 사도철이 지금 사라졌네. 이게 무슨 뜻이겠는가.”
무슨 소리긴.
“이제 발 뻗고 자도 되겠습니다.”
“장난하는 것으로 보이나?”
“그럼 제가 없애기라도 했다는 겁니까?”
“내 판단으로는 그러하다네.”
“흐음…….”
“시인하는가?”
“그럴 리…….”
장이서가 부정하려는 그 순간, 지대호의 손이 매의 부리처럼 빠르게 쏘아져 나왔다. 갑작스러운 일격에 장이서는 찰나의 고민에 빠졌다. 피할 순 있다. 하지만 피해야 하는가? 아니. 지금은 아니다.
척! 어설프게 막아내려던 장이서의 손이 단숨에 지대호에게 붙잡혔다.
“크윽!”
그와 동시에 엄청난 통증이 전신에 밀려들었다. 지대호 때문이 아니라 사도철과의 격전으로 성한 곳이 없었기 때문.
지대호는 장이서의 소매를 휙 걷어 내리며 시커멓게 죽어 있는 맨살을 눈짓하며 물었다.
“많이 다쳤군. 이 정도면 걷기도 힘들었겠어. 묻겠네. 누구와 싸우다 이리된 건가.”
“다치는 것이 일상인 게 무인이거늘……. 질문이 참 당황스럽습니다. 모욕적이기도 하고요.”
팍! 장이서가 손을 빼내곤 좌수로 손목을 붙잡아 빙글빙글 매만졌다. 그러곤 서늘하게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잘 아실 텐데요. 제 몸이 어떤 천형을 받고 태어났는지.”
“그건……!”
“그런 제가 사도철을 죽였다니. 억지를 부리고 싶은 겁니까? 아니면 그냥 그렇게 믿고 싶으신 겁니까.”
지대호의 말문이 턱 막혔다. 맞다. 머리로는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사도철은 교에서도 공식적으로 인정한 일백 인의 고수 중 하나.
그런 그를 고작 이립도 안 된 단전이 고장 난 장이서가 꺾었을 리는 만무한 일.
하지만 가슴이 자꾸 그를 가리켰다. 이는 오랜 세월 호룡당에서 사건을 처리해 온 영리한 호랑이의 감이었다.
“그리고 설령…….”
지대호가 상념에 젖어 있는 사이. 장이서가 상황을 정리하듯 말을 꺼냈다. 그것도 피식 웃으면서.
“사도철이 제 손에 죽었다고 한들. 그게 무슨 문제가 됩니까?”
“뭐……라?”
“그가 먼저 칠소궁에 싸움을 걸었고, 이 대결은 교주님께서도 인정한 싸움입니다. 그러니 누가 죽어 나가도 하등 문제 될 게 없죠. 오히려…….”
옳은 말만 툭툭 뱉으며 지대호의 입을 벌려놓은 장이서가 진중한 목소리로 딱 부러지게 충언했다.
“제 생각엔 지금 호룡당이 할 일은 승자를 추궁해 사도철의 행방을 찾을 게 아니라, 패배한 도살방에게 마땅한 엄벌을 내리는 게 맞을 듯합니다. 패자에겐 자비 없는 본교답게 말입니다. 교주님께서도 그걸 바라실 것 같은데요.”
“그건 알고 있네만…….”
“아신다는 분께서! 치하해줘도 모자랄 일에 수하들을 데리고 와 공자님들을 협박까지 하신 겁니까? 이쯤 되니 의문이 듭니다. 혹 당주라는 권위를 지금 개인적인 호기심을 푸는 데 사사로이 쓰고 계신 건 아닙니까?”
“나, 나는 그저…….”
“잘못된 걸 아셨다면 지금이라도 돌아서십시오. 더 오시는 건 아무리 가까워도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장이서가 차갑게 말을 마무리 짓고는 눈을 부릅떴다.
졌다…….
지대호는 넋 나간 얼굴로 고개를 휘휘 흔들었다.
하나같이 전부 맞는 말.
지금 자신은 장이서를 추궁하고 있을 게 아니었다. 이건 단지 궁금해 미칠 것 같았던 개인적인 호기심의 발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지대호가 항복을 선언하듯 이빨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자넨 뼛속까지 본교인이군. 보좌가 아니라 광명천마대로 가서 교주님을 보필하는 게 더 나았겠어. 그분의 속내를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으니.”
“아니,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요.”
장이서가 멋쩍은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정신만은 엄연히 무림맹 소속이거늘 뼛속까지 마교인이라니. 올해 들은 말 중에 제일 심한 욕이다.
“어쨌든 사도철은 본교에 공식으로 기재된 일백마성(一百魔星) 중 하나. 죽었든, 실종이든. 교주님께 보고를 올려야 할 사안일세.”
지대호의 감정이 배제된 말에 장이서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백마성(一百魔星).
마교에서 공식 서열 100위 안에 드는 자들을 뜻하는 말이었다.
강자지존을 원칙으로 하는 마교에서 교주가 직접 임명해주는 최상위의 명예직.
뭐 그렇다고 매달 돈이 나온다거나 하는 그런 특혜는 없다.
다만 교주가 직접 그들의 생존을 관장했다.
어쨌든 마교의 핵심 병력이니 뒤는 확실히 봐주겠다는 뜻.
그래서 일백마성이 직접 허락지 않는 한, 그들에게 도전하려면 절차까지 밟아야 했다.
한데 그런 존재가 싸우다 죽은 것도 아니고, 불현듯 실종이 되어버렸으니 일이 복잡해진 건 사실.
‘물론 싸워서 죽었다고 하면, 믿을 수 없다며 더 난리가 났겠지만.’
장이서는 한숨을 삼키고 지대호를 살폈다. 표정을 보니 이제 개인적인 추궁이 아닌 오롯이 공적으로만 임하려는 듯 보인다.
“사도철이 어디로 갔는진 저도 모릅니다. 다만, 도살방에게 벌을 줄 방법은 알고 있죠.”
“무슨 뜻인가.”
“당하고만 있기엔 억울해서 빈집을 좀 털었습니다.”
“색화루를 말하는 것이군.”
역시 호룡당주. 이쪽으로는 빠삭하다. 장이서는 어제 용태가 다녀간 일을 떠올렸다.
‘형님-! 용태 왔습니다!’
그는 금의환향하듯 꽉 채운 마대를 세 자루나 수레에 쌓아 가지고 왔는데, 그 안에 생각지 못한 것들이 들어 있었다.
그것이 바로…….
“미혼산.”
장이서의 대답에 지대호의 표정이 굳어졌다.
“음…….”
“환각제죠. 그리고 그건 육장로이신 독산마의(毒産魔醫)께서 관리하시는 독산각(毒産閣)이 아니라면 다룰 수도, 다뤄서도 안 되는 금약일 테고요. 아닙니까?”
“맞네.”
지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혼산. 본교뿐만 아니라 중원에서도 철저하게 금기시되는 독이었다.
내기로 독성을 태운다고 해도, 이미 중독되어 계속 찾게 되는 정신만큼은 돌이킬 수 없기에 독산각에서도 매우 위험한 약으로 구분했다.
“한두 명 복용할 정도가 아니라 수천 명이 먹고도 남을 만큼 방대한 양이었습니다.”
“그럴 리가……. 아무리 사씨 형제라고 해도 그 정도의 양을 만들어낼 수는 없네.”
“밖에서 들여왔을 수도 있죠.”
“허…….”
만일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또 다른 문제다.
호룡당뿐만 아니라 오룡당 전체가 발 벗고 나서야 할 아주 중차대한 문제.
“자세히 얘기해 보게.”
“자세히는 저도 모르죠.”
“뭐야?”
“하지만 둘째인 사호정이라면 잘 알지 않겠습니까?”
지대호의 눈빛에 안광이 서렸다. 이놈…… 참으로 교묘하다. 이리되면 지금 호룡당이 책임지고 도살방 잔당을 완전히 궤멸시키라는 얘기와 무엇이 다른가.
이내 장이서가 속을 꿰뚫은 것처럼 씨익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도살방은 끝났습니다. 호룡당이 손 놓고 있는 동안 저희 칠소궁의 손에 말이죠. 그래도 연이 있으니 빈손으로 가지 마시라고 제가 선물 하나 드리는 겁니다.”
“하……. 기가 막히는군. 내가 자네 말을 어떻게 믿지?”
“안 그래도 언제 오시나 했습니다. 저 기둥 뒤에 가져온 미혼산은 한 줌도 안 건드리고 그대로 놔뒀습니다. 마대에 담겨 있으니 흘리지 말고 잘 챙겨가십시오.”
이놈이 아예 작정을 했구나. 지대호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솔직히 호룡당 입장에선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얹으면 되는 상황이었다.
분명 천마 진우광은 패자에겐 가혹하고, 승자에겐 너그러운 존재.
이번 싸움에서 패한 도살방은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물길 바랄 터였다.
그런 의미에서 미혼산이 등장했고, 하필 둘째인 사호정이 남아 있으니 표적으로 삼기엔 이만한 게 없다.
문제는.
‘이놈이 짜놓은 판에 제대로 놀아나게 생겼구나.’
그게 묘하게 괘씸하면서도 웃긴다는 것이다.